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을 탈퇴하고 싶습니다."
요르시카님께 암월의 기사단을 탈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째서인가요?"
그렇게 묻는 요르시카님께 말했다.
"꿈이 있습니다."
"어떤 꿈인가요?"
"다시 한 번 할아버지를..."
......
아, 옛날 꿈을 꿨다.
할아버지를 찾아 길을 떠난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조그마한 단서조차 없으니 발이 닿는 대로 걸었다.
걷고 또 걸어도, 누구에게 물어도 할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다.
어디에 계신 걸까.
아아, 그래. 모두가 모여드는 불이 계승의 제사장에 가 볼까.
그곳에서라면, 할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할아버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라도.
......
제사장에 도착했다.
불을 지키는 화방녀도, 온갖 물건을 파는 시녀도, 내 무기를 정비해준 대장장이도 할아버지의 행방을 몰랐다.
하아...
조금 쉬도록 할까.
눈을 떠 보니 나는 이곳에 있었다.
이 동굴엔 온통 망자 뿐이군.
아아, 망자답게 소울을 탐하는가.
하지만 그럴 순 없지.
내게는 아직 만날 사람이 있어.
다만... 안식을 찾는 것을 도와주마.
......
벤다. 찌른다. 막는다. 베어 죽인다. 찔러 죽인다. 죽이고, 또 죽인다.
그리고 나는 죽지 않는다.
이제 내가 왜 여기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목가적인 살육의 나날만이 이어졌고, 내가 미쳐가는 것을 나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고, 또 죽이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겠지.
이곳을 망자의 구덩이 혹은 망자의 동굴로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망자들의 척추뼈를 뽑기 시작했다.
......
다른 날과 다름없는 하루였을 터였다.
죽이지만 죽지는 않는 하루였을 터였다.
그랬을 터였는데, 그가 나를 찾아왔다.
손자가 지고 온 바구니에는 망자가 아닌 사람이 있었다.
그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호오, 별일도 다 있군. 망자의 구덩이에 멀쩡한 녀석이 떨어질 줄이야. 아니면 귀공, 그런 척하는 게 특기일 뿐인 건가?"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하하. 그렇지, 그렇지, 그럴 거야. 그걸 알고 있다면 아직 충분히 멀쩡하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인간은 언젠가 미치고 말지. 죽지 않고자 한다면 더더욱 말이야. 신의 사슬은 의외로 물러터진 물건이야... 그러니까, 자, 선물이다. 귀공이 언젠가 미쳤을 때 이걸 마음에 새기는 게 좋을 거다. 이곳에서 희생을 연으로 삼아 쌓아올리는 게 좋을 거야. 미치면 알게 돼 있어. 그게 가족처럼 돼가는 거지. 하하하... 하하..."
나에게는 이제 쓸모없어진 귀환의 뼛조각 하나를 건네며, 그에게 말했다.
"귀공, 언젠가 미칠 것이라고는 해도, 지금은 아니야. 손해 보는 말은 하지 않아. 이 뼛조각으로 자신이 있을 곳으로 돌아가거라. 이곳은 망자의 구덩이. 그리고 나 같은 광인이 희생을 연으로 삼아 쌓아올리는 곳이다. 귀공이라도 이렇게 되고 싶지는 않겠지? 하하."
조금만 쉬려고 했지만, 그새 시녀와 친해졌다.
편하게 할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처음 보는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 자가 소문으로만 듣던 불 꺼진 재인 거로군.
나는 할아버지만 찾으면 된다.
이 사람이랑 얽히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아아, 당신은 불 꺼진 재란 분이시군요. 저는 어스름의 나라의 시리스. 일찍이 신을 섬기던 몸입니다. 저희는 모두 사명이 있는 몸, 그리고 사명이란 고독한 것. 어쩌면 저희는 그다지 얽히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여행에 달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
언제나처럼 할머니와 대화를 했다.
"...아, 그건 그렇고, 최근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네. 이런 세상에 꿈을 쫓는 자가 있었다지. 참으로 멍청하지 않은가? 아하하하하하..."
"누구에게 들었어요? 상냥한 사람이네요."
"재의 귀인이 말해주었다네. 그래, 상냥하지."
......
다시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지만 한 가닥의 단서조차도 찾지 못한 채 다시 제사장으로 돌아왔다.
