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누님~ 저는 위험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려고 했다니까요~”
철창 안에 갇혀있는 거구의 외계종이 자연스레 공용어를 구사했다. 통역기 없이, 공용어를 자연스레 구사하는 그는 괴물처럼 생겼지만, 이곳에서 나고 자란 존재다. 비록 거주 구역 A-C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이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고 있다.
“시끄러워, 내가 밖에서 보호복은 입고 다니라고 했잖아. 왜 입지 않는 거야?”
그들은 정해진 곳이 아니라면 어디에나 있다. 비록 낮에는 보이지 않고 구석진 곳, 땅속 깊숙한 곳에 숨어있지만 밤이 되면 음식을 파는 곳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외곽 지역은 법적으로 거주지역이 아니므로 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흉측한 모습에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그들은 위치추적이 되고 특수한 광선에 발광하며 반응하는 옷을 꼭 입고 다녀야 한다.
“아니 그 기능도 없는 가짜 옷은 왜 꼭 입어야 하는데요. 그냥 불편하기만 한 죄수복이라고요 그 옷…”
“쉿!”
문 너머로 누군가가 걸어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한두 명이 아니다. 경관들의 타이핑하는 소리, 걸어 다니는 소리, 숨을 쉬는 소리까지 순간 날카롭게 멈춘다. 문 너머에 무슨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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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작은 경찰서에 정장을 입은 자들이 우르르 몰아닥친다. 그들은 자신들이 A 구역의 관련인이라며 소개하고 무기를 꺼냈다.
“잠시 후, 걸걸한 목소리의 사내에게 전화가 온다. 실종 신고를 하고 싶다고할 거야. 어떻게 해서든 그 신고를 무시하고 전화를 끊어라. 그리고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하면 된다.”
4명 중 무기를 꺼내지 않은 한 명은 스프레이를 꺼내 보이는 창마다 뿌리기 시작했다. 한 경찰관이 밀폐된 공간에서 스프레이를 뿌리는 그를 저지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가 팔을 잡았다.
“댁들 이렇게 찾아와 행패를 부리면…”
-투캉 펑! 카강!!
제대로 자세도 잡지 않고 빠르게 발사한 총구에선 섬광이 일었다. 경찰관의 정강이를 관통한 탄은 바닥에 닿아 주변을 검게 그을리게 했다.
“으아아악!!!”
다리에 총을 맞은 경찰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풀썩 쓰러져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댔다. 스프레이가 전부 칠해지자 미세하게나마 밖으로 통하던 소리는 곧 안으로 울리게 되었다.
총알이 발사되는 시점에 멀찍이 서서 그들을 경계하던 경찰들은 자신들의 총기로 손을 움찔했지만, 앞에 서서 자신들을 조준하는 한 명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손을 멈추어야 했다.
“흩어져있는 3명이 나를 쏘기 전에. 나는 너희 중 둘을 죽인다. 그리고 내 뒤에 있는 녀석이 쓰러져있는 놈과 나머지 셋을 죽인다. 허튼수작은않는 게 좋아.”
스프레이 칠을 끝낸 괴한은 서서 굳어있는 경찰들의 옆으로 슬며시 다가가 벨트와 연결돼있는 총기들을 끊어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던져 처리했다.
“아아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이잉
상 위에 설치된 전화기에서 발신자의 정보가 화면에 출력된다. 전화기는 진동을 내며 앉아있는 경찰관을 재촉했다. 전화기의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로는 이들이 말하는 실종 신고자인지는 알 수 없다.
-지이잉-!!
곧바로 응답하지 않자. 옆자리, 좌측 우측 책상의 전화기가 모두 울렸다. 좌측에는 자리하고 있는 경찰관이 없고, 경찰들의 권총을 해제한 남자가 앉아서 상에 다리를 올리고 있다. 총을 들고 있는 남자는 자신의 바로 앞에 앉아있는 경찰관에게 총구를 까딱 움직이며 말했다.
“받아라.”
-철컥
“…….”
가운데에 앉은 경찰관이 수화기를 들기 전, 우측의 구석에 있는 경찰관이 전화기를 들었다. 그는 식은땀으로 얼굴 전체가 축축이젖어가고 있었다. 가운데에 서 있는 남자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투캉!
