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일순간 복부에 가해진 충격으로 인해 끊어질 뻔한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호흡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혹시 로즈가 전력을 다해 쳤다면 이걸 버텨낸 나 자신에게 훈장을 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큐어 마법을 시전 할 수 없는 행동 불능 상태에 빠져 있다.그런 날 앞에 두고 로즈는 목욕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내 뛰어난 청각이 로즈의 탈의하는 소리를 하나하나 감지해 내고 있었다.
특히나 하의 속옷을 내릴 때 소리가 큰 자극을 주었다.
담요 때문에 시야는 덮였지만 청각으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내 멋대로 로즈의 전라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로즈의 머리와 어깨 그리고 허리와 손과 팔 같은 부위에 신체 접촉한 감각과 시각적으로 얻은 가슴라인 그리고 허벅지와 엉덩이를 3D 각도로 구성해 보니 녀석 제법 준수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려졌다.
로즈는 욕조에 골반까지 담그고는 가볍게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부터 꼼짝도 하지 않는 화랑에게 신경이 쓰인 로즈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대꾸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상태로는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 할 정도로 신체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었기 때문이고 그걸 복구 하는 것을 로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그저 시체처럼 누워만 있는 것뿐이다.
“화랑 괜찮아?”
거의 죽을 뻔 했다.
너 스스로 그 힘을 조절해 줬으면 좋겠다.
개미를 쓰다듬겠다고 손가락으로 누르면 그놈한테는 치명상이지 않겠는가?
“이상 무”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에 답변이었다.
가장 발음하기 쉽고 심플한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말 보다 주먹이 먼저인 로즈 입장에서 가볍게 한대 친 걸 가지고 화랑이 화가 났거나 아파하지 않을 것이란 개념아래 별 걱정 없이 몸을 욕조에 담그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걸로 이세계에 와서 여자한테 두 번이나 어택을 당했다.
한번은 엘리샤의 다이나믹 킥 또 한 번은 로즈의 핵 펀치.. 여자를 때리는 취미는 없지만 맞고 사는 취미는 더더욱 없다.
오크의 단단함은 괜히 버렸다.결과적으로 로즈와 싸우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드디어 신체 복구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는 것 같다.
손가락과 팔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그리고 하반신도 순조롭게 복구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단지 복부 쪽은 심각한 피해 상황으로 인해,회복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단 척추가 부서진 사람 마냥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창피해 미치겠다.여자애한테 한 방 맞고 이꼴이라니?몸이 강철처럼 단단한 메탈 계열에 괴물이 있다면 내 모든 용량을 포기해서라도 꼭 카피하고 만다.
30여분이 지나자 로즈는 목욕을 마치고 욕조에서 나와 머리카락과 몸을 닦기 시작했다.
화랑이 한 가지 몰랐던 부분은 이세계에도 샴푸나 비누 대체용으로 쓰는 거품 가루가 있는 점이다.화랑은 세탁용 빨래 가루 정도로 생각하며 손을 대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 개운 하다.. 조금만 더 참아 금방 옷 갈아입을 테니깐”
그리고 화랑이 모르는 이 방에 비밀이 하나 더 있었다.
이곳에선 깨끗하게 세탁된 실내복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는 서비스가 존재하고 그것은 옷 방으로 들어가야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란 점이다.
로즈는 테디베어 잠옷을 선호했다.
어릴 적 숲에 버려진 피묻은 곰인형을 주운 날로부터 곰돌이 매니아가 되었다.
이런 그녀의 비밀을 아는 이는 고작 해봐야 케로베로스 용병단의 구성원 뿐 일 것이다.
“화랑!다 끝났으니깐 그만 일어나”
일어나고 싶어도 못 일어나!
하지만 그걸 들키긴 싫었다.엘리샤가 했던 말이 아직도 뇌에서 지워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무슨 남자가 그거 맞았다고 저래?]저래?]저래?]왜 때리는 쪽은 맞는 쪽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째든 난 코를 골며 자는 시늉을 하기로 했다.
