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폰에서 용병 겸 블랙옵스 노릇을 하는 U대장이라면 딱장대요 솔로요 빈유로 유명하다. 72에 가까운 흉부를 가진 그녀는 얼굴은 꽤나 한 미모를 한다 하지만 눈을 찬찬히 아래로 내려 가슴을 본다면 여자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딱딱하고 거칠고 밋밋하고 튀어나온 품이 마치 돌로 만든 빨래판을 생각나게 한다.
이 U대장이 질겁을 하다시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소위 '거유'였다. 여성형 전술인형을 취급하는 PMC라면 으례히 그런 체형이 많이 오는 것이지만 유명하고 또 거유를 선호하는 고객들이 많은 탓인지 모르되 하루에도 몇 장씩 죽느니 사느니 하는 거유사랑 타령이 날아들어 왔었다.
인형에게 내려지는 평판을 일일이 검토하는 터이니까 그따위 평판이 적힌 종이도 물론 U대장의 손에 떨어진다. '누나 나주거'같은 달짝지근한 사연을 보는 족족 그녀는 더할 수 없이 흥분되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종이를 든 손이 발발 떨리도록 성을 낸다.
아무 까닭 없이 그런 평판을 받은 인형이야말로 큰 재변이었다. 임무가 끝나기 무섭게 그 인형은 조용한 창고로 불리어 간다.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사람 모양으로 쌔근쌔근하며 방안을 왔다갔다하던 그녀는, 들어오는 인형을 잡아먹을 듯이 노리면서 한 걸음 두 걸음 코가 맞닿을 만큼 바싹 다가들어서서 딱 마주선다. 웬 영문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U대장의 흉부를 살피고 측은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던 인형은 이내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간신히 모기만한 소리로,
“저를 부르셨어요?”
하고 묻는다.
“그래 불렀다. 왜!”
팍 무는 듯이 한 마디 하고 나서 매우 못마땅한 것처럼 의자를 우당퉁탕 당겨서 철썩 주저앉았다가 그저 서 있는 걸 보면,
“장승이냐? 왜 앉지를 못해!”
하고 또 소리를 빽 지르는 법이었다.
앉은 뒤에도,
“네 죄상을 네가 알지!”
하는 것처럼 아무 말 없이 눈살로 쏘기만 하다가 한참만에야 손을 끄집어내어 인형의 커다란 흉부파츠를 움켜쥐곤 코앞에 동댕이를 치며,
“이건 누가 달아준거냐?”
하고, 문초를 시작한다. 누가 제조했는지조차 모르니
“나도 몰라요.”
하고, 대답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어느 제조실의 누구가 만든 것인지를 재쳐 묻는다. 역시나 그러한 기억이 마인드 맵에 있을리가 없어 주저주저하다가 자세히 알 수 없다고 내대일 양이면,
“너한테 달린 것을 네가 모른단 말이냐?”
고, 불호령을 내린 뒤에 또 네 것을 직접 만져 보라을 하여 무심한 인형이 나즉나즉하나마 꿀 같은 부분에 손을 올리면, U대장의 역정은 더욱 심해져서 어느 놈의 소위인 것을 기어이 알려 한다. 기실 보도 듣도 못한 제작자의 한 노릇이요, 자기에게는 아무 죄도 없는 것을 변명하여도 곧이 듣지를 않는다. 바른대로 아뢰어야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처형을 시킨다는 둥, 엘리트도 아닌 인형에게 가슴이 달릴 리가 만무하다는 둥, 필연 가슴 보충물 정량을 어긴 일이 있으리라는 둥…
하다못해 가슴이 강조되는 옷이라도 자칫 잘못하여 착용했다면 누구에게 보여줄 음란한 피탄면이냐, 그게 전투원으로써 입어야 할 복장이냐, 무거워서 어디 싸울 쑤는 있겠냐며 미주알 고주알 캐고 파며 얼르고 볶아서 넉넉히 십 년 감수는 시킨다.
