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불만이냐?”
“아니이~?”
“아무리 봐도 이상은 없는데. 다음에 이상한 느낌이 들면 바로 말해.”
“에이~ 그럴 필요 없다고요~ 지그 씨.”
“꺄아아악?!”
갑자기 들린 다른 여자의 목소리에 디어가 황급히 옷으로 몸을 가렸다.
“이야~ 절경이었네요~ 저도 끼면 안 되나요?”
“꺼져 변태자식!”
“에이~ 같은 여자끼리 너무 하시네요 디어 씨.”
“여긴 왜 왔어?”
어수선한 이 상황 속에서도 그는 작업시간이 지연되지 않게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좀 전에 꼬마 인형 고친 걸 보고서 저도 이거 공짜로 점검 좀 해주셨으면 해서요.”
자신의 저격총을 내미는 그녀는 틸리드라고 하며 그와 나이는 동갑이지만 첩보원으로서 엘리트라고 불린다.
그에게는 그녀가 엘리트든 뭐든 간에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사실과 자신이 그녀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10만 헤르.”
“헐~ 무슨 가격이 그렇게 터무니없어요?”
“멀쩡하니까. 가. 바뻐.”
“에이~ 그러지 말고요~ 장전 할 때 조금 뻑뻑한 느낌이라니까요?”
“그 정도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을텐데? 고친다면 15만 헤르.”
“어째서 가격이 불어나는 건 가요!”
따지는 말투인데도 불구하고 표정은 늘 싱글벙글해서 어린아이 같기도 하며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기분 나쁜 녀석.
늘 보면서 느끼는 생각이다.
“아참. 식사는 하셨나요? 이른 아침부터 가게를 여셨던 거 같은데~ 배 안 고프세요?”
“이 작업이 끝나면 먹을 거다.”
아무리 가라고 거슬린다고 말해도 가만히 들을 그녀가 아니라는 건 저번에 총으로 쐈을 때도 그의 집에 눌러 앉아 있는 걸 보고서 반
쯤 포기해버린 상태다. 물론 총은 맞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었지만 정면으로는 그녀에게 당할 수 없다.
“흐-음. 소총 개조인가요. 얼마나 남았나요?”
애쉬는 아직 노려보고 있는 디어를 놀리면서 즐기고 있으면서 틸리드를 신경 쓰고 있다.
“앞으로 1시간.”
“뭐야 2시간이라고 했잖아.”
“빨리 움직이면 더 줄일 수 있어. 그래서 아까 뭐라고? 배고프냐고? 고프다면 먹을 거라도 줄 거냐.”
“요 앞에 새로운 토스트 가게가 생겼는데 괜찮으시면 잠깐 데이트 어떠신가요?”
“데, 데이트?! 뭔데 네가 얘랑 데이트 하는데!”
“에이~ 뭘 그리 화내시나요? 늘 말했지만 저는 첩이라도 괜찮다니까?”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중얼거리면서 틸리드를 한 번 노려보고는 소총 공이뭉치에 윤활유를 바른다.
“뭐 지그 이 괜찮다면 난 상관없다만?”
애쉬는 그의 볼을 어루만지지만 그는 냉정하게 말한다.
“늘 말하지만 나보다 더 좋은 남자 많으니 너희들도 얼른 찾거나 찾아왔으면 좋겠다.”
“뭐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지그 씨 같이 이렇게 여성을 위하시는 분은 흔하지 않다고요.”
틸리드는 어느 새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그의 곁에 앉았는데 디어가 발로 그녀를 밀어버리자 꺄르르 하고 아이마냥 웃는다.
“아 그리고 요즘 무슨 소문 들은 거 없나요?”
“소문?”
대답 없는 그를 대신해서 애쉬가 대답하자 틸리드가 상관없다는 듯이 그녀를 보며 얘기한다.
“어라? 안드로이드인 두 분에게도 안 들렸나요? 요즘 들어서 안드로이드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려서 말이죠.”
“뭔데.”
