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 여행
산을 다 내려오니 곧 드넓은 초원과 정돈되어 있는 도로가 있었다. 도로의 양 옆으로는 넓은 밭이 있었고, 수확을 기다리는 농장물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간신히 보일만한 지평선 끝에는 건물들이 보였다.
“와씨 너무 멀잖아”
행군은 익숙했다. 침투, 연결 및 복귀, 돌파, 돌격 전부 발로해야 하는 보병에게 행군은 늘 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막상 걸으려니 불평이 나왔다. 도시의 검문소를 통과하려면 그럴듯한 변명을 준비해야 했고, 리아의 말대로 모험가를 하기 위해 아인의 마을에서 온 소녀라고 소개하려고 한다.
생각을 정리 하면서 잘 정돈된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나저나, 일 하는 사람이 적네? 목축지 같은 울타리도 보이는데.. 아무도 없나? ‘농민은 늦잠꾸러기에요~’ 이런 건가?
과거 훈련을 할 때 시골마을들을 통과 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농민들은 밭일을 하거나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그런대 누마 공국의 농민들은 일을 하지 않고 있어서 의아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내 숨소리만 들으며 걸었고, 곧 도시의 검문소와 검문을 기다리고 있는 행렬이 보였다. 성벽과 성벽에 둘러진 하천이 있고 성문에는 하천을 건널 수 있게 다리가 놓여져 있었다.
성문 밖과 안쪽엔 위병들로 보이는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고 안쪽에 간의 사무소처럼 병사와 경무장한 사람이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줄을 서고,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의 차례가 왔고, 화려하지 않은 복장이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가죽재 경갑옷을 입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앉아있었고 그 옆에는 창을 들고 허리에 검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양 옆으로 서있었다.
은근히 긴장되는데 무사히 통과하기를 빌자.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앉아있는 중년남성은 그저 기분나쁘게 끈적한 시선으로 쳐다보고는 바로 용무를 물었다.
“이름은?”
“지나입니다.”
“오신 목적은?”
“아, 모험가가 되고 싶어서요.”
“어디서 오신건가요?”
“산맥에 있는 ‘아인의 마을’에서 왔습니다.”
잠깐의 기분 나쁜 정적. 왠지 모르게 나쁜 예감이 든다.
“흐음.. 신분을 증명할만한 증서나, 소개서를 가지고 계신가요?”
“아.. 아뇨,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
그러면서 손짓으로 병사를 불렀다.
“병사들을 따라가셔서 잠깐의 조사를 받으시죠”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아주 강하게 든다.
병사들을 따라 쪽문으로 들어갔다. 성벽의 내부 공간으로 조금 깊이 들어가니 사무실과 구금실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이쪽으로”
구금실 옆쪽에 있는 의자를 병사가 가리켰고 그 자리에 앉았다. 병사 두명이 나를 지키고 있었고, 사실상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무언가 행동하나 하면 그걸 빌미로 저기 구금실에 널 가두겠다.’ 라는 눈빛이었다.
“저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조용히”
질문조차 하면 안 되는 건가? 게다가 말도 상당히 짧아졌다. 그냥 명령조네
“하아..”
한참을 기다렸을까, 문 밖에서 노크소리와 함께 아주 푸른 청색베이스에 화려하게 금색의 끈과 단추로 장식되어 있는 정장을 입은 상당한 미녀가 들어왔다. 붙임성 좋게 병사들에게 인사를 하였고, 병사들은 경직돼있던 눈빛과 표정이 갑자기 풀어지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젠장, 이 녀석들! 나와는 아주 다른 대우구나!
약간의 부아가 치밀었지만, 잠자코 있었고 내 맞은편 의자에 테이블을 하나 두고 여성은 앉았고 가방에서 무언가 양식이 적힌 종이와 잉크와 세련된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조사관입니다.”
“아, 네 지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실례지만 잠시 자리를 비켜주실 수 있을까요?”
그녀는 나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옆에 서있는 병사들에게 입을 열었다.
“네? 조사관님 하지만”
“무슨일이 있으면 바로 부르도록 할게요”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사무실을 나가자 그녀는 나를 바라봤다. 방금까지 생기 넘치는 눈빛과는 다른 피곤에 쪄든, 마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합참 작전과 직원들의 모습과 비슷했다.
“하아, 절차니까 금방금방 끝내죠? 이름은 어떻게 되시나요?”
한숨? 아... 이 사람 지금 귀찮아한다.