두 시간이 넘도록 문초를 한 끝에는 가슴은 불필요한 것, 인간들이 멋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구 넣은 사악한 것, 거유가 최고니 하는 소리들은 모두 악마가 지어낸 소리인 것을 입에 침이 없이 열에 띄어서 한참 설법을 하다가 닦지도 않은 방바닥(침대를 쓰기 때문에 방이라 해도 마루바닥이다)에 그대로 무릎을 꿇린다.
이로 말미암아 전술인형들이 동맹 파업을 하였고 지휘관의 설유까지 들었건만 그래도 그 버릇은 고치려 들지 않았다.
이 U대장이 생활하는 그 기숙사에 금년 가을 들어서 괴상한 일이 '생겼다'느니보다 '발각되었다'는 것이 마땅할는지 모르리라. 왜 그런고 하면 그 괴상한 일이 언제 '시작된' 것은 귀신밖에 모르니까.
그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밤이 깊어서 새로 한 점이 되어 모든 전술인형들이 자가점검을 위한 취침에 떨어졌을 때 난데없는 깔깔대는 웃음과 속살속살대는 말낱이 새어 흐르며, 알 수 없는 것이 출렁거리는 무언가를 휘날리며 다닌다는 일이었다. 하루 밤이 아니고 이틀 밤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소리가 잠귀 밝은 인형들의 귀에 들리기도 하였지만 잠결이라 뒷동산에 구르는 마른 잎의 노래로나, 달빛에 뒷태를 번뜩이며 울고 가는 철댕이의 소리로나 흘러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P7의 장난이나 아닌가 하여 제대원을 깨웠다가 좀처럼 제대원은 깨지 않고 제 생각이 너무나 어림없고 어이없음을 깨달으면, 밤소리 멀리 들린다고, 또는 괴이한 모습이 보인다고 이야기를 하거나 또 딴 방에 자는 인형들의 소리로만 여겨서 스스로 안심하고 그대로 자버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가 풀릴 때는 왔다. 이때 공교롭게 한 방에 자던 같은 소대원 셋이 한꺼번에 잠을 깨었다. HK가 소변을 보러 일어났다가 그 소리를 듣고 9와 G를 깨우고 만 것이다.
“저 소리좀 들어봐. 아닌 밤중에 저게 무슨 소리야. G11 넌 좀 처 자지 말고 일어나라니까 이 잠탱아!”
하고 HK는 경계하는 빛을 띠운다.
“어젯밤에 나도 저 소리에 놀랬었어. 조,좀비라도 났단 말인가?”
하고, 9도 잠오는 눈을 비비며 수상해 한다. 그중에 제일 잠이 많을 뿐더러(그것도 정말 오질나게 많기로 소문났다)겁도 많은 G는 못 믿겠다는 듯이 이슥히 귀를 기울이다가,
“나는 왜깨워어어어어... 무얼 잠 아니 오는 애들이 이야기를 하는 게지...”
이때에 그 괴상한 소리는 땍대굴 웃었다. 세 인형은 귀를 소스라쳤다. 적적한 밤 가운데 다른 파동 없는 공기는 그 수상한 말 마디를 곁에서 나는 듯이 또렷또렷이 전해 주었다.
“오! 지휘관! 그러면 작히 좋을까.”
간드러진 여자의 목소리다.
“당신이 좋으시다면 내야 얼마나 기쁘겠읍니까. 아아, 오직 저에게 보이는 그 모습에 나의 타는 듯한 가슴을 인제야 아셨읍니까!”
정열에 띄인 사내의 목청이 분명하였다. 한동안 침묵…
“인제 그만 놓아요. '가슴'이 충분히 작지 않아. 행여 남이 보면 어떻해.”
아양떠는 여자 말씨.
“클수록 더욱 좋지요. 나는 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거유'를 만진다 하여도 그것이 크다고는 못하겠읍니다. 그래도 더욱 큰 것을 원하겠읍니다.”
사내의 피를 뿜는 듯한 이 말끝은 계집의 자지러진 웃음으로 묻혀버렸다.
