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감X둔감 바보 커플 요시다이의 삽질을 즐겨주세요♪
유급할 정도로 성적이 엉망진창인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쿠로사와 다이아가 다니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꽤나 노력해야 되는 수준의 성적이었다. 그래서 츠시마 요시코는 좋아하는 것들을 잠시 손에서 놓고서 열심히 공부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쿠로사와 다이아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싶었으니까.
노력은 마침내 합격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기뻐하다가 저녁이 되었을 때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떨림을 숨기고 전화를 걸었을 때, 자신보다 더 기뻐하던 그녀의 목소리는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혼자 살기에는 집이 너무 넓어서 그런데 혹시 요시코 씨만 괜찮다면 같이 살지 않을래요?' 라는 말 역시.
처음 이 제안을 들은 순간, 츠시마 요시코는 "요하네라고!" 라고 대꾸하는 것도 잊고서 잠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분명히 제대로 완성된 문장을 듣긴 들었는데, 머리에서 처리가 안 되는 느낌. 어, 음, 어... 만 반복하자 상대편은 거절당한 줄 알았는지 불안함이 섞인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역시 너무 당황스러운 제안이었죠? 죄송합니다. 불편하시다면 얼마든지 거절하셔도 돼요"
"응? 으응? 아니, 아니! 그게 아냐! 그런 거 아니야! 좋아! 엄청 좋아! 나도 다이아랑 같이 살고 싶어! 무지!"
허겁지겁 대답하자, 저편에서 후훗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츠시마 요시코도 그 소리를 따라 크게 웃었다.
그 뒤로 정말 한 집에서 같이 살게 되고,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고, 같이 식사를 하고... 꿈만 같은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졌기에 츠시마 요시코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실 날이 없어야 됐다. 그래야 되는데...
"하아..."
츠시마 요시코가 도쿄에 와서 쿠로사와 다이아를 매일 바라보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쿠로사와 다이아는 인기가 정말 많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주로 여자들에게. 거기다가 더 심각한 건 단순히 인기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호감을 넘어선 애정을 기대하고 다가오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는 거였다.
그리고 제일 최악인 건 말입니다. 고등학생 때도 둔감의 극치를 달리던 저 선배님이 아직까지도 둔감하기 짝이 없어서 자기 옆에 오는 사람들에게 항상 상냥하게 대해주고 예쁘게 미소 지어 준다는 겁니다.
'짜증나. 진짜, 완전 짜증나!'
깔끔하게 인정한다.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질투다. 솔직히 말해서 따지고 보면 자신은 그저 쿠로사와 다이아의 고향 후배이자 동거인이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사람일 뿐인데. 그녀의 가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 자신이 쿠로사와 다이아의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해서 뭐라고 참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속이 불편했다. 부글부글 끓기도 했고, 욱신욱신 쓰리기도 했고, 손톱으로 위가 긁히는 느낌도 들었다. 왜 이러는지는 자기 자신도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속이 불편했으니까, 보기 싫었다. 단지 그것뿐이다.
"다이아, 팥빙수 다 녹겠는데"
"네? 아앗, 죄송해요! 그럼 코바야시 씨, 코미야 씨. 내일 회의실에서 만나요"
"네~ 내일 봬요, 쿠로사와 선배!"
끝날 것 같지 않던 대화는 입을 삐죽 내민 츠시마 요시코가 숟가락으로 팥빙수 그릇을 툭툭 치며 눈치를 주고 나서야 마무리됐다. 두 사람을 보내고 다시 몸을 츠시마 요시코 쪽으로 돌린 쿠로사와 다이아는 미안함이 가득 어려 있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마주쳤다.
"정말 죄송해요, 요시코 씨... 먼저 드시지 그러셨어요"
"요시코가 아니라 요하네! 나 참, 저번 주에도 회의했다면서 뭐가 그리 말할 게 많은 건데?"
