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 쓴 까마귀-3-
하강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인물?
누구긴 누구겠는가 치안관이다.
공공건물에서 생각없이 벽에 칼질해서 기스를 거하게 내놨는데 거기 관리하는 사람들이 가만있었겠는가? 바로 공권력 부르지.
나와 티레사, 그리고 세로스는 사이좋게 모험가길드 부속 치안소, 그러니까 전날 내가 티레사를 맡긴 치안소에서 일렬로 앉아서 취조를 받고 있었다.
“그러니까~...아홉왕관의 문양을 봤더니 갑자기 꼭지가 480도 돌아서 거기다가 칼질을 했다...이 말이요?”
치안관 제복을 입은 연륜이 있어 보이는 중년 치안관이 조서를 봤다 고개를 숙인 세로스를 봤다를 반복하며 오랜 시간의 닦달과 설득, 그리고 회유 끝에 얻어낸 진술들을 정리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나한테는 오만하고 건방진 태도를 보이던 세로스 였지만 역시나 공권력 앞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아니, 그게 말이 되요 아가씨? 그리고 왜 신분증은 안 보여줘요?”
신분증, 이 경우에는 모험가 라이센스다. 못 내주겠지 그도 그럴게 저거 내 보증으로 받아낸 불법 신분이거든......
그렇다고 진짜 신분을 밝히기에는....
나는 고개를 슥 돌려 고개를 숙여 그림자가 짙게 된 세로스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그 와중에 티레사는 어제 만났던 여치안관한테 초콜릿을 받아먹고 있었다.
저 자식은 언제 저렇게 친해졌대?
그렇게 상황이 더 이상의 진전을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치안관들도 세로스와 티레사의 휘황찬란한 복장에 강하게 밀어붙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이 사태를 뒤집어 줄 인물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을 때 즈음...
치안소의 문을 열고 한 인물이 들어왔다.
안톤 길리배트.
모험가 길드 특수상황 대처부서의 부장. 40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강건한 육체가 옷 위에서도 느껴지는, 사무직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인상의 남자가 치안소의 문을 열고 헐레벌떡 들어왔다.
“......왔군.”
나는 생각대로 돌아가는 상황에 쾌재를 불렀다.
바로 어제 우리에게 사룡사건의 입막음을 했던 안톤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은 입막음을 한 우리들이 진짜로 그 약속을 지키는지 확인하고 있을 터, 그리고 예상대로 그렇게 감시하고 있던 우리가 치안소에서 심문을 받고 있자 혹시라도 어제의 사룡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봐 헐레벌떡 우리를 데리러 온 거다.
그의 등장에 그 자리에 있던 치안관 일동이 자세를 바로잡고 그에게 경례를 올렸다.
그가 치안관은 아니지만 그들이 관리하고 있던 모험가 길드의 중요인물이다, 그리고 그가 담당하고 있는 부서를 생각하면 평소 치안소와의 왕래도 많은 편인지라 치안관 모두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뭐, 말을 길었지만 높으신 분이 오니 중간관리직과 말단들이 얼었다는 거다.
“이거이거, 오늘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치안소관(해당치안소의 담당자)님”
“아,아닙니다! 안톤부장님 오늘은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이래저래 서로 잘 지내냐, 요즘은 상태가 좋다, 시간나면 다음번에 같이 식사나 한 번 하자, 치안소와 모험가 길드간의 유대를 늘리는 것이 훌륭한 모험가 길드 환경의 지름길이다...뭐 어쩌고 저쩌고 서로 겉치래를 주고 밭다가 안톤은 우리를 치안소에서 인계받았다.
그리고 현재...
“아니 또 이 방이냐고...”
“난 여기 싫지는 않은데...”
“아가씨가 어제 구금되셨다는 방이 바로...”
어제의 지하귀빈실이다. 어째 레퍼토리가 어제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나 솔직히 지금 헷갈려...어제가 사실 오늘 아냐?
그리고 다시 한 번 어제의 제연.
맡은 편의 안톤과 그옆에 비서처럼 서 있는 안톤의 비서, 아니 사실은 길드의 길드장 얀 캐리어.
맞은편의 안톤이 딱딱하게 굳은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하, 잭슨씨 저희들이 설마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요. 아직 사자의 미궁 탐색은 시작도 못 했는데 말이지요.”
“네, 뭐 그렇네요, 저도 이럴게 빨리 다시 볼 줄은 몰랐네요.”
