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다. 떨어진다. 다친다. 그녀가 운다.’
그것은 오래 전의 기억. 어쩌면 평생을 후회하고. 또 어쩌면 자랑스럽게 여겨할지도 모르는 추억. 그건, 다 무너져가는 집에 살 적의 이야기. 부모님은 사고로 죽고, 나와 누나만이 살아남은 사건으로부터 반년. 노란 머리에 반짝이는 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꼬마 아가씨와 만난 지 또다시 반년이 지났던 쯔음.
그날은 무척이나 날이 좋았다. 해가 느릿느릿 지고 있던 하늘의 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날. 풀밭에서 나는 풀내음과 도시의 음식 냄새가 불우했던 지난날을 위안해주던 날. 그리고 우리 꼬마 아가씨의 장래희망이 탐험가였던 날이었다. 물론 그 꿈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의 누더기와는 너무나도 비교될 정도의 행색이었다. 그녀의 몸에 알맞게 만들어진 보라색의 드레스가 바람에 하늘거렸고, 광을 힘껏 낸 붉은색의 구두는 노을빛을 받아 더 붉게 빛나며 또각였다. 그런 그녀가 나의 더러운 손을 잡고는 탐험을 나서자고 했다.
나에게 있어서도, 그 아이에게 있어서도, 유일한 친구와 놀고 싶은 마음은 그런 두 아이의 모험심을 간지럽히기에는 충분했다. 우리는 마을 가로질러 달렸다. 소리 내어 웃었다.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그 아이의 미소가, 같이 놀던 시간이. 나를 괴롭히던 어두운 악몽을 조금씩 또 조금씩 없애갔다. 그런 즐거운 생각을 가지며 그 아이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 도착해버렸다.
마치 이빨 달린 짐승이 휘파람이라도 후 불면 당장 무너질 것 같이 생긴 저택. 마을 사람들에게서도, 꼬마 아이들에게서도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도는 흉가이자, 보수 공사를 위한 몇 차례의 시도도, 철거를 위한 또 몇 번의 시도도 모두 실패한 과거를 가진 공포의 대상. 결국 주인에게도 버려지고, 모든 이들의 두려움 속에 홀로 남아, 조용히 자연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던 교외의 폐가였다.
그 당시 마치 자신들을 괴물을 물리치는 용사라도 된 것처럼 생각했던 두 명의 꼬마 아이들은, 그저 당당히 문을 열고는 괴물의 입속으로 조심히 걸어 나갔다. 흩날리는 먼지와 여기저기를 하얗게 가린 거미줄을 넘어 우리는 무너져가는 창으로 들어오는 노을빛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나아갔다. 얼마가 지났을까. 꼬마 아가씨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불렀다.
무언가를 보았다며 거미줄이 한가득 처져있던 건설용 비계 위를 가리켰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앞장서 걸었다. 삐걱이는 사다리를 올라 비계 위로 올라갔다. 거기서 내가 본건 그냥 폐가에 들어선 들짐승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잡아먹으려고 했던 괴물? 그것도 아니면 날 놀라게 해 주려던 꼬마 귀신은 아니었을까? 그게 뭐가 중요하겠냐. 그다음 있을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원래는 나 혼자만 올라갈 생각이었다. 근데 그 아이가 나를 뒤따라 올라왔다. 꽤나 긴 사다리를 그 아이는 열심히 올라왔던 듯했다. 호기심과 열정은 인정해 줘야 하는데 말이다. 비극적 이게도 그다음 두 사람이 올라섰던 비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틀비틀 흔들리는 몸을 다잡으면서, 나는 그 아이에게 내려가라고 소리 질렀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늦었었다.
비계가 넘어져갔다. 다 무너져가던 기둥이 넘어져갔다. 어린 나와 가녀린 그 아이도 넘어져갔다. 모든 것이 기울어져 보였다. 흩날리는 파편과 먼지, 그리고 보라색 드레스 자락.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아이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런 사고는 이미 정지되어 그저 한 가지 만을 생각했다. 아니 그냥 몸이 반응했다. 어쩌면 부모님의 사고를 남은 무언가 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지금에 와서도 잘 모르겠다.
