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정도 마을에 머물러 휴식을 마치고 또다시 다음 행선지를 향해 출발했다.
도시 에텔에서 멀어질수록 마을에 분위기나 상태는 점차 나빠지고 있었다.아리아는 나와 함께 하는 시간 내내 깃털 펜과 잉크를 사용해 헤베테를 쓰고 읽는 법을 알려주었다.
아!!나 돌머린 가봐!!도저히 모르겠어!!시키는데로 쓰고 읽긴 하지만 금방 까먹을 것 같다.
잘 깎아 만든 길은 옛적에 끝났다.지금부터는 덜컹 거리는 그야말로 비포장 길이다.이런 극심한 환경에서 쓰기를 하고 있는 나 자신도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런 내 모습을 기특하게 바라보던 아리아는 글자 하나를 쓸 때마다 앞에서 발음을 지속적으로 해 주었다.
하아.. 고단하다.. 21살에 외국어 공부는 결코 늦지 않은 시작이다.
더욱이 현지인이 맨투맨 해주는데다 말이 통하니 언젠가 습득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공부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날은 점차 어두워졌으며 탁 트인 초원을 지나 숲을 통과하여 지금은 강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휴이는 한스 브라이튼과 루카스를 설득했고 두 사람 허락을 받아냈다.
그렇게 다음 마을로 강행군을 할 무렵,테리 보니는 동료이자 산적 두목인 쿤자스 앞에 죄인처럼 묶여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너 때문에 내 부하들이 개죽음을 당했어. 이 망할 자식아”
폭포 안 동굴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테리 보니와 4명에 부하들은 40여명이나 되는 산적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미안하네.. 나도 그런 상황은 생각지도 못해서 말이야.. 이 계획이 성공했다면 자네에게 섭섭지 않은 보상을 해줄 생각이었다고”
“이젠 다 필요 없어!그게 마법 마차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우리가 손 쓸 도리는 없어 진거야.. 내 부하들의 한은 네놈과 부하들 목으로 달래주겠어”
테리 포니는 쿤자스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다시 한 번에 기회를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네 부인의 힘을 빌려만 준다면 그깟 도시 경비대쯤 별거 아니잖나?배틀 엑스 용병단도 고작 11명이고 기사 두 명쯤이야 용맹한 자네 심복들한테는 한주먹거리도 안되고 말이지”
“사신 벨터 아스테.. 그 자식은 어쩌고?거기다 마차 안에 아리아 공녀가 없었다고 하지 않았나?근본적으로 그 마법 마차에 구조를 알지 못하는 이상 함부로 손을 쓸 수 없는 것은 변함이 없다네..그러니 개소리 그만 하고 죽어주게나”
깊은 동굴 안쪽에서 붉은 로브를 걸친 여성이 요염한 자태로 걸어 나와 쿤자스의 가슴에 몸을 밀착하며 손으로 그의 물건을 어루만졌다.
분노한 쿤자스의 표정이 잠시나마 온화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마법 마차라는 것에 흥미가 생기네요.. 여보?저 그게 갖고 싶어요”
쿤자스의 보물이라 불리우는 붉은 별 테레샤 도슨은 검은색 긴 머리카락과 어울리는 흑진주 같은 흑안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와 매혹적인 몸매를 가진 마녀였다.
“험.. 당신이 원하는 건 내 모든 들어줘야지.. 알았어!그럼 이번엔 나도 출격해 주겠어”
테리는 머리를 땅에 처박고는 쿤자스와 테레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아리아 공녀를 호위하는 행렬의 진로는 이제부터 일직선이다.이들이 우회하여 서둘러 간다면 적당한 위치에 매복이 가능했다.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휴이는 2차 기습이 없기만을 신께 빌며 여정을 강행하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저녁이 되었다.
숲을 지나면서 고블린 정찰대을 발견하긴 했지만 그쪽에서 몸을 숨긴 덕분에 전투는 발생하지 않았다.하지만 이제 부터는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지역으로 더 이상에 안전은 보장 받기 어려워 졌다.그 말인즉슨 막시무스 랏테 에우르고 공작령도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마차는 8시간에 강행군 끝에 마을에 도달하게 되었다.
저녁을 맞이한 용병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한걸음에 모험가 식당으로 내달려 들어갔다.
포탈을 사용해 아리아를 루비어 저택으로 보낸 화랑은 마차에서 걸어 나와 휴이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말이 2시간 공부지.. 부탁을 가장한 채찍질 때문에 무려 6시간 공부를 하고 말았다.
아직도 머릿속에 헤베테가 빙글 빙글 돌아 머리가 어지럽다.
“보아하니 글공부를 시작한 모양이더군?”
“말도 마.. 죽을 맛이라니깐..”
“잉크 한 병을 다 쓸정도라니.. 내심 네 입장이 어떨지 알겠더군”
허허 웃는 휴이가 요즘 따라 너무 얄밉다.내 걱정을 해주는 건지?약 올리는 건지..