"오늘 말했던 저 부분은 그때 제대로 논의가 안 됐던 부분이라서요... 그래도 오늘은 요시코 씨랑 단둘이 밖에 나온 건데 제가 실수했네요"
"뭐... 별로 신경 안 쓰이는데. 다이아가 그러든 말든"
퉁명스러운 말투로 정말 설득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말을 내뱉자, 그녀가 당황스러워하는 게 눈앞에 선명히 보였다. 아, 정말 얄밉긴 하지만 저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츠시마 요시코는 얼른 분위기를 수습했다.
"딱히 화나서 한 말은 아니야. 정말 신경 안 쓰이니까... 그러니까 내 눈치 안 보고 편하게 대화해도 된다는 뭐 그런 말이거든"
"그렇지만..."
"다이아가 누구랑 대화 안 했으면 좋겠고, 누구랑 얼마만큼 대화해야 되고... 그렇게 말하는 거 완전 간섭이잖아? 난 다이아한테 간섭할 생각 없어. 민폐잖아"
거짓말. 완전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사실대로 말했다간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며 미움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입에 침 한 번 바르고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주절주절 내뱉은 것이다. 츠시마 요시코의 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쿠로사와 다이아는 곧 샐쭉 미소 지으며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전 요시코 씨한테 간섭받아도 괜찮은데"
"...응?"
"음,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 할 말만 툭 내뱉고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창가 쪽으로 홱 돌리는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던 츠시마 요시코는 잠시 후, 속으로 소리 없이 투덜거렸다.
정말이지, 미워할래도 미워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
저녁 열 시. 뉴스는 진작에 끝났고, 심야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늦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다이아는 아직까지도 저녁 밥상이 차려진 식탁에 양팔을 올린 채 핸드폰만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이미 설거지까지 다 끝내놓고 제 할 일을 한다던가, 동거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시간인데 말이다.
"늦게 온다면 온다고 연락을 해야 될 거 아냐"
그녀가 지금까지 이러고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바로 동거인인 요시코가 이 시간이 되도록 연락도 없이 집에 안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경찰에 실종 신고라도 해야 되는 건가 걱정하느라 밥맛도 사라져서 밥 한 숟가락도 못 뜬 채로 연락만 기다리고 있길 몇 시간째. 이제는 걱정을 넘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이쪽에서 연락을 해보면 되는 일이 아니냐고 할지 몰라도, 이상하게도 그건 하기 싫었다. 자존심 때문일까.
"오늘은 정말 단단히 혼을 내야겠네..."
설교 멘트를 마음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한 다이아가 긴 한숨을 내쉬던 그때, 짜기라도 한 타이밍에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그쪽을 보자 벌컥 문을 열고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문제의 동거인이 보였다. 다이아는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부축해 주었다. 알코올 냄새가 진하게 풍기자, 다이아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주량도 약한 사람이 뭘 이렇게 많이 마신 거야.
"요시코 씨, 요시코 씨. 정신 차려 보세요"
"으응... 다이아?"
"대체 술을 왜 이렇게 많이 마신 거예요?"
"아냐아... 조금 밖에 안 마셨는데"
"거짓말하지 말고요"
"흐하핫, 들켰네에"
뭐가 즐거운지 저를 빤히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는 요시코를 째려본 다이아는 그녀를 반쯤 끌고 가다시피 해서 겨우 식탁 의자에 앉혔다. 왼손으로 꼭 쥐고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닐봉지를 툭 하고 식탁 위에 올려둔 요시코가 문득 제 앞에 있는 저녁 밥상을 발견하고는 입을 떡 벌렸다.
"다이아! 아직 밥 안 먹었어?"
"밥맛이 없어서 말이죠"
"왜애? 먼저 챙겨 먹지"
"어떤 분이 저녁 약속 있다고 연락을 안 해주셔서 기다리느라 말이죠"
"응? 어떤 분? 아, 아아. 라인 메세지 보냈는데? 어라? 잠깐마안"
허둥지둥거리며 코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요시코는 라인 대화방을 확인해 봤다. 그러자 인터넷 신호 불량으로 인해 제대로 전송되지 않은 메세지가 보였다.
