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안쟈나프.
만악룡이라 불리는 고대숲의 수호자.
초보 헌터들에게 내려지는 최초의 시련.
“덤벼라! 안쟈나프.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죽고 보스들을 잡아 왔다고!”
신입 헌터들은 의기양양하다.
자신감에 차 있다.
나를 쓰러뜨릴 그럴싸한 계획도 갖고 있다.
내 콧등에 얻어맞기 전까지는.
“컥! 무슨 데미지가!? 자, 잠깐! 물약을 빨 시간이 없...!”
<1수레>
조금 뒤 훈타(초보헌터) 녀석이 돌아왔다.
한번 허무하게 죽고 나더니 이번엔 바짝 긴장해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런데, 헤보도 아니고 그렇게 멀리서 뭘 하려고?
최대한 안 맞도록 돌진베기랑 슬라이딩베기를 이용해올 모양이다.
아직 훈타라 거리감이 없어 고민하는 것 같긴 하지만.
먼저 오지 않겠다면 이쪽이 가면 되지.
자! 점프 스톰프!
“으악! 굴러서 피할 공간이 없...!”
<2수레>
세 번째는 아예 가까이 다가올 생각조차 안 한다.
이제 와서 무기를 활로 바꿨다 이거지?
뭐, 좀 잔인하긴 마지막이니까 내 마지막 장기로 피날레를 장식해줄까?
일자 브레스!
“하, 한방이라니! 말도 안...으헉!”
<3수레>
안녕. 다음엔 연습장에서 연습 좀 하고 와.
이제야 잠 좀 잘 수 있겠군.
사실 나 정도는 이 세계에서 그리 강한 편도 아니다.
고대 숲 최고의 생물인 것도 아니지.
다만 덩치 큰 샌드백에 불과한 내 밑의 녀석들에 비교해서 내가 갑작스레 너무 강력한 나머지, 초보 헌터들은 나를 헌터가 된 뒤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벽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다.
고작 나 정도에 굴복해서야 내 뒤에 있는 녀석들에겐 어림도 없을 텐데.
정말이지 요즘 녀석들은 근성이 없다니까.
“임마! 안쟈나프! 나는 이 정도로 굴하지 않는다고!”
응? 벌써 또 왔어?
아, 그러고 보니 요즘엔 PC판이 출시하면서 로딩속도가 줄어들어 금세 재도전을 할 수 있다 하더군.
예전엔 재도전하려면 로딩만 한세월이었는데 말이야.
“크악! 이게 왜 맞는 거야? 억울해!”
재도전하기 전에 연습장에서 연습 좀 하고 오라니까.
콧등으로 후려치기 전에 ‘나 후려칩니다’하고 충분히 경고하고 치잖아?
내가 그렇게까지 경고하면 내 앞에서 비켜 서야 될 거 아냐?
훈타 주제에 벌써 부위파괴니 뭐니 운운할 게 아니라고.
<1수레>
“아 뭐야! 분명히 막았는...! 으헉!”
방패나 제대로 들고 나서 그런 소릴 하라고.
그것보다 내가 꼬리를 들었으면 내 엉덩이 근처에서 얼쩡거리지 말라고.
내가 꼬리를 왜 치켜들었겠어?
내려 치려고 든 것 아냐?
머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해라, 이 훈타 자식!
<2수레>
“풀피였는데! 풀피였는데! 한방이라니! 꾸에엑!”
또 똑같은 패턴이잖냐!
내 브레스에 맞으면 풀피라도 한방이라고.
내가 불을 뿜을 준비를 하면 회피할 준비를 해야 할 것 아냐?
최소한 방패라도 제대로 들던가!
나한테 그 조그만 포획용 그물 던지지 마! 그건 작은 벌래 같은 거 잡는 용이라고!
<3수레>
이렇게 또 퀘스트 실패.
감각도 없는데 머리마저 나쁜 훈타 녀석이다.
