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 쓴 까마귀-2-
원래부터 좀 이상하고 무뚝뚝한 녀석이라고는 생각하기는 했다.
티레사의 호위기사 세로스.
내가 그녀에게 가진 인상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지금 바로 이 순간 세로스에 대한 나의 평가는 완전히 다시 쓰여지게 되었다.
‘미친년’으로...
와락!
“.....!?”
“우와!?”
어깨에 세로스를 들쳐업었다, 손을 뻗는 순간 쳐내려 하길래 그 손을 반대로 엮어 잡아 꺽어서 자세를 무너트린 뒤 들쳐업어야 했다.
다른 한 쪽 팔로는 티레사의 허리춤을 잡아들었다.
그리고 뛰었다.
언데드 드래곤에게 쫒겼을 때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도망갔다.
아홉 완관의 까마귀의 문양이 새겨져 있던 통로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어두운 골목에서 나는 세로스와 티레사를 내려놓았다.
“뭐냐? 도대체 왜 도망친거냐?”
바닥에가볍게 착지한 티레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 보았다.
반대로 세로스는 내려준 후에도 아무 말도 없이 내 눈을 피하고 있을 뿐이다, 이 반응을 보면 최소한 이 여자는 내가 왜 이렇게 분노 하고 있는지 이해는 하고 있다는 뜻일 거다.
그러니까 사양하는 것 없이 몰아붙이기로 했다.
“무슨 생각이냐?”
쾅!
벽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험악한 얼굴로 세로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가 말이냐.”
“알고 있잖아, 아홉왕관의 까마귀의 문양을 훼손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홉왕관의 까마귀의 문양, 그것을 건물에 새긴다는 것은 곧 그들이 3년 전 전쟁에서 아홉왕관의 까마귀 편에 써서 싸운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찌보자면 그 문장이야 말로 3년 전 전쟁에서 혁명군을 상징하는 그들의 깃발이라 할 수 있다.
그걸 훼손한 다는 것은 곧 아홉왕관의 까마귀만이 아닌 그들을 지지했던 세력들 전부를 모욕하는 것과 아무 다를 게 없다.
그리고 3년 전 전쟁에서 아홉왕관의 까마귀들이 회유하고 우군으로 끌어들인 그 첫 번째 세력이 바로 모험가들이다.
권위적이고 자체적으로 강력한 기사단을 수도 없이 가진 알트리우스 제국에게 있어서 모험가들이란 그냥 야만스럽고 폭력적인 야만인 집단에 지나지 않았고 그런 만큼 제국내에서 모험가 길드의 입지는 한 없이 좁았고 그런 만큼 모험가 길드도 제국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거기 소속된 모험가들에게도 반 제국 성향이 있었지만 그들의 너무나도 강한 무력 때문에 그런 티를 낼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전쟁의 끝에 제국은 부숴졌고 이제는 아홉왕관의 까마귀들이 이 세계의 실권을 잡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의 가장 첫 번째 우군이 되었던 모험가들의 그들에 대한 지지는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 이들이 가득한 모험가 길드에서 아홉 왕관의 까마귀를 상징하는 대문장을 박살냈으니......
만약 조금만 더 자리를 뜨는 것을 주저했다면 거기에 있던 모험가들에게 어떤 꼴을 당했을지 모른다.
“너 임마 그래도 ‘호위기사’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면 최소한 주인이 위험에 처할 멍청한 짓은 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열이 뻗쳐 멱살을 잡고 세로스를 벽에 밀어붙였다.
분위기가 험악해져 가자 티레사도 더 이상 태연하지는 못 했다 주춤거리면서 다가와 내 옷을 꽉 잡았다.
“어, 어이 잭슨? 세,세로스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 좀 하는 게 어때?”
자신의 호위의 안위를 역으로 걱정하는 티레사가에게 세로스가 한 짓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인지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이여자가 한 짓이 2차 세계 대전 막 끝난 미국에서 참전군인들 가득한 거리에서 대놓고 성조기에 불 싸지른 것과 다름없는 짓이지만 속으로 삼키기로 했다.
한숨을 내쉬고는 내 손에 벽에 밀어붙여진 채 분한 눈으로 나를 보는 세로스의 눈을 마주보았다.
“......더 이상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마.”
“알았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자각은 있는 것인지 세로스도 그 이상의 말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어색해진 분위기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어비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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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비스’
인류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던전.
수십, 아니 수백에 이를지도 모르는 던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형성되어있는 던전의 개념조차 뒤흔들 정도의 대던전.