"으읏... 하늘이 또! 이 타천사를 방해하는구나!"
"그건 또 무슨..."
"봐봐~ 난 분명히 전송했거든? 근데 이렇게 됐다구!"
제 눈앞에 떡 들이민 그녀의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다이아는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보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좋아요. 설교는 넘어가 드리죠"
"와아~"
"나 참... 그나저나 무슨 저녁 약속이었길래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컵에 물을 따라서 한 모금 마신 요시코가 실실거리며 대답했다.
"오컬트 동호회 긴급 모임이었거든! 말이 잘 통하니까 나도 모르게 술이 술술 들어가더라고오"
"아, 그렇군요..."
신이 나서 조잘거리는 요시코와 달리 복잡한 표정을 얼굴 가득 띄우던 다이아는 평정심을 가장하며 그녀에게서 눈을 뗐다.
"정말 재밌었나 보네요"
"후후후,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거니까. 이해받는 느낌이 최고라구!"
"...저도 이해해요. 요하네 씨를"
"엥?"
아무 의미도 없는 스쳐 지나가는 말처럼 던졌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닌 한마디가 귀에 박히자 요시코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다이아 쪽으로 윗몸을 쭉 뺐다. 그러거나 말거나 괜히 저 멀리만 쳐다보고 있는 다이아는 무심한 척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예전부터 이해하고 있었다고요. 저는"
이젠 아예 몸까지 돌려서 등만 보여주고 있는 다이아의 푸념을 듣고 얼마간 입을 다물고 있던 요시코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까보다는 술이 깼는지, 한결 정확해진 걸음으로 그녀를 향해 간 요시코는 한 손을 그녀의 머리 위에 턱 올려놓았다.
"삐쳤어?"
"...아닙니다"
"에이"
"아니라고요!"
어느새 귀까지 벌게져서는 고개를 홱 돌려 이쪽을 바라봐 준 다이아가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요시코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알고 있어"
"네?"
"알고 있다고. 다이아가 날 예전부터 이해해 준 거. 정말 잘 알고 있어"
"..."
뜻밖의 말에 다이아의 입이 꾹 닫혔다. 요시코는 그런 다이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니까 질투 안 해도 돼"
"질, 질, 질투라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에엥? 아니야?"
"...흥"
음, 그래. 아니라면야, 뭐. 뻘쭘해하며 다이아의 머리에서 손을 뗀 요시코가 불쑥 이 대화가 마치 연인들이 나누는 대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뺨을 붉혔다. 그녀의 입에서 어색하고 과장된 웃음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 아하하. 밥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까?"
"밥 안 먹었어요?"
"안주만 조금 먹어서... 아, 배고프다! 다이아, 내가 밥 좀 떠올게! 많이 먹을 거야? 아님 조금만?"
"저는 조금만 주세요"
"응, 알았어"
눈치도 없이 자꾸 달아오르는 양 뺨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치면서 요시코가 밥솥을 놔둔 곳으로 걸어가자, 뒷모습을 빤히 응시하던 다이아가 식탁 한쪽에 놓여 있는 비닐봉지를 집어서 열어보았다. 안에 있는 내용물이 뭔지 확인한 순간, 그녀의 입꼬리가 빙긋 올라갔다.
"정말이지,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니까요"
봉지 안에 들어 있는 건 출시된 지 며칠 안 된 계절 한정 맛 푸딩 세트였다.
-
사쿠라우치 리코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자기한테 온 메세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나는 요시코가 보낸 메세지. 요약하자면 이 감정이 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다이아 씨가 보낸 메세지. 이 역시 요시코가 보낸 것과 똑같은 내용.
"누가 봐도 사랑이잖아?"
둔감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의 조합이라. 이것 참, 마음고생 좀 길게 하겠네. 킥킥거리던 리코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로 시작되는 답장을 적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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