“그르렁.. 그르렁..”
화랑이 코를 골자 로즈는 설마 이런 자세로 잠이 들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얼굴로 쭈그려 앉아 담요 인간을 콕콕 건드리기 시작했다.
로즈의 손가락은 애석하게도 화랑의 옆구리를 찌르고 있어,강력한 통증이 옆구리에 퍼져 이를 악물며 버티고 있었다.
“음냐 음냐..”
화랑은 천천히 몸을 돌려 자세를 바로 했다.
로즈는 그대로 주저앉아 화랑을 강제로 깨우기 시작했다.
“일어나 잠탱아!자려면 침대에서 자라고!”
침대로 가고 싶다고!
그러니깐 건드리지마 젠장!아파!아파 뒤지겠어!
“일어났어.. 그러니깐 그만해..”
가라않은 목소리가 어째 화가 난 어조와 비슷했다.
로즈는 더 이상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화랑을 주시했다.
그리고 얼마 안지나 룸서비스가 도착했다.
똑 똑
“문 열렸어!들어와”
“실례 하겠습니다”
방 한편에 준비된 긴 식탁으로 일사불란하게 음식을 나르는 여관 종업원들은 거실 바닥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시체처럼 누워 있는 남성을 힐끔 바라보며 문 밖으로 나갔다.
로즈는 맛있는 냄새에 모든 정신을 빼앗겨 한걸음에 식탁으로 달려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화랑도 어서 와서 먹어!배고프다며?”
솔직히 배고품 보다 통증이 더 심해 어지간하면 움직이긴 싫지만 저토록 맛있게 소리내서 먹으면 가만히 있기 거북해 진다.
양 손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할 때 오는 허리와 배에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온 신경을 지배해 나갔다.
난 옆구리에 오른손을 대고 큐어를 시동했다.
담요 안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는 것을 본 로즈는 눈을 깜빡이며 식기를 내려놨다.
“화랑 뭘 한 거야?마법?”
미야로 부터 카피한 큐어는 여러므로 도움이 되는 매우 유용한 마법이다.
통증이 깨끗이 사라지자 겨우 담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난 식탁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갔다.
“무슨 마법 같은 소리야?밥이나 먹어”
내 말투가 신경 쓰인 로즈는 빤한 눈빛으로 날 응시하기 시작했다.
“화난거야?아까 살짝 친 걸 가지고?”
살짝?장난해?강아지를 걷어차고 살짝 걷어차서 아팠니?라고 말할 기세네?
“화 안났어.. ”
“아니!얼굴에 화났다고 써 있잖아!말 투도 평소랑 다르게 딱딱하고!”
“됐어.. 밥이나 먹어”
“뭐가 됐어?지금 나한테 화내고 있는 거지?그치?”
그래 화났어!라고 말하면 저 무식한 괴력으로 밥상을 뒤집어엎겠지?
굴욕이다.이렇게 끌려 다녀야만 하다니..
“자고 있는 걸 깨운 건 로즈잖아?약간 신경이 날카로워서 그랬어.. 미안해”
왜 사과를 하고 있지?
건달한태 두들겨 맞고 합의금 준 꼴이네 완전..
“나도 미안”
자고 있는 상대를 강제로 깨웠다는 점이 미안했던 로즈는 화랑에게 사과를 건넸다.그리고는 슬며시 화랑의 기분 상태를 살폈다.
이때 내가 보여야 하는 반응은 난 쿨가이~ 라는 인상이다.
“이야 음식 봐라..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정말.. 어서 먹자”
“응!”
식탁에 놓인 12가지 요리와 빵 그리고 치즈, 후식으로 과일까지..
말 그대로 진수성찬이었다.
거기다 맛도 일품이다.기름에 튀긴 닭에 바비큐 소스를 뿌린 것부터 시작해 소 등심 스테이크와 돼지 앞다리 훈제까지.. 이세계에 와서 이렇게 성대하게 밥을 먹어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로즈와 난 고기를 손으로 잡고 괴걸스럽게 찢어먹으며 화기애애하게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잠옷이 참 귀여운데? 어디서 났어?”
