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유성의 7일 2부 3화 보라시티(1)
“어떻게 된 거죠......?”
“그, 그러게요......?”
기억 속의 보라시티는 이렇지 않았다. 분명 풀과 꽃이 아름다운, 아니, 풀이랑 꽃밖에 없는 도시였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으면 이런 문명감 넘치는 도시가 되어버리는 걸까.
보라시티는 가운데가 비어 있는 사각형으로 솟아 있는 모양이었다. 훤히 내려다 보이는 1층에 용도를 알 수 없는 탑이 보였다.
“아, 아무튼! 이쪽 세계에서 확실하게 다른 점은 찾았네요! 일단 내려서 조금 둘러볼까요?”
아직도 다른 점을 찾고 있었나. 하지만 이 정도 차이면 오히려 무언가 단서가 될 지도 모르겠다.
“내린다면....... 아! 저기 옥상에 공원이 있네요. 저기 즈음에 내릴까요.”
옥상의 공원은 가운데가 뚫린 사각형 모양인데, 각 모서리에 커다란 철탑이 놓여 있었다.
이런 걸 중정형 구조라 하던가. 그래도 옥상은 제법 넓어 다행히 우리가 내릴 자리는 충분했다.
“내리고 보니 더 대단한 도시인데요? 와! 아래가 훤히 보여요, 관장님!”
“위험해요, 치아나씨! 떨어지기라도 하면......!”
“제가 무슨 애에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거 알잖아요.”
단호한 말에 치아나는 숙연해졌다.
“아....... 죄송해요.”
치아나는 주춤하며, 난간에서 멀어졌다.
“그 말이 맞습니다. 위험하니 난간에 기대지 말아 주시길.”
갑자기 들린 온화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위쪽입니다.”
소리는 위에서 들렸다. 아니, 위에는 철탑밖에 없는-
슈욱- 탓.
“이젠 앞쪽이네요.”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기다란 보랏빛 머리에 웬 깃털이 달린 항공모자를 쓰고 있었다. 깃털장식은 모자 뿐 아니라, 소매랑 다리에도 달려 있었다.
이런 괴상한 패션센스에 말도 안 되는 등장, 거기다 이런 말투를 쓰는 사람이라면 호연에, 아니 이 세계에 한 사람 뿐일 것이다.
“으, 은송씨.......”
이 사람은 아무래도 서툴다.
“후후, 둘이서 공중날기로 날아오는 것 다음에는 난간에 매달리기 인가요. 스릴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솔직히 대담하시네요.”
“아니, 저, 그게.”
은송은 누가 봐도, 점잖고 예의바른 사람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막상 마주보고 대화하면 왠지 모르게 피곤해지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해는 됩니다. 하늘을 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요. 안 그런가요?”
“아, 그렇죠. 네.”
서로 대화의 핀트가 맞지 않는다고나 할까.
솔직히 은송의 핀트에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이 호연에선 윤진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죄, 죄송해요. 은송씨. 급한 일이 있어.......”
이런, 잠시 여기가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니라는 걸 잊었다. 너무나 자연스레 말을 걸어와서 순간 착각했다. 괜히 대화를 했다가 불필요한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 실수했나.
“그러신가요. 그렇다면 괜찮겠지요. 트로피우스는 둘이 타기에도 좋을 정도로 커다랗기도 하고,
레인님이라면 공중날기 자격증인 깃털뱃지도 제대로 가지고 있으니까요. 후후.”
은송은 옅은 미소를 보였다. 이렇게 보면 확실히 미인이다. 미모만큼이나 배틀 실력도 뛰어난 사람이기도....... 어라?
“제가 이겼다고요? 은송씨를?”
질문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어머, 기억하지 못하시는 건가요?”
은송은 천천히 걸어오더니 내 옆에 앉은 트로피우스를 쓰다듬었다.
“훌륭한 승부였습니다. 젖은 접시 특성의 로파파라니. 열탕으로 화상을 입히고 비바라기와 방어로 버티다, 냉동빔으로 마무리. 정말이지 허를 찌르는 전략이었지요. 제 자랑인 무장조와 파비코리도 당해낼 수 없었던 일, 저 기억하고 있답니다?”
트로~?
트로피우스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아할 만하다. 그야 나는 은송을 이긴 적이 없으니까.
“후후, 트로피우스는 여전히 듬직하네요. 비행 타입 기술에는 약하지만요."
그렇게 안 들리지만, 이 사람은 정말로 그 승부를, 물론 나는 모르지만, 훌륭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은송은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이다. 그 솔직함 때문에 오히려 무서운 거지만.
비행타입에 풀타입이 약하다는 것도 실제로 그러니까 말한 것뿐이다.
“이 트로피우스는 파비코리의 제비반환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후훗.”
아마도.
“언제 한 번 다시 겨뤄보고 싶네요.”
“아, 네. 그래도 지금은 조금 일이 있어서요.”
“어머, 그러시군요. 아쉽네요.”
적당히 얼버무리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쪽 세계의 나는 대체 어떻게 은송을 이긴 거지?