“지나입니다.”
“성은 없으신가요?”
“네 성 없이 이름만 있습니다.”
“누마, 정확히는 ‘스톡’에 오신 이유는요?”
“모험자 길드가 있어서 왔습니다.”
질문을 할 때마다 종이에 계속 무언가 적는다.
“이곳에 오기전에 거주하시던 곳은?”
“아인의 마을에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인의 마을이면 용산맥 주변에 있는 곳인가요?”
“네 맞아요.”
“오호..”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다.
“혹시 후드를 벗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이렇게요?”
로브의 후드를 벗고 후드 안에 말아 넣었던 머리카락을 양 손으로 끄집어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귀까지 오는 단발이었는데 어느덧 어깨까지 내려오는 길이까지 자랐다.
“귀는.. 없구나, 피빛.. 굉장히 붉은색이네요”
귀가 없다니? 머리칼에 가려져서 그런가?
“아하하.. 그러게요..”
“아인의 마을에선 무엇을 하고 지내셨나요?”
골똘히 생각했다. 잘못 말한다면 분명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듯 했다.
“약초방에서 일을 하거나 가축을 돌봤습니다.”
“아, 네리타를 아시나요?”
뜨끔
네리타의 지인인가? 어떻게 하지? 그 아이 친구가 없다고 했는데?
“아하하, 네 잘 알고 있어요. 접힌 귀가 굉장하죠?”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불안감이 솟아 오른다.
“어머! 잘 아시는구나! 견인족은 귀가 다들 서있는데 네리타는 접혀있고 수줍어하는 모습이! 하으으읏”
방금 전까지 사무적이고 업무에 찌들었던 사람이 얼굴에 홍조를 띄면서 몸을 베베꼰다.
이 사람.. 안될 사람이다. 눈이 이상해
“저.. 진정해 주시겠어요?”
“아, 죄송해요 조신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네요.”
어느 정도 진정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얼굴의 홍조는 그대로다.
“네리타의 지인이신가요?”
“네에, 그 약초방에선 이 근방에서 구할 수 없는 약초나 약을 판매서 가끔씩 병사들의 상비약으로 구매하러 가곤합니다. 사실 제 임무가 아니지만 귀족이 업무를 미루는데 방법이 없어요! 그렇지만 네리타를 만나러 가는게 위안이 되는걸요?!”
“아아..”
네리타가 사람을 기피하는 이유엔 분명 이 사람도 한몫했을 거야.
“약초방 아저씨 말로는 어떤 ‘학자’님께서 좋은 약초를 무상으로 공급해주신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약초가 굉장히 잘 들어요”
아! 이건 리아의 이야기다. 네리타를 알고있고, 리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 사실대로 말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사실.. 저는 그 ‘학자’님의 종자입니다. 이곳은 심부름 때문에 들리게 되었어요.”
“네에?! 그치만 방금 전에는”
“학자님께선 네리타의 약초방에는 마을에 들릴 때마다 항상 약초나 필요한 지식을 전수하셨어요.”
“흐음... 그럼 학자님의 이름을 아시나요?”
“리아입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흑발에 ‘양의 뿔’이 돋아나있으시죠”
“앗 제가 들었던 이야기와 같네요. 확실하게 믿을 수 있겠어요”
정말이냐? 이걸로 사람을 믿는다고? 나야 고맙지만, 그래도 조사관으로서 이건 허술한 것 아닌가요?
“하나 질문해도 될까요? 다른 사람들은 경비병에게 몇 가지 질문만 하고 마을로 들어갔는데 왜 저만 이곳에 따로 불려서 왔나요?”
“그게, 아인의 마을의 시작은 사실 제국의 노예들이 도망친 도피처에요. 그들이 마을을 만들고 그 마을이 조금씩 커져서 지금의 아인의 마을이 된 거에요. 때문에 제국에서 도망친 노예가 누마공국에 오게 된다면 제국으로서는 침략의 명분이 생기기 때문에 주의를 하고 있어요.”
처음 듣는 내용이다. 아인의 마을이 노예들이 만든 마을이라는 것을, 아마 드래곤 산맥, 이곳에서 용산맥이라 부르는 곳에 있는 리아의 존재 때문에 제국은 손을 못 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럼 이제 신원에 대한 의심은?”
“아! 걱정 마세요 제가 보증해드릴게요! 이제 마을을 마음껏 구경하시고 모험자 길드에 가보세요! 그리고 이곳은 돌격돼지 볶음이 참 맛있답니다. 아.. 요즘엔 잘 없을지도 몰라요..”