그것은 묻지 않아도 어지간히 가슴에 겨운 남녀의 허무러진 수작이다. 거유만 보이면 가슴을 잡아떼는 이 지독한 이 기숙사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세 인형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놀랍고 무서운 빛이 없지 않았으되 점점 호기심에 번쩍이기 시작하였다. 오직 G만이 여전히 졸린 표정으로 잠을 청할 뿐이다.
HK와 9의 뺨은 후끈후끈 달았다. 괴상한 소리는 또 일어났다.
“난 싫어. 당신 같은 변탸는 난 싫어.”
이번에는 매몰스럽게 내어대는 모양.
“나의 천사, 나의 하늘, 나의 여왕, 나의 목숨, 나의 사랑, 나를 살려 주어요, 나를 구해 주어요. 가슴 한 번만 만지게 해주오.”
사내의 애를 졸리는 간청…
“우리 구경 가볼까.”
9은 몸을 일으키며 이런 제의를 하였다. HK도 그 말에 찬성한다는 듯이 따라 일어섰으되 의아와 공구(恐懼)와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을 서로 교환하면서 G의 목덜미를 잡아 질질 끌며 나온다. 얼마쯤 망설이다가 마침내 가만히 문을 열고 나왔다. 쌀벌레 같은 그들의 발가락은 가장 조심성 많게 소리나는 곳을 향해서 곰실곰실 기어간다. 컴컴한 복도에 자다가 일어난 세 인형의 흰 모양은 잠깐 끌려가다가 어쩔 수 없이 G가 일어난 후엔 소리없이 움직였다.
소리나는 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찾고는 나무로 깎아 세운 듯이 주춤 걸음을 멈출 만큼 그들은 놀래었다. 그런 소리의 출처야말로 자기네 방에서 몇 걸음 안 되는 404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은신처일 줄이야! 그 방에 여전히 사내의 비대발괄하는 푸념이 되풀이 되고 있다… 나의 천사, 나의 하늘, 나의 여왕, 나의 목숨, 나의 사랑, 나의 애를 말려 죽이실 테요. 당신의 가슴을 뜯어 저에게 물리실테요. 내 생명을 맡으신 당신의 가슴으로…
HK는 대담스럽게 그 방문을 빠끔히 열었다. 그 틈으로 여섯 눈이 방안을 향해 쏘았다. 이 어쩐 기괴한 광경이냐! 전등 불은 아직 끄지 않았는데 침대 위에는 그동안 U대장이 뜯어온 '흉부파츠'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졌고 두서없이 펼쳐진 가운데 U대장 혼자 - 아무도 없이 제 혼자 일어나 앉았다.
누구를 끌어당길 듯이 두 팔을 벌린 그 중앙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큼지막한 수박같은 가슴 두 덩이가 달려있었으며, 잔뜩 한 곳을 노리며 말할 수 없이 애원하는 표정을 짓고는 '더 큰 가슴'을 기다리는 것 같이 입을 쫑긋이 내어민 채 사내의 목청을 내어가면서 아깟말을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그 넋두리가 끝날 겨를도 없이 급작스리 앵돌아서는 시늉을 내며 누구를 뿌리치는 듯이 연해 손짓을 하며 이번에는 톡톡 쏘는 계집의 음성을 지어,
“난 싫어. 당신 같은 사내는 난 싫어.”
하다가 제물에 자지러지게 웃는다. 그러더니 문득 흉부파츠(물론 다른 인형에게서 뺏어온 '흉부파츠'의 하나)을 집어들어 가슴에 문지르며,
“정 말씀이야? 이 가슴을 그렇게 사랑해? 당신의 목숨같이 이 가슴을 사랑해? 가슴을, 이 가슴을.”
하고 몸을 추수리는데 그 음성은 분명 울음의 가락을 띠었다.
“에그머니 저게 웬일이냐!”
드물게 G마저도 잠히 확 달아난 표정으로 처다보며 소곤거렸다.
“아마 미쳤나보아, 추하게 밤중에 혼자 일어나서 남의 가슴갖고 왜 저리고 있을꾸.”
드물게 HK도 맞방망이를 친다…
“에그 불쌍해!”
하고, 9은 손으로 고인 때 모르는 눈물을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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