퉁명스러워도 안드로이드라는 말에 반응하면서 디어도 묻는다.
“아니 글쎄
왕이 돌아왔다
고 하잖아요.”
그 말에 움찔하면서 디어가 곁눈질로 지그를 본다.
그는 가지고 온 소염기를 총구에 끼우면서 쉽게 빠지지는 않는지 살피고 있다. 관심이 없는 걸까 싶어 디어는 복잡한 심경이지만 별 반응은 없는 거 같아 조금 안심이었다.
틸리드는 지그를 바라보는 디어 눈빛이 달라진 걸 눈치 채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뭐 들은 거 없나요? 아니면 알고 있는 거라도.”
“…후우- 왕이라.”
입을 열자 이번엔 애쉬가 그를 바라본다. 틸리드는 애쉬를 보면서 실실 웃고 있다가 순간 표정이 변했다.
애쉬가 웃고 있다.
지금껏 감시했던 중에 본 적 없는 섬뜩한 웃음.
아차하며 애써 평소처럼 바보 같은 웃음을 짓는다.
“왕이 생긴 건가?”
“소문에 의하면 그런 거 같아요.”
“음 됐다.”
장전손잡이를 잡아당겨보면서 소총을 보면서 작업 끝을 알리는 그의 말에
“네?”
“끝. 토스트 먹을 건데 너희들도 따라올래?”
“난 됐- 아니지. 장바구니 가지고 따라갈게.”
“난 패쓰. 아, 그리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잘 거야? 안 즐긴 지 꽤 됐잖아?”
“무, 무슨! 너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남 앞에서!”
“어머. 그래도 난 같이 사는 식구 몰래 하지는 않는데?”
“이익! 헛소리 마! 얼른 가자! 아니지 얼른 씻어!”
틸리드는 조용히 애쉬를 살폈지만 아무 일 없는 듯 디어를 놀리고 있었다.
아까 그 표정은 뭐였지?
“아! 저 아직 목욕 전인데 저도 같이…”
“이 변태 둘이 진짜!! 다 나가버려!!!”
“어머머 사돈 남 말 하시네~”
“애쉬, 디어. 쟤 못 들어오게 해. 나 씻는다.”
“말 안 해도 그럴 거야!”
“명령을 따르죠.”
팔짱을 낀 채로 틸리드를 노려보는 디어의 뒤로 한쪽 손을 가슴에 댄 채 허리 숙여 인사하는 애쉬가 보인다.
지그가 씻으러 자리를 비운 틈에 틸리드는 애쉬에게 넌지시 물었다.
“애쉬 씨 당신 뭔가 알고 있지 않나요?”
“으~응?”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듯한 새침한 표정에 틸리드가 깔깔 웃었지만 속지 않는다며 얘기를 계속했다.
“ 왕 이라니 들어본 적 없는 말이라고요. 그 말을 안드로이드가 말했다는데 같은 안드로이드로서 들은 적 있을 거 아니에요? 게다가 아까 지었던 그 이상한 표정은 뭔데요?”
“표정이라니?”
“시치미 그만 떼시죠? 당신들. 알고 있었잖아요. 제가 한 달 전부터 그를 감시하고 있다는 걸요.”
“우후후후.”
애쉬가 가까이 다가가자 긴장 하면서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디어는 어쩔 수 없나 싶어 머리를 만지면서 상황을 지켜본다.
필요하다면 그녀를 죽일 의향.
“그거 알아?”
“뭘요?”
애쉬가 뻗은 손은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듯이 온기 없이 차기만 했다. 열이 오르면서 등줄기를 흐르는 땀은 들키지 않았겠지만 긴장 때문인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며 품 안에 있는 권총을 신경 썼다.
장전했었나? 몇 발이지? 아니 애초에 그녀들한테 9m 권총이 통하긴 해? 무겁더라도 매그넘 탄을 쓰는 걸로 가져올 걸 그랬나? 등에 메고 있는 저격총을 꺼내기에는 시간도 걸리고 이런 근거리에서는.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라는 말.”
