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라는 말에 하운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화나거나 싫어하는 기색이 아닌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가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을 들어 세 기사와 싸우고 있는 하밀부르크를 가리킨 채 물었다.
“어때 저 녀석? 꽤 쓸 만하지 않아? 비록 자유 해방단의 단장에 불과하지만, 세 성의 유명기사들과 싸워서 버티는 녀석이라고, 수백 명이 넘는 병사들을 한 번에 날려버리기도 하고.”
“저 녀석을 받치겠다고? 대체 어떻게? 저 놈은 지금 말튼 성을 지키려고 싸우는 게 아니었나?”
“지금까진 그렇지, 하지만, 내가 설득할 수 있어, 하루 정도의 시간만 줘, 군대만 물려주면 내가 그 사이 그 놈을 설득시킬 게, 단장 녀석의 가장 큰 약점을 내가 알고 있어.”
어깨를 으쓱이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가온의 말에 가장 먼저 반발한 건 막심이었다.
“군대를 물리라니! 좀 순순히 군다 싶더니 시간을 번 다음 일을 꾸밀 생각이었구나! 하운드 님, 저 놈의 감언이설에 속지 마십쇼!”
“주위 성들이 전부 함락당한 지금, 여기 말튼 성을 도울 수 있는 곳은 없어, 하루 정도 유예 정도는 괜찮잖아? 설마 내가 그저 시간이나 끌어보려고 거짓말이나 하는 거 같아?”
“추잡한 노예 네 놈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하운드 님, 더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당장 이 놈을 죽여야 합니다!”
죽이자는 막심의 험악한 말에 가만히 있던 하운드는 찬찬히 가온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기운을 온전히 받고도 버틴 인간, 그로 인해 온 몸이 피투성이 몰골이 되어버렸음에도 어린 소년은 쓰러지지 않았다.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임에도 소년은 죽기는커녕 신음성 한번 내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앞에 서서 이상한 제안을 한다.
가온의 건방진 제안에 분노보다는 오히려 호기심이 생긴 하운드가 조용히 물었다.
“이상하군, 정말 네가 내게 항복할 마음이 있다면 진즉에 항복했으면 될 일, 자유 해방단의 단장을 데려오는 등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한다고 네가 얻는 게 뭐지?”
“일종의 거래지, 난 아무런 힘도 없이 네 밑에서 있고 싶지 않아, 네가 아끼는 막심과 동급의 지휘권을 원해.”
“지휘권? 그런 걸 원하는 놈 같지는 않은 데 왜지.”
“그쪽이야 말로 날 바보로 보는 거야? 하룬가 본가에 미르가 없으면 어디 있을지 그녀를 찾기 위해 앞으로 수백 번 어쩌면 수백 번 더 싸워야 할지도 몰라 그 많은 전투 도중 갇혀 있을 그녀를 안전하게 구출하기 위해 난 병사들을 제어할 권력이 필요해.”
하운드가 직접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해도 하운드의 부하 중 대다수는 반쯤 이성을 잃은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미르를 발견하고 무심코 해코지를 할 수 있기에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가온은 지휘권을 요구했다.
하운드는 조금은 수긍하는지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러면서도 탐탁지 않은 부분이 있는지 가온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런 요구는 굳이 단장 녀석을 안 바치고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다, 넌 내 기운을 버텨낸 인재지, 난 내게 충성을 바치는 이에겐 그만한 포상을 해준다.”
“확실하게 하자는 거지, 그보다 그만한 포상? 네 권속이 된 수천 명의 병사들에게도 포상을 해준 거야?”
“……저것들은 내 권속이 아닌 도구에 불과하다, 진짜 내 권속은 몇 명 되지 않지, 주위에 있는 수천의 도구들은 내가 가진…….”
하운드의 말을 듣던 막심이 화들짝 놀라며 중간에 급히 끊었다.
“자, 잠깐만요! 하운드님! 거, 거기 까지만 말하셔야합니다.”
“크르르, 막심 감히 네 놈이 내 말을 끊어?”
“죄, 죄송합니다만, 아직 저희 편도 되지 않은 저 꼬마에게 그걸 알려주면 안 됩니다.”
말을 끊어버린 것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면서도 막심은 어떻게든 방금 하운드의 말을 끊으려 노력했다.
하운드는 막심을 노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니지, 이야기가 좀 흐트러졌지만, 가온 너의 제안은 잘 알겠다, 나와 내 군대가 하루 간 물러서면 네 녀석이 자유 해방단 단장을 설득해서 데려오고 차후 너에게 막심과 동급의 지휘권을 주면 되는 거냐?”
“깔끔하게 정리했네.”