돌격돼지? 그게 그 뿔 달린 돼지인가? 그리고 잘 없다니?
“무슨 일이 있나 봐요?”
“서문을 통해서 오셨으면 넓은 밭이나 목축지를 보셨겠죠?”
“네, 이상하게 농작민이 없었어요.”
“사실 그게 ‘독조’라는 새가 요즘 개체가 늘어나서 그래요”
“‘독조’요?”
독조? 독이 있는 새인가?
“네에.. 발톱에 강한 독이 있는 마물인데 ‘대삼림’에 이변이 있었는지 부쩍 개체수가 늘어나서 목축지의 가축과 농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어요.”
“그럼 큰일 아닌가요?”
“지금은 모험자 길드에 의뢰를 해 둔 상태지만..”
상태지만? 일이 해결이 안 되는 건가?
“그.. 누마 공국에 대한 이야기를 대강 아시나요?”
누마 공국.. 처음 이 세계의 관한 지식을 배울 때 분명히..
“환락가가.. 아!”
“맞아요. 이곳에도 ‘그런 곳’이 있기 때문에 모험가분들은 모아둔 재산을 도박이나, ‘그 쪽’에 쏟고 있고, 의뢰를 잘 수행하지 않아요. 영주민들은 세금 때문이라도 일을 하고 있고요”
의문이 들었다. 왜 병사들이나 기사들을 이용하지 않지?
“그럼, 병력을 동원하면 간단한거 아닌가요?”
“그게.. 이곳은 3국의 국경지대가 접하는 지점이라서 성문 밖에 많은 병사들이 모여 있으면...”
“군사도발 오인..”
흔한 이야기다. 국경지대 인근이나 영공, 영해 상에서 훈련을 진행하면 주변국이 긴장을 하게 된다. 그것이 방어 훈련이던 공격훈련이던 그리고 이곳은 국경지대기 때문에 군사가 성 밖에 모인다면 그걸 빌미로 주변국은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병사를 동원하기에 어렵다. 그래서 모험자 길드에 의뢰를 할 수밖에 없다. 간단한 이유다.
“네 맞아요. 때문에 기약 없이 모험가 분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네요. 하하..”
조사관은 서글프게 웃었다. 이제야 나라와 도시민을 걱정하는 모습이 진정한 공무원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죄송해요 오랜 시간 붙잡았네요. 이제 가셔도 괜찮아요! 즐거운 여행길 되시고 모험가 등록 반드시 합격할거라 믿어요!”
“모험자 길드에 합격하면 제가 꼭 의뢰를 받을게요!”
조사관의 응원을 받고 성문을 통과했다. 방금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병사들의 시선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우선 모험자 길드를 가기 전에 리아가 주었던 ‘미약’을 팔아야 했고, 매입처를 찾으며 약방이나 포션 가게들을 둘러봤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게는 닫혀있거나 매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정도로 고급 미약은 구매해줄 거래처가 없기 때문에 오랜 기간 보관이 불가피 하다고 했다. 누마 공국의 수도나 항구도시에서는 거래 할 수 있지만 거리가 상당히 멀었고, 그 전에 확실한 신분을 만들어야했다.
“하아.. 이번에도 꽝인가?”
거리에 있는 대부분의 상점을 둘러보았다. 해본적은 많이 없지만 게임이라면 바로바로 판매가 될 탠대!
“하아...”
“호호호 무언가 곤란한 일이 있나보군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뒤에는 고급진 옷차림에 작은키에 어울리지 않는 큰 체격을 갖은 사람이 비릿하게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으아, 나랑 키가 비슷하잖아.
이 세계로 전이되면서 나의 체구는 확실히 줄었다. 현역시절에도 작긴 했지만 평균키보다 살짝 작은 정도였지만 이 세계에서의 나의 키는 동년 여성보다 훨씬 작았다. 그리고 이 남자는 그런 나와 비슷한 키였고, 옆으로는 사람 네다섯 명 정도가 되어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저기, 무슨 일이신가요?”
“판매나 구매로 곤란하신거 아닌가요?”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섞인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네, 약을 판매하는데, 다들 거래처가 없다고 거절을 해서요.”
“호오? 어떤 약인지 봐도 될까요? 제가 필요로 하는 약이면 구매를 하겠습니다.”