“우와~ 사람의 속담을 알고 계시네요. 대체 몇 년이나 묵으신 거죠?”
“어머 지금 그게 중요할까나~?”
기계작동음이 조금 들리는 가 싶더니 목에 뭔가가 닿아있는데 면적이 넓지 않다. 시선을 내리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눈앞의 둘은 틈을 주려 하지 않는다.
디어도 자기 몸을 변형하려는 순간.
“애쉬, 디어.”
“어, 어?”
그의 목소리에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디어가 대답하면서 뒤돌아봤다.
“소총 주인 오면 말해. 그 전에 나오겠지만 혹시나.”
“어, 알았어.”
욕실 문이 닫히고 나서 애쉬는 살짝 뒤를 보고 입을 열었다.
“너나 네 뒤 인간들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내버려둬. 나도 딱히 이제 와서 문제 일으킬 생각은 없어서.”
틸리드 목에 닿은 게 떨어져 손으로 돌아간 걸 애쉬가 확인시켜주고 비웃음 비슷한 미소가 보인다.
“글쎄요. 저도 목숨 걸고 하는 일이라서 말이죠.”
“어머 언제든 너 따위는 죽일 수 있어.”
“게다가 어차피 널 죽이면 다른 감시가 붙을 거 아냐?”
웬일이냐면서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지만 거슬린다며 치워버리는 디어 눈이 애쉬를 노려본다.
“그건 그럴 거에요. 솔직히 흥미로워요. 최연소 전쟁 영웅의 전역 후 삶이라던가, 아무리 국가유공비가 나온다고는 하지만 이런 고
성능의 안드로이드를 두 명이나 데리고 산다는 거라든지.”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는 안드로이드는 거의 인간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그녀들이 인간과 똑같이 생활하고 감정도 가지고 있다면 한 지붕 아래에 사랑하는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자기
말고 또 있다면 당연히 질투나 시샘 정도는 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다.
“너희 인간들도 분명 다처제나 다부제가 있잖아? 게다가 우린 안드로이드니 인간의 법에는 속하지 않지. 그건 좋다고 생각하 고 있
어.”
“난 딱히 네가 없어도 상관없는데도 말이지. 아니 차라리 어디 다른 인간 찾으러 가면 안 되냐?”
“어머. 그럼 네가 나가야지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고 하니?”
“뭐, 돌이 뭐? 뭐 어쨌다고? 뭐라는 거야!”
“오호호~ 재밌단 말이야 인간의 말. 너도 시간 날 때 한 번 봐봐. 꽤 재미있어.”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모여 있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가리켰지만 디어는 발끈하면서 말했다.
“야! 저거 내가 빌려온 책이잖아!”
“그래 그러니까 얼른 그 로맨스 책 좀 다 읽어줄래? 그 책만 안 읽었다고.”
“흥. 쓸데없이 빨리 읽기는! 좀 더 시간을 들이면서 글자를 하나하나 보면서 정독을 해보란 말이야!”
방금 전까지 위험한 분위기는 어디 간 건지 모르겠다며 자기 목을 한 번 만지고는 어깨를 으쓱인다.
안드로이드인지 사람인지.
“네에네에 잘 나셨네요 거북 씨.”
“누가 거북이야!”
“얘기하다 말았는데 한 가지 질문을 할게.”
“뭔데요?”
씩씩 거리며 투덜거리는 디어를 뒤로 한 채로 애쉬가 다시 틸리드를 본다.
“넌 자기를 구해준 구원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모른 척 할 수 있어?”
“구원자요?”
잠시 생각하는 듯 했지만 틸리드는 그럴 만큼 모질지는 않다 고 대답했다.
“그래.”
애쉬는 웃어주었다.
본 적 있는 미소.
짓궂기도 하며 때로는 농담(주로 야한 농담)을 치면서 그에게 장난을 치지만 그 끝에는 상냥하게 웃는, 그런 미소.