그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끌어당겼다. 품에 안았다. 그리고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그 뒤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몸안에 무언가가 부서진 듯 아팠다. 간혈적으로 보이는 시야에는 울고 있는 그 아이와 처음 보는 사람들. 그리고 모습이 바뀌어가는 낯선 장소들뿐이었다. 머리가 멍했다. 귀가 울렸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이 확실했다. 그리고 나는 진료소의 하얀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왼팔에서는 누나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었다. 얼마를 울었는지. 붉은 눈시울이 퉁퉁 부은 게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내 왼손을 꽉 쥐고 의자에 앉아 침대에 얼굴을 기대고는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나는 멍한 머리로 주위를 둘러보며 조심히 오른팔을 들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씨!! 제...이 씨!! 제이 씨!!”
로봇은 누군가를 향해 소리쳤다. 흠뻑 젖은 금속의 몸이 빛을 받아 반짝였고, 물방울이 그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로봇이 계속해서 소리치는 소리가 허공에 한가득 울려 퍼졌다. 그러면서 자신 밑에 자리한 남자를 흔들어 깨웠다. 계속해서 말이다.
그제야 흔들리던 남자는 조금씩 정신을 차려나갔다. 조금 전까지 그를 지나가던 차가운 바람은 멎었지만, 강물로 흠뻑 젖은 그의 온몸과 옷가지는 그를 더욱 차갑게 만들어갔다. 그가 뜬 두 눈에 처음 비친 것은 자신을 흔들고 있던 로봇, 그리고 그보다 저 멀리 높아 보이는 빛나는 천장이었다.
“... 손님이네… 우리 살아있는 거지…?”
“... 예. 모두 멀쩡하게 살아있습니다.”
“모두? 맞다. 로제는…?”
“... 여기 있어. 바보야…”
제이의 머리 위로 초록색의 드레스의 끝자락이 보였다. 곧 울먹이는 눈으로 남자를 내려다보는 한 여자가 서있었다. 자신의 표정을 숨기지도, 애써 표현하지도 않았다. 남자는 그저 씨익 웃었다. 그녀가 아무 탈 없이 자신을 바보라고 부른 것에 하늘에 감사했다. 그리고는 조심히 몸을 움츠렸다.
“머리가… 띵하네… 몸도… 으슬으슬 춥고...”
제이는 왼손으로 머리를 잡으며 조금씩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젖은 자신의 몸을 가볍게 껴안았다. 물에 젖은 셔츠가 살에 달라붙었다. 그의 오른팔은 젖은 옷가지와는 별개의 차가움을 몸에 퍼뜨렸다. 남자의 그 모습을 본 로봇은 조심히 일어나 다른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두 분 다. 잠시만 앉아 계시죠. 제가 불을 지필만한 땔감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제가…”
“로젤리아 씨는 여기서 제이 씨를 돌봐주시죠. 잠시면 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 예, 알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시죠.”
로봇은 조용히 뒤돌아 물줄기를 따라 밑으로 뛰어나갔다. 제이가 정신을 차렸던 그 자리에는 서로를 걱정하던 두 남녀만이 남았다. 제이는 그저 자리에 앉아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등에 로젤리아는 자신의 등을 붙여 앉았다. 모래 투성이인 두 사람의 등은 서로 맞붙어 조금의 따뜻함을 나누어갔다.
“... 우리, 살아있네.”
“그러게. 카일 씨가 구해주셨어. 너도, 나도 말이야.”
“그렇네. 나중에 손님한테 맛난 거 많이 담아서 보내야겠네. 손님한테 도움만 받고 말이야. 우리들...”
“... 기절하고 있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더라, 애타게 말이야. 악몽이라도 껐어?”
“... 말 안 할래. 그게 좋아. 나도, 너도 말이야.”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의 옆에서 흐르는 녹색 강줄기의 물소리만이 조용히 들려왔다. 처음 보는 장소에서 두 사람은 조용히 서로를 등지고 있었다. 분명 주위의 풍경은 멋졌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하늘이 아닌, 드믐드믐 빛나는 천장이 있었고, 옆으로 저 멀리에는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벽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제이가 떨어지며 보았던 처음 보는 형태의 건물 천장이 보였다.