나는 머리를 작게 긁적이고 내 무릎에 발을 올리고 자빠져 누워 있는 티레사를 한 번 ‘째릿’ 하고 째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티레사는 “뭐?‘ 라고 맞받아치고는 내 무릎위의 발을 까딱거렸다.
뭐라 하려다 포기하고 안톤의 다음 말이 나오기 전에 선수를 치기로 했다.
사실 기다려 봤자 나올 말이야 뻔하다, 너무 경솔한 행동을 했니, 이런식의 길드 건물을 부수는 행위는 모험가 법규 위반이라거나, 또 결국에는 티레사와 세로스의 신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거고 세로스는 또 꿀먹은 벙어리가 돼서 시간만 지나가겠지.
어제의 재현만으로 난 충분히 지쳤다, 여기서 방금 전의 재현까지 할 마음은 추허도 없었다.
고로 나는 이 사태를 조금 무리하게라도 마무리 짓기로 했다.
“비서분, 그러니까 이름이 얀 캐리어씨였나요?”
“네? 네, 맞습니다 얀 캐리어, 그냥 편하게 얀이라고 불러주시면 기쁘겠네요.”
건강함이 느껴지는 갈색피부에 푸른 눈동자 대비되는 옅은 회색빛의 금발.
얀 캐리어를 보고 나는 상당한 액수의 돈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순간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되었는지 멍한 표정을 짓던 얀의 얼굴이 한 순간에 일그러졌다.
갑자기 일어난 이 돌발 상황에 안톤도 당황했는지 말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일어났다.
분위기가 갑작스레 험악해지자 내 무릎에 발을 올리고 까딱대던 티레사도 몸을 일으키고는 내 옆으로 가깝게 붙어서는 ‘너,너 왜 그러는 거냐, 뇌물이라니 삼류 악당 엑스트라나 할 짓이라고?‘ 라고 말해왔고 저들의 적의에 대응해서 세로스는 허리에서 롱소드를 살짝 뽑았다.
이 일촉즉발의 상황은 내가 살짝 손목을 틀어 돈의 밑에 있는 ‘그것’을 얀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이건......”
잠시 복잡한, 혹은 경악한 듯 한 얼굴을 하던 얀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내 손의 돈을 공손이 ‘그것’과 함께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알겠습니다, 오늘일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안톤 부장님께서도 괜찮으시겠죠?”
“아,아아...길드...아,아니 얀, 자네가 괜찮다고 한다면 나도 그 의견을 믿어보도록 하지.”
정체 숨길 생각도 이제 없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락돼는 사태에 ‘아, 오늘은 집에 빨리 갈 수 있겠네’라고 생각하는 나였다.
잭슨 일행이 지하방에서 사라진 후. 전날과 같이 앉아있는 사람과 서 있는 사람의 위치는 역전되어 있었다.
소파에 퍼지듯이 앉아 있는 얀을 보고 안톤은 아까전의 이해할 수 없는 얀의 행동에 곤혹해 하고 있었다.
무언가의 말을 안톤이 꺼내기 전에.
“안톤.”
“네, 길드장님”
“너 공적치 카드가 뭔지 아나?”
“...? 네, 길드공적지분증명카드를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래, 어중이 떠중이 모험가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물건이지...”
그것은 이름 그대로 길드에 대한 지대한 공적을 가져 길드에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발급해주는 카드다, 이 공적치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뢰를 수행하는 것으로는 거의 쌓이지 않는 것이라 일반적인 모험가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물건...최소 A급 상위랭크는 되어야 최하랭크의 공적카드를 받을 수 있을까 말까이다.
“대게는 모험가 보다는 기업이나 사업가, 모험가 길드에 협조하는 유력조직의 장들이나 가지고 있을 물건이지...”
얀은 자신의 손에 들린, 방금 전 잭슨이 건넨 푼돈의 밑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를 확인했다.
“너도 알다시피 공적치 카드가 가지는 힘은 절대적이야, 각 랭크별로 허용된 범위의 권한을 카드소유자, 혹은 그 대리인이 모험가 길드에게 일방적으로 ‘요구’ 할 수 있으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가장 최근 실물을 봤던 건 A급 모험가 카리아...그가 던전의 정보를 요구했을 때 이군요...”
“아아~ 그러고 보니 그런 놈도 있었지...젊은 나이에 A급에 길드의 비밀의뢰를 해결해서 ‘브론즈’ 등급의 공적치 카드를 받았지...”
얀은 얼마전에 만났던 잭슨과 같은 검은 머리의 검은 코트를 걸친 쌍검의 검사를 떠올렸다.
