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전 까지만 해도 내 옆에 앉아 있는 키작녀가 날 죽이려 했던 것을 제외하면 현재 상황은 매우 평화롭고 완벽하다 할 수 있다.
언제 그랬냐는 순진한 여중생의 얼굴을 하며 미소 짓는 로즈의 모든 것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쌀 두 가마니를 한손으로 빙빙 돌리는 계집애다.나이프로 카운터를 박살내는 괴물녀다.. 날 향해 강렬한 눈빛으로 살기를 내뿜던 광기 가득한 썩소를 내짓던 모습이 꿈에 나타날까 두려울 정도에 거대한 공포로 각인된 상태다.
그래 이 녀석의 정체가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내 판단으로는 적어도 인조인간이 분명 할 것이다.
“로즈..”
“응?왜 불러?”
자신을 위해 어떤 감미로운 사랑을 속삭일지 잔뜩 기대에 부푼 눈빛을 보내는 로즈의 반짝이는 시선을 보자 차마 너 정체가 뭐냐고 말하기 껄끄러웠던 난 식탁보를 집어 들고 그녀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며 한발 물러서는 쫄보의 모습을 보였다.
제길.. 상대 비위 안 건드리고 정체를 파고 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화랑의 신사적인 행동에 가슴이 두근거린 로즈는 얼굴을 붉히며 조신하고 얌전하게 식사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벨터는 뭐가 재밌는지 계속해서 큭큭 거리며 웃음을 지어 보였고 안젤리카도 새로운 로즈의 모습이 흥미로운 듯 밝은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그럼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용기 내서 질문에 도전하기로 했다.
“로즈는 대단한 것 같아,젊은 나이에 플래티넘 등급에 용병이 되고 말이야.. 그 비결이 뭐지?”
내 질문을 받은 로즈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안젤리카가 대화를 가로막으며 로즈를 제지했다.
“화랑?로즈의 대해 알고 싶다면 먼저 부부가 된 다음에 물어보도록 해..”
“부...부부?왜 그런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거지?”
“우리들한테도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한 가지 말해 줄 수 있는 건 로즈는 매우 특별한 존재라는 것.. 일단 여기까지 설명해 두고 싶은데?”
무슨 소리야?
얼마나 고귀한 혈통을 가졌길래 저렇게 무식하게 힘이 쌔냐고?
뭐 말하기 싫으면 관둬.. 나도 결혼을 해서까지 알고 싶진 않으니깐.
“식사 잘했어.. 나 잠시 뒷간 좀 다녀올게..”
하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롱소드를 들고 자리를 떴다
음식 값을 내고 싶지만 그랬다간 저 녀석들이 눈치 챌테니..
“저도 같이 가요”
벨터가 함박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를 쫓았다.
그러고는 내 팔짱을 감싸고는 손 가락지를 꼈다.
남자 새끼랑 손 가락지를 끼다니 빌어먹을!
“형?!달아날 생각이었죠?”
“뭐?”
역시 검을 가지고 나와 의심을 산걸까?
그러나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벨터의 눈은 이 세상사람 것이 아닌 오묘한 위화감을 내뿜고 있었다.
그 입가에 퍼지는 스산한 미소와 무표정하게 노려보는 눈동자. 소름 돋는다.
“무슨 소리야?난 뒷간에 가는 건데?”
“흠~ 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무척 좋아 합니다.. 형을 사랑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미친 새끼가?
부드러움 속에 녹아든 오싹한 말투..커다란 눈동자..짙은 미소.. 로즈가 말 한데로 이 녀석은 정신병자가 맞는 느낌이 들었다.
로즈의 성격은 감정을 통해 확실히 부각되는데 반해 이 녀석은 그냥 미친놈처럼 보였다.
난 재빠르게 벨터의 손을 놓고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로즈로부터 버림받으면 그땐...제 마음을 보여드릴께요 형”
화장실에 가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났다.
날 꿰뚫어보는 저 눈동자 속에는 살의가 담긴 애증의 감정을 들어내고 있었다.
“생각이 바뀌었어..난 돌아갈래...”
“후후훗 그러세요”
벨터는 흥얼거리며 뒷간으로 걸어갔고 난 그대로 돌아서서 도망갈 것인가?아니면 로즈한테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로즈의 능력은 내가 보증한다.
