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3월 루리웹 토론게시판 꼬장을 피우고 있는 오프리더군(xx·피씨방에서 죽치는중)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기불안 쇼크로 전국이 떠들썩할 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느긋했다. 주식거래조차 하지 않았으므로 경기가 좆같든 좋든, 돈이 뿔든 안뿔든 걱정할 필요 없이 돈보따리 메고 있었던 것.
"아이스크림을 팔기 위해 아이스 박스까지 샀는데 경기불안으로 인해 장사 안 된다고 울쌍만 지어야하나요? 철면피가 중시되는 행상업계에서 경기가 좆같든 좋든 일단 면상부터 들이밀어야죠.”
'어째서 이런 불경기에 수입이 더 좋나' 라는 물음에 침 튀기며 답한다. "평생 도붓장사를 할 것" 이라고 눈 뒤집으며 밝힌 오프리더는 "트럭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요즘의 판에 박힌 행상꾼 이미지는 시선 집중에 도움이 안돼 사양했다" 고 후까시 잡으며 털어놓았다.
"기름 한방울 나오지 않는 땅에서 차 끌고 다니기도 싫고,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슈가 새 앨범 사는게 이익입니다. 왜 사람들은 슈가를 좆같이 보는 거지요"
가끔 얼라들이나 동네서 노는 형들이 '차 사봤자 면허가 없어 운전 못 할게 뻔해 안산 것 아니냐' 라고 씹었을 때도 오프리더는 잘 개긴다. 초딩시절 자신이 사는 읍내 자전거 대회에서 1등이나 했기 때문에 면허도 원샷으로 합격이 가능하다고 버럭버럭 대들기도 잘 한다. 그러나 오프리더의 초딩때 은사인 XXX 교사는 그때 1등 조작을 담보로 받기로 한 촌지 200여만원을 아직도 못 받고 있다며 형사소송까지 생각중이라고 털어놨다.
"X은사님이 그렇게 나오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나도 법 좀 알아!"
초딩 6학년 학기말시험에 '1+1='이란 말도 안되는데 산수문제가 나왔는데 오프리더는 그 시험문제에 직면하자 시험지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그 위에 '어떻게 6학년이 풀지도 못하는 문제를 낼 수가 있나!!' 라는 메모를 남겼단다. 학교측에서는 그 메모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오프리더의 미래를 위해 일찍이 교육은 때려치우고 상도의 길을 걷게 하자는 강경론이 나왔지만 X은사님이 "못 받은 촌지를 받을때까지만.." 이란 처절한 구걸끝에 상도의 길은 잠시 접고 초등학교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한다.
"문희준님이 뷁해졌을 때 락&오케스트라란 점 때문에 더 사랑을 받지 않았습니까? 본인도 문희준님처럼 행상업계에서 크로스오버 바람을 일으켜 요즘 행상이 트럭이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행상을 하기 위해선 트럭이 있어야 된다'는 행상업계의 불변의 진리에 시덥잖은 도전을 시작한 오프리더. 주위에서 아이스 박스를 같이 짊어질 동업자를 찾아봤지만 많은 이들이 트럭 혹은 그 보다는 못하지만 실용적인 리어카가 지상목표여서 동지를 구할 수 없었다. 측근에 의하면 거의 왕따 수준이었기에 구한다고 설칠때부터 못 구할 줄 알았다고한다. '외기러기 저기러기'로 다닥다닥 달라붙은 똥딱지를 닦는 휴지가 된 오프리더가 믿는 것은 오직 자신의 두 다리와 아이스 박스를 짊어맬 어깨뿐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4살이 되었을때 자신이 살던 읍내의 모든 얼라들을 유인해 아이스크림을 강매한 것을 시작으로 15살에 서울로 상경해 강북 네개의 구를 섭렵한 오프리더의 도붓장사실력은 행상업계에선 꽤 소문이나 존경심과 함께 다른 무리들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게되었다.
"하루 최소한 12시간 이상 도붓장사를 합니다. 돈이 있어야 아유미가 쭈쭈 한번 만져보게 해주지 않겠습니까!! 아직 멀었습니다. 전 행상업계의 빌게이츠를 꿈꿉니다.”
