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민주
출판사 - 지식의날개
쪽수 - 288쪽
가격 - 16,500원 (정가)
수학능력시험 도중에는 항공기 이착륙마저 멈추는 나라.
시험의 난이도는 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그 결과에 모든 사람이 울고 웃는.
나는 평가지배사회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시험 인간, 호모 이밸루쿠스입니다.
이 세상에, 대한민국 사람처럼 시험에 목매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가 또 있을까?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쁘네, 잘생겼네 등의 평가 환경에 노출되고, 수없이 평가하고 평가받으면서 시험에 친숙하고 익숙한 호모 이밸루쿠스Homo Evalucus로 자라난다. 특히 공정이 최대 화두로 부각된 한국 사회에서 시험은 그 결과가 강력한 근거가 되어 경쟁우위의 지위와 자격 획득의 정당성을 확보해 주면서 가치가 나날이 높아지는 중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평가를 하고 또 평가받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평가에 지배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평가지배사회는 인간을 매우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평가지배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인간은 그에 걸맞게 적응한 호모 이밸루쿠스가 되었다. 그리고 진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D-50,
이 한 번의 시험으로 앞으로의 당신 인생이 좌우됩니다.
전 국민적인 관심 속에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18세 청소년들을 비롯해 한 해에 수십만 명이 이 시험에 응시한다. 시험 시작시간에 맞추어 전국 모든 관공서의 업무시간은 연기되고, 듣기평가 동안에는 비행기의 이착륙마저 일시 정지된다. 1년 동안 한국에서 치러지는 모든 시험과 평가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그리고 개개인에게는 일생을 좌우한다고 받아들여질 수능시험을 50일 앞두고, 우리가 살아가는 평가지배사회와 평가지배사회에 길들여진 시험 인간으로서의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호모 이밸루쿠스―평가지배사회를 살아가는 시험 인간》이 출간되었다.
코로나-19 시대에도 시험 인간에게 평가지배사회는 건재하다.
지난 1월, 갑작스러운 불청객 코로나-19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집합과 모임을 꺼렸고, 대면 접촉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학교는 온라인으로 개학했고, 원격수업을 실시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법칙이 바뀌었지만 단 한 가지, 시험과 평가를 실시해야만 한다는 사실만은 바뀌지 않고 모두에게 받아들여졌다. 학교에 갈 수 없어도 시험은 보아야 했다. 평가 일정이 연기되고 장소가 달라졌을 뿐, 시험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시험 일정이 연기되자 수많은 시험 인간들의 아우성이 이어졌다. 오직 시험만이 나를 증명해 줄 수 있다는 듯이. 코로나-19 시대에도 평가지배사회는 건재했고, 그 방식은 달라지더라도 평가는 사라지지 않았다. 바뀐 세상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시험과 평가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험 인간은 변하지 않은 그대로이다.
평가지배사회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성찰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사회를 ‘평가지배사회’라고 진단하며, 평가지배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을 ‘호모 이밸루쿠스’라고 지칭한다. 시험과 평가는 학창 시절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취업, 승진은 물론이고 정부와 또 우리의 일터도 모두 평가 대상이 되며, 일상과 생활 속에서 평판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평가도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평가의 굴레 속에서 평가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호모 이밸루쿠스인지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평가지배사회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시험 인간으로서의 호모 이밸루쿠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목 차
프롤로그 호모 이밸루쿠스와 평가지배사회 / 11
1장 일상을 살아가는 호모 이밸루쿠스 / 25
세 사람의 호모 이밸루쿠스 / 일상화된 평가 / 친숙한 시험 / 평가라는 일상적 의례
2장 호모 이밸루쿠스의 성장 / 53
학교라는 출발선 / 생산수단 획득의 문턱 / 승진이라는 고개 / 평판이라는 또 다른 평가 / 호모 이밸루쿠스로의 성장과 맷집
3장 서로 닮아 가는 호모 이밸루쿠스 / 95평가지표라는 가이드라인 / 평가지표와 조작적 정의 / 표준화와 평균 / 평균의 역설―닮은 모습을 한 것과 실제로 닮은 것은 다르다 / 동형화와 평가
4장 권력을 마주한 호모 이밸루쿠스 / 131
평가권력 / 평가권력의 대행 / 대행자인 병(丙)을 통한 ‘정치’ / 미시적 평가권력
5장 평가시장, 호모 이밸루쿠스가 창조한 새로운 세계 / 171
사교육을 포함한 평가시장의 규모 / 우리가 평가로 잃고 있는 기회비용 / 가격과 평가시장 / 경쟁과 평가시장 / 자유와 평가시장 / 계약과 평가시장 / 평가시장의 기술혁신과 자동화 시스템
6장 호모 이밸루쿠스의 운수 좋은 날 / 207
운, 다시 생각해 보기 / 운수 좋은 날의 평가 / 운의 영향력 측정 / 운, 어떻게 할 것인가?
