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슬란에게 최초로 공격 받은 기병들은 배틀 엑스와 후발대에게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고작 2~3명 정도 목숨을 부지하고 달아났고 보병들은 전멸 했다.그 속에는 쿤자스가 아끼는 실력 좋은 부하들도 여럿 껴 있었지만 아르슬란과 벨터에겐 송사리에 불과했다.
돌 골램은 다리 하나를 잃어 무용지물이 되었고 술자인 테레사 도슨은 기울어버린 전황을 뒤집지 못한다는 판단 하에 그대로 달아나버렸다.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벨터는 술자를 찾고자 숲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다.
아군 피해는 놀랍게도 단 한명에 사상자도 나지 않았다.
그저 몇몇 부상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그것은 화랑의 큐어로 금세 치료가 가능했다.
쿤자스와 테리는 놓쳤지만 47명에 적을 처리한 것에 비해 사상자가 나지 않은 완벽한 대승에 용병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함께 전장을 누빌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배틀 엑스의 대장 한스 브라이튼이 아르슬란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주먹을 다른 손으로 포개 보였다.꼭 무협지에서 보던 인사법과 흡사했지만 좀 달랐던 것은 주먹 쥔 손에 자신의 용병 증표를 쥐고 있던 부분이 달랐다.
보통은 손가락 두 개를 이마에 대고 가볍게 날리는 식에 인사를 주고 받지만 상대가 존경에 대상이라면 좀 더 격식을 갖춰 행동 했다.
“나도 영광이였네.이토록 듬직한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말이네”
아르슬란의 말 한마디에 한스는 가슴속 깊이 격한 감동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나저나 로즈는 어디있지?”
벨터 아스테가 있다면 당연히 로즈 켈 클라우디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 아르슬란은 그녀가 보이지 앉아 의아함을 내비쳤다.로즈가 홀로 움직이면 움직였지 벨터와 안젤리카가 독단적으로 움직일 리 없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생겨 저희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정이라?하긴 그녀석이 있었다면 내가 나설 자린 애초에 없었겠지.. 그나저나 거기 마법사 친구 소개 좀 부탁할 수 있을까?”
아르슬란이 거론한 마법사는 다름 아닌 나였다.
하긴 마법 문을 열고 큐어를 사용했으니 등에 검을 차고 있어도 마법사로 오해하기 충분했다.
“전 용병 화랑 에거시입니다”
“용병이였나?어째든 반갑네 화랑.. 혹 용병단 소속이 어찌 되는가?”
“전 케로베로스 용병단 소속입니다”
아르슬란은 그제 서야 이해했다는 명쾌한 표정을 내지어 보였다.
그가 에텔에 처음 당도하자마자 접한 놀라운 소식은 다름 아닌...
“하핫 혹시 로즈와 호각을 다뤘다는 남자가 자네였나?”
호각?아르슬란이 싸운걸 보고 절실히 깨우친 것이 하나 있다.. 플래티넘급 용병은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로즈는 본 받아야할 4명에 이름을 거론했고 그중 하나가 자신 그리고 다른 한사람이 아르슬란 그리프라고 말했다.
“아닙니다.. 호각이라뇨.. 로즈가 봐줘서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입가에 미소는 짓고 있었지만 눈동자나 얼굴형색은 헛소리 하지 말라는 의문형이었다.
로즈는 성격상 시비가 붙은 상대를 봐주는 일이 이제껏 없었던 개차반 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로즈가 봐줬다고?그것만큼 믿기 어려운 개소린 처음 듣는군.. 내 코등에 흉터를 낸 녀석이 바로 로즈 일세.. 그 녀석한테 미니 타이탄이란 별명을 지어준 것도 나고 말이야.. 그건 그 녀석 성질을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취지에서 여러 사람 살려 보려고 내가 붙인 것이네만.. 그 녀석이 자넬 봐줬다?이 대목에서 난 웃어야 하는가?”
딱히 받아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녀석이 유명한 쌈닭이었다.그런 로즈와 비겼다는 소문이 났으니 따가운 시선을 받을 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언잖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실언 했네요.. 그날 로즈와 난 합의하에 무승부를 냈습니다”
“그렇군.. 솔직히 내 눈엔 자네는 그저 평범해 보이기만 하네.신기한 것이 하나 있다면 자네 그림자는 우리와 다르게 일그러져 있군”
모든 사람들이 내 발밑에 그림자를 바라봤다.
이내 그림자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다소 일그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신기함이 느껴졌다.
“왜 저러지?”
“그림자가 우리와 다른데?”
수근 수근 수근 수근
“아아 이상하게 생각들 말게.. 이건 마법사가 채내 마나를 활성화 시킬 때 생기는 파장 때문에 그런 것이네.. 그렇지?화랑?”
“그렇습니다....”