분명,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그 경치를 즐기고, 또 엄청난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곳의 풍경은 그 정도로 매력적이고, 아름다웠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한 번의 생사를 넘는 경험을 한 그들에게 있어. 지금은 그저 조금의 휴식이 필요했다. 관광은 그 한참 후의 문제였다.
제이는 자신이 만들어낸 어두웠던 정적을 깨려 했다. 로젤리아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로봇이 올 때까지 둘 사이의 대화는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는 그녀를 향해 농담조로 먼저 다가갔다.
“아, 정말. 어떻게 왔는지 안 물어보네? 안 궁금해?”
“... 어떻게 왔는데…?”
“손님의 요술로. 사무소에 있었는데. 조금을 달리니깐 떨어지고 있더라. 거기에 네가 위험에 빠졌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정말 대단해. 무슨 옛날 동화도 아니고 말이야.”
“푸흡. 그게 뭐야. 농담하는 거지?”
로젤리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제이는 그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마음속에 그렸다. 그걸로 그는 조금의 안도감을 가졌다. 그녀의 체온으로 조금의 몸을 데운 제이는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그가 조금 전까지 위에서 바라보았던 광경을 밑에서 보았다. 반짝이는 하늘. 아니, 하늘이 아닌 천장. 그렇다. 마치, 별이 빛나는 밤 같은 반짝임이었다.
“... 이제 내 차례네. 그래, 내 방독면 가지고 공업지대로 향했을 네가 말이야. 왜 떨어지고 있었는지 물어봐야겠네? 확인할 게 뭐길래. 그런 일을 겪고 있었던 걸까? 양아치들을 피해 폭포 밑으로 떨어지기라도 한 거야?”
“아니, 그게… 사실으은...”
“아, 참고로 내가 말한 손님의 요술은 진짜야. 그러니까 거짓말하면 안 된다. 아니면 방금까지의 일 전부 다 사장님한테 말씀드릴 거야. 그러면 젤롯 아주머니도 가만히 안 있겠지?”
로젤리아는 잠시 머뭇거리며 양손의 검지를 맞댔다. 제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그 볼과 귓등이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을 예상했다. 분명 이번에도 별 시답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띄엄띄엄 끊어지며, 그녀는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제이는 그저 조용히 로젤리아의 말을 기다렸다.
“... 그게, 그러니까 말이야. 공업지대에 안 좋은 소문이 돌아서 말이야… 그, 확인해보려고 왔는데 말이야…”
“설마, 그 공장 노동자들을 출입 금지시킨 곳에 괴물이 돌아다닌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소문?”
“그래, 그거! 그래서 말이야. 오랜만에 집을 나온 김에 여기저기 돌아다녀봤지! 몇 개월 사이에도 거리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더라고!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말이야!! 맞다, 공원 옆에 간식 가게가 새로 생겼더라!!”
“그래, 그거 좋지. 세상이 계속해서 바뀌어 간다는 거지. 그래서? 왜 떨어지고 계셨는데?”
“읔. 역시 안 통하네… 앤 언니는 이러면 잘 통하던데.”
“당연하지. 네가 그걸 누구한테 보고 배웠겠어? 널 쉬쉬거리는 회사 사람들이나, 딱딱한 오르베도 형? 그것도 아니면 루베리아 아저씨?”
“아마도, 너...?”
“이야, 그건 잘 아네. 그럼 이제 제대로 말해. 어째서, 떨어지고 있었는지를. 그리고 왜 네 두 손에 내 방독면이 든 상자가 없는지도 말이야. 그거, 사장님한테 선물 받은 건 네가 제일 잘 알 테니까 말이야. 그걸 잃어버렸다고 말하면 말이야. 나, 오르베도 형한테 박살 난다고.”
로젤리아는 한번 더 조용히 꼼지락거렸다. 제이는 팔짱을 낀 채, 또 한 번 조용히 기다렸다. 그녀가 평소에 받아올 압박감을 생각하며, 그녀가 먼저 말하기를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 그리고 기대감. 도시를 주무르는 거대한 회사 사장의 친딸이자, 어쩌면 그 뒤를 이을 후계자라는 직책을 통해 받아왔을 무게를 말이다. 재촉은 그녀에게 있어서도, 자신에게 있어서도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었다.
