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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까지 태워 주겠다는 아리아 공녀의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루카스 에이먼과 게일 더치맨은 마부 옆에 앉았고 나와 아리아는 3평정도 되는 공간에 단 둘만이 앉아 있었다.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꾸밈없이 수수한 차림으로 나온 그녀는 내 시선을 다소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옷이 사람을 만들기 이전에,인물 자체가 뛰어나면 옷이 뒤떨어져도 자체 발광이 나기 마련이다.
내 앞에 앉아 있는 긴 붉은 머리카락에 소녀는 수수한 원피스 드레스 차림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움이 들어나는 그런 종류에 여성이었다.
“화랑님께서 보이신 자애롭고 정의로운 모습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답니다”
“아.. 마크를 도와준 것 말이군요.. ”
“그리고 15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도와주셨죠”
아리아가 다소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화랑이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받아야 할 20금화를 포기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그건 완전한 그녀의 착각이었다.
물론 이런 착각에 대해 화랑 역시 알 리 없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쑥스럽네요.. 그나저나 아리아 공녀님께선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된 것입니까?”
내 질문에 아리아는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고개를 살짝 기우리며 차분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레야와 함께 벨리옴에 가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근데 방문객 중에 화랑 에거시님에 대해 묻는 남자를 보아 한걸음에 달려온 겁니다”
“아하.. 죄송합니다.. 아리아 공녀님께 누를 끼칠 생각은 없었는데”
처음 저택에서 봤을 때 보다 예의 있게 자신을 대하는 화랑을 보니,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아리아는 다소 들떠 있었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보통 여자랑 자리를 함께 할 때는 전공이나 직업을 물어보거나 취미 혹은 다양한 취향에 대해 질문한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 생각을 알 리 없는 내 입장에서 뭘 물어본들 이해 할 리가 없어 가능한 질문은 피하기로 했다.
“아까 보니깐 화랑님께서 남자 두 명을 거침없이 상대하셔서 굉장히 멋져 보였답니다.. 제 가신들에게 들어보니 검술도 출중하시다 들었는데 그러한 기술은 누구에게 배운 것인가요?”
다 카피해서 사용한 거라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아버지로부터 배웠습니다”
“아버님께선 뭐하는 분이셨나요?”
뭐라고 둘러대지?
은퇴한 병사?아니면 기사 그것도 아니면 왕궁 근위대?
“은퇴한 기사셨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화랑님을 보니 분명 훌륭하고 멋진 분일거라 생각되네요”
죄송해요 아버지.. 무역 회사 다닌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들을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말이 나와서 말인데,나도 되 물어보지 않을 수 없어졌다.
사실 대화는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상대가 던진 것을 그대로 받아 치는 것도 일종에 수라고 할 수 있다.
개념 있는 사람이라면 질문 한 주제를 되받아도 성실히 대답해 주니깐..
“아리아 공녀님의 아버님 오레오 칼테 가르시아 영주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아리아는 잠시 고민 하는 얼굴을 보이며 뜸을 들이다 이내 답해주었다.
“음~ 저희 아버님은 막시무스 랏테 에우르고 공작님과 반대 되시는 분이세요.. 진심어린 존경도.. 인망도 없으신.. ”
대답을 마친 그녀의 표정은 씁쓸하고 외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 이러려고 물어 본 것이 아닌데?
가끔 상대방의 질문을 역으로 돌릴 때 나오는 부작용이 여실이 들어났다.
할 수 없이 그녀를 위해 신비한 오르골의 힘을 발휘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그것은...”
“아리아 공녀님을 위해 특별히 오르골을 켜겠습니다..”
울적했던 표정은 오간데 없이 밝아진 아리아의 표정을 보니 그 기대에 실망을 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시 한 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틀었을 때 그녀는, 반주가 흐르자 두 눈을 감고 감미롭게 음률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즉흥적으로 가사를 짜서 입 밖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번이 두 번째 들은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에 완벽한 가사와 리듬 이었다.
얼굴도 이쁜데 목소리마저 아름답다니 이정도면 사기 적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가사 내용은 이름 없는 떠돌이 기사와 공작가의 소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주제로 한 내용이었다.
음악이 중반부쯤 되자 갑자기 마차도 멈춰서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이.. 뭐해!어서 움직이지 않고!”
푸르릉~
루카스와 게일은 각자 팔짱을 끼고 두 눈을 감고서 아리아 공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심취해 있었다.
평소 잘 부르진 않지만 가끔 울적해지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 홀로 달이 비추는 정원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일이 많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바라바스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휴.. 죄송해요 갑자기 노래를 불러서...”
“아..아닙니다.. 시..실로 대단한..아니 아름다운 목소리 였습니다”
노래 듣고 감격해 보긴 태어나서 처음이다.
이어폰 꼽고 음악에 푹 빠진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라이브로 들은 데다 반주에 맞춰 박자하나 안 틀리고 가사를 직접 짜서 아름답게 부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화랑님께서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실은.. 누구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얼굴이 붉게 물든 그녀는 나의 칭찬에 수줍게 미소지어 보이고 있었다.
나 역시 심장이 심하게 요동쳤는데,그건 순전히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 때문이었다.