또다시 그를 만났다. 그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다.
할머니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친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당신이군요, 또 만났네요. 그날 이후 전 몇 번이나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나 상냥하신 분이시라고. 저 또한 사명이 있는 몸이지만, 사인 정도는 새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헌신함은 잔불의 도리라 들었습니다. 혹여 그것이 당신의 도움이 된다면 사용해 주세요. 당신의 여행에 달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나는 이미 암월의 기사단을 탈퇴한 몸이지만, 이 사람이라면 요르시카님께 믿고 추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암월의 맹세를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
할아버지를 찾다 보니 차가운 골짜기의 이루실까지 발길이 닿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추악한 만남을 가졌다.
로자리아의 손가락인 크레이튼과의 만남을.
지금은 탈퇴했지만 과거에는 암월의 기사단이었던 몸.
로자리아의 손가락을 보고도 지나친다면, 나의 명예를, 암월의 명예를 저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그를 상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협력을 요청하는 사인을 그어 두었다.
싸움을 시작하기 전, 누군가가 나의 협력 요청 사인을 만져 나를 도와주러 왔다.
아아, 그였다. 상냥한 사람.
크레이튼이 휘두르는 도끼를 피하고, 그의 검과 나의 에스토크가 손가락의 몸을 꿰뚫었다.
싸움에 경황이 없었다.
은인에게 인사를 해야지.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여행에 달의 가호가 있기를."
......
이루실에서도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제사장으로 돌아오니 또 그가 말을 걸어왔다.
다시 감사 인사를 해야겠지.
"아아, 당신이군요. 지난날의 도움엔 감사드립니다. 그 암령은 로자리아의 손가락. 어두운 방에 모이는 비천한 사생아. 제 적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또한 무서운 침입자이니 저 혼자만으론 뒤처질 뿐이었겠죠.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인사만으론 나의 감사를 전부 표현하기 힘들다.
아, 그래. 그게 있었지.
그에게 요르시카님께 받은 반지와 축복의 힘을 띈 메일 브레이커를 건넸다.
유용하게 써 주길 바라며.
"그리고 혹여 당신의 여행에 도움이 된다면, 저의 사인을 사용해 주세요. 당신의 여행에 달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
아아, 드디어, 드디어 찾았다.
시간이 얼마나 걸린 걸까.
그곳에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만나러 가야지.
그 전에, 잠깐 작별인사를 하도록 할까.
"잘 있어요. 할머니. 망자의 동굴에서 할아버지를 만나고 올게요."
이 망자의 동굴... 할아버지는 이미 미친 것으로 보였다.
아아, 할아버지. 나의 사랑하는 할아버지.
영원한 꿈을, 달콤하지만 깨어날 수 없는 꿈을 꾸게 해드려야지.
쌓아올리는 업에서 해방시켜 드려야지.
이렇게 마음먹었건만, 차마 할아버지를 죽일 수는 없을 것 같아 협력 요청 사인을 그어두었다.
이번에도 싸움에 들기 전, 누군가가 와주었다.
누군가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아, 또다시 그다. 그에게 또 도움을 받게 되었다.
너무나도 상냥한 사람...
할아버지를 마주했다.
"드디어 찾아냈어, 할아버지. 약속이니까 말이야."
할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바로 공격해 왔으니까.
할아버지의 검이 나를 향해 내려쳐졌다.
에스토크를 들어 막아보려 했지만, 대검을 자검으로 막을 수 있을 리가.
크게 다칠 것을 각오하고, 곧 찾아올 고통에 대비해 눈을 질끈 감았다.
팅
고통이 찾아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검이 내 갑옷에 닿는 소리가 아니었다.
방패로 막는 듯한...
눈을 떳다.
그의 등이 나를 향했고, 그의 방패는 할아버지의 검을 향했다.
그의 어깨 옆으로, 에스토크를 찔러 넣었다.
곧, 그의 검이 할아버지의 가슴을 꿰었다.
아아, 이제 끝이다.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나의 꿈을, 할아버지에게 달콤한 꿈을 선물해 드렸다.
"편히 쉬어, 할아버지..."
그때, 쓰러지던 할아버지가 방패를 버리고 손을 들어올렸다.
할아버지의 손에서 따스한 불꽃이 솟아올랐다.