“... 웃으면 안 된다. 진짜로 말이야.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예예, 됐고 빨리 말씀이나 하세요. 이러다 손님이 땔감을 통나무째로 들고 오겠다.”
“... 미끄러졌어. 계단에서 말이야… 일어서려다가 발을 헛디뎌서 쓸어졌는데, 울타리가 무너져서 밑으로 떨어졌어...”
“어…!? 미끄러졌다고? 잠시만, 그러니깐 우리가 공업지대 밑에 있다는 말이야!?”
“그, 그렇지! 결론적으로는 말이야!”
제이는 로젤리아의 말에 놀라 뒤돌아봤다. 그녀 또한 그의 높아진 언성에 놀라 그를 향해 뒤돌아봤다. 로젤리아의 발언은 제이는 두 눈이 크게 뜨일 만큼 놀라게 했다. 정작 그에 비해 상황을 설명했던 로젤리아는 그들이 처한 심각성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지금 그녀에게 있어 중요한 사항은 자신의 실수를 감추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를 제이는 정신이 나간 듯 바라봤다. 이미 방독면의 존재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도 죽을 뻔했다니까 말이야! 설마 철제 울타리가 ‘팅’하고 끊어질 줄은 말이야. 하하...”
“... 로제… 잘 들어. 너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여기 말이야.”
“글쎄, 공업지대 지하의 생산시설쯤…?”
“... 하아, 사장님한테 항의해야겠어. 애를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니깐 정도라는 걸 벗어나는구나…”
“치잇, 뭔데. 공업지대 밑에 있으니깐 관련시설이겠지. 그럼 밑에 왜 이런게 있겠어?”
볼에 힘껏 힘을 준 로젤리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제이를 향해 항의했다. 당장이라도 평범의 범주에 대해 몇시간이라도 설명할 수 있을거라고 제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참았다. 뒤로 조금 밀었다. 이 곳을 탈출하고나서 일상으로 돌아가면 누나와 함께 그녀를 붙잡고 설명하기로 제이는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 내가 널 만난 지 한참은 됐지만… 정말 대단하다…”
“뭔데, 계속 바보 취급하지만 말고 설명을 해줘. 말을 해줘야 알지!”
“... 로제, 잘 들어. 지금 이 세상 어디에도 말이야. 이 정도 규모의 지하시설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을 거야. 그 소문난 옆 도시에도, 너희 아버지인 루베리아 아저씨 회사에도 말이야. 뭐, 손님처럼 다른 세계의 존재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면...”
“... 설마, 그 말은…”
“그래, 우리는 지금 전설을 만나고 있다는 거지. 도시의 탄생과 관련된, 어쩌면 엄청나고도 대단한 발견을 말이야. 잘하면, 역사책에 길이길이 쓰일 정도로 말이야.”
로젤리아는 그제야 상황의 정도를 깨달았다. 자신들이 위치한 곳이 어쩌면 사라져 버린 전설의 잔재일지도, 그리고 또 자신들이 두 발로 걸어 다녔던 도시의 밑바닥, 그 밑에 숨겨진 또 하나의 비밀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제이의 설명은 그녀의 호기심에 불을 질렀다. 그녀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두 눈은 빛났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제이는 순간 자신의 행동이 실수라는 걸 깨달았다.
“... 좋아! 그럼 탐색하자!! 이 정도 발견이면 아버님도 날 인정해주실지도 몰라!!”
“하아, 편해서 좋겠다. 나는 앞길이 막막한데 말이야.”
“멀쩡하게 탈출하면 모두의 인정을 한 번에 받을 거 아니야!! 시민들이 치켜세워주고, 모든 학자들이 날 우러러봐주겠지!? 카일 씨가 돌아오시면 바로 출발하자!!”