지금 우리는 서 있는 곳은 그런 대던전의 가장 큰 입구인 ‘그레이트 홀’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건 또...상상도 못한 광경이군.”
그레이트 홀의 그 위용에 티레사는 감탄했고 말은 없지만 세로스도 그 모습에는 놀란 모양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럴법도 한 것이 건물이 밀집한 도심지 한 가운데에 아무것도 없는 커다란 공터가 나타나더니 그 공터의 중심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거대한 공동이 뚫려 있으니 경악할 만도 하다.
그레이트 홀의 구멍의 외각에는 빼곡하게 건물들이 지어져 있었다.
크레이트 홀을 제어하기 위한 신전부터 그레이트 홀에서 나오는 특수한 금속을 안정적으로 채취하기 위한 건설용 건물, 그 외에도 이곳을 향하는 모험가들을 그들이 원하는 스팟에 내려주기 위한 하강기와 그 외의 갖가지 상점과 건물들이 그레이트 홀의 외곽을 몇 겹으로 감싸고 있었다.
“자 그럼 가자구.”
그 광경에 놀라고 있는 둘을 이끌고 야생의 평원으로 다이렉트로 내려주는 하강기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굳이 하강기란 걸 탈 필요있는거냐? 그냥 내려가는 건 안 되는 건가?”
"뭐 안될 건 없지만 그레이트 홀의 규모는 말도 안 되게 크거든,“
어비스의 가장 큰 출입문인 그레이트 홀은 그 수식어인 그레이트란 말에 어울릴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도보로 들어갈 수 있는 길 자체는 있지만 제대로 된 던전이라 할 수 있는 공간까지 내려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나마 초입에 있는 야생의 평원이라면 어찌 도보로 갈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당장 E등급 던전이고 야생의 평원보다 더 아래에 있는 ‘암석의 정원’ 까지 갈려면 시간 낭비도 보통이 아니게 된다.
그런 불편을 해결하고자 설치된 게 하강기고 구태여 편하게 내려갈 수 있는 길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야생의 평원으로 가는 승강기로 향하니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 외에도 하강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인원들이 있었다.
“어?”
그 기다리는 인원사이에 익숙한 얼굴이 있길레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응 뭐냐 잭슨?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아니 아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거기에 있는 것은 검은 머리칼의 소년이었다, 젊어보이는, 아니 아직 어려보이는 그 소년은 허리에 딱 보아도 예사롭지 않아보이는 검을 두 자루 차고 있었고 그 주위에는 미남미녀로 이루어진 파티원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딱히저 검은머리 소년과 아는 사이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에이던에서 모험가짓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 소년의 얼굴과 이름 정도는 모두 한 번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최단속 A랭크를 달성한 기대받는 신예.
흑검의 마에스트로
“유명인이야 A급 모험가 카리아...”
“오~A랭크라 처음보는군...뭔가 복장이 중2병 스럽긴하지만 그 정도로 유명한 것 보니 강한가보군”
중2...병? 검은 코트에 가죽 벨트, 묵직한 검은 빛의 쌍검을 걸친 카리아를 멋지다고 생각했는데...병? 저 복장이랑 병이랑 무슨 상관이지?
“후후, 뭐 유명인은 유명인이고 어서 가자 우리도 내려가야 하잖아?”
그녀의 말대로 딱히 유명인이 있고 말고는 딱히 상관없는 일이니 우리도 같은 하강기를 타기로 했다.
하강기를 타고 내려온 곳에 있는 것은 완전한 별천지.
야생의 평원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기분 좋을 정도의 넓은 평원이었다.
“여긴 이렇게 생겼구만...”
별 생각없이 감흥을 말하자 티레사는 이상하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응? 여태 와 본적 없는거냐? B급인데?”
“난 원래 이 지역 출신이 아니거든, 여기왔을 때는 이미 B급이었으니까...어비스에 들어올 때도 ‘그레이트 홀’ 보다는 ‘언더 타운’ 쪽을 애용하는 쪽이라...”
“흐음~뭐 그럴 수도 있겠군.”
그렇게 우리가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카리아 파티는 이미 멀리 사라져 있었다, 아마도 파티원 중 한명이 눈에 띄게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니 신입으로 받은 파티원을 단련시켜주기 위해 데려온 걸로 보인다.
그르러어어어어어엉!
“오~그러는 사이 와줬군.”
“늑대...인가?”
우리가 잡담을 하는 사이 찾아온 것은 커다란 회색 늑대였다.
야생의 평원의 대표적인 몬스터 중 하나인 그레이 워 울프가 우리를 상대로 목을 울리면서 공격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허리에 찬 숏소드를 뽑아들었다.