이건 일부러 주제를 돌린 것이 분명하다.
괜히 나의 대한 이상 추측과 억측이 생길 것을 사전에 방지하듯 말이다.
그러고 보니 벨터는 나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이세계엔 감이 뛰어난 사람이 존재하는 것 같다.
아르슬란의 말 한마디에 모든 사람들은 의문을 단숨에 접어 버렸다.모두 그를 신뢰했기에 가능했던 부분 같았다.
“그나저나 누굴 호위하는 중이었나?”
한스 브라이튼이 재빠르게 답했다.
“저희는 아리아 칼테 가르시아 공녀님을 벨리타로 호위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아.. 가르시아 공작가라..저기 나와 계신 아가씨들 중 한 분인가?”
아르슬란이 가리킨 여성들은 릴리와 배니였다.
그때 휴이 로이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리아 공녀님은 현재 마법사 화랑의 도움으로 에텔 도시에 위치한 에우르고 공작가로 피신 시켜둔 상황입니다.”
마법의 문이 공간을 연결해 준다는 개념을 이해한 아르슬란은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세상에 이토록 신기한 마법이 있는지 그는 전혀 모르고 있던 차였다.
“참으로 놀라움이 가득한 세상이군.. 이토록 편리한 마법이 있다니 ”
에텔 도시에 위치한 용병 주점에서 이곳까지 넘어오는데 결린 시각은 고작 해봐야 1초였다.
앞으로 이러한 마법이 늘어날수록 용병들이 나설 자리가 점점 더 위축 될 거란 생각이 아르슬란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자낸 재주가 정말 뛰어난 사람 같군.. 로즈를 만나거든 안부 전해주게.. 자!우릴 다시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놔 주겠나?”
“그러겠습니다”
“저기 아르슬란 그리프님.. 오늘 보았던 마법 문에 대해선 모르는 척 해주셨으면 합니다만..”
휴이의 부탁을 들은 그는 여유있는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럼 평온한 여정이 되길 바라네..”
포탈을 열자 아르슬란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고 뒤이어 다른 용병들도 배틀 엑스와 작별을 나누고 사라졌다.오스만은 내 손을 꼭 잡고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가 나한테 고맙다고 말한 진위는 알 수 없지만 표정은 무척이나 홀가분해 보였다.그리고 오스만의 말 뜻을 이해한 것은 조금 더 후에 배틀 엑스로부터 단서를 얻은 다음이었다.
“아르슬란 그리프님 굉장하지 않냐?단신으로 도적단 무리로 들어가 박살내 버리는 거 말이야”
“으하!난 이 순간을 내 자식들한테 꼭 들려주겠어!”
한스 브라이튼도 부하들 말에 편승했다.
“암!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우리들에 우상이니깐.. 자!슬슬 출발 준비를 서두르자고!”
로즈를 포함한 다른 플래티넘 용병들은 명성은 높았지만 인망은 낮았다.하지만 아르슬란 그리프는 용병왕이라 불리 울 만큼 인망도 높았던 인물이다.
그는 부하를 대동하지 않는다.그에겐 거창한 이름에 용병단도 없다.그저 홀로 방랑하고 있지만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용병단이든 그는 움직일 수 있다.
그는 등급이 낮다고 부하나 졸개 취급하지 않는다.한결 같이 용병들을 동료나 가족이라 부르며 그들이 위급할 땐 계산 따위 하지 않고 몸을 먼저 움직이는 타입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4명에 플래티넘 중에서 가장 강했다.
죽은 도적들로부터 챙긴 전리품은 모두 배틀 엑스와 벨터의 몫이 되었다.
애석하지만 난 뒤에서 동영상만 촬영한 덕분에 단 한 푼에 보상도 갖질 못했다.말도 무려 8마리나 전리품으로 챙길 수 있어 쏠쏠한 부수입을 챙겨든 용병들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렇게 2시간이 흐르자 휴이는 주변 정리를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출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난 포탈을 열고 아리아를 불렀지만 그녀는 다소 난처한 얼굴로 가볍게 손짓하며 날 부르고 있었다.
불길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들킨 것이 분명했다.루카스와 휴이는 나에게 으스스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등을 떠밀었고 난 그대로 밀려들어갔다.
아~!역시나.. 내 앞에는 막시무스 랏테 에우르고 공작님께서 위엄 있는 얼굴로 의자에 앉아 계셨다.
“재밌는 발상이군.. ”
“...................”
아리아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레아와 함께 애써 웃음을 참고는 가만히 앉아 있었고 난 얼어붙은 동태마냥 가만히 벌을 서고 있었다.
“이걸 생각해 낸 것이 자네라지?”
“워낙 여정이 험난하여 아리아 공녀님을 지켜드리고자 꾀를 낸것입니다.말씀대로 이건 모두 제 생각입니다”
막시무스 랏테 아우르고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벌을 달게 받아야 겠지?”