“... 날 다루는 누나의 마음이 이런 건가… 앞으로 더 잘해야겠는데…”
“아, 마침 카일 씨도 저기 오시네! 카일 씨!! 저희가 떨어진 여기 있잖아요!! 사실은 말이죠…”
숙녀였던 로젤리아는 마치 한 명의 어린 소녀가 되어 장작을 한가득 들고 오는 로봇을 향해 소리치며 일어나 달려갔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로봇은 잠시 놀랐지만, 얼마 안 가 그녀의 그 모습 또한 받아들였다.
로봇은 방방 뛰어다니는 로젤리아를 안정시키고, 가지고 온 땔감을 이용해 작은 모닥불을 만들었다. 제이와 로젤리아가 정리한 지금의 상황을 전달받고, 로봇이 알아온 정보를 공유했다. 제네를 통해 상공을 돌아본 결과, 이렇다 할 출구가 없다는 것과 또 다른 무언가의 방해로 문을 열 수 없다는 상황을 말이다.
“... 이상입니다. 저기 보이시는 도시를 둘러싼 벽과 안쪽을 제외하고는 조금의 땅이 있고, 그 땅을 지하수… 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저 녹색의 강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출입구라고 부를만한 곳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말입니다.”
“거기에, 여기 올 때 썼던 요술 같은 것도 사용 못한다고…? 이거 큰일인데. 여길 어떻게 벗어나지… 떨어졌던 절벽을 다시 기어올라갈 수도 없고 말이야.”
“행운인지, 불행인지... 생명체의 기운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적대적인 생명체라고 부를만한 것들이 없지만, 도움을 받기는 힘들 것 같군요. 두 분 말씀대로 이곳이 고대인의 유적지라면, 사람들이 대지 위로 벗어나는 데 사용했을 출입구가 어딘가에 남아있지는 않을까요…”
로봇의 말에 제이는 머리를 싸매어 끙끙 알았다. 처음 보는 장소, 처음 하는 경험. 다시 지상의 공기를 마실수는 있을까. 제이는 혼란스러워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몸이 움직였겠지만, 지금은 몸이 앞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로젤리아가 살며시 말을 걸었다.
“... 저, 제이…”
“응, 듣고 있어. 말해.”
“... 있잖아. 옛날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서 도시를 지었다고 생각하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을까?”
“...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니?”
로젤리아는 조용히 로봇과 제이를 사이를 지나 한쪽 팔을 펼쳤다. 로봇과 제이는 그런 그녀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것은 ‘기둥’이었다. 제이는 그제야 그녀의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
지금 자신들이 있는 땅과 도시의 위를 연결하고 있는 것은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벽뿐만이 아닌, 바로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기둥 또한 그렇다는 것을 말이다. 멍한 머리로 놓치고 있던 부분을 로젤리아가 잡아낸 것이다.
“그렇네! 사람들이 바보라서 절벽을 타고 다니지는 않았을 거고, 분명 밑에서 구하지 못하는 자재를 위해선 지하를 벗어나야 하기도 했어야 할 거야. 저 기둥의 위에 무언가 통로가 있다는 게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봐야겠는걸.”
“... 그럼 행선지는 정해진 거 같군요. 별다른 방도도 없고, 지금으로서는 저 기둥을 향하는 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로젤리아 씨가 한 건 해내셨군요.”
“에헤헤. 나 잘했잖아? 날 칭찬하라고! 내가 답을 찾아낸 거잖아!!”
“그래, 아이고 잘했다. 우리 아가씨. 장하다 장해.”
어깨를 으쓱거리는 로젤리아의 행동에 제이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전과는 너무 다른 두 사람의 반응에 로봇은 조금 어정쩡했다. 두 사람이 원래 이런 것일까. 아니면 떨어지면서 머리를 다친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보스, 저 두 사람 누구랑 닮았게에~? 보금자리에서 자주 보이던 모습인데 말이야~”
“... 설마, 나랑 나비야…?”
“짝짝. 축하드립니다. 고객님께서는 정답을 맞히셨습니다. 상으로 저 둘의 애정행각을 담은 영상이 누나에게 전달됩니다.”
“... 하아, 나비 앞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말아 줘.”