그나저나 음식 맛은 갈수록 이상해진다.앨보 마을에선 그럭저럭 괜찮은 음식들이 나온데 반해.. 그 이후부터 조금씩 간이 안 맞더니.. 지금은 아예 맹탕에 푸석한 빵 그리고 딱딱한 고기라니.. 옆 테이블에서 괴걸스럽게 먹어대는 용병 친구들 식성이 내심 감탄스러울 뿐이다.
그보다 휴이도 별 불만 없이 음식을 먹는걸 보아 엘시노어 영지가 시골이긴 한가보다.아.. 루비어 저택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난다.아니 엘리샤가 해준 음식이라도 좋다.
마음 같아선 [우리집]를 클릭해서 그곳으로 날아간 다음,매일 점심과 저녁을 그곳에서 돈 주고 사 먹고 싶다.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날 반겨주지 않겠지.거기다 매번 차비로 20은화씩 쓴다는 점도 타산이 안맞는 부분이긴 하다.
식사를 마치고 여관방을 빌리러 가보니 1인실과 2인실은 이미 다 나갔고 4인실 밖에 없다해서 그것을 빌리게 되었다.
그곳엔 나와 휴이 그리고 게일과 루카스가 함께 쓰게 되었다.남자들만 득실대는 게스트 하우스에 무슨 판타지가 있겠냐?발 꼬린내가 안나면 다행이지..
더욱이 씻으려면 우물가로 나가야 했다.아 번거롭다.. 씻기 싫은데 아리아 칼테 가르시아 공녀와 항시 마주하는 만큼 청결함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서 거를 수가 없다.
“어딜 가는 거지?”
“씻으러 가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루카스와 난 말을 놓고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저놈이 반말을 하니 나도 하는 것뿐이지만 매번 날 불쾌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이젠 좀 익숙해진 편이다.
저 녀석은 아리아를 짝사랑하는 것이 분명하고 아리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 죽이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도 어쩐지 알 것 같다.
반대 입장이었다면 나도 싫었을 거다.아니 내 전 여친이 다른 놈과 놀아난 시점부터 나도 빡이 돌았었으니깐.
“같이 가지..”
나와 휴이 그리고 루카스가 씻으러 나가자 게일도 매우 귀찮은 태도를 취하며 마지못해 따라나왔다.우물가에 나와 씻고 있었던 것은 릴리와 배니 뿐이었다.
우릴 발견한 릴리는 훤히 들어난 허벅지를 가리며 서둘러 자리에서 벗어났고 배니는 다소 당당하게 발을 씻고는 게일을 힐끔 바라보며 손 인사를 보내고 사라졌다.
흡족한 미소를 짓는 게일을 보니 두 사람 사이가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터 그런 관계가 된거지?”
“릴리와 배니가 뒷간에 갈 때 내가 호위를 하지 않나?어쩌다 보니 말도 섞고 친해지게 되더군”
“흥”
루카스는 관심 없는 척하지만 분명 부러워 저러는 것이다.
나도 친구 놈이 내 앞에서 닭살을 털어내면 꼴시럽고 불편했으며 부러웠는지 이로 말할 길이 없었다.
더군다나 루카스가 흠모하는 대상은 지체 높은 공작가의 여인이다. 루카스가 아리아와 이루어지려면 적어도 백작 정도 되는 작위를 얻은 다음에나 가능할 것이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했다.
등목을 받기 위해 상의를 벗자 게일이 나에게 다가와 미스릴 체인 메일에 대해 질문을 건넸다.이러한 물건은 어디서 구했냐에 대한 것이었다.
“드워프로부터?호.. 자네 이거 나에게 팔지 않겠나?백금화 2개를 주지”
“미안하지만 나도 이것 밖에 없어서 말이야”
게일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귀찮게 치근덕거렸다.
또 사면되지 않냐라는 식인데,그 괴팍한 아저씨한테 또 구매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백금화 10개!”
“허억!이 사람이.. 백금화 10개면 미스릴 판금 갑옷도 사겠구만”
서운해 해도 할 수 없다.
난 이미 한번 칼에 난도질당해 죽어봐서 그 아픔이 얼마나 끔찍한지 잘 안다.
두 번 다신 그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죽는 건 더더욱 사절이다.
그렇게 나와 휴이는 서로에 등에 물을 뿌려주며 등목을 하였다.그것을 멀찌감치 바라보는 여인들은 어쩐지 수줍은 얼굴로 선 듯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마을 청년들이 웃통을 벗고 씻는 것은 봤어도 기사와 귀족이 씻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녀들 눈에는 타지 남자들의 대한 로망이 있는 듯,선 듯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루카스가 나에게 무심히 말을 던졌다.
“자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저 여인중 하나와 좋은 추억을 쌓을 수도 있을텐데.. 모르는 척 해 줄 테니 마음이 있다면 다녀오게”
지금까지 보인적 없는 부드러운 말투와 호의,진정 날 위해 배려하는 것 맞냐?