오프리더는 아이스크림 행상을 시작한지 3년만에 자신의 고향과 서울의 강북을 모두 섭렵하고 강남으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그의 나이가 17살이었는데 그때 또래의 친구들은 고딩 1학년이 되었을 시기이다. 이때 당시 일명 '칼머리' 로 불리우는 '대두도 보통 대두가 아닌 사람들 전용 뽈따구 살 감추기 헤어스타일' 이 - 뇌충협회- 에서 유행을 살짝쿵 했었는데, 오프리더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과감히 '칼머리' 를 해버렸다. "그때 마약한거냐, 대체 왜 그랬는가." 라는 질문에 "장사가 더 잘 될것 같아 시도했다" 는 그의 말에 이 새끼 보통내기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얼마후 측근에 의해 알게된 사실인데 그 '칼머리'는 오프리더의 유일한 친구인 -뇌충협회- 의 이반 친구들이 안 하면 안 놀아준다기에 했다는거란다.
"뇌충협회 이반 친구들과 슈가의 팜플렛을 보며 용기를 얻어 발에 피고름이 터져도 넓은 지역을 두 발로 걸어다니며 장사를하기가 가능했습니다”트럭을 끌며 편안히 많은 곳에서 장사를 하는 행상인들이 부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뷁" 이라고 짧고 명쾌하게 그는 답한다. 요즘은 폐인모드에 돌입해 루리웹 토론게시판에서 완전히 미친척(?)하고 꼬장을 부리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든지 벌써 횟수로 4년째인 올해엔 각 동네에 있는 찌질이들에게 한번더 아이스께끼를 강매할 예정이고, 슈가 5집 나오기 전까지 북한의 대동강 유역의 맑은 물을 퍼 날라 돈 좀 벌고 싶습니다."
죽기 전에 꼭 아유미 쭈쭈를 만져봤으면 하는 오프리더는 마지막으로 국내 행상업계를 걱정하며 "국내 행상업계가 세계적 수준이 되려면 문희준님의 락&오케스트라를 본받아 크로스오버지향 중심의 행상을 해야만 된다" 라며 상스럽게 한마디 내뱉으며 인터뷰를 끝마쳤다.
"아이스크림을 팔기 위해 아이스 박스까지 샀는데 경기불안으로 인해 장사 안 된다고 울쌍만 지어야하나요? 철면피가 중시되는 행상업계에서 경기가 좆같든 좋든 일단 면상부터 들이밀어야죠.”
'어째서 이런 불경기에 수입이 더 좋나' 라는 물음에 침 튀기며 답한다. "평생 도붓장사를 할 것" 이라고 눈 뒤집으며 밝힌 오프리더는 "트럭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요즘의 판에 박힌 행상꾼 이미지는 시선 집중에 도움이 안돼 사양했다" 고 후까시 잡으며 털어놓았다.
"기름 한방울 나오지 않는 땅에서 차 끌고 다니기도 싫고,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슈가 새 앨범 사는게 이익입니다. 왜 사람들은 슈가를 좆같이 보는 거지요"
가끔 얼라들이나 동네서 노는 형들이 '차 사봤자 면허가 없어 운전 못 할게 뻔해 안산 것 아니냐' 라고 씹었을 때도 오프리더는 잘 개긴다. 초딩시절 자신이 사는 읍내 자전거 대회에서 1등이나 했기 때문에 면허도 원샷으로 합격이 가능하다고 버럭버럭 대들기도 잘 한다. 그러나 오프리더의 초딩때 은사인 XXX 교사는 그때 1등 조작을 담보로 받기로 한 촌지 200여만원을 아직도 못 받고 있다며 형사소송까지 생각중이라고 털어놨다.
"X은사님이 그렇게 나오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나도 법 좀 알아!"