타닥이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잠시간 그들은 차가운 몸을 녹였다. 그리고 얼마 후 제이가 일어나 가볍게 한 두 번 뛰었다. 거의 완벽하게 몸상태가 돌아온 것을 확인한 제이가 다른 이들에게 출발을 제안했다.
로젤리아는 승낙했다. 아직 덜 마른 옷보다는 지금의 발견을 밖에 알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로봇 또한 반대의견 없이 수긍했다. 로봇과 로젤리아가 땅을 짚고 일어섰다. 로젤리아는 모래가 뭍은 드레스를 손으로 가볍게 털었고, 로봇은 모닥불이 완전하게 꺼졌는지 확인했다.
제이는 그사이 조금 옆에 놓여있던 물이 뚝뚝 흐르는 자신의 가방을 들었다. 그 가방 또한 로봇이 제이를 물속에서 건져 올리며 같이 가져온 것이라고 로젤리아에게 전해받았다. 제이는 가방의 내구성을 칭찬하며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놓친 것이 없나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기둥을 향하여, 허름한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벽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들이 가까이 접근해 올려다본 벽은 그들의 생각보다도 무척이나 거대했다. 하얀 벽돌을 하나씩 쌓은 것이 아닌, 마치 하나의 돌을 깎아 놓은 것만큼이나 매끈했고, 틈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도시를 지키기 위한 거대한 성벽 같았다. 정면으로 보이는 입구로 들어서자, 그들은 한번 더 놀라워했다.
벽 너머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초록색의 풀들이 건물의 벽에 자라났고, 건물들은 드믐드믐 무너져내려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의 크기는 무척이나 크고, 높았다. 그리고 외형은 투박했지만, 숫자는 엄청났다.
로젤리아와 제이는 그런 높이의 건물을 본 적이 없었다. 자신들의 도시에 지어진 시계탑 보다도 높은 건물이 계속해서 보였다. 로봇 또한 보금자리의 탑 보다 높은 건물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에게도 여신의 축복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한낱 일반인의 범주로 이만큼이나 높은 건물을 쌓아 올린 것인가. 그렇다면 그런 그들은 어째서 이 곳을 버리고 지상으로 도망친 것인가.
그들의 의문에 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당장이라도 위를 향하는 것이었고, 훗날 도시에서 조사단을 보내어 차근차근 알아가면 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도시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건물들이 천장의 빛을 받아 외벽은 하얗게, 벽에 자란 풀들은 파랗게 빛났다.
그들이 도시의 안으로 몇 걸음 떼지 못했을 시점, 도시 안의 무언가가 그들의 방문을 감지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 사람에게서 조금 떨어진 하얀 타일 밑에서 금속이 하나 조용히 올라왔다.
그건, 또 다른 로봇이었다. 제이 일행과 함께 있는 푸른색의 로봇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 네모난 몸에 얇은 팔다리가 붙어있었다. 변색된 것인지, 아닌 원래 그런 것인지. 그것은 연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그것의 머리라고 부를만한 것에 달린 검은 눈이 움직였다.
그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세 사람을 바라봤다. 관찰하듯 천천히 아무 말도, 아무 미동도 없이 말이다. 그저 조용히 그것도, 그들도 서로를 쳐다봤다. 도시의 성벽만큼 투박했지만, 그것은 매끄러웠다. 푸른 로봇과는 비교됐지만, 그 존재는 흥미로웠다.
“... 제이 씨. 혹시나 도시 위에서도 저런 거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 나도 처음 봐. 옛날 사람들이 남겨놓고 간 거 같은데. 우릴 공격하지는 않겠지…?”
“아니면, 혹시라도 탈출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일단은 기다려보죠. 제가 여러 세계를 돌아다니며 배운 게 있다면, 보통 저런 로봇은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개체더군요. 큰 움직임은 줄여주시죠. 분명, 위협으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
“... 로봇이라고? 손님처럼? 움직이는 기계인형이란 말이지... 조상님들은 저런 기술을 위에 안 남겨 놓고 뭐했대.”
“쉿.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그 로봇은 하체에 결합된 두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세 사람의 앞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멈춰섰다. 침묵이 흘렀다. 그것이 갑자기 달려들지는 않을까, 그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렸다.