전에 그가 구해줬다?
“그가 은인인가요?”
“은인 겸 귀여운 생물이지.”
“귀엽다니. 정말 이상해요 애쉬 씨.”
“야 잠깐 애쉬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뭐가 또 그런 걸까나?”
뭔가 더 물어보려는 틸리드를 막듯이 디어가 끼어들어서 표정을 구긴다.
“내가 나중에 들어왔다는 얘기 말이야!”
“그게 왜?”
“내가 너보다 훨씬 전부터 쟤랑 알고 지냈다고!”
“아하~ 그래?”
“헹~ 그렇다고! 오히려 네가 굴러들어온 돌이라고!”
“어머 그렇구나. 내가 잘못 말했나보네.”
기고만장해서 허리춤에 양 손을 댄 채로 가슴을 쫙 펴지만 애쉬는 그걸 보고 콧방귀를 뀐다.
“그렇구나~ 나보다 먼저 그를 좋아했구나~”
“그럼그럼.”
“그럼 먼저 야한 짓하고 싶었던 거구나?”
“그렇, 아니 뭐라고?”
“아니 그렇잖아? 나보다 먼저 좋아했고 아무래도 군에서 만났을 때를 얘기하는 거 같은데 그랬으면 이미 친구로서가 아니라 연인으
로서 사랑하고 있는 거잖아?”
양쪽 입꼬리가 길게 올라가면서 디어에게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의 그걸 네 안에 넣고 싶어진 게 나보다 먼저라는 거 아냐?”
“?! ????!!!!! 뭣?!”
“어흠…! 콜록! 휘~”
온도가 올라가며 과열되는 것 마냥 당황하는 디어의 모습과 애쉬의 작은 목소리를 용케 듣고 얼굴을 돌리며 헛기침 후 휘파람을 부는 틸리드.
“너, 너는 무슨 말만 하면 그렇게! 난 그렇게까지는!”
“어머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야? 그에게도 성욕이 있을 텐데 그걸 노예인 우리들이 해결해줄 수도 있는데 뭘 그래 사춘기 학생 마냥.”
“너는 그러니까 쫌! 말 좀 가려서!!”
“응? 굳이 가리고 나와야 했나?”
“잇?! 왁?!”
뒤에서 씻고 나와서 물기를 닦아내며 바지만 입고 나온 목소리에 놀라고 모습에 또 한 번 놀란 디어를 보면서 그가 고개를 갸웃한다.
“변함없이 좋은 몸이지만 역시 좀 살집 좀 더 붙이면 더 멋질 텐데~”
“아직 물기 있다.”
“뭐 어때~? 나나 얘 같은 고성능인 안드로이드가 이 정도 만진다고 고장 나는 것도 아닌데 뭘. 얘얘, 만져봐.”
“뭘 만지라는 거야 변태자식아!”
“얼른~”
“아 그럼 제가 대신 만져도 될까요?”
“아 진짜 시끄럽네 이 변태년들아아아!!!!”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정신없는 판국에 그가 눈을 가늘게 뜬다.
“나까지 정신없어지려 한다. 나가자.”
“아싸! 토스트 지그 씨가 쏘시는 거죠?”
“그러-”
“뭐야 너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우리한테 구걸하는 거야 지금?”
“뭘 이 정도로 그러는 거에요 쩨쩨하게!”
“이 정도는 무슨! 너 지금까지 23만어치 얻어 먹었어 정!확!히!”
“그, 그걸 셀 줄이야… 꽤 하시는데요 디어 씨.”
“세고 있었어?”
“후- 좋습니다! 오늘은 제가 쏘죠 지그 씨! 갑시다!”
“음.”
점심값 굳어서 잘 됐다고 말하는 그에 반해 틸리드는 훌쩍이는 척 했지만 우는 척은 하지 마! 라며 등을 밀어버리는 디어를 뒤로 애
쉬가 지그 옆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응?”
“별로 감흥이 없어? 왕이 돌아왔다. 라는 말.”