뒤에서 그를 백업하고 있는 동료가 앉은 상태로 총을 발사한다. 경찰관이 전화기를 들으려는 순간 번쩍이는 탄은 그대로 경찰의 미간에 명중. 머리를 관통해 뒤의 벽에 피를 튀겼다.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전부 죽는다.”
우측 동료의 죽음을 본 경찰관은 벌벌 떨며 상의 아래로 들어간다. 상의 아래쪽에는 비상연락 스위치가 달려있다. 이 버튼을 누른다면 수 분내로 다른 경찰서와 지구대에서 경찰들이 소집되어 달려올 것이다.
-투쾅!!
묵직하고 무언가를 토해내는 듯한 격발음이 3번 터져나왔다.
낌새를 알아챘는지 중앙에 선 남자가 곧바로 손목을 돌려 아래로 숨은 경찰이 있는 방향에 총을 발사한다. 총은 틱틱 소리를 내며 불이 꺼졌지만, 수 초 내로 곧 점등하며 -티잉,하는 소리를 내었다.
돌과 소량의 금속으로 내부가 처리 된 사무용 테이블은 젤리처럼 흘러내리고 온몸이 찢겨 터진 경찰관은 그대로 탄의 힘에 밀려나 쓰러져 바닥에 늘어진다.
“아이참, 누가 보면 전부 죽이러 온 줄 알겠어.”
좌측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있는 사내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 보이며 웃었다.
“어차피 모두 죽일 생각 아니었나?”
-투쾅!! 툭 투캉!
총 4명의 인원이 건물에 있었다. 총알은 여럿 발사됐지만, 그 목표는 총 네 명 사격은 이제 멈췄다. 문 뒤에 바짝 붙은 여경은 호흡을 천천히 멈추고 허벅지의 숨은 파츠를 열어 권총탄창을 꺼냈다. 맞은 편 철창에 있는 외계인은 덩달아 숨죽이며 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문 너머로 작게 목소리가 들린다.
“저기 뒤에 문은 뭐지? 누가 있는 거 아니야?”
“철창이 있고…”
여경은 철창 얘기가 나오자마자 몸을 숙였다. 열 감지 카메라로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덩치를 보니 잡종 하나가 갇혀있군.”
좌측에 앉아 거들먹거리는 남자는 확인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온다. 발걸음이 점점 가까워진다. 여경은 엄지손가락에 탄환 하나를 꺼내 중지를 걸쳤다. 힘이 실렸는지 오른손 전체가 부들부들 떨린다.
철컥하며 손잡이가 돌아가고 무게감 있는 문은 시끄럽게 열렸다. 그는 문을 열고 벽에 스위치를 켰다. 4명 정도가 들어갈 철창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덩치 큰 분홍빛 외계인이 보인다.
“흠. 밖에 경찰은 전부 죽였나요? 그럼 문이라도 열어주시죠?”
“뭐?”
외계인은 능청스럽게 새까만 옷차림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문의 우측 벽에 바싹 붙은 여경은 아랫입술을 깨문 채 고인 침을 삼켰다. 한 발 두 발 사내가 철창으로 다가가자 여경은 문을 몸으로 밀어 순식간에 닫았다.
무거운 쇳소리와 함께 쿵 하는 굉음이 울렸다. 여경은 손가락을 튕겨 사내의 허벅지에 총알을 튕겨냈다. 소리 없이 날아간 권총용 탄은 그의 허벅지를 관통하고 바닥에 쇠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남자는 고통에 허벅지를 감싸 쥐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숨겨진 무기가 꺼내어 들려있었다. 외계인은 탄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연기하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크윽!”
“으아아 살려주세요, 안 까불게요!!!”
여경은 권총 탄창을 벨트에 다시 끼워 넣고 왼손으로 대구경 소총 탄환을 꺼내 엄지에 걸고 그의 이마에 조준했다.
“잠깐……”
-타캉!
-우득!
묘하게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속에 박힌 탄환은 그의 뇌를 짓뭉개고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옆으로 쓰러졌다. 거의 동시에 발사한 그의 광탄은 여경의 어깨를 관통해 뒤로 날아갔다. 여경은 열쇠고리 같은 것을 철창 속 외계인에게 던져주었다.