괴물이다.만약 그때 정면으로 붙었으면 내 생명 하나는 분명 사라졌을 거다.
그런 그녀의 동료들이 평범할 리 없다.
이대로 달아났다가 벨터한테 붙잡히면 저 사이코패스 같은 놈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날 꿰뚫어 보는듯한 그 섬뜩한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로즈와 멀어지면 보여주겠다는 마음도 뭔가 석연찮다.
이 느낌.. 사못 2대 직쏘에 미친 또라이가 생각났다.
난 로즈를 떠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인 기분을 받았다.
그건 계속해서 로즈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세계엔 왜 다 저런 놈들 밖에 없는 거지?
차라리 파리나 잡아먹는 잠자리가 나을 뻔 했을까?
어두워진 내 표정을 본 로즈는 탁자에서 뛰어와 내 손을 살며시 감싸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이고 있었다.
만약 처음부터 이런 모습을 봤다면 한 눈에 뿅 갔을 거다.
하지만 2시간 전에 이 녀석이 보여준 광기 가득한 표정을 본 입장에선 얘도 정신 상태가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안젤리카라는 여자를 평가할 단계는 아니지만 로즈 말로는 섹녀라고 했으니 벌써부터 케릭터 파악이 되는 느낌이다.
그래.. 이 세계에 와서 정상적인 인성을 가진 사람은 미야와 아리아밖에 만나지 못한 느낌이다.그 두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난 이 세계를 미친 세상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기분이 좋지 않은 거야?표정이 어두워”
“무슨 소리야.. 화장실 다녀온 남자들 표정은 다 이래”
무슨 말도 안되는 괴변을 늘어놓는지 원...
부드러운 로즈의 손에 이끌려 난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벨터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앉았다.
“그럼 화랑은 앞으로 어쩔 계획이야?”
로즈의 질문으로 하여금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 되었다.
현 상황에선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는 것 보단 솔직하게 털어 놓는 것이 났다고 판단했다.
“사실 며칠 전에 난 어느 공작가의 자녀분을 도와준 일로 답례를 약속 받았어.. 지금 그곳에서 준비가 되는 데로 함께 왕도 벨리타로 갈 계획을 하고 있지”
공작가의 자녀를 도왔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쉽게 납득이 어려운 종류에 이야기였다.
로즈와 안젤리카는 벨터에게서 시선을 돌렸다.벨터는 두 사람을 번가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고 난 확신했다.
벨터 아스테.. 저 녀석은 사람에 심리를.. 정확히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파악하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 난 화랑과 함께 왕도 벨리타로 가겠어”
“예~에!”
벨터는 순진무구한 산듯한 웃음을 지으며 오른팔을 번쩍 들어 올렸고 안젤리카도 고개를 끄덕이며 로즈의 의견을 따랐다.
근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벨터가 내 심리를 꿰뚫고 있다면 어째서 로즈의 대한 내 거짓된 모습을 폭로하지 않는 거지?
난 로즈에게 관심이 전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맞춰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녀의 동료라면 이런 부분을 지적하거나 들춰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아니면 로즈를 배려하고 있는 걸까?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 네 사람은 일정대로 용병 주점의 마스터 제프에게 받은 추천서를 가지고 사법 관리 시설로 움직였다.
같은 시각...
에텔 도시에 위치한 4개 입구를 다녀온 엘리샤와 미야 그리고 페이와 마크는 화랑의 대한 그 어떤 단서도 알아내지 못한 채 빈손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이른 아침에 떠났기 때문에 교대가 바뀐 상황에서 화랑이 도시를 나갔는지 그것조차 알지 못해 분위기는 침울함 속에 가라 앉아 있었다.
그때 엘리샤의 뇌리에 스친 것은 아리아 칼테 가르시아 공녀와 함께 벨리타로 떠나야 하는 화랑의 일정을 떠올리게 되었고 곧바로 루비어 저택을 향해 달려갔다.
