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박진만입니다. 한 여자의 남편이었고, 다섯살 딸아이의 아버지입니다.
비록 찢어진 개사료 포대에 쓰고는 있지만, 이 글은 제 유서이자 혹시 제가 죽더라도 제가 발견한 것을 전달하기 위한 편지입니다. 딸아이가 잘못된다면 세상을 구할 희망은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으므로, 딸아이의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겠습니다.
저는 수의사입니다. 세상이 뒤집어진 와중에 직업 같은 건 아무런 상관 없겠지만, 제 발견이 망상이 아니라 관측의 결과라는 점을 알리기 위하여 덧붙입니다. 저는 시술은 물론 수술도 가능한 대형 동물병원을 운영했습니다.
계엄령이 내려진 후, 저는 징발되어 서울의 모든 네발 달린 동물을 안락사 시키는데 동원되었습니다. 무슨 목적으로 동물을 죽여야 하는 건지는 저에게도 알려주지 않았고, 사실 안락사 한 건 동물원의 동물들 밖에 없습니다. 옆집 야옹이, 건넛집 멍멍이, 거기에 길거리의 동물들까지. 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제가 언론에 동물들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처분되었다고 떠드는 동안 실제 작업은 군인들이 했습니다. 소독용 솜을 야무지게 말아 귀를 틀어막아도 총성은 고막까지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하루 종일 귀가 먹먹했지만, 군인들 사이에 떠다니는 소문을 주워듣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미국과 인도의 전쟁. 수세를 뒤집기 위한 인도의 생화학 공격. 광견병 연구. 파병나갔던 군인들을 통해 국내에 전파. 정부는 부산을 포기했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계획. 서울의 완전 봉쇄.
단편적이어도 남들보다 반박자 빠르게 준비하기에 충분한 정보였으나, 저는 아무것도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런 것에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것들이 서울에 들어왔을 때, 도시는 단 두시간 만에 잠잠해졌습니다. 그 뒤로는 뜯어먹거나, 뜯어 먹히거나, 반쯤 뜯어 먹힌 채로 다시 돌아다니거나, 셋 중 하나였습니다.
쌀 반 포대, 라면 열세 봉지, 김치찌개용까지 포함하여 참치는 네 캔, 배급표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했고, 딸아이의 간식용 젤리 한 줌이 전부였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집 안에서 숨소리까지 죽이며 지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파트 17층이었으니 대화 정도는 편하게 했어도 되었겠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그게 옳은 판단 같았습니다.
그때 아내의 주요 일과는 칭얼거리는 딸아이를 달래는 것이었고, 제 일과는 딸아이의 장난감 망원경으로 밖을 내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쓸 때 없는 짓 그만하라고 말했으나, 수의사는 관찰하는 직업입니다. 사람은 물어보면 어디가 아픈지 대답하지만, 동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로지 관찰하는 수 밖에 없지요. 그것들도 한때는 생물이었으니 약점과 결함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알아낼 수만 있다면 딸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내의 말이 맞았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매번 해부를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라고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쌀이 두 줌 정도 남았을 즈음에, 딸아이의 이마가 불덩이같이 달아올랐습니다. 저는 몇 달 만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진 않았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집집마다 찾아가 혹시 해열제나 하다못해 두통약 같은 거라도 잊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다행히 계단에 그들의 흔적은 없었으나, 문을 열어주는 집 또한 없었습니다. 인기척이 있어도 아무도 도와주겠노라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이었겠지요. 고민을 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원망합니다. 저주합니다. 딸아이와 똑 같은 병에 걸려 약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가 그것들에게 뜯어먹히길 바랍니다.
결국 저희는 제가 운영하던 동물병원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동물용 약이라 해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고, 병원에는 식량도 있었습니다. 개사료는 상당히 균형 잡힌 식품이고 열량도 높으니까요.
어째서 동틀 무렵을 선택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거리로 조심스레 첫 발을 내디덧을 때에는 올바른 판단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상처에 난 딱지처럼 엉겨 붙은 핏자국과 살점이 보여도 그것들은 없었으니까요. 서늘한 아침 공기가 너무나도 상쾌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더군요. 병원에는 들어왔지만 아내가 그것들에게 물려버렸습니다. 아내는 집에서 챙겨온 망치를 내밀며 그것들로 변하기 전에 자신의 머리를 부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저와 함께 딸아이를 이 세상으로 불러온 여자의 머리를 으깨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것으로 변하는 과정이었는지, 저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는지, 온갖 욕설을 퍼붓던 아내는 결국 그것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운이 따라줬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아내 였던 그것을 쌓여있던 개사료 포대로 깔아뭉갤 수 있었습니다.
그 지경이 되었음에도 저는 아내였던 그것의 머리를 짓밟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의 얼굴을 한 채로, 그것은 개사료 포대 아래에서도 저는 물론 딸아이까지 물어 뜯기 위해 끊임없이 버둥거렸습니다. 몇 달 동안 계속이요.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그것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와 딸아이는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을 짓누르고 있는 사료를 한 줌 먹어 치울 때마다, 그것의 자유와 저희 가족의 파멸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것이 죽었습니다. 저는 고뇌 끝에 아내가 어머니로서 딸아이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 여기며, 아내를 해부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심장에서 딸아이의 미래를 열어줄 수 있는 열쇠를 발견했습니다. 심실 내부에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기생충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심장사상충은 개나 고양이에게 기생하는 기생충으로서 모기를 통해 감염됩니다. 치료를 받지 못하면 반드시 죽는 무서운 기생충입니다. 사람의 체내에서는 성체가 될 수 없지만, 만약 이 모든 사태가 제가 군인들에게서 들었던 소문과 관련이 있다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광견병 때문에 사람이 그것들로 변하게 되었고, 그것들에게 심장사상충이 기생할 수 있다면, 이 사실을 어떻게든 이용할 수 있다면, 그것들을 멸절 시킬 수 있습니다.
이제 개사료도 얼마 남지 않았고, 저는 딸아이와 함께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개사료 포대 따위에 유서를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딸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고,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와 아내를 매장해주고 싶습니다.
부디, 누군가 이 글을 볼 필요가 없기를. 딸아이와 함께 안전지대를 찾아 내 손으로 그것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기를.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서영이라도 그것들 없는 세상에서 살아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