“이거?옷장에서 꺼내 입은 건데?”
“에?옷장?”
난 로즈가 가리킨 옷장?아니 옷방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그곳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내부는 어두워 정확히 어떤 옷이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위 아래로 수 십 벌이나 되는 옷들이 나열 되어 있었다.
“이걸 다 가지고 다니는 거야?”
“무슨 소리야?실내복과 잠옷은 무상으로 대여해 주는 걸?”
난 입을 떡 벌렸다.
누군 평상복을 입고 싶어서 입고 있겠나?당연히 실내에선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입고 싶지..
일단 식사를 서두르고 취침하기 쉬운 실내복으로 갈아입기로 마음먹었다.
12가지 음식을 전부 먹는 건 불가능했다.
남은 음식은 잘 뒀다가 야식용으로 보관 하려는 내 행동에 로즈는 의문을 품고 질문했다.
“뭐 하는 거야?음식을 왜 하나로 합쳐?”
“버리긴 아깝잖아.. 새벽에 출출하면 먹으려고”
로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역시나 이해 못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가 아까운데?먹다 남은 건 버려야지.. 그리고 새벽엔 자야지.. 왜 음식을 먹는데?”
난 몇 가지 자각하지 못한 점들이 있었다.
아니 이세계에 대해 누군가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존재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 남겨진 음식들은 절대로 버려지지 않는다.
깨끗한 것들은 여관 종업원들의 식사가 되며 한입이라도 베어 물었던 음식들은 모두 빈민가로 흘러들게 된다.
고로 이곳에선 찌꺼기에 붙은 살점조차 버려지는 일은 없는 것이다.거기다 새벽에 여가 거리가 없는 사람들 입장에선 밤엔 자고 낮에 활동하는 절대적 생활 규칙으로 인해,새벽에 일어나 음식을 먹는 행위는 상상조차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 우리가 남긴 음식은 다른 누군가에 식사가 된다?그런 말이야?”
“맞아 하지만 우리한테 노예가 있다면 남은 음식은 모두 노예 몫이 되지.. 우리야 또 시켜 먹으면 되고 말이야”
어쩐지 엘리샤와 미야의 생활 습관이 나와 더 잘 맞는 그런 기분을 받았다.
그곳에선 먹을 만큼만 만들고 남기는 일 없이 모두 먹어 버렸다.
혹시나 남으면 잘 포장했다가 하루가 지나기 전에 모두 먹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시에 밤거리는 매우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었다.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과 별 하늘은 매번 봐도 질릴 것 같지 않은 장관이다.잠시 로즈와 함께 테라스로 나와 4층 아래 풍경을 바라보며 바람을 씌고는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앉았다.
슈퍼 더블 침대니깐 우리 둘이 같이 잔다고 해서 공간이 비좁거나 할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오늘 갑작스럽게 사귀게 되었다는 막장 설정에 이어 침대에서 함께 잔다는 것은 무척이나 부조리한 상황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난 바닥에서 잘 테니깐 화랑은 침대에서 자”
얼굴을 붉히는 로즈는 볼을 긁적이며 베게와 이불을 카펫트 위에 깔고 잠자리 준비를 서둘렀다.그렇다고 남자인 내가 어떻게 마음 편히 침대에서 잘 수 있을까?
비록 푹신함이 엘리샤의 침대와 비할 바 안되는 최고급이라 양보하고 싶진 않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아냐.. 로즈가 침대에서 자.. 내가 바닥에서 잘 테니깐”
“그럼!그럼 말이지.. 그러니깐..”
로즈는 말을 머뭇거렸다.
난 그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대략 알 것도 같았다.
저 표정 그리고 몸을 베베 꼬는 자세.. 함께 쓰자?그런 말을 하고 싶은 모습이다.
물론 네가 무섭다.하지만 낮져밤이(낮엔 지고 밤에 이기는) 사상이 있어서.. 과연 내 절제력이 본능을 누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