도시 사법 관리국에 당도한 난 로즈를 따라 1층 로비에 마련된 용병 길드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에 사람들이 모여 시끄럽게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중에는 골드 등급에 용병들이 로즈를 향해 가벼운 인사를 건넸고 그녀는 무심한 얼굴로 그 인사를 받고서는 30명이나 되는 긴 줄을 단번에 가로질러 맨 앞자리에 서 있는 용병을 눈빛 하나로 제압한 뒤 그 자리를 빼앗아 나에게 건네줬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내 옆에 서 있는 것이 무자비한 성격을 가진 미니 타이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길드 관리인은 순번에 대한 지적은커녕 친절한 미소로 최고 품질의 서비스를 할 만전에 태세를 보였다.
“용병 등록을 하러 왔습니다..”
“주점 마스터의 추천장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난 마스터 제프가 써준 추천서를 관리인에게 건네줬고 그녀는 그것을 받고는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때 로즈 자신이 써준 추천서를 꺼내 그녀 앞에 드밀었다.
“이것은?”
“나 로즈 켈 클라우디아가 화랑의 실력을 보증한다는 추천서야,노멀에서 브론즈로 등급을 올리고 싶어”
용병단의 입단을 권유할 경우에나 사용한다는 현직 용병의 추천서는 딱히 신기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게 로즈의 경우일 때는 다소 다르게 적용한다.
미니 타이탄과 폭풍의 안젤리카 마지막으로 사신 벨터는 불과 5년 전에 결성되어 멤버 증설 없이 쭈욱 용병 업계를 떠돌던 케로베로스(머리 세 개 달린 짐승) 용병단이었다.
안내인은 로즈가 플래티넘 증표를 가진 용병단 대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곧 바로 용병 등록을 진행하였다.
“그럼 잠시 서류를 작성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로즈 켈 클라우디아와 무승부를 이루었다는 소문의 남자가 혹시 저 자가 아닐까 하는 수근거림이 뒤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수근거림이 내 귓가에 조차 들려오고 있었다.괜시리 식은땀이 났다.
혹시 로즈의 심기가 불편해 질 것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즈는 그런 수근거림은 아랑곳 하지 않는 가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건 자신이 인정한 남자로부터 고백을 받았고 그 사람에 대한 좋은 평가라면 기분 나쁠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벨터는 큭큭 거리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처음엔 신경 안 썼지만 이젠 저 웃음이 굉장히 거슬리기 시작했다.
꼭 자신의 속을 들려다 보고 비웃는 종류에 압박으로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용병단 증표입니다.. 부디 잃어버리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
관리인으로부터 청동으로 만들어진 손가락 세 개 크기에 명찰을 받았다.
그 안에는 내 이름과 나이 그리고 증표를 발급 받은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건 우리들이 지금까지 수행한 의뢰 수료증이야.. ”
로즈는 짐 가방에서 8장이나 되는 의뢰 영수증을 안내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벨터와 안젤리카는 목에 걸고 있거나 가슴에 달아 뒀던 골드 증표를 각각 안내인에게 건네주었다.
로즈도 플래티넘 증표와 내 브론즈 증표를 같이 안내인 앞에 내밀었다.
“실적에 함께 넣어줘”
“알겠습니다”
관리인은 의뢰증서를 꼼꼼히 체크한 뒤 위아래 두 개 동일한 의뢰인의 서명을 체크하고 용병 리스트 관리부에 이력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세치기 한데다 시간 소비가 컸지만 뒤에 서 있는 39명에 용병들은 그 어떤 비난과 짜증도 내지 않은 채 조용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살짝 뒤를 돌아봤지만 모두들 시선을 피하며 먼 산을 바라보는 식에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저들의 저런 반응은 어쩐지 이해가 가는 기분이다.
실제로 난 로즈의 광기를 한차례 경험한 경험자다.
“다 끝났습니다.. 화랑님께서는 임무의 난이도에 따라 다음번에 방문하시면 실버 등급에 증표를 발급 받으실 수 있습니다”
뭐?!
벌써 실버 등급이라고?
뭐가 이렇게 간단해?
물론 세 사람이 완료한 임무에 숟가락만 올려놓고 날로 먹긴 했지만 이건 너무 빠른데?
브론즈에서 실버가 되는데 이렇게 쉬운 거였어?
화랑은 알 리 없을 것이다.
이 세 사람이 11개월 동안 몬스터 토벌과 비명의 숲을 통과하는 상단 호위.. 장거리 원정을 떠나는 왕국 사신(외교관)의 마차를 호위한 높은 랭크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