“사랑에 서약 없이 관계를 하는 것은 순결에 대한 모독 아닌가?”
“그건 상대방이 결정할 문제야.. 널 마음에 두고 있다면 그런 과정은 무의미 할 테지”
“그럼 자네나 다녀오지 그러나?난 별 생각 없으니깐”
입 꼬리를 올린 루카스는 시건방진 눈빛으로 날 흘겨보며 여관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게일은 마을 처녀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곧장 달려 나갔다.
배니가 알면 얼마나 속상할까?하긴 두 사람은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문제 없으려나?
나와 휴이는 물기를 다 닦아내고 곧장 여관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루카스는 나무 바닥에 가부좌를 한 채로 앉아 있었다.
정신 수련을 하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고 휴이는 램프를 가까이 갖다 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아무래도 루카스의 명상 수련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간은 어느덧 1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40분만 버티면 망할 일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개운한 감각도 어느덧 미비해지는 가운데,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일기따위 아침에 보면 그만이다.피곤해 죽을 맛이니 일단 잠이나 자자.
배터리 충전도 오늘은 패스해야겠다.체력적으로 오늘은 너무 졸려왔다.
그렇게 난 잠이 들었다.
중간에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 보니 게일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지금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3시 20분이다.
뒷간에 갔다면 만날 것이고 아니라면 불타는 밤을 보낸거겠지.인생 즐기며 사는군..
난 로즈한테 수작 부리려다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었는데..
랜턴을 밝히고 싶지만 부싯돌 튀기는 것도 귀찮다.
양초가 다 타 없어진 시점에서 불을 구하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중에 라이터를 개발해서 시중에 판매하면 대박이 나지 않을까?그런 생각도 해본다.
스마트 폰을 이용해 라이트를 밝혀 계단을 내려가는데 은근 분위기가 으스스했다.
한걸음 거를 때 마다 나무 계단에서 삐꺽 되는 소리가 났다.
오싹한 분위기 때문에 잠이 조금씩 달아나는 것 같았다.
로비 입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가 뜻밖에도 릴리가 잠옷 차림으로 부들부들 떨고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어?왜 밖에서?”
“으흐.. ”
창피함에 얼굴을 가리고 재빠르게 여관 안으로 들어간 릴리는 어둠속으로 금세 모습을 감췄다.상황을 보아하니 뒷간에 갔다가 여관 주인이 문을 걸어 잠군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보통 문이 열려 있으면 뒷간에 간 손님을 배려해 다소 기다리긴 할텐데.. 간혹 뒷간에 다녀오고도 문을 잠그지 않는 인간들 때문에 주인이 문을 걸어 잠군건지도 모르겠다.
설마 내가 다녀온 사이에 잠기는 일은 없겠지?만약 그렇다면 문을 부서버릴테다.
자다가 일어나서 소변보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다.
보통 눈을 뜬 아침에나 볼 일을 보는데,어제 갈증이 심해 물을 한꺼번에 들이 킨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어째든 가벼워진 몸을 이끌고 여관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아침 6시가 되어 날이 밝자.
몸속에 시계라도 있는 듯 정확한 시간에 기상을 한 휴이는 주변 사람들을 깨워나가기 시작했다.단번에 눈을 뜬 루카스도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난 힘겹게 잠과 사투를 하고 있었다.
6시간 넘게 자긴 했지만 아직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는다.
어제 아리아한테 붙들려 공부한 탓에 정신력 소모가 큰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루카스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낯짝으로 날 내려다보는 시선이 신경 쓰여 마냥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좀 더 눈을 붙이지 그러나?아리아 아가씨 앞에서 추태 보이지 말고 말이야”
이 놈 보게?
자꾸 사람 성질을 살살 건드리네?
“그건 걱정 말지?아리아 공녀님께선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니 말이야”
곧 눈빛이 돌변한 루카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시선을 쏘아봤다.
“아가씨께 실례를 범하기만 해봐라.. 네놈을 죽사발 내줄테다”
“걱정이 너무 지나치군 그래? 그렇게 불안하면 네 아가씨께 건의라도 하지 그러나?”
이놈과 싸우면 당연히 지겠지만 그래도 눈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눈을 부릅뜨며 10분 넘게 가만히 서서 신경전을 벌렸고 그걸 뒤늦게 발견한 휴이가 부랴부랴 갈라놓고서야 간신히 눈을 깜빡일 수 있었다.
휴이가 말리지 않았으면 분명 내가 이겼을 것이다.저 녀석 눈 밑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아 눈이 건조해서 미칠 지경이었을 텐데.. 아쉽게 됐다.
앞으로 루카스랑 방을 함께 쓰고 싶지 않다.
매일 눈을 뜨자마자 으르렁 대는 하루에 시작이라니..
절대 사절이다..
차라리 배틀 엑스 용병단과 방을 같이 쓰는 게 났지..
날 부모의 원수 보듯 보는 녀석과 같은 공간을 쓰고 싶겠냐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