통상의 단련법과 지류를 따르지 않는 이질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그의 짧지 않은 모험가 생업 중에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이상한 존재이자 어비스 스티리트의 화재의 중심이자 떠오르는 기대주...그런 그가 가진 공적치카드의 등급이 브론즈, 최하등급이었다, 그만큼 공적치를 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그것은......
일련의 대화를 통해 길드장이 아까의 사태를 그렇게 일단락 지은 이유를 짐작한 안톤은 얀의 손에 들린 공적치 카드를 엿보았다, 하지만......
“검은색...공적치 카드?”
그가 아는 한 공적치 카드의 등급은 순서대로 ‘브론즈’ ‘실버’ ‘골드’ ‘플라티나’ 그리고 ‘레전드’ 와 번외로 발행되는 ‘스타 더스트’ 까지였고 그중 검은색이 카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품이라는 가능성은 없는겁니까?”
“아니...이미 마장성문[魔章聲紋]을 조회해봤어. 확실한 진품이야”
그렇게 말하고 얀은 손에든 공적치 카드에 마력을 약간 흘러넣었다. 그러자 카드에 기하학적 문양이 퍼지더니 정품임을 인증하는 모험가길드의 문양이 떠올랐다.
“하하, 요즘 심심하다 생각했더니...또 골 때리는 일이 시작될 것 같군”
새롭게 두각을 드러내는 이질적인 능력의 A급 모험가, D급 던전에 출몰했다는 정체불명의 사룡, 다짜고짜 이 시대의 패자들의 상징에 칼질을 하는 정신나간 여자, 그리고 이제는 생전 복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등급의 공적치 카드를 가지고 있는 B급 모험가까지...
골치아픈 일들 투성이지만 얀 캐리어는 웃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 말로, 이런 골 아픈 녀석들과 함께하는 것이야 말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즐거움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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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하루의 끝에 우리는 바넬 아파트로 돌아왔다.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뭔가 엄청 피곤한 하루네~”
기지개를 켜며 말 하는 티레사의 표정은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의외로 밝아보였다, 처음으로 해본 던전 사냥이 마음에 들었던 거겠지.
바넬 아파트 최상층의 팬트하우스는 1층에 설치된 전용 승강기로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다. 그럼에도 티레사와 세로스는 나의 뒤를 따라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아마 모험의 여운을 즐기고 싶은 것이겠지.
나는, 최소한 나는 그녀의 그런 기분을 알 수 없었다.
그녀와 같이 가슴을 두근거리며, 마치 피크닉 나가는 기분으로 던전을 다녀와서 웃고 떠드는 모습 따위, 나의 이세계 10년 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티레사의 모습이 눈부시게 보였다.
귀족으로 환생해 만능의 치트 능력을 부여받고 자신을 무조건 신뢰하고 지켜주는 호위기사를 옆에 두고 새로이 도망쳐 온 땅에서도 조금의 비굴함 없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그리고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려는 그녀의 모습에 어떠한 상쾌함마저도 느끼게 된다.
나란히 옆에 서서 계단을 오르는 티레사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응? 뭐냐?”
근심하나 보이지 않은 하얀피부의 사랑스러운 소녀는 그 눈을 초승달처럼 바꾸며 미소지어보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해버렸다.
이세계 생활 10년 차의 연륜으로는 그 때 길드장의 앞에서는 조금 번거로워지더라도 다른 방법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작은 소녀가 원하는 것은 그런 지지부진하고 초라한 방법이 아니라고 느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소녀와 처음 마주한 그날 자신은 망설임 없이 이 소녀를 치안소에 넘겼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이제 더 이상 변화와 사건을 견딜 의지가 꺼졌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 녀석과 만나고서 얼마 안 되는 시간에 뭔가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꺼져버렸던 심지에 다시 작은 불씨가 타오르는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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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끝나고 밤이 깊어져 갈 즈음...
스윽
잠에서 깨어 몸을 일으켰다.
팔 다리를 풀고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가볍게 풀어준다.
그리고 적당히 타이밍을 재고 문 앞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한 호흡을 쉬고.
철컥
열린 문의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금발 청안의 여인, 20대의 여인으로서는 충분히 눈에 뛸 장신에 무릇 남성들의 눈을 잡아당기는 훌륭한 발육의 몸매,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티하나 없이 새하얀 와이셔츠와 검은색 면바지.
세로스, 세로스 언더 클로버가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네이버 웹소설에서도 연재중입니다, 시간나면 한 번 들러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