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다.
죽음이란 이름을 단 용의 거처를 앞에 둔 모험가는 생각했다. 실로 지독한 기운이 온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으니까. 아이리스의 도움으로 독기를 막고 있다 쳐도 사룡이 뿜어내는 기운은 제법 매웠다. 한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목구멍이 타는 듯한 감각이 선명했다.
굉장히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에 모험가는 저도 모르게 비릿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저 단순히 독이 좋아 그것을 만지고, 모으고, 집어삼키며, 끝내 혈관을 전부 독으로 메우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렸던가. 그리고 끝내 맹독마저도 자신의 몸을 태울 수 없게 되었을 때, 얼마나 실망했던가.
그렇기에 모험가는 제 앞에 펼쳐진, 맹독을 넘어선 사독 앞에서 하염없이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혹여나 심각한 상황 속에서 저 혼자 비틀린 미소라도 띄우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크윽….”
모험가가 한창 허튼 생각을 하던 와중에 플로가 더는 무리라는 듯 쓰러졌다. 여기까지 오는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며, 더 강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안타깝다는 듯이. 모험가는 잠깐 생각한 뒤 아이리스에게 자신의 보호막을 거두라 말했다. 저 앞에는 죽음에 가까운 극악한 기운이 가득 들어차 있었지만, 모험가는 그 정도도 견디지 못하는 약해 빠진 생명체가 아니었다.
“모험가님? 하지만….”
“정말 괜찮겠어?”
모험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리스는 가볍게 손짓하여 보호막을 거두었다. 순식간에 한 층 무거워진 공기가 모험가를 감쌌다. 조금씩 들이쉬는 공기는 마치 불처럼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크게 심호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모험가에게도 상황을 판단하는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일개 뒷골목 잡배에서 시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로 눈앞에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을 두고서 생각도 없이 숨을 들이켠 뒤 기뻐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곧 모험가는 신호를 받으면 바로 빠져나오라는 신신당부를 들으며 죽음의 용에게로 향했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로, 죽음을 영원히 불태우기 위해. 그리고 그전에, 죽음을 한계까지 만끽하기 위해.
사룡이 자리 잡은 둥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녹아버린 땅과 앞으로 녹아버릴 땅뿐. 용 같은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싶었을 때, 자칫 잘못하면 날아가 버릴 정도로 강한 바람과 함께 사룡이 모험가의 눈앞으로 내려앉았다.
모험가는 과거에 본 사룡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알프라이라 산맥에 있는 흑요정들의 묘지에 봉인된, 갈기갈기 찢어져 머리만 남아있는 채로, 그러고도 죽지 못해 살아있는 지독한 모습을. 그리고 뼈만 남은 그 몰골로 잘도 죽음의 숨결을 내뱉던 일을.
“바칼 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것을 바꾸고 기다렸다. 이젠 네가 그럴 가치가 있었는지…”
“됐고.”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정보가 교차되어 눈앞에 펼쳐지자, 모험가는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가슴이 쉴 새 없이 뛰는 것이 독기 탓인지, 아니면 기대감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숨을 내뱉어라.”
손가락을 가볍게 까닥였다. 가장 손쉬운 도발 방법. 그 행동에 응하듯 사룡은 곧장 모험가를 향해 죽음의 기운을 뿜기 시작했다.
이를 어찌나 바랐을까. 모험가는 곧장 두 팔 벌려 크게 숨을 들이쉬기 시작했다. 중독되는 감각을 느끼기 위하여. 폐가 타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기 위하여. 목구멍이 날붙이로 할퀴어지는 느낌에, 불덩이가 기도를 태우는 느낌에 모험가는 한없이 광소하기 시작했다.
마치 태초로 돌아간 듯한 그리운 감각에 몸서리를 칠 정도로.
“실로….”
브레스가 끝난 뒤에도 그 한가운데 멀쩡히 서있던 모험가의 손끝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실로 끔찍하고…근사해.”
하나 그 떨림은 독기를 이겨낼 수 없어서가 아닌, 순수하게 감격했기 때문. 맹독을 넘어서, 사독이라 불러야 할 법한 그 끔찍한 기운은 이미 한 번 자신의 근원을 돌아본 모험가를 또다시 그 뿌리로 돌려보내기에 충분했다.
혀 위에 남은 아릿한 독기를 핥으며,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 맛을 삼키며, 모험가는 한 발, 한 발 사룡을 향해 나아갔다.
“나한테 할 말이 있어 보였는데.”
바닥에 고인 사독의 웅덩이에 발을 담그며.
“그딴 건 내 알 바가 아냐.”
폐 속을 돌고 도는 독기에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천계고 뭐고, 난 너한테 볼 일이 있었거든.”
“내가 할 일은 그분의 말씀에 따라 널 시험하는 것뿐이며, 네가 할 일은 그 가치를 증명하는 것뿐이다.”
“그래, 그러니까.”
모험가는 다시 한번 두 팔 벌려 자신의 무방비한 모습을 내어 보였다. 당당하고, 또 오만한 시선으로 사룡의 거체를 올려다보며.