“... 민간인 2명. 등록되지 않은 기체 1체. 감지. 질문. 도시의 방문 목적.”
“... 다행히 말은 통하는군요. 저희는 여행객입니다. 실수로 길을 잘못들어 길을 잃어버렸는데, 지상으로 가는 방법을 질문드려도 될까요?”
푸른 로봇의 대답에 네모난 로봇은 잠시 침묵했다. 분명 질문은 그 세계의 언어였다. 다른 두 명 또한 그 질문을 이해했고, 그 네모난 로봇 또한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 로봇의 침묵이 부정의 의미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세 사람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때였다. 네모난 로봇이 대답을 시작했다.
“... 후방의 민간인들에게 질문. 미등록 기체의 의한 대답. 일행의 의견 대변?”
“어어, 그렇습니다. 저희 두 사람의 의견과 같답니다!!”
“승인. 민간인 여성. 일행의 대표자?”
“예? 아, 그렇습니다. 제가 대표자랍니다.”
“승인. 저장소 접속. 검색. 잠시간 대기 권장.”
또 한 번의 말을 마치고는 네모난 로봇은 조용히 침묵했다. 세 사람은 그제야 지금의 상황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 저를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군요. 과연.”
“그러게. 근데 로제, 네가 대표라니 순식간에 저질러 버렸네. 난 너같이 어리바리한 아가씨를 주인으로 모신적이 없는데 말이야.”
“어, 어때서! 잘 해결됐음 됐지!!”
“그렇긴 합니다. 일단은 탈출이 목적이지 않습니까. 확실한 정보를 위해 이 로봇을 기다려 볼까요. 잘하면 더 빠른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하아, 그래. 일단 탈출하고 보자. 로제.”
“... 발견. 외부 출입에 관한 정보 1건.”
“말씀해주시죠!! 저희는 그 정보가 필요하답니다.”
로봇의 대답에 로젤리아는 자신의 앞에 서있던 제이와 푸른 로봇을 지나, 붉은색의 로봇에 앞에 멈춰 섰다. 흥분을 감추지 못 한 반짝이는 그녀의 두 눈은 그것의 대답을 기다렸다. 처음 보는 존재와의 만남, 그리고 모험. 어쩌면 그것은 그녀가 오랫동안 바라 왔던 경험이자 마음속에 그려왔던 바램이었다.
“승인. 현재 유일한 출입구. 탑 상층부에 위치한 출입구.”
“탑…? 저 기둥을 말하는 것일까요? 저, 탑이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도시의 중앙. 지붕과 연결됨. 본 기체의 후방에 위치한 천장과 연결된 건물.”
“과연. 이 곳 사람들 입장에서는 저게 탑인 거군요. 지붕이란 건, 지상의 대지를 뜻하는 걸 거고, 그래도 기둥에 대한 저의 예상은 적중했답니다!!.”
로젤리아는 로봇과 혼자 대화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킨 것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제이는 자신의 두 눈을 가렸다. 속에서 흘러나오는 한탄을 조용히 거슬러 담았다. 그리고 조용히 내면과 싸웠다.
“권고. 본 기체. 길 안내 담당. 탑까지의 안내 가능.”
“아, 길잡이까지!! 완벽하군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상님들도 기술력이 정말 대단한걸요. 이 많은 걸 위에 발표하면, 분명 엄청난 명성을 얻을 거에요!!”
“승인. 안내 시작.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 요구.”
말을 마친 로봇은 조용히 뒤돌아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로젤리아는 혼자 신나 하며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는 제이가, 그 뒤를 푸른 로봇이 따라갔다. 그 사이 로젤리아는 콧노래마저 흥얼거리고 있었다.
“... 아, 그 잠시 사이에 로젤리아 양이 나서서 모든 얘기를 끝마쳐버리셨군요.”
“그러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격식만 열심히 차리고는 벌벌 떨면서, 이런 데서는 실력이 좋아.”
“흠흠~ 정말, 일이 잘 해결되면 나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맞다!”
