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는 다 끝났다.
하밀부르크는 고개를 들어 자신과 저 멀리 있는 하운드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150미터, 아니 200은 되나, 충분히 닿겠지.’
하밀부르크는 더 기다리지 않았다.
허리를 비틀며 바람이 모인 주먹을 내질렀다.
퍼어어어엉!
수천 장의 비단이 찢어지는 파공성과 함께 거대한 바람이 회전하며 저 멀리 있는 하운드에게로 쏘아졌다.
하밀부르크가 주먹을 내질러 쏘아낸 바람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빠르긴 하지만, 그 크기는 기껏해야 사람 정도의 크기였다.
막심은 하밀부르크가 쏘아낸 바람을 보고 비웃었다.
“하 뭐야, 뭐 하나 했더니 저런 허접한 기술을 쓰려고 준비한 거였어?”
고작 주먹으로 일으킨 바람이었다.
기껏해야 앞에 있는 병사 몇 명만 날아가고 끝날 것이다.
콰아아앙!
“응?”
처음 바람과 맞닿은 병사들의 몸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뒤에 있던 다른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쏘아진 바람에 성문 주위에 모인 모든 병사들이 날아가거나 박살났다.
생각지 못한 위력에 막심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고작 바람을 날린 건데 저 정도의 위력이라고? 그, 그래봤자 그게 한계겠지! 병사는 여전히 많다! 진군해라!”
“위험, 물러섬, 명령.”
“누가 내게 명령을……하운드님?”
뒤에서 들려온 하운드의 말에 막심은 깜짝 놀라며 당황하는 사이 바람은 성문 주위에 있던 병사들을 내고 그 기세를 잃지 않은 채 쭉 날아왔다.
단순히 주먹을 날려 일으킨 권풍이 아니었다.
하밀부르크의 마나가 뒤섞인 일종의 기술이었다.
쾅!
일직선상으로 날아가는 바람은 그것에 스치기만 해도 갑옷을 입은 병사들은 날아가고 정통으로 맞은 병사들은 갑옷이 박살나며 팔이나 다리가 날아가기도 했다.
마치 거대한 포탄이 쏘아진 듯 자리에 서 있던 병사들은 종이 짝처럼 휩쓸릴 뿐 막지를 못했다.
수백이 넘는 병사들이 날아가거나 중상을 입었지만, 바람은 멈추지 않고 하운드와 막심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쿠구구구구!
막심은 그 어느 때 보다 놀라 펄쩍 뛰었다.
자신의 몸으론 피할 수 없는 빠르기다.
막심은 급한 마음에 외쳤다.
“저게 뭐야! 이런 젠장! 누가 좀 막아봐!”
“……!”
막심의 말에 등 뒤에 있던 칼 리보렌을 비롯한 각 성의 유명 기사들이 뛰쳐나왔다.
기사들은 다가오는 적의 공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는지 막는 것보다 먼저 막심을 구출했다.
뒤에 있는 하운드에게도 기사들이 구출하려고 다가갔지만, 하운드는 딱딱한 말로 거부했다.
“꺼져라, 잔챙이들, 크르르르.”
어느새 하운드의 앞까지 다가온 바람을 앞발로 후려쳤다.
쾅!
엄청난 소리와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내리던 눈들과 땅이 잠깐이나마 흔들릴 정도였다.
쿠우우우.
한바탕 눈보라가 일어난 자리에는 움푹 파인 땅 위에 고고히 서 있는 하운드가 서 있었다.
하운드는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았다.
하운드는 내리쳤던 앞발을 응시하며 한 마디 했다.
“제법.”
기사들에 의해 겨우 피한 막심은 하운드가 막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하, 하하핫! 그래 제 아무리 강한 공격을 해도 하운드님에게는 안 통한다! 분명 그게 전력이었겠지, 아쉽게 되었어, 하하핫!”
막심은 확신했다.
저런 공격을 날렸으니 힘이 다했을 터.
이때를 노려 다시 공격하면 된다.
다시 공격 명령을 내리려던 막심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뭐, 뭐야, 다 어디 갔어?”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성문 주위에는 수백이 넘는 병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단 한명도 없다.
전부 바람에 의해 휩쓸려 날아가거나 죽은 것이다.
막심은 당황해하며 멀쩡한 병사들을 찾았다.
“대체 얼마나 날아간 거야! 빨리 공격하라고!”
막심이 명령을 내리지만, 바람에 영향 받지 않은 병사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 뿐이었다.
이들이 오지 못하는 지금, 성문부터 이 자리까지 거대한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길이 생겼다.