“네 독으로 날 절여봐. 진득하게, 뼈조차 남지 않는 저 밖의 시체들처럼. 날 녹여보라고.”
“…그것이 너의 강함인가.”
“이러네 저러네 뭐네 해도 결국엔 이따위 밖에 못하는 일개 못난 인간이라서.”
“그렇다면, 그따위 밖에 하지 못하는 인간의 가치를 마음껏 보여보아라.”
사룡은 곧 그 몸뚱이를 움직여 모험가를 향해 발톱을 들이밀었다. 건물보다 컸음에도 그 속도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사룡의 앞발은 무거운 공기를 갈랐고, 땅을 갈랐다. 그 발톱의 끝에서, 그리고 그 앞발이 움직인 궤적에서 짙은 독기의 방울이 흩어져 온 사방으로 퍼뜨려졌다.
만물을 녹이는 독 방울을 뒤집어쓰며 모험가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농축시킨 독을 온 사방에 퍼뜨리기 시작했다. 비록 죽음에게 자신의 독이 닿지 않을지라도, 그 일말이라도 어쩌면 닿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맹독이 전성기의 죽음마저 녹일 수 있기를 바라며.
용이 채운 사독의 틈으로 뱀의 맹독이 스며든다.
땅을 으깨는 앞발을 타고 오르는 모험가의 뒤쪽으로 독 지뢰가 터져 나왔다. 소리 지르는 용의 날갯죽지에도 폭발성 독을 쑤셔 넣자 곧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보랏빛 폭발을 일으키며 독 안개가 퍼지기 시작했다.
곧장 모험가는 땅으로 제 몸을 내리꽂으며 주변에 심어둔 독 지뢰를 기폭 시켰다.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폭발을 피해 용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그대로 그 육중한 몸뚱이로 땅을 내리쳐 주변을 뒤엎어버렸다.
그와 함께 사독을 품은 가시가 온 사방에서 튀어나오며 모험가를 압박했지만, 그 역시 뱀에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맞으면 죽는다는 생각 따윈 버린 지 오래였기에. 몸이 꿰뚫리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고서 다시금 죽음을 향해 그 독니를 드러냈다.
용은 잠시 몸을 움츠리고는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모험가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것을 넘어 모험가를 치어버리고는 정 반대되는 위치까지 달려가버렸다. 하늘 높이 붕 떠오른 모험가는 바로 공중에서 몸을 가누곤 상자 하나를 꺼내 들어 용을 향해 달려들었다. 폭발물이 든 상자. 물론 당연하게도 독이 포함되어 있었다.
거의 일자로 내리 꽂힌 모험가의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사룡을 피해 사룡의 발치에 꽂혔다. 하나 상관없었다. 어쨌든 간에 터질 물건. 모험가의 미소와 함께 상자는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며 두 생명체를 삼켜버렸다.
살이 타는 소리와, 피 가래가 끓는 소리와, 용의 포효와, 인간의 광소가 한데 뒤섞여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 인간은 독을 들이마셔도 죽지 않았고, 용은 목을 끊어도 죽지 않았다. 광기에 휩싸인 전투 속에서 이제 바칼의 뜻도, 천계의 뜻도 아무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용은 말했다. 칼날이여. 하지만 모험가는 듣지 않았다. 용의 목구멍에 날붙이를 쑤셔 넣을 뿐.
제아무리 죽지 않는다 해도 거듭 상처 입히고 쓰러뜨리면 지치기 마련. 사룡은 누적된 죽음으로 기운이 많이 빠진 듯 휘청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용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그 허리를 굽히지 않은 채 위압감 넘치게 소리를 내뱉었다.
“이대로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신경 쓸까 보냐!”
모험가 역시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며 외쳤다. 잔뜩 녹아버린 땅속으로 발이 푹푹 빠져 제대로 서있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두 손으로 땅을 짚어, 짐승처럼 땅을 기며 사룡과 대치하는 모습에서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날 쓰러뜨리지 못하면 끝은 없다. 끝없이 도전하다 스러질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
사룡의 말에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모험가의 품 속에 넣어둔 무전기에서 뒤쪽에 남겨둔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모험가의 발밑에 무지개색 휘황찬란한 빛과 함께 마법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다 된 것이었다.
“…!”
모험가는 다시 한번, 사룡을 향해 손가락을 쳐들어, 가볍게 그 손 끄트머리를 까닥였다. 외치는 시간조차 아까웠기에.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그 마지막만이라도 즐길 수 있도록.
용 역시 마지막으로 그 몸을 가눠, 자신의 독기를 끝까지 견딘 인간에게 자신의 숨결을 내뿜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힘을 증명할 수 있도록.
모험가는 시끄럽게 울리는 무전기를 바닥으로 내버리고는 편안한 모습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아주 잠깐 뒤에 자신을 향해 덮쳐올 다디단 용의 선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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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달콤한 독이여
생각 정리하며 느긋하게 쓰려고 했는데
아니 글쎄 퍼썹에서 본드래곤헤드 스피라찌가 살덩이 신선한 스피라찌가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