로젤리아는 앞서 걸어가던 로봇에게 더욱 다가가 말을 붙였다. 마치,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가 어른에게 말을 걸듯, 자신의 마을 지나는 영웅에게 질문하듯 말이다. 단지 질문의 대상인 로봇은 덤덤히 앞을 보며 걸어갈 뿐이었다.
“저, 당신을 저희가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이름이 무엇인가요?”
“이름. 부정. 기체 번호. 긍정. 02번. 본 기체의 식별번호.”
“2번이라… 그럼, 애칭 같은 걸 골라 불러도 될까요? 탑으로 향하는 잠시만이라도 좋으니 말이에요!!”
“긍정. 선택 자유. 명령 대기.”
로봇은 짧고 짧은 몇 마디를 던지며 계속 걸어 나갔다. 로젤리아는 머리를 싸매며 로봇에게 붙일 좋은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고, 제이는 들고 온 짐가방을 가볍게 흔들며 도시의 모습을 세세하게 관찰해 나갔다. 그리고 푸른색의 로봇은 그저 현상황에 대해 곰곰이 고민했다.
“... 손님, 아까부터 말이 적네. 무슨 생각이라도 있어? 아니면 다른 세계는 이런 유적 같은 게 흔한가?”
“... 아,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에 빠져서 말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사무소에서 여기로 오면서 연 문에 관한 겁니다. 문을 여는데 방해를 받은 적은 처음이라서 말입니다.”
“흐음. 지하라서 그런 거 아냐? 위에 천장이 막고 있어서 그렇다거나?”
“글쎄요… 아무래도 이 곳을 탈출해 돌아가면, 확인해 볼 게 아주 많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이 씨의 말대로 저 천장에 반짝이는 것들이 문제일 수도 있겠군요.”
“... 뭐, 기술자는 손님이니깐 알아가는 건 손님만 할 수 있는 거지. 난, 그냥 의견만 내는 거고 말이야. 아, 그 제네였나? 그 동그란 장난쟁이는 어디로 갔데? 지금쯤이면 갑자기 튀어나올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아, 제네라면 지금 저 위에 있습니다. 아까, 땔감을 구하러 가는 김에 도시의 모습을 상공에서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지금은 열심히 자기일 중이죠.”
“그래? 그래서 조용한 거였구나. 나름대로 그 아이도 장난만 치는 건 아니구나.”
“흐음. 그게 무슨 말일까. 날 항상 장난만 치는 장난꾸러기로 보는 거였구나~.”
로봇의 몸에서 제네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이는 잠시 그 상황에 놀라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로봇을 바라봤다. 로봇은 그런 제이에게 제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더했다.
“저기 그, 사실 제네라는 아이의 본체가 구체에 들어있는 건 아닙니다. 그 아이도 저와 같이 이 신체 안에 들어있고, 단지 절 도와주는 방법 중 하나가 저 구체를 조종하는 거죠.”
“들었지? 나랑 보스는 일심동체라는 거지!”
“난 너랑 같은 마음을 가진 적은 없는데. 제네.”
로봇과 제네 사이에 가벼운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대화에서 자신이 제외당했다는 것을 안 제이는 볼을 가볍게 긁으며 황당해했다. 그들이 그러는 사이 로젤리아가 무언가를 결심하고는 크게 말했다.
“... 아! 그럼 ‘토토’는 어떠세요? 괜찮으신가요?”
“야, 그거 전에 너희 집에서 도망친 새 이름이었잖아. 아니다. 도망친 멍멍이 이름이었나? 그 로봇이 네 애완동물도 아니고 말이야.”
“긍정. 식별번호 02번. ‘토토’ 명명. 승인.”
“후후, 봐봐. 잘 받아들였잖아. 저, 토토 씨? 이 도시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승인. 내부 저장소 검색. 문제 발생. 검색 내용 없음.”
“... 길 안내 로봇이 도시에 대해 모르는 것도 있나 보네.”
제이의 툴툴거리는 말을 끝으로 그들은 네모난 로봇을 따라 계속해서 걸어갔다. 멀리 떨어져 보였던 기둥은 그 크기를 조금씩 키워나갔고, 그리고 도시의 또 다른 존재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그들의 대화 목소리는 텅 빈 도시를 한가득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