이걸 녹음하지 않은 것이 실로 후회가 될 정도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왜 돈을 써가며 오페라 극장에 가는지 이유를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엔 갑자기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고 마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분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화랑님..”
“예?네 말씀 하세요 아리아 공녀님”
“혹시.. 사랑을 속삭이는 상대가 있거나 약속된 상대가 있으신가요?”
대충 여자 친구가 있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거짓말 할 이유는 없기에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은 한층 밝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설마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건 아니겠지?
마차는 멈췄다.
여기부터는 걸어서 집까지 갈 수 있다.
문이 열리고 난 곧바로 내린 다음 루카스와 악수를 청했다.
뭔 놈에 악수를 이렇게 쌔게 하는지.. 나한테 드워프의 힘이 없었다면 손이 뭉그러졌을 지도 모르겠다.
“화랑님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저희는 용병단이 수배 되는 데로 왕도 벨리타로 출발 할 것입니다”
“아리아 공녀님께서도 평온한 밤 보내세요.. ”
“네~”
무엇이 그리 좋은지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리아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 역시 대충 대충 손을 흔들어 주고는 돌아서서 집을 향해 걸어갔다.
마차는 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대기하다 출발을 하였다.
귀가 밝은 탓에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오후 8시가 되었다.
배가 고팠으며 갈증도 다소 나는 것 같았다.
고단한 하루였다
이런 내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은 한명도 없겠지?
오늘 난 한번 죽었으며.. 루비어 저택에서 공작의 똥꼬(아부)를 빨아대기 바빴고 에버빌까지 날아가 몬스터로부터 능력을 가져왔으며 부랑촌까지 가서 도적단을 일망타진 했다가 사채업자 집까지 가서 일을 원만하게 처리했다.
수고했다 오늘의 나.. 장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독려하고 칭찬한 다음 우리 집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이내 엘리샤가 문을 열어 주었다.
“나 왔....”
엘리샤는 냉담한 얼굴로 내 앞에다 벽보 전단지 한 장을 내밀어 보였다.
어익후.. 이게 왜 또?
“오늘 우리 집에 사법 경비대가 들이 닥쳤데 너 잡으려고”
“으........”
쾅!
엘리샤는 냉담하게 문을 걸어 잠궜다.
이 뜬금없는 상황에 당황한 난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피곤하다고!!
아론인지 메론인지 막시무스 아저씨가 다 해결해 준다고 약속까지 받은 거 너도 봤잖아!!
탕탕탕탕탕!!
“엘리샤 이제 그건 해결 됐어!내 혐의는 풀렸다구!”
“시끄러워!너한테 꿔준 20은화는 안 받을 테니까!가라고!”
태도가 변한 엘리샤로부터 이런 문전박대를 받을 줄이야..
“넌 나한테 이러면 안돼!!널 살리려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우리 자매 주변에 얼씬도 하지 말아줘!”
너무 화가 치밀어 스마트 폰을 꺼내 지도를 클릭하고[우리 집]으로 이동을 누르려 한 순간이었다.
오늘 하루의 시간이 너무나도 덧없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생했는데.. 결과가 이거라니.. 괜시리 억울한 이유는 뭘까?
지금 난 쿨하게 돌아서야 하는 걸까?아니면 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오늘 고생했던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요구해야 하는 것일까...
젠장.. 오늘 난 뭘 한 거지?
뭘 기대하고 걱정하며.. 이런 개지랄을 떤거지?
대체 누구에게 실망해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현관이 열리며 잔잔한 미소를 짓는 미야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미야...”
“뭐해 들어오지 않고...”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 원래 눈물 같은 거 잘 흘리지 않는데..
“문을 열어 준거야?저 녀석 때문에 오늘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미야는 알아.. 항아리를 찾아 준건 분명 화랑 오빠 일거야”
“말도 안돼!항아리는 이름 모를 착한 사람이 찾아 준 거라고!저 녀석이 자기가 찾아 주고서 생색을 내지 않을 리 없잖아!?더욱이 어떻게 찾아내?”
미야는 고개를 살며시 저으며 말했다.
“그건 미야도 몰라..하지만 오빠가 이렇게 울고 있잖아.. 그래서 알 수 있어,우릴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애썼는지...”
엘리샤는 미야의 공상 같은 이야기 따위 듣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사법 경비대와 집행관이 왔다 간 사실이고 이는 자신이 해결사를 한 것에 대한 죄 값을 추궁할 수도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화랑 내 말 잘들어.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깐 재워주겠어!하지만 내일이 되면 옷 챙겨서 도시를 떠나던지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말았으면 좋겠어”
“언니!”
“미야 넌 좀 빠져!”
난 고개를 끄덕였고 조용히 계단을 이용해 2층 내 방으로 향했다.
적어도 내 노력을... 내가 한 일을 미야가 알아줬으면 그걸로 됐다.
아론이 경비병을 이끌고 나타났으니 엘리샤가 겁먹을 만하다..
저 녀석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목을 멜 일도...
도둑 맞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눈물 흘리며 아파 할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일 날이 밝으면 엘리샤와 미야가 일어나기 전에 이곳을 떠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