“하하 내 연기가…”
외계인은 전자식 열쇠를 받고 팔을 뻗어 철창을 열었다. 하지만 문밖에서 날아온 광탄 서너 발에 몸이 충격을 받고, 그는 뒤로 물러섰다. 쇠문은 타각 거리는 격발음 후에 녹아 구멍이 뚫리고, 벽은 차례대로 부서져 내렸다. 여경은 몸을 숙이고 구석으로 굴러 이동했다.
“아아. 그래도 이 탄은 꽤…”
-타캉 타캉 탕 타칵!
두 명이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광탄에 문은 허물어지듯 형체를 잃었고 외계인을 가로막던 철창도 터지고 녹아 저지력을 잃었다. 외계인은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이잉!
“지금 장전 중이야!”
여경은 소리쳐 유치장 내의 외계인에게 밖의 상황을 알렸다. 흉측하고 큰 다리를 들어 그가 철창을 발로 차니 철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2명 중 1명이 장전이 끝났는지 다시 광탄을 뿌려댔다. 여경은 다시 소총 탄환을 몇 발 뽑아 손에 쥐었다.
“잡종이 탈출했다. 내가 처리할 테니…….”
외계인은 다 부서진 문을 넘어 총을 든 그에게 달려들었다. 외계인은 자신의 꼬리를 휘둘러 그의 목을 노렸다. 꼬리에는 원래 보이지 않던 발톱 같은 게 몇 개 솟아있다. 사람이나 외곽의 노이드들은 버티지 못할 무게의 꼬리다. 설사 발톱에 찍히지 않더라도 무게에 온 척추가 뒤틀리며 부서질 것이다.
-후웅!
정장의 사내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피하고 뒤로 신호를 보냈다.
“변수가 생겼다. 외곽지역의…”
꼬리가 전부 회전하자 날카로운 손톱이 그를 향해 뻗어져 왔다. 몸을 숙인 채로 피하기에는 늦었다 판단했는지 그는 바로 팔을 올려 손톱을 막았다. 옷과 피부가 찢겨나가고 곧 석유같이 검은 피가 쏟아졌다.
“경찰들을 모두 죽이고 타 구역의 경찰로 대체한다고 연락해.”
그는 선글라스를 벗어서 던졌다. 붉은 안광과 날카로운 눈매가 드러난다. 이미 뒤로 도망치던 동료는 사라진 후였다. 벽 뒤에 있는 여경은 손을 뻗어 이리저리 팔을 움직이며 각도를 계산했다.
경찰서 내부를 다 때려 부수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두 명은 서로 주먹을 부딪치며 격하게 싸우고 있다. 완력으로는 이길 상대가 없을 줄 알았던 외계인이 점차 밀리는 게 소리로도 느껴진다. 팔이 반쯤 찢겨나간 상태에 정복을 입은 채로 싸우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전투력이다.
‘뒤에서 경찰 누님이 조준하고 있어… 3초만 자리에 멈추게 하면…’
상체를 화려히 움직이며 주먹을 꽂아대는 사내에게 밀리는 중이던 외계인은 가드를 내리고 날카로운 손을 뻗어 상대의 발등을 노렸다.
그는 살짝 뛰어 뒤로 빠지며 외투를 벗어 던졌다. 외투는 외계인의 얼굴을 향해 날아 그의 시야를 가렸다.
“엎드려!!”
외계인은 곧바로 자세를 낮춰 뒤로 굴렀다. 찰나의 순간 공중에 떠 있던 남자에게 날아가는 3발의 탄환과 그 궤도를 쫓듯 발사된 5발의 권총탄은, 그대로 침입자의 가슴팍과 온몸에 박히고 그 중 두 발은 관통됐다.
우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털썩 쓰러진 그는 온몸에서 피를 쏟아내며 고개를 들었다.
“슬럼가의 경찰서치고는꽤 어렵군…”
여경은 천천히 걸어 나와 입구 근처에 쓰러진 그가 보이도록 외계인의 뒤 편에 섰다.
“거기 계집, 이름은?”
“C-22…. 아니 청.”