바람으로 길을 만든 하밀부르크는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헉, 헉, 아직은 한번이 한계인가, 그 녀석에 비하면 한참 멀었어.”
온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눈이 내리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하밀부르크의 머릿결은 땀으로 젖은 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하밀부르크는 떨리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가온에게 외쳤다.
“허, 허억, 허억, 기, 길은 뚫었다, 망할 노예, 이제 어쩔 거야.”
“좋아, 이제 날 업고 저 앞까지만 가줘.”
“허, 허윽, 뭐라고? 이게 진짜 미쳤나!”
“빨리 병사들이 다시 몰리고 있어, 지체하면 전부 무용지물이야.”
가온의 명령에 하밀부르크는 기가 막혔다.
기껏 길을 뚫었는데 더한 명령을 하다니.
기가 찬 하밀부르크가 윽박지르려 입을 열려는 걸 가온이 손으로 막았다.
“빨리, 기회는 지금 밖에 없어.”
“으, 으으읍! 이, 망할, 노예 읍!”
“미르, 그녀를 구하려면 반드시 가야 해.”
“……!”
미르라는 단어에 하밀부르크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밀부르크는 화내던 걸 그만두었다.
그는 가온을 등에 업은 채 짤막하게 말했다.
“그 말 반드시 지켜라.”
“난 한 말은 지켜, 그러니 달려.”
“망할 자식.”
하밀부르크는 가온을 들쳐 업은 채 앞을 바라보았다.
트인 길로 어느새 병사들이 모이기 시작했지만, 아직 지나갈 수 있다.
하밀부르크는 심호흡을 하며 업힌 가온에게 말했다.
“꽉 잡아라.”
두 다리에 힘을 준 채 하밀부르크는 적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바다가 반으로 갈라진 것 같은 길.
갈라졌던 바다가 다시 합쳐지듯이 길 양옆에서는 병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히히히힝!”
가장 먼저 달려온 건 기동성을 지닌 기마병들이었다.
양옆에서 랜스를 겨눈 채 달려오는 기마병들의 돌진에 하밀부르크는 입술을 깨물었다.
막지 못하면 몸이 뚫린다.
“합!”
쾅! 쾅!
양 옆에서 자신을 꿰뚫으려는 랜스 차징을 하밀부르크는 주먹으로 아슬아슬하게 쳐냈다.
랜스는 튕겨나갔지만, 추진력을 받은 군마의 돌진은 멈추지 않았다.
화살은 튕겨내는 하밀부르크의 몸이지만, 군마의 발길질까지 버티지는 못한다.
하밀부르크는 배에 힘을 준 채 함성을 내질렀다.
“꺼져라!”
“히히히힝!”
하밀부르크의 함성에 놀란 말들은 달리던 방향을 바꾸곤 서로 부딪혔다.
쿵!
말들이 서로 부딪혀 쓰러지고 이번엔 궁수들의 화살비였다.
양 옆에서 쏘아진 화살비들은 내리는 눈과 함께 하늘을 수놓은 채 떨어졌다.
슈슈슈슉!
혼자였다면 그냥 맞았겠지만, 하밀부르크의 등에는 가온이 업혀 있었다.
하밀부르크는 주먹 하나로 떨어지는 화살들을 쳐냈다.
티티티딩!
수백발이 넘는 화살들을 주먹 하나로 쳐냈다.
또 몰려온 기마병들까지 제압하면서 달려가는 하밀부르크.
목적지까지 얼마 안 남았지만, 그만큼 적들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하밀부르크는 등에 업힌 가온에게 대뜸 성을 냈다.
“업혀 있지만 말고 뭐라도 좀 해라! 아까처럼 가루를 뿌리든 뭐라도 해봐!”
하밀부르크가 성질을 내자 등에 업힌 가온은 한심한 눈으로 쏘아보며 대꾸했다.
“흥분제를 말하는 거면 아까 쓴 게 다야, 그나마 하나도 없는 거 아르실한테 받아온 거라고.”
“아르실? 그건 또 누구야? 노예 주제에 등에 업히기만 하고, 무능력한 녀석.”
“불평 좀 그만 해, 그런 말 할 시간에 더 달리라고.”
“너 진짜 이번 일만 끝나면 내가 가만 안 둘 거다……흠!”
가온에게 화를 내던 하밀부르크는 앞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서걱!
거대한 검 날이 하밀부르크의 코앞에서 휘둘러진 건 바로 그때였다.
하밀부르크는 깔끔하게 베인 자신의 갑옷을 보곤 상대를 확인했다.
반달형의 녹색 검날이 달린 언월도를 든 둥근 투구의 기사였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