구매를 해준다면 이런 기분 나쁜 사람이라도 나는 감사하다. 때문에 주머니에 넣어둔 미약을 한 병을 꺼내 주었다. 그러자 남자는 눈까지 기분 나쁘게 웃기 시작했다.
“호호호호”
“저기?...”
왠지 가지고 도망 갈까봐 경계를 했다.
“당장 매입하도록 하죠! ‘최상급 미약’이라니! 분명 제 주인님도 충분히 만족하실 겁니다.”
“아, 몇 병 더 있어요!”
그러면서 미약이 들어있던 주머니에서 미약을 전부 꺼냈다. 총 다섯병!
“오오! 굉장히 훌륭합니다! 전부 매입하겠습니다.”
“가격은 어느 정도인가요?”
솔직히 제일 궁금한 부분이었다. 대부분 가게에선 금화 몇 개는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가게마다 부르는 가격이 달랐고, 단지 공통적으로는 금화 ‘몇 개’였다. 그중 제일 높게 감정한 곳이 금화 5개였다.
“하나당 금화 10개로 거래하고 싶군요.”
금화 10개! 제일 높게 감정한 곳의 2배! 이런 행운이! 행운의 여신님께서 드디어 내게 손짓을 하는건가?!
“당장 거래하죠!”
그는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그 후 금화 30개를 꺼내서 내게 건네주었다. 하나씩 금화를 확인해 보라는 말에 ‘처음 보는’ 금화를 하나씩 봤다. 이상은 없어보였다.
“그럼, 거래성립이라고 해도 될까요?”
“네! 금화도 이상 없어 보이고, 좋은 가격에 구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리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높은 가격에 구매해주다니 참 고마운 사람이다. 기분 나빠 보이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좋은 품질의 상품을 구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그에게 모험자 길드의 방향을 물었다. 그는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나는 거듭 감사를 했다.
참 친절한 사람이다. 성문에서 기분 나쁜 눈초리를 받았던 것과는 달랐다.
십분 쯤 걸었을까 조약돌 같은 돌을 고풍스럽게 크게 쌓아서 건축한 건물이 보였고, 건물의 입구 위에는 모험자 길드라고 적힌 간판과 숙박과 식사가 가능하다고 써 있었다.
“이곳이 모험자 길드구나”
닫힌 문 앞에서 나도 모르게 노크를 했고, 문이 갑자기 열려서 문에 맞고 뒤로 넘어졌다.
“아얏”
“어머 죄송해요”
넘어진 상태로 앞을 올려다보니 짙은 갈색의 단발머리의 조사원과 비슷하지만 화려함이 없는 검은색 정장 차림의 여성이 서있었다.
“아, 노크 하신게?”
자리에서 헐래벌떡 일어났다.
“모험자가 되고 싶어서 찾아 왔어요.”
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안으로 안내했다. 내부는 문과 정면에는 은행 창구처럼 만들어진 공간이 있었고, 아마 의뢰를 수령하거나 보고하는 곳처럼 보였다. 좌측 안쪽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술통으로 보이는 나무통이 굉장히 많이 쌓여 있었다.
창구로 안내한 직원을 따라갔고, 그녀는 목판과 펜을 주었다.
“글은 쓰실 줄 아시나요?”
“네 어느 정도는 배웠습니다.”
“그럼 모든 항목에 ‘솔직하게’ 작성 부탁드려요. 작성한 것을 토대로 평가가 진행 됩니다.”
“평가요?”
“모험자는 전투 뿐 아니라 지식이나 생존부분도 평가를 받고 등급이 주어집니다. 보통 10등급에서 8등급이 초심자분들이 받는 등급이에요.”
모험자에도 등급이 있구나. 등급에 따라 보수가 다른가?
“보수보다는 받을 수 있는 의뢰가 다르답니다. 10등급은 보통 청소나 심부름의 일거리를 8등급부터는 마물 퇴치 의뢰가 많아요.”
마치 생각을 읽은 듯 직원은 말했다.
“아, 네”
항목들은 단순했다. 이름과 출신지, 사용가능한 무기, 무기의 운영 수준, 마술의 사용 여부, 선호하는 전투포지션 등 전투에 관한 능력이 주였다. 출신지와 이름은 위병들에게 말했던 대로 적었고, 무기는 나이프 마술은 ‘암’속성 마술은 상대적으로 사용자가 적어 이목을 끌 수 있다는 리아의 말이 떠올라 사용 불가로 적었다. 마지막 항목인 전투포지션은 과거 군복무시절에 포인트맨으로서 활동했던 경험이 있어서 ‘척후’라고 적었다.
