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하밀부르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하랄드의 뺨을 쳤다.
손바닥으로 쳤지만, 주먹으로 친 것 같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하랄드의 고개가 꺾였다.
“커, 커어억!”
고개가 꺾인 채 하랄드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숨은 쉬고 있지만, 일어나지를 못했다.
하밀부르크는 쓰러진 하랄드를 한심한 눈으로 쏘아보곤 고개를 돌렸다.
더 신경 쓸 가치도 없는 놈이다.
하밀부르크는 쓰러진 하랄드는 그냥 두고서 성벽 끝자락으로 걸어갔다.
성벽 너머로 보이는 건 끝없이 내리는 눈과 그 사이로 보이는 하운드의 군세.
하밀부르크는 북쪽을 향한 채 목청껏 외쳤다.
“질문 하나만 하지!”
막심은 성벽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넌 또? 자유 해방단의 단장? 네 놈이 낄 자리가 아니다, 썩 꺼져.”
“너도 좀 닥쳐라, 너에게 물은 게 아니니.”
막심을 무시한 하밀부르크의 시선이 향한 곳은 거대한 늑대 이방인 하운드였다.
하밀부르크는 이방인 하운드와 눈을 마주친 채 물었다.
“이방인 하운드, 그대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보아하니 그대는 하룬가에 원한이 있어서 이번 사태를 일으킨 거 같은데 어째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거지?”
“…….”
“말튼 성의 토벌군을 전멸시킨 건 이해해도 브레이튼 성과 말보른 성을 공격할 이유는 없었다, 복수가 목적이라면 그 복수의 대상만 죽이면 될 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대체 뭐냔 말이다!”
하밀부르크의 노성에 막심의 가는 눈이 살며시 치켜떠졌다.
치켜떠진 막심의 가는 눈에는 분노와 살기로 가득했다.
감히 자신을 무시하고 주인과 대화를 하려 하다니.
막심은 눈에 살의를 비치며 명령을 내리려 했다.
“주제도 모르고 나서는 군, 다 죽어라!”
“그만, 잠시, 대기.”
“하, 하운드님? 아, 알겠습니다.”
하운드의 말 한 마디에 막심은 꼬리 내린 개처럼 고개를 숙였다.
막심이 물러가고서 하운드는 시선을 하밀부르크에게 옮겼다.
하운드의 깊고 푸른 눈이 하밀부르크와 마주쳤다.
잠시 침묵이 있고서 하운드는 입을 열었다.
“물었지, 이유, 간단, 복수다.”
“하룬가에 대한 복수라면 혼자서도 가능한 일 아닌가? 이렇게 군대까지 모으면서 할 필요가 있나?”
“대상, 복수, 하룬가외에, 너희 모두가 포함된다, 그녀의 죽음에는 너희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니.”
위엄 넘치던 하운드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지며 감정이 드러났다.
분노, 모든 것을 불태울 것만 같은 격정이 실린 감정이었다.
하운드는 살짝 격해진 목소리로 내뱉듯이 말했다.
“난 이 세상이 밉다.”
하운드는 짧게 말한 뒤 시선을 돌렸다.
쓰러진 하랄드와 성벽 위에서 떨고 있는 병사들, 그리고 하밀부르크와 영주 샤로텐 모두를 한 번씩 훑어보고서 하운드는 이를 드러낸 채 거칠게 포효했다.
“그렇기에 전부 복수할 거다, 그녀를 죽게 한 하룬가, 그녀의 죽음을 방관한 놈들, 하룬가의 만행을 방치한 말튼 성 그리고 이딴 상황을 만든 이 세상 모든 놈들에게!”
후우웅!
하운드의 포효 섞인 외침에 주위에 날리던 눈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운드 근처에 있던 병사들의 대열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말튼 성 성벽 위에 있던 이들 또한 크게 흔들렸다.
“무, 무슨 포효가!”
“으어어어어억!”
“야, 야! 정신 차려!”
귀를 막고 괴로워하거나 기가 약한 이들은 거품을 문 채 그대로 쓰러졌다.
하밀부르크는 분노하는 하운드를 보며 혀를 찼다.
“쳇.”
조용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놈이길래 말이 통하는 놈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적당한 주제로 최대한 대화로 시간을 끌 생각이었지만, 애당초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밀부르크는 어떻게든 하운드와의 대화를 이어보려 했다.
“그녀의 죽음? 자세히 설명을 해줘라 어쩌면 피를 흘리지 않고 타협점을 찾을지도 모른다.”
“타협점? 이 세상을 전부 불태우고 난 뒤 찾아보지, 지금은 모조리 죽일 거다.”
하운드는 제안이나 협상 따윈 할 생각이 없었다.
항복하면 자신의 부하로 받아주고 싸우면 전부 죽일 생각이었다.
하밀부르크는 입술을 깨문 채 다시금 설득했다.
“지금이라도 멈춰라 다 의미 없는 짓이다.”
“크르르, 의미 따윈 있든 없든 상관없다, 지금은 그저 내 앞을 가로막는 놈들을 부술 뿐이다.”
“말튼 성을 함락시키고 우릴 모두 죽이면 다음은 제국군이다, 그 전력으로 이길 수 있을 거 같냐?”
“전부 다 죽이지 않을 거다, 쓸 만한 녀석은 내 부하로 만들 거다, 내 목표는 고작 성 몇 개가 아닌 이 세상이니.”
하밀부르크의 경고에도 하운드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운드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막심에게 신호를 보냈다.
막심은 싱긋 웃으며 바로 손을 들며 외쳤다.
“항복이라도 했으면 목숨이라도 건졌을 것을, 괜히 얄팍한 수나 쓰니 다 죽는 거다 멍청이들!”
막심이 손을 내리자 하운드의 군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짐승과 병사 도합 만 명이 넘어가는 거대한 군세가 말튼 성을 집어삼키기 위해 다가왔다.
성벽 위에 올라온 가온 일행은 이 모든 광경을 목격했다.
가장 먼저 올라온 렘 브란트는 다가오는 하운드의 군세를 보고 절망했다.
“이제 다 끝이야, 저걸 무슨 수로 막아.”
렘 브란트는 아까 전 괴물 늑대의 포효를 듣고 기절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어차피 죽을 거 그냥 기절한 채로 조금이라도 편한 죽음을 맞는 게 좋았을 텐데.
절망하던 렘 브란트의 귀에 아르실의 신난 목소리가 들렸다.
“아하하핫, 가온 들었어? 여기 말튼 성은 물론이고 전부 다 죽인다는데? 되게 화끈한 녀석이야!”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 좀 하지 마.”
“듣는다고 뭐라 할 놈이 있나? 아 가온 네가 싫다면 안 할게 헤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아르실의 목소리에 렘 브란트는 내심 희망을 품었다.
남을 조종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이방인 아르실.
그녀가 나선다면 저 괴물을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