“돌아왔다. 라. 그게 왜.”
“그건 너를 인정하지 않는 건데.”
“지금은 안 돼.”
“나중은 되는 거야?”
“너희들이 있는 동안에는 안 돼.”
“그럼 만약 우리들이 없어진 후에는?”
“그 전에 내가 죽지 않을까 싶은데.”
“지그.”
“애쉬.”
멈춰선 둘이 서로를 마주 본다.
“왜 화났냐.”
“화났다니. 그런 귀여운 표현하지 말아줘. 난 지금 조절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널 봐서 참고 있는 거라고.”
“이유가 뭔데?”
“딱 봐도 사칭하는 녀석이 나온 모양인데 저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이제야 들었다는 게 차암~ 그래 이럴 때 뭐라고 하더라? 기분
참 뭐 같다고?”
“사칭이라니 무슨 말이냐. 애초에 누가 누굴 사칭하고 있는 건데?”
“지그!”
다시 토스트로 향하던 발걸음을 애쉬가 그의 팔을 잡으며 막았다.
“애쉬.”
“난 싫어.”
애쉬가 그의 얼굴에 손을 대고서 말한다.
“네가 그렇게 음식을 잘 안 먹는 걸 보면서 말라가는 걸 보면 다시 그 때처럼 죽은 눈을 하면서 죽고 싶다고 말할까봐 싫어. 디어가
먼저 너를 만났다는 사실에도 질투하고 있어. 싫어. 감시하고 있는 녀석을 저렇게까지 챙겨주는 게 싫어.”
그리고는 입맞춤을 할 듯이 얼굴을 가까이 한다.
“나 이래보여도 소유욕 강한 나쁜 여자야.”
그가 눈을 가늘게 뜬다. 지금까지 같이 지내는 동안 애쉬는 예측하기 어렵고 통제하기 어렵다는 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모습만 봐도 그렇다.
가끔씩 꿈을 꾼다.
사지가 다 잘린 채 감금당해 먹고 싸기만 하는 기계만도 못한 상태가 되는 악몽.
“지그. 넌 내 거야.”
이윽고 그의 숨이 부딪쳐 돌아와 얼굴에 닿을 정도의 거리가 되는 순간 갑자기 귀 옆에서 쉬익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애쉬가 얼굴을 뺐다.
“또 방해네.”
“야아!!! 너 뭐하는 거야 지금!”
“어머 내가 뭘?”
“잠깐 저 여자한테 한 눈 판 상태로 지금 뭘 하려고 하는 거냐고 진짜 한 숨 돌릴 틈도 없이 너는 언제나언제나!”
“디어 씨 그러면 안 되죠.”
“뭐?”
갑자기 차갑게 정색하며 돌아서는 디어를 보며 움찔하며 변명했다.
“아니 그 연인들끼리 가볍게 키스 정도는…”
“키스-? 너 지금 나랑 장난 치냐?”
“그런 건 애송이 디어에게는 무리야. 왜냐면 아직 이이랑 키스도 안 했거든.”
“키, 키스따위 어언- 제든 할 수 있거든?”
“음성부가 망가진 거 같은데 손보고 갈까?”
“안 망가졌어!”
“방금 전에 목소리가 조금 이상 했는…”
“안 망가졌다고! 너도 이 상황에서 안고 있지 말라고!”
“뭐가 어때서~”
소란을 틈 타 어느 새 지그를 뒤에서 포옹하고 있는 애쉬를 붙잡으면서 도저히 못 보겠다며 그녀를 끌고 같이 앞장서서 걸었다.
“이야~ 정말 사이좋네요. 서방 씨?”
“멋대로 내 이름 바꾸지 마라.”
팔꿈치로 지그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부럽다고 말하는 틸리드를 보면서 그는 짜증나는 모기 쫓듯이 손짓 한 번 하고 걸음을 옮긴
다.
애쉬가 말하지 않아도 신경 안 쓰인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우리들의 절대자. 왕이시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