* 본 게시글은 페이트 그랜드오더 이벤트 등장인물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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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오늘날 그리스 반도 최북부 지역 ) 왕국의 디아도코이 (*고대 그리스어로 후계자. 계승자 란 의미지만 마케도니아 왕국에서는 장군을
의미 ) 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 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명확하지 않아 그가 필리포스 2세 (359~336)의 사생아 가 아니냐 라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설이 뒷받침 되어주는것이 그가 바빌론에서 그리스로 옮기던 이스칸다르 (알렉산드로스3 세 )의 유해를 탈취하여 이집트로 옮겨왔고
옮겨온 동시 신격화 를 진행했으며 무엇보다 프톨레마이오스 자신이 알렉산드로스 원정에 참여했던 이야기 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스칸다르 와는 어린시절 같이 지내왔는데 어느날 카리아 (* 오늘날 튀르키예 서남부 지역) 의 총독 픽소다로스 가 마케도니아 왕국 과
동맹을 맺고자 이스칸다르 의 이복형인 필리포스 3세 (359~317) 에게 자신의 딸을 결혼시키려 했다 이를 이스칸다르가 사람을 보내서 픽소다
로스 총독에게 총독의 딸과 결혼하고싶다는 뜻을 밝히게 됩니다 그러나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이 소식이 부친인 필리포스 2세의 귀에
들어가버렸고 화가난 필리포스2세는 이스칸다르를 불러 " 페르시아 제국 에 노예로서 사는 카리아(오늘날 튀르키예)인 과 결혼하려하다니 그건
내 지위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 " 라며 꾸짖었고 이스칸다르의 행동을 맞지 못한 죄로 프톨레마이오스 및 다른이들은 모두 마케도니아 에서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필리포스 2세가 세상을 떠나고 이스칸다르 가 왕위에 즉위하자 귀국하여 왕실 근위대가 되었고 기원전 333년 튀르키예 이켄데룬 북쪽
평원인 이소스 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다리우스 3세 (380~330) 와 격돌하여 승리하였고 이후 이스칸다르 왕을 따라 저멀리 인도원정
에 까지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칸다르가 원인모를 죽음을 맞이하게되어 제국자체가 분열되었을때 이스칸다르 왕의 디아도코이 들은
분할통치 하는것으로 결정하였고 프톨레마이오스 는 이집트와 리비아 지역을 차지하여 그곳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때마침 이스칸다르 왕의
유해가 그리스로 운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프톨레마이오스 왕은 팔레스타인 에서 운송중인 이스칸다르 왕의 유해를 탈취 멤피스 로
옮겨 그곳에 관을 안치하고 그를 신격화 했는데 이에 격분한 페르디카스 (355~321) 가 나서 이집트로 원정을 시도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그 실패로 인해 펠루시움 ( 오늘날 이집트 나일 삼각주 동쪽 끝 지역 )에서 암살을 당하고 마니 이것이 바로 1차 디아도코이 전쟁 이였습니다
이후 디아도코이 전쟁은 계속되었으며 기원전 305년에 왕위에 올라 프톨레마이오스 1세로 즉위하였으며 같은 디아도코이 였던 안티고노스
1세(382~301) 의 아들인 데메트리오스1세(185~150) 가 로도스 섬음 공격했을때 로도스 에 지원군을 파견하여 승리하자 로도스 인들로부터 구
원자 (소테르) 라고 불리게되었습니다 이후 마지막 5차 디아도코이 전쟁에서 데메트리오스 1세 를 격파함으로서 진정한 디아도코이 전쟁의 승리자
가 되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는 이집트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면서 이집트 인들 에게 선정을 베풀어 성군으로 불렸으며 이후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와
공동통치를 하다 기원전 283년 83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으며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2세 가 통치하며 왕조를 이어갔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300년 간의 통치를 이어왔으며 클레오파트라 7세를 끝으로 문을 닫기 까지 오랜시대를 통치해왔다고 합니다.
재미있는건 다른 디아도코이 들과는 달리 행복한 삶을 누리고 갔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른 디아도코이 들은 암살당하거나 반란이 일어나서
나라가 무너지는 등 비극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는 안정적인 정치와 욕심부리지 않고 오직 이집트 만을 통치하고 그들의 전통과 제도를
받아들이는 바 동시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웠던 인물이였습니다. 거기다 현실적인 감각과 정치적인 능력도 탁월하여 왕조을 오랜기간
통치할수 있었지요 이후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도서관을 만들어 학문의 메카로 성장하게 하였으니 이것이바로 그 유명한
마케도니아의 도서관 이였습니다 이후 클레오파트라 7세 때 불타기 사라지기 전까지 지식의 성지로 불리던 곳이였지요
그의 일화중엔 수학자인 에우클레이데스 (기원전 4세기 ~ 기원전 3세기) 에게 기하학을 배우게 되었는데 기하학이란 학문이 알다시피
상당히 어려운 학문인지라 프톨레마이오스 가 에우클레이데스 에게 기하학을 배우게되었는데 기하학을 무척 어려워 하자 쉽게 배울수 없느냐는
질문에 에우클레이데스 는 " 전하 께서 다니시는 왕도가 있을지는 몰라도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사옵니다. " 라며 왕에게 답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에 대해 모두 알아봤습니다.
원래 디아도코이 전쟁에 대해 좀 상세히 쓸려고 했으나 지루하게 나가는것보다는 요약하는게 더 편하다 생각하여 짧게 정리했습니다.
궁금하신분들은 위키나 서적을 통해 알아보시면 좋을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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