헐?벌?무슨 벌?
무전취식한 친척뻘 되는 아리아니깐 이해를 해줘야지 이 구두쇠 양반아?
“벌은 받아 마땅하나.. 부디 선처를...”
막시무스 공작이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리자 아리아와 레아는 그제 서야 가볍게 웃기 시작했다.이 상황 왠지 몰래 카메라 당한 기분이다.난 진짜 무서웠는데.. 이게 웃기냐?
“하하핫.. 미안하네.. 이토록 기특한 생각을 해내다니.. 내가 다 고마울 지경이군,솔직히 마법 문에 대해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라 믿기지가 않았네.. ”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곤란해서 본의 아니게 숨기게 되었습니다.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자네 입장도 이해가 되네.. 하지만 언제든 열고 닫을 수 있는 그 문이 내 딸아이 방과 연결 되어 있다면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지 않겠나?”
정론이다.
애석하지만 이 저택에 대한 위치 기록은 목록에서 지워야 할 것 같다.
일기 속에 나도 탐욕의 추종자들을 귀빈 영접실을 통해 유입시켜 습격했다.막시무스 공작의 우려는 나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해서 자네가 레아의 가신이 되어 줬으면 하네”
“네?”
“자네가 나와 나의 가족들을 지키는 기사가 되어 준다면,내 걱정도 덜 수 있지 않겠나?”
어떻하지?
그냥 위치 저장만 지우면 되는데요~?라고 말하면 불쾌해 하시려나?
현재 난 용병이고 이걸 내 멋대로 결정하면 로즈가 기분 더럽게 나빠 할 텐데?
“말씀만으로도 너무나도 황공하고 감사한 말씀입니다.하오나 저에게도 생각할 말미를 주셨으면 합니다.. 뭐랄까 너무 갑작스러워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허허헛 레야가 사람을 재대로 봤군.. 좋네!말미를 주고 말고.. 다만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 말게.. 오래 기다린 만큼 기대도 커지는 법이니 말이야”
호탕하게 웃는 막시무스 공작은 가볍게 팔 바침을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겠습니다 공작각하”
“각하?그게 무슨 칭호인가?”
“아.. 공작님 죄송합니다.. 저희 나라에서 높은 분께 붙이는 격식이었습니다”
“아닐세.. 듣기 이상하진 않군.. 어째든 앞으로 아리아가 내키면 언제든 이곳에 머물 수 있으니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이용해 주길 바라네”
차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아리아는 막시무스 공작을 향해 숙녀의 예를 보였고 공작은 흡족하게 걸어 나갔다.
공작이 나가자 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소파에 그대로 늘어져 버렸다.
레아는 쾌활하게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눈을 반짝였다.
“아버지의 제안을 단번에 승낙하지 않다니?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구나!아버진 널 시험하신 거다!만약 네놈이 그것을 넙죽 받았다면 절대로 너에게 중책을 맡기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그렇습니까?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그러냐?우리 아버님이 널 좋게 보셨으니 넌 이제 출세 길이 열린 것이다.거기다 내가 뒤에서 밀어 줄 테니 부담 말고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해라”
갑자기 이게 무슨 생뚱맞은 전개래?
내가 이 가문을 위해 한 게 뭐가 있다고 갑자기 기사가 되래?
텔리포트랑 포탈 말고 보여준 거라면 오르골 밖에 없는데 말이다.
“레아 참 나빴어...”
아리아는 레아를 향해 섭섭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레아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뭐가?”
“실은 화랑님을 가르시아 가문의 가신으로 아버지께 부탁하고 싶었거든”
헐?!아리아 너도 그런 생각을 한 거야?
갑자기 넌 또 왜?
나 용병인데다 사귀는 여친도 있다고 했는데에?
아리아의 생각을 알게 된 레아지만 이건 양보 할 수 없다는 듯 한손을 허리에 걸치고 당당한 자태로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와~ 하지만 이건 나도 양보 할 수 없어!난 화랑과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싶으니깐”
이런 씨부랑..
내가 니 여행용 텔리포터냐?이제 보니 요녀석 사심은 따로 있었군
“후훗 그런 목적이라면 난 더더욱 양보 못해.. 그리고 화랑님 공부는 내가 가르치고 있는걸?화랑님은 절대로 내 부탁을 거절 하지 않으실거야”
어이 어이 내가 하기 싫다는 전제는 안 깔고 너희 둘이 신경전이니?
갑자기 이러니깐 참으로 황송한데.. 난 딱히 기사 같은 불편한 억압에 묶일 생각 없는데.
“좋아!그럼 이렇게 하자.. ”
나와 아리아의 시선이 레아에게로 향하였다.
그녀의 표정은 또 뭔가 멋대로 장난치고 싶은 그런 종류에 얼굴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