그런 주제에 세다는 말만 듣고 매커니즘도 모르면서 차지액스를 덜컥 들고 온 바보 녀석.
사실 내 공격의 대부분은 차지액스의 가드포인트만 잘 활용해도 한 대도 안 맞을 수 있다.
근데 이 녀석은 가드포인트는커녕 그냥 가드도 잘 못한다.
애초에 가드포인트가 뭔지도 모르는 것 같던데.
“이 정도로 내가 포기할 것 같아! 각오해라! 안쟈나프!”
최악이다.
멍청한데 근성만 만땅인 타입이야.
잘 모르겠으면 하다못해 유튜브 동영상이라도 좀 검색해보고 오라고!
“피했어! 난 분명 피했다고! 으헝헝!”
피하지 말고 막으라고!
그 좁은 구석에서 어디로 피하려는 건데?
또 다시 내 콧잔등에 얻어맞아 날아가는 훈타 녀석을 보며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 무한에 가까울 만큼 이 지겨운 짓거리를 반복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
순간 내 눈엔 그 훈타 녀석이 ‘거래를 하러 왔다 도르마루!’라 외치는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보였다.
그건 싫다고.
“이익! 이번엔 안 질 거야!”
내 콧잔등에 호되게 당한 훈타 녀석은 또다시 내 엉덩이를 노리기 시작했다.
내리치려고 꼬리를 들어 올려도 병충전에 몰두한 훈타 녀석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계속 꼬리에 얻어맞아 나가떨어지면서도 느끼는 게 없나?
하는 수 없다.
멍청해서 배우지 못한다면 직접 체험하며 가르쳐줄밖에.
나는 꼬리를 들어 올린 채 잠시 기다렸다가, 녀석이 도끼변형베기를 휘두르려는 찰나 꼬리를 내리쳤다.
가드포인트 효과로 나는 데미지를 입었고 녀석은 뒤로 밀려났다.
가드포인트를 처음 체험해본 훈타 녀석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 분명 얻어맞았는데 체력이 안 달았네?”
그래, 그게 가드 포인트라는 거다.
“버근가?”
버그 아니야!!!
역시 멍청한 녀석이라 한번 말해선 이해를 못하는군.
하는 수 없이 나는 녀석이 우연히 구사한 가드포인트 동작을 취할 때마다 공격했다.
그럴 때마다 내게 대미지가 들어왔지만 마침내 녀석은 어렴풋이 ‘방어판정이 있는 특정 공격 모션이 있다’는 정도 까지는 깨달은 것 같았다.
가드포인트를 가르쳐주느라 체력이 많이 까인 나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둥지로 돌아갔다.
“앗! 도망치지 마!”
섬광탄 같은 게 있다면 될텐데.
하지만 이 녀석이 그런 걸 가지고 있을 리 없지.
녀석은 나를 추적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허공에 헛손질을 하며 나를 애처롭게 만들었다.
둥지에 도착해서 자고 있는데, 뭔가가 머리를 쿡쿡 찔렀다.
“일어나! 안쟈나프! 결판을 내자!”
통폭탄은 다 어디다 팔아먹고 나를 평타로 쿡쿡 찔러 깨우는 거니...
게다가 숫돌도 안 간 예리도를 가지고 뭘 어쩌겠다고?
아니 그것보다 더 문제인건.
“어? 어? 어? 왜 자꾸 공격이 튕겨나오지? 원래 안 이랬는데?”
차지액스를 쓰려면 최소한 과열되는게 뭔지는 검색해보고 와라!
과열되서 시뻘개진 칼날로 나를 툭툭 때리며 당황스러워하는 훈타를 보고 나는 남아있던 인내심마저 전부 없어져버렸다.
나는 훈타 녀석을 냉큼 깨물었다.
“으아아아악!”
내 이름은 안쟈나프.
만악룡이라 불리는 고대숲의 수호자.
아무래도 말도 안 되는 헌터와 마주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