“청? 홍콩계인가… 더 좋은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었을 텐데…”
여경은 앉은 채 죽어있는 동료에게 다가가 얼굴을 쓸었다. 금방의 싸움과 여러 발에 의해 생긴 총상에 시신은 흉측이 훼손된 상태였다. 그녀는 상 아래에 서랍을 열어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누워서 피를 흘리고 있던 남자는 불쑥 팔을 들어 허리춤에 숨겨진 작은 권총을 들어 여경을 겨눴다.
-타당! 탕!
“이 일에 개입하게 된 것을… 후회하게 될 거다 잡종.”
그를 끝까지 내려다보고 있던 외계인은 기습적으로 발사된 총알을 꼬리로 막아냈다. 그러지 않아도 얼굴에 멍과 옆구리, 어깨의 총상에 피곤해 보이는 상태였는데 꼬리에 3발의 탄이 박히자 얼굴을 심하게 찡그렸다.
“비밀경찰은 죽지 않는다… 다음에 다시 보지, 외곽의 여경이여.”
그는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았다. 안광이 천천히 사그라든다.
“어디서 온 녀석들이지?”
여경은 단거리 무전기를 작동시켜보지만, 어디에서도 수신하는 곳이 없다. 외계인은 꼬리를 들어 손바닥에 올리더니 갑자기 고함을 질러댔다.
“끄아아아아악!!!”
“앗 깜짝이야.”
“게에에에에엑아파아아앗 옆구리에 구멍 났어!!!”
여경은 짜증 난 표정으로 그를 무시하고 옆으로 돌아 문을 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사람이 이런 골목에 다닐만한 시간은 아니다. 그녀는 문을 닫고 징징거리는 외계인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니 뭐해요. 아프다니깐? 저는 아직 여기 수감자라고요, 빨리 치료해줘요!!”
그는 앉아서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여경에게 칭얼댔다. 여경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전투경찰이라서 그런 중상은 손 못 대. 그리고 벌써 아물고 있는데 웬 엄살이야?”
그 말대로 외계인의 매끈한 피부에는 이미 딱지가 올라와 출혈이 멈추고 주변이 퍼렇게 뜨고 있었다. 관통상의 주변에 멍이 생기고, 일시적으로 통증이 느껴지는 중이었다.
“곧 다른 경찰서도 이놈들의 습격을 받을지 몰라. 먼저 나가봐야겠어.”
“예?? 저는 어떡해요!!”
“너 같은 놈들 보살펴주는 보스가 있던 거 아니었어?”
대화를 끊고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분명 무거운 몸인 그녀인데도 달리는데 소음이 하나 나지 않았다.
자리에 퍼져있던 외계인은 벌떡 일어나 헤진 민소매 상의를 벗어 바닥에 버렸다. 곧 쓰러져 죽어있는 비밀경찰에게 다가간 그는 다리를 올려 그의 얼굴을 밟아 부쉈다. 우직, 뼈보다 훨씬 단단한 강도가 발바닥을 통해서 느껴진다. 그는 유리로 된 경찰서의 정문을 부수고 경찰서의 내부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깨놓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신고하겠지?”
이후 천천히 일출이 시작되고 그 와중에 청은 외곽지역에 6곳의 치안 관련 장소 중 2곳의 지구대와 1곳의 경찰서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싸늘히 죽어있는 경찰관들이 있을 뿐 어느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몇몇 곳은 격렬히 대항한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조금의 혈흔만 발견되었을 뿐 비밀경찰의 시체는 찾을 수 없었다.
“동시에 여러 곳에들이닥친 건가…? 아니면 우리가 마지막 차례였나…”
누렇게 거리가 떠 보이기 시작했다. 해가 뜨고 사람들이 거리에 하나둘 돌아다닌다. 다리 주변에 피가 묻어있고, 먼지를 뒤집어쓴 그녀는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띈다. 그녀는 거리에 뽈뽈 거리는 택시 하나를 잡아 뒷좌석에 탔다.
“안녕하십니까? 목적지를 말씀해주세요.”
그녀는 피에 젖은 발 치와 더러운 상의를 손으로 털었다. 그녀는 번화가의 사거리 쪽의 주소를 읊었다. 옷가게들이 모여있는 거리였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아까 엿들은 발신자의 정보를 조회했다. 외곽지역 기업 6할 이상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대 기업체인 네오콤, 그 네오콤의 직속으로 속해있는 철강회사의 대리. 큰 사고도 친 바가 없고 특이사항도 눈에 띄지 않는다. 별다른 정보가 없다시피 해, 휴대폰을 끄려는 차에 아래에 특이사항 한 줄이 눈에 띈다.