‘열탕’ 이라니 들어본 적 없는 기술이다. 이 세계에는 우리가 있던 세계에는 없는 기술이 있는 건가.
또 젖은 접시? 내 로파파의 특성은 분명 쓱쓱인데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갑자기 두 세계의 차이점이 쏟아져 나오니, 솔직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뒤에 계신 분은 누구신지요?”
“아, 그게 저기, 저는 치아나라고 해, 해요.”
치아나는 말까지 더듬으며 겨우 대답했다. 피아나에겐 그렇게 언니 행세를 하더니, 이런 타입에겐 약한 건가. 하긴 은송 앞에서 당당해 지는 게 이상하긴 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치아나님. 검방울시티의 관장을 맡고 있는 은송이라고 합니다.”
기품있게 자기소개를 마친 은송은 한 마디 덧붙였다.
“난간에 매달리면 위험하답니다.”
“아, 죄, 죄송합니다.......”
왠지 접시를 깨뜨려버린 아이가 혼나는 장면 같다.
“괜찮습니다. 다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죠.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아까까지 첨탑 위에 올라가 있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이 사람이 말하면 왠지 대꾸할 수가 없다.
“레인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 저요?”
갑작스런 지목에 당황해버렸다.
“포켓몬에 두 명 이상이 타서 하늘을 타는 것은 불법입니다.”
은송은 가슴에 손을 얹고 계속 말해나갔다.
“저는 관장으로서 다른 트레이너 분들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에 눈감아 드리는 것은 아니되지요.
하지만, 다른 분도 아닌 레인님께서도 그러셨다면. 정말로 급한 용무가 있으셨나보군요.”
이쪽 세계에서의 나에 대한 신뢰감이 제법 높은 것 같다. 다행히도.
“그래도 규칙은 규칙, 관장으로서 레인님께 주의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시겠죠?”
“아, 그, 그렇지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시간은 벌써 초저녁이 다 되어갔다. 옥상에 부는 바람이 쌀쌀해졌다.
“이런, 벌써 이런 시간이. 저는 이만 검방울시티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조, 조심히 돌아가세요.”
“두 분도 안녕히 계시길. 파비코리, 나오렴.”
비~!
그 말을 끝으로 은송은 파비코리를 꺼내 훨훨, 그야말로 훨훨이라는 표현밖에 쓰지 못하는 모습으로 저 멀리 날아갔다.
“......뭔가 굉장한 분이셨네요.”
치아나는 두 팔을 감싸 앉고 바르르 떨었다. 추워서 떤 것인지 은송을 만나서 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은송님이라....... 이러면 공중날기는 쓰기 곤란해졌네요. 괜히 날았다가 그 분께 들키면 꾸지람만 들을 것 같아요. 으으.”
“그래도 하나는 확실해 졌네요.”
“뭔데요?”
“제가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아니라는 거요.”
만약 그렇다면 은송과 대화하기는커녕 바로 잡혀갔을 것이다.
“이제와서 보면 아까 우릴 습격한 사람들이야말로 악의 조직 같던데.
그런 사람들에게 쫒긴 걸 보면, 이 세계의 저는 사실 정의의 영웅이었던 건 아닐까요.”
“오히려, 또 다른 범죄조직의 간부! 였을 수도 있잖아요.”
농담삼아 한 말이었지만.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게 무섭네요.”
관장이었던 내가 평행세계에선 범죄조직 간부?!
대체 무슨 설정이냐.
“정말 그렇다면 달라도 너무 다른데요.”
그러다, 치아나는 무언가 번뜩인 듯 고개를 살짝 들었다.
“아, 다르다고 하면! 이 보라시티만큼 다른 게 없잖아요! 여기서 뭔가 이 세계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몰라요.
한 번 둘러나 볼까요?”
“확실히. 이런 건 정말 상상도 못했네요.”
난간에 기대 내려다 본 보라시티는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이렇게 보니 1층은 상가, 2층은 맨션, 그리고 3층인 옥상은 이 정원인 것 같았다.
“설마 그 조용한 보라시티가 이런 3층짜리 주상복합시설이 될.......”
3층짜리 주상복합시설? 똑같은 말이 내 입에서 나온 적이 있었다.
뉴보라 프로젝트.
보라시티를 3층 주상복합시설로 만들 계획이었던 프로젝트.
“왜, 왜 그러세요?”
만약 뉴보라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면, 그 결과가 이 도시라면, 설마.
“암페어씨.”
“네?”
“암페어씨가 말했었거든요. 보라시티 전체를 개조하는 게 꿈이었다고.”
“아! 그러면!”
이 차이점의 중심에 있는 사람.
“이 세계의 암페어씨를 만나봐야겠어요.”
p.s.
1) 검방울시티의 관장, 은송을 이기면 필드에서도 공중날기를 쓸 수 있게 됩니다.
2) ORAS에서는 본편 클리어 후, 보라시티 옥상의 철탑 위에 서 있는 은송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열탕: 물 타입, 위력 80 상대의 얼음상태를 치료하거나, 화상 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5세대부터 등장한 기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