“일단 내가 시범을 보여줄까?”
가볍게 뒤에 선 티레사에게 물었으나 역시 그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나의 권유를 거절했다.
“후훗! F급 던전의 잡몹따위는 몸풀기조차 안 된다고~”
그렇게 말한 그녀는 가볍게 손에 든 완드를 휘둘렀다.
“라그나!”
그녀의 말과 동시에 전방에 푸른빛으로 이루어진 매가 나타났다.
그 모습에 그레이 워 울프도 경계하는 듯 그녀의 주변을 반원으로 돌며 상태를 살폈다.
“빙관!”
그녀의 말을 신호로 푸른 매에서부터 발하던 서늘한 푸른빛이 대지를 타고 달리더니 순식간에 그레이 워 울프를 둘러쌌다.
그리고
콰직!
순식간에 푸른빛은 거대한 얼음기둥으로 모습을 바꾸어 그레이 워 울프를 통째로 얼려버렸다.
“파(破)!”
그리고 산산조각이 나서 그레이 워 울프를 얼음조각으로 바꾸어 버렸다.
“훌륭하십니다 아가씨!”
그런 모습을 보고 세로스는 박수갈채를 보냈고 나도 꽤 놀라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의 정령술, 이세계 치트니 뭐니 말해서 어느정도 수준인지 감이 안 잡혔는데 이렇게 보니 확실히 그 수준이 실감이 된다,
“대단한데...이 정도면 순식간에 랭크가 올라가겠군 한 가지 물어보겠는데 아까 그게 네가 낼 수 있는 최대친가?”
“그~럴리가! 이 나의 전력은 이 정도랑은 차원이 다르다구!”
멋진 모습을 보인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걸까? 말에서 지성이 반으로 줄어든 것 같다.
즉 이것보다 더 높은 화력도 낼 수 있다는 건가? 정령술은 마법과는 다르게 정령과의 소통을 통해 능력을 행사하는 만큼 능력의 변동폭이 크지만 대시 마법사의 영창과는 달리 부탁, 혹은 명령으로 빠르게 그 능력을 행사 할 수 있다.
거기에 그녀는 이세계 특전으로 정령의 호의를 확실하게 얻을 수 있다.
즉, 변동폭이 크지 않다는 것.
“몬스터랑 싸워본 건 이번이 처음인가?”“응? 뭐, 그렇지 저택에서 지낼 때는 마음대로 밖에 나갈 수도 없었고 여기 오는 길에도 열차를 타고 이동했으니 실제로 몬스터를 상대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야!”
몬스터를 처음 상대하는 것임에도 망설임 없이 공격을 시행한 것도 점수가 높다.
“너...제법이네.”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지만 의외로 티레사의 반응은 격렬했다.
“우...흠! 흠! 그,그렇지! 이 정도는 기본이지!”
쑥스러워하는 티레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우리는 야생의 평원에서의 사냥을 시작했다.
야생의 평원에서의 사냥이 몇 시간 즘 흘렀을까?
“으~생각보다 힘드네...이걸로 그레이 워 울프 가죽이 20장이고 클레이 슬라임의 핵이 10개인가......”
긴 시간에 비해서 우리가 손에 넣은 마물의 소재는 얼마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제발 마물좀 그만 박살내 티레사......”
“그,그치만......”
티레사의 높은 화력은 처음에는 굉장하다 생각했지만 문제는 이 녀석...
힘 조절이 전혀 안 된다.
그렇다보니 공격했다 하면 그레이 워 울프들을 고깃 조각으로 만들어 버려서 돈 되는 부분인 가죽을 얻을 수 없게된다.
그나마 진흙으로 이루어진 클레이 슬라임의 핵 같은 경우에는 금속재질이기 때문에 건질 수 있었지만......
현재 손에 넣은 그레이 워 울프의 가죽은 결국 전부 나와 세로스가 사냥해서 얻은 물건들이었다. 야생의 평원에서 제일 돈이 되는 게 워 울프의 가죽인 걸 생각하면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다.
“뭐 어쨌든 이 정도면 처음치고는 훌륭해 다음에는 적당히 빨리 헤치울 수 있는 퀘스트 몇 개 수주받고 와서 경력을 채우고 승급시험을 받으면 돼.”
티레사와 세로스의 실력이라면 순식간에 승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만 돌아갈까?”
“그래~이 정도면 충분해”
“아가씨가 원하시는대로”
그렇게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하루의 끝을 내기 위해 하강기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네이버 첼린지 리그에서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시간 있으면 한번 들려주시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