나노봇 시술받지 않음.
그녀는 휴대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그 평범하다면 평범할 회사원이 어떻게 비밀경찰들과 엮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그의 뒤를 쫓을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나는 번쩍이는 홍등과 술집들을 뒤로하고 택시에 탔다. 기사가 부자연스런 목소리로 내게 목적지를 묻는다. 나는 우리 집과 조금 멀리 떨어진 도로의 도로명을 말하고 의자에 몸을 눕혔다.
-지이잉
휴대폰이 울리자, 나는 강박적으로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귀에다 가져다 댔다. 번호는 박 과장의 번호다.
“어어. 박 씨!”
잠깐의 침묵이 이어진다. 3초 동안의 바람 소리, 더 듣지 않아도 이 전화는 박 과장이 건 게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집으로 가고 있나?”
그때의 변조된 목소리다. 나는 덩달아 목소리를 깔며 대답했다.
“응.”
“외지에서 온 비밀경찰이 자네를 노리고 있어. 박 과장은 내가 잘 지키고 있으니 안심하고.”
박 과장 얘기가 나오니 무엇인가 치미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급히 상대의 정체를 물으며 소리쳤다.
“잠깐!! 당신 누구야, 끊지 마!”
다시 5초 정도의 적막이 흐르고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몸조심하고, 그럼 나중에 보자고.”
“이런 제기랄!!”
“안 좋은 일이 있으십니까?”
욕에 반응한 운전로봇이 어눌한 말투로 내게 묻는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창가 밖으로 알록달록한 분위기의 조명들이 빠르게 눈꺼풀을 치고 지나갔다.
저 망할 반쪽자리들은 프라이버시도 모르나?
창가의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택시로 1시간이면 C 구역의 장벽에서부터 외곽의 끝까지 갈 수 있다. 그만큼 좁고 온도 차가 심한 곳이다. 아까 거리의 지저분한 활기는 빠르게 식어버렸다.
이러니 매일 출근할 때에 우울감도 심할 수밖에. 시커멓게 변색한 담장과 각지고 낮은 건물들, 골목 사이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는, 쇠소리를 내며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방해할 뿐이다.
-부스럭
집의 문 앞에 서서 주머니에서 손을 빼자 옆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양옆의 건물은 비어있는데… 난 그대로 굳어 조용히 심호흡했다. 정말 끔찍할 정도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저 멀리 택시가 방향을 돌려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나는 문의 인식기에 엄지를 갖다 댔다. 삑 하는 인식 음과 함께 문이 철컥 열린다. 아까 회사 앞에서 양아치들을 만났을 때도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던 거 같았는데… 그 자식들… 뭔가를 경고해주고 싶었던 걸까?
베리어스라는 자경단이 새벽에 길을 쏘다닌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몇 번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야근하면서도 창문 너머로 몇 번 봤었지…
나는 집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터벅 터벅 턱.
나는 그대로 현관에서 굳어있다. 밖에 분명히 누가 있다. 박 과장을 잡아간 그 신원불명의 남자? 어머니를 납치해간 납치범? 둘은 동일인물인가? 수 백 가지 생각이 한 번에 머리를 휘저었다.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온몸의 근육은 수축하여 있다. 언제라도 갑작스레 움직이면 온몸에 쥐가 나버릴 거 같다.
나는 그대로 몸을 홱 돌려 현관을 벌컥 열었다.
밖에는 아무도 없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리며 떨린다. 약의 부작용에 환청 같은 게 있었나? 목에 힘을 푸니 기도를 갈아대는 기침이 튀어나온다.
그대로 주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서랍 안의 긴 식칼 하나를 꺼냈다. 싱크대의 물을 트니 짙은 녹물이 주르륵 흘러나온다.
“후… 더 뱉을 욕도 없군.”
-캬학
나는 핏물 같은 물을 꺼버리고입안의 걸쭉한 피를 모아 싱크대에 뱉었다. 나는 칼을 든 채로 침실로 들어갔다. 잠을 좀 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