초딩 6학년 학기말시험에 '1+1='이란 말도 안되는데 산수문제가 나왔는데 오프리더는 그 시험문제에 직면하자 시험지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그 위에 '어떻게 6학년이 풀지도 못하는 문제를 낼 수가 있나!!' 라는 메모를 남겼단다. 학교측에서는 그 메모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오프리더의 미래를 위해 일찍이 교육은 때려치우고 상도의 길을 걷게 하자는 강경론이 나왔지만 X은사님이 "못 받은 촌지를 받을때까지만.." 이란 처절한 구걸끝에 상도의 길은 잠시 접고 초등학교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한다.
"문희준님이 뷁해졌을 때 락&오케스트라란 점 때문에 더 사랑을 받지 않았습니까? 본인도 문희준님처럼 행상업계에서 크로스오버 바람을 일으켜 요즘 행상이 트럭이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행상을 하기 위해선 트럭이 있어야 된다'는 행상업계의 불변의 진리에 시덥잖은 도전을 시작한 오프리더. 주위에서 아이스 박스를 같이 짊어질 동업자를 찾아봤지만 많은 이들이 트럭 혹은 그 보다는 못하지만 실용적인 리어카가 지상목표여서 동지를 구할 수 없었다. 측근에 의하면 거의 왕따 수준이었기에 구한다고 설칠때부터 못 구할 줄 알았다고한다. '외기러기 저기러기'로 다닥다닥 달라붙은 똥딱지를 닦는 휴지가 된 오프리더가 믿는 것은 오직 자신의 두 다리와 아이스 박스를 짊어맬 어깨뿐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4살이 되었을때 자신이 살던 읍내의 모든 얼라들을 유인해 아이스크림을 강매한 것을 시작으로 15살에 서울로 상경해 강북 네개의 구를 섭렵한 오프리더의 도붓장사실력은 행상업계에선 꽤 소문이나 존경심과 함께 다른 무리들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게되었다.
"하루 최소한 12시간 이상 도붓장사를 합니다. 돈이 있어야 아유미가 쭈쭈 한번 만져보게 해주지 않겠습니까!! 아직 멀었습니다. 전 행상업계의 빌게이츠를 꿈꿉니다.”
오프리더는 아이스크림 행상을 시작한지 3년만에 자신의 고향과 서울의 강북을 모두 섭렵하고 강남으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그의 나이가 17살이었는데 그때 또래의 친구들은 고딩 1학년이 되었을 시기이다. 이때 당시 일명 '칼머리' 로 불리우는 '대두도 보통 대두가 아닌 사람들 전용 뽈따구 살 감추기 헤어스타일' 이 - 뇌충협회- 에서 유행을 살짝쿵 했었는데, 오프리더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과감히 '칼머리' 를 해버렸다. "그때 마약한거냐, 대체 왜 그랬는가." 라는 질문에 "장사가 더 잘 될것 같아 시도했다" 는 그의 말에 이 새끼 보통내기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얼마후 측근에 의해 알게된 사실인데 그 '칼머리'는 오프리더의 유일한 친구인 -뇌충협회- 의 이반 친구들이 안 하면 안 놀아준다기에 했다는거란다.
"뇌충협회 이반 친구들과 슈가의 팜플렛을 보며 용기를 얻어 발에 피고름이 터져도 넓은 지역을 두 발로 걸어다니며 장사를하기가 가능했습니다”트럭을 끌며 편안히 많은 곳에서 장사를 하는 행상인들이 부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뷁" 이라고 짧고 명쾌하게 그는 답한다. 요즘은 폐인모드에 돌입해 루리웹 토론게시판에서 완전히 미친척(?)하고 꼬장을 부리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든지 벌써 횟수로 4년째인 올해엔 각 동네에 있는 찌질이들에게 한번더 아이스께끼를 강매할 예정이고, 슈가 5집 나오기 전까지 북한의 대동강 유역의 맑은 물을 퍼 날라 돈 좀 벌고 싶습니다."
죽기 전에 꼭 아유미 쭈쭈를 만져봤으면 하는 오프리더는 마지막으로 국내 행상업계를 걱정하며 "국내 행상업계가 세계적 수준이 되려면 문희준님의 락&오케스트라를 본받아 크로스오버지향 중심의 행상을 해야만 된다" 라며 상스럽게 한마디 내뱉으며 인터뷰를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