7장 진화하는 호모 이밸루쿠스 / 233
평가의 세 가지 진화 방향 / 공정성의 진화 / 민주성의 발전 / 영역 확장성 모색 / 평가의 진화와 호모 이밸루쿠스의 대응 / 호모 이밸루쿠스의 정규분포와 롱테일 분포
에필로그 호모 이밸루쿠스가 평가지배사회에서 살아갈 방법 / 261
참고문헌 / 275
찾아보기 /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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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를 하는것은 결국 사람. 그 '사람' 들이 축적해 온 시간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그 시스템 안에서 그 '사람' 들을 제외한 나머지 평가를 받는쪽의 사람들은 과연 공정한 평가를 받을수 있을것인가, 그리고 시대가 원하는 방향의 지식과 지혜를 제대로 얼마나 끌어낼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강요된 경쟁에서 어느정도의 위치에 있어야 비로소 자유인의 위치에 있을수 있는가.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하는 경쟁이 아닌 인간답게 살기 위한 경쟁에서 각자에게는 어느정도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경쟁이라는 단어가 결국에는 자리뺏기 게임이나 다를바 없을텐데, 이것이 계속 유지가 되려면 그 경쟁에 유입이 되는 수요가 있어야겠지요. 허나 이것이 가져다주는 전리품이 점점 기대에 못미치게 되면 그 수요는 점차 줄어들게 될것은 뻔한건이고, 해당되는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피로가 적은 이너 서클은 어떻게든 그 경쟁을 유지하려 할것이고, 그렇지 않은 쪽은 그 경쟁에서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탈하려고 하겠지요. 그 이너서클 밖에 있는 부류도 한두번쯤은 이길수 있겠지만 인생 내내 승리자가 된다는 보증은 없고 그 과정에서 개인이 지쳐서 쓰러질지, 아니면 이너 서클에 들어가는 대신 거래로 타전하든가, 아니면 여러가지 의미의 이미지메이커가 되어서 소비되어지느냐의 갈림길도 있고 말이죠. 비유해보면 트레드밀에 6~8을 베이스로 해야 할 인생의 페이스를 굳이 누군가들의 욕구때문에 12~20까지 맞춰놓고 거기에 못미치면 도태및 나태같은 단어들로 낙인을 찍으려 드니, 하고 싶지 않은 필수 경쟁에 강제로 참가해야 하는 수많은 다수의 인생들은 수많은 의미의 저성취와 번아웃에 상습적으로 노출되는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한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경쟁을 한번이라도 전부 올스톱하고 잠시나마 국가적으로 모든 영역에서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익이 날아가는 어느 경쟁에서 프리한 쪽들의 탐욕때문에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고 봅니다. 경쟁의 진짜 승리자는 그 경쟁에서 벗어나서 타인의 경쟁의 결과물을 스리슬쩍하는 쪽이라 보니까요. 만약,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적어도 삶의 영역이 아닌 생의 영역에서만큼은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비참하게 생활하지는 않을정도의 '디폴트' 가 주어지지 않을까 하면 그리도 경쟁의 진통에서 살짝 어깨가 가벼워질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그건 마치, 유료 쓰알 가챠가 근본인 게임이지만 과금이 없는 디폴트라도 어느정도 즐길수 있는 여지는 언제든 남겨둘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정립된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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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를 하는것은 결국 사람. 그 '사람' 들이 축적해 온 시간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그 시스템 안에서 그 '사람' 들을 제외한 나머지 평가를 받는쪽의 사람들은 과연 공정한 평가를 받을수 있을것인가, 그리고 시대가 원하는 방향의 지식과 지혜를 제대로 얼마나 끌어낼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강요된 경쟁에서 어느정도의 위치에 있어야 비로소 자유인의 위치에 있을수 있는가.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하는 경쟁이 아닌 인간답게 살기 위한 경쟁에서 각자에게는 어느정도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경쟁이라는 단어가 결국에는 자리뺏기 게임이나 다를바 없을텐데, 이것이 계속 유지가 되려면 그 경쟁에 유입이 되는 수요가 있어야겠지요. 허나 이것이 가져다주는 전리품이 점점 기대에 못미치게 되면 그 수요는 점차 줄어들게 될것은 뻔한건이고, 해당되는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피로가 적은 이너 서클은 어떻게든 그 경쟁을 유지하려 할것이고, 그렇지 않은 쪽은 그 경쟁에서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탈하려고 하겠지요. 그 이너서클 밖에 있는 부류도 한두번쯤은 이길수 있겠지만 인생 내내 승리자가 된다는 보증은 없고 그 과정에서 개인이 지쳐서 쓰러질지, 아니면 이너 서클에 들어가는 대신 거래로 타전하든가, 아니면 여러가지 의미의 이미지메이커가 되어서 소비되어지느냐의 갈림길도 있고 말이죠. 비유해보면 트레드밀에 6~8을 베이스로 해야 할 인생의 페이스를 굳이 누군가들의 욕구때문에 12~20까지 맞춰놓고 거기에 못미치면 도태및 나태같은 단어들로 낙인을 찍으려 드니, 하고 싶지 않은 필수 경쟁에 강제로 참가해야 하는 수많은 다수의 인생들은 수많은 의미의 저성취와 번아웃에 상습적으로 노출되는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한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경쟁을 한번이라도 전부 올스톱하고 잠시나마 국가적으로 모든 영역에서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익이 날아가는 어느 경쟁에서 프리한 쪽들의 탐욕때문에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고 봅니다. 경쟁의 진짜 승리자는 그 경쟁에서 벗어나서 타인의 경쟁의 결과물을 스리슬쩍하는 쪽이라 보니까요. 만약,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적어도 삶의 영역이 아닌 생의 영역에서만큼은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비참하게 생활하지는 않을정도의 '디폴트' 가 주어지지 않을까 하면 그리도 경쟁의 진통에서 살짝 어깨가 가벼워질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그건 마치, 유료 쓰알 가챠가 근본인 게임이지만 과금이 없는 디폴트라도 어느정도 즐길수 있는 여지는 언제든 남겨둘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정립된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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