*포인트맨 : 최선두에서 첨병역할을 하는 분견대와 분대에 가장 중요한 포지션
“여기 다 적었어요.”
“테스트는 3일 뒤에 있는데 숙박도 할건가요?”
“네 부탁드립니다.”
“그럼 접수비는 무료고, 3일간 숙박비는 은화 1개입니다.”
“금화만 있는데..”
“아 걱정 마세요 금화도 받고 환급해 드리고 있어요.”
그녀의 말에 금화를 한 개 꺼내서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금화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지나씨... 이거 어디서 얻으셨나요?”
“이곳에 오기 직전에 어느 상인에게 물건을 팔고 받았어요.”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건 금화가 아니라 조잡하게 마광으로 만든 ‘가짜’입니다.”
“네?!”
가짜... 분명 가짜라고 했다. 그럴 순 없다. 리아가 나에게 준 모험의 밑천인 미약이... 가짜로 바뀌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저기, 지나씨 혹시 몇 개나 받으셨나요?”
“서른개 받았어요.. 여기..”
전부 가짜이진 않을 거다. 분명 하나 혹은 두 개정도는 진짜가 있을 것이다.
내게서 건네받은 금화를 전부 확인한 그녀는 나를 보면서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 금화들 전부 마광으로 만든 가짜에요.”
“저.. 그러면.. 전 재산이..”
“사기.. 맞으신 거 에요”
사기.. 이 세계에 처음 와서 따듯했던 사람들만 만나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악덕같은 사람을 만났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가장 중요할 때..”
눈물이 날거 같았다. 사기를 맞은 것보다 리아와의 약속을 못 지킬 것만 같았다. 그래서 화가 났고, 과거와는 다르게 지금의 몸은 이런 감정 상태가 제어가 쉽게 안됐고 눈물은 더욱 참을 수 없었다. 또 눈물이 날땐 콧물이 같이 났다. 모양 빠지게
훌쩍
내가 울려고 하자, 처음 안내 했던 직원이 어찌 할 바 모르고 당황하고 있을 그때 창구의 있던 다른 직원들의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 중에 한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이런 사람이었나요?”
그녀가 내민 종이를 보았고, 아까 만났던 남자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의 몽타주가 그려져 있었다.
“네! 맞아요! 이 사람이에요!”
“역시..”
“역시..?”
“최근 들어서 지나씨와 같은 초심자나, 금화를 처음 본 분들이 사기를 당하셔서 수배령이 내려졌어요.”
즉 나 뿐 아니라 비슷하게 사기를 당한 사람이 많고, 이 사람을 아직도 못 잡고 있단 소리다.
“특히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께서 눈이 어두워 많이 당하고 계셔요”
“아..”
당황해 하던 안내 직원이 침착함을 되찾고 이야기를 이었다.
“그럼 혹시 이 가짜는 아무런 가치가 없나요?”
“마광 자체는 귀한 광석이지만 이렇게 작으면 가치가 없어요.”
“저.. 이것 밖에 돈이 없어요.. 모험자가 되어야 하는데 돈이.. 없.. 어요..”
말을 잇다가 다시 눈물이 났다. 눈가에 맺힌 눈물은 볼을 타고 흘렀고 그와 함께 콧물도 계속 났다. 모양 빠지게
울고 싶지 않다.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 그런대 참지 못했다.
“아.. 저..”
덩달아서 안내직원들이 당황했고, 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모험자들도 이쪽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바로 그때 몽타주를 보여줬던 직원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러면 숙식 제공으로 며칠간 일해보지 않겠어요? 저희 웨이트리스가 그만둬서 일손이 필요해요.”
훌쩍
“네에.. 꼭 시켜주세요”
훌쩍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손수건을 건네주었고 코는 풀지 못하고 눈물을 닦고 돌려주었다. 마음씨 착한 사람이다.
처음 안내했던 사람이 누군가를 불렀고, 굉장히 몸 이곳, 저곳이 들어나 있는 검은색 복장에 목부터 치마까지 덮는 하얀색 에이프런을 입은 여성이 왔다.
훌쩍
“꼬마 아가씨 우선 방을 안내 할 거니까 방에서 잠시 마음 가다듬고 일을 알려줄게”
그녀를 따라 접수대 뒤쪽 가장 구석방으로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