“그런데 한 가지 맹점이 있구나, 막심의 말 대로 네 놈이 우릴 속이지 않을 거라는 증거는 있더냐?”
그럴 듯한 제안이지만, 가온이 위기를 모면하려 내세운 책략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기에 하운드는 살기 섞은 눈으로 가온을 노려보며 물었다.
서투른 거짓말이나 확실한 대답이 안 나온다면 죽일 기세였다.
투두둑.
어느새 흐르는 코피가 가온의 옷자락을 적셨다.
내리는 눈들과 흐르는 피로 인해 엉망이 된 가온의 옷, 그리고 엉망인 옷 보다 더 심각한 가온의 몸 상태, 이런 최악의 컨디션에도 가온은 일체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전부 미르를 구하기 위해서야, 네 목을 노렸던 것도 이제서 너에게 굴복하는 것도 전부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야.”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저 말 뿐이구나, 그래 그렇게 내 권속이 되기 싫다면 죽어라.”
하운드는 살짝 실망한 기색으로 앞발을 들었다.
그대로 찍어 누를 기세였다.
하운드의 앞발이 가온의 작은 머리를 찍어 누르기 직전, 가온은 무심한 눈으로 앞발을 노려보며 도리어 도발을 했다.
“죽일 거면 죽여 봐, 대신 확실하게 죽여야 할 거야, 그녀를 구하지도 못한 채 이딴 곳에서 죽을 생각은 없으니깐.”
“끝까지 허세를 부릴 거냐?”
“허세? 네 기운을 버텨낸 게 누구고 네 목에 새겨진 상처를 누가 낸 건지 모르는 거야? 실수 한번이라도 했다간 죽는 건 네가 될 거야.”
“건방진!”
쿠구구구!
하운드가 다시 기운을 뿜어내자 주위에 있던 모든 것들이 짓눌리기 시작했다.
막심은 물론이고 근처에 도열하던 애꿎은 병사들까지 바닥에 짓눌린 채 일어나지 못하지만, 단 한 명 가온만은 예외였다.
때론 고통에는 더한 고통으로 이기는 법, 각인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다른 압박이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가온에겐 더 이상 하운드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피를 흘리면서도 쓰러질 듯한 가온은 하운드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젠 안 먹히는 거 알잖아? 죽일 생각이라면 직접 치라고, 설마 무서운 거야?”
“네 놈이 감히 날 능멸해! 크르르르르!”
가온의 연이은 도발에 하운드의 눈이 뒤집힌 채 또 다시 이성을 잃고 폭주하려 했다.
딸랑!
폭주하기 직전 또 다시 울리는 방울 소리에 하운드는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았다.
이성을 되찾긴 했지만, 여전히 속이 들끓는지 하운드는 가온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크르르르! 크르륵! 크르르.”
연신 거칠게 으르렁거리던 하운드는 간신히 야성을 억누른 채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크르르, 건방진 놈, 오냐 그 제안 받아주마, 딱 하루다, 군대를 물릴 테니, 약속대로 돌아와야 할 거다, 약속을 어기면 너는 물론 네가 구하려는 그 여자까지 죽일 거니.”
“하, 하운드님? 아무리 그래도 저 놈을 믿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정말로 저 놈이 배신이라도 한 다면.”
“그럼 쫓아가서 죽이면 될 일이지, 어차피 성안에 있는 이상 저 녀석이고 다른 놈이고 모두 내 발 밑에 있다, 뭘 두려워하는 거냐.”
하운드의 오만하고도 자신만만한 말에 막심은 입을 꾹 다문 채 가온의 눈치를 보았다.
당장 쓰러질 것 같이 힘들어 보이는 와중에도 가온은 꿋꿋이 선 채 하운드에게 말했다.
“수락해줘서 고마운데, 내가 이대로 멀쩡히 말튼 성으로 걸어가면 적진의 심장부까지 가서 죽지 않는 나를 사람들이 의심할 거야, 적당히 연기 좀 해줄 수 있지?”
“저, 저 건방진! 네 놈 따위가 하운드님에게 명령을 내리는 거냐!”
가온의 말에 즉각 분개하는 막심과는 달리 하운드는 순순히 승낙했다.
“오냐, 네가 원하는 대로 연기를 해 주마, 그러나 명심해라, 내가 베푸는 지금의 호의는 네 놈이 배신했을 때 가해지는 벌이니.”
하운드는 그 말을 하고 입을 쩌억 벌린 채 무언가를 준비했다.
그게 뭔지 아는 막심은 화들짝 놀라며 만류하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하운드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거대한 함성과 함께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크롸라라라라!”
콰아아아앙!
사자후에 휩쓸린 가온은 서 있을 틈도 없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