나와 그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아아,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에,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분명히 들렸다.
'너의 꿈을 꾸어라.'
......
나의 사명을 이루게 도와준 사람.
너무나도 상냥하고 따스한 사람.
할아버지가 말했다.
나의 꿈을 꾸라고.
나의 꿈, 나의 사명은 이제부터 그의 사명이 이루어지게 돕는 것이다.
제사장에서 그를 기다리니, 그가 곧 왔다.
말을 걸었다.
"아아,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의 사명에, 아니, 조그만 약속에 당신을 말려들게 한 것은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할아버님도 겨우 잠들었고, 저 또한 드디어 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부탁이 있습니다. 부디 저에게, 당신을 섬기는 기사로서의 맹세를 허락해주십시오."
내가 그에게 보답할 길은 이것 뿐이다.
세상이 그에게 등을 돌려도 나만은 그의 곁에 서리라.
다행히도 그는 기사의 맹세를 허락해주었다.
"아아, 감사합니다. 저 시리스는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의 기사. 그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모든 이가 하나 되어 적으로 돌아설지라도 내 충성에 흔들림 없을지니. 당신의 여행에 달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당신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라도 저를 불러 주십시오. 이제 저는 언제까지나 당신의 기사입니다."
......
할아버지의 방패를 가져와 제사장 바깥에 묘를 하나 세웠다.
......
이제 시간이 없다.
내가 죽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에게 도움을 한 번이라도 더 주고 죽고싶다.
나를 불러주지는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하염없이 제사장에 앉아만 있었다.
전에, 할머니에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상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가 깊은 곳의 주교들과 팔란의 불사대를 처치하는 데에 도움을 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할아버지와의 일이 있기 전이다.
또다른 은혜를 입었으니, 꼭 갚아야 한다.
......
아아, 내가 그의 세계로 불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가 나를 불러주었군.
은혜를 갚을 때가, 기사의 맹세를 지킬 때가 왔다.
로스릭의 왕자인 로리안과 로스릭을 상대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
그의 사명에 달의 가호가 있기를.
그가 영원한 안식에 빠져들 때, 원하는 꿈을 꾸게 하는 달의 가호가 있기를.
아아, 이제 곧이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봐야겠다.
지치고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할아버지의 묘에 도착했다.
"할아버지... 당신과 나의 꿈의 여정에 달의 가호가 있기를."
휴! 저번에 추천해 주셨던 시리스와 호드릭 이야기를 다 써보았습니다.
저번의 지크벨트와 욤의 이야기는 네다섯시간이나 걸렸는데, 이번에는 두세시간만에 다 썼네요.
여담이지만, 글에 등장하는 대사는 99%가 게임 내의 대사입니다.
큰 따옴표 안에 있는 대사들이요.
글을 쓰면서 참 당황했던 것이, '달의 가호가 있기를' 이라는 대사가 참 많더군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대사로 끝을 맺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마지막의 대사가 게임 내의 대사가 아닌 1%에 속합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면 좋겠습니다.
저번에는 이 말을 하는 것을 까먹었는데, 모든 피드백은 환영합니다.
그리고 지크벨트와 욤의 이야기도 읽어 보세요. 아래는 그 글 링크입니다.
지크벨트 - 약속 : https://bbs.ruliweb.com/family/4892/board/183787/read/9575125?page=2
제목이 왜 꿈이냐면, '꿈을 쫓는 자의 재' 가 시리스 이벤트의 트리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 좋은 꿈 꾸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꿈에 달의 가호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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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작가라... 필력이 딸리지만, 이런 말을 들어도 기쁘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지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유리와와 프리데의 이야기라... 아주 괜찮네요. 고민해 봐야겠어요. | 20.08.23 00:23 | | |
59.19.***.***
프리데의 이야기입니다. https://bbs.ruliweb.com/family/4892/board/183787/read/9575237? | 20.08.24 10:53 | | |
27.35.***.***
59.19.***.***
헤이젤은 게임 내 대사가 없지만, 산 제물의 길 노야의 딸이라는 설정이 있으니, 한번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 20.08.23 09:31 | | |
221.152.***.***
헤이젤 드디어 완성! https://bbs.ruliweb.com/family/4892/board/183787/read/9575594 | 20.08.30 14:53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