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법소녀 E의 전설
막 잠에서 깨어난 소녀는 눈을 비비며 속옷차림으로 텐트에서 나왔다. 갓 밤의 장막을 찢어버린 날카로운 햇살이 소녀를 반겨주었다.
소녀는 하늘을 보고 한탄과 한숨이 섞인 하품을 했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원래라면 푹신한 침대에서 느긋하게 일어나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날이었다. 소녀의 휴일을 망친 것은 소녀가 운송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돌아가던 중에 만난 태풍이었다. 하루 전 만하더라도 세상을 갈아엎을 것처럼 몰아치던 태풍은 웅덩이만 남긴 채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소녀는 휴일을 갉아먹은 하늘을 원망에 찬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오랫동안은 아니었다. 소녀는 텐트에서 자신의 옷을 꺼내 입었다.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감청색의 오버 니 삭스, 밑단에 검은 줄이 들어간 회백색의 미니스커트, 치마의 윗단에 간신히 내려오는 짧은 회백색 블라우스.
“……또 커졌어.”
소녀는 낑낑 거리며 블라우스 단추를 잠그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붉은색의 부츠를 신었다. 마지막으로 황토색 머플러를 목에 돌돌 감았다. 화사하기는 했지만 소녀가 입은 옷은 군복이었다. 아직 전투 경험은 없었지만 소녀는 군인이었다.
전 세계가 전쟁의 불꽃에 휩싸이고 있었으나 소녀의 조국은 다행히 그 불길을 피하고 있었다. 소녀의 조국이 몇몇 국가에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아직까지 직접적인 전투는 없었기에 소녀의 조국에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는 국가는 없었다. 기껏해야 몰래 수송대를 공격하는 것 뿐. 소녀와 마찬가지로 군인인 소녀의 언니는 수송대를 보호하기 위해서 머나먼 땅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정황을 봐선 소녀의 조국도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소녀도 전장을 누비게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흐흐흥~♪”
군인이라고는 해도 소녀는 소녀.
소녀는 기지로 돌아가서 먹게 될 디저트를 떠올리곤 콧노래를 부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지로 향했다.
2. 34번째 맞선
세상에는 난제라는 것이 있다.
어려울 난, 물음 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혹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예시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짜장면 먹을래, 짬뽕 먹을래?’, ‘물냉면 먹을래, 비빔냉면 먹을래?’, ‘너 혼나야겠다, 몇 대 맞을래?’, ‘너 정말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거야?’, ‘너 왜 그렇게 사니?’, ‘이걸 보고서라고 써온 건가?’ 등등. 그리고……
“어떻게 해드릴까요?”
미용실에서 의자에 앉으면 가장 먼저 받게 되는 이 질문. 수십 번이나 들었는데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했으니 실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3. 어느 날 용사는 마왕성에 쳐들어갔는데 마왕은 없고 마왕 누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래서 용사는……
어느 날 용사는 마왕성에 쳐들어갔는데 마왕은 없고 마왕 누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래서 용사는……
(중략)
"마왕! 아니, 처남! 너의 누님과 결혼하고 싶다!"
4. 여선배와 남후배의 고찰. ~근친에 대한 고찰~
‘교수님 개인 사정으로 오늘 수업은 휴강합니다. 보충은 차후에 공지하겠습니다.’
한가한 오후였다. 1시부터 시작되는 수업이 갑작스럽게 휴강을 해서 다음 수업까지 4시간이나 시간이 비어버렸다.
“PC방이나 갈까.”
아무도 듣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내뱉은 말이었다.
“PC방 보다는 내 자취방에 안 갈래?”
바라지도 않던 대답이 들려왔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늘어지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그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는 얼굴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뭐가?”
그는 ‘머리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저 남잔데요.”
“그래서?”
“선배 혼자 자취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그런데?”
“……제가 이상한 짓하면 어쩌시려고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말했다.
“이상한 짓 할 거야?”
그는 숙고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결과를 통보했다.
“……아뇨.”
5. 구미호와 동거하는 법
무능한 식충이 : 들어올 때 떡볶이랑 순대 좀 사와. 간 많이. 간 많이. 간 많이. 간 많이!
오늘의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 즈음에 동거인에게서 날아온 카톡.
허구한 날 집에만 틀어박혀있는 주제에 맨 날 이런 시덥잖은 것으로 나를 부려먹는다. 배알이 꼴리게 만드는 동거인이지만 같이 살게 된 이후로 집세를 전부 전담해주니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주자. 그래도 청소랑 설거지는 자기가 해주면 좋겠는데 말이다.
6. 노병의 마지막 전쟁
갑옷을 다 입은 노병(老兵)은 몸을 움직여 어디 불편한 곳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갑옷입는 걸 도와주는 시종의 실력이 좋았기에 갑옷은 큰 무리 없이 움직였고 불편한 곳도 없었다.
노병은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나가보거라.”
시종은 고개를 조아린 후 천막을 나섰다.
병사가 나간 후 노병은 힘겨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약한 모습을 안 보이기 위해 일부러 참고 있었던 것이다.
늙으니 갑옷을 입는 것도, 갑옷을 입고 서 있는 것도 벅찼다.
그는 세삼 한 숫자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육십과 칠십 사이의 숫자.
여기에 나이라는 단서가 붙는다면 이 숫자는 독특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노병은 세삼 자신이 꽤나 오래 살았다고 자각한다. 육십을 넘으면 장수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전장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자라면 그건 기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노병은 자신의 두 손을 쥐었다 피는 짓을 하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기적적으로 이 나이까지 살았다. 나라를 위해서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전장을 누볐다. 젊었던 시절부터 알던 사람들 대부분은 세상을 떠났고 그나마 남은 사람들은 편안하게 남은 생을 누리고 있었다.
이제 슬슬 쉴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몸도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노병은 의자에 앉았다.
“끄응!”
의자에 앉기만 했는데도 고단함에 절로 입에서 소리가 튀어나온다.
씁쓸하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 전장을 휘젓던 과거가 거짓말 같다.
손깍지를 낀 노병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손은 아랫배로, 시선은 하늘로, 의식은 과거로.
노병은 눈을 감았다.
오직 암흑밖에 보이지 않았어야하건만 노병은 바다를 보고 있었다.
석양의 빛을 머금은 붉은 바다를.
7. 아가씨와 검
그는 검이다.
누군가의 대행자, 누군가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라는 뜻의 비유는 아니다.
그는 검이다.
손잡이가 있고, 손잡이에 금속으로 된 날붙이가 달린 무기. 일절의 비유도 없는 담백한 사실이다.
그러면 한 가지 의문이 새로 생길 것이다. 어째서 검에게 ‘그’라는 인칭대명사를 쓴 건가?
간단하다.
그는 사고할 줄 알았다. 생각할 줄 알았고, 궁리할 줄 알았고, 고민할 줄 알았고, 답을 낼 줄 알았다. 사람을 규정하는 수 많은 말 중에 ‘사람은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다.’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면 충분히 그에게 ‘그’라는 인칭대명사를 붙여도 용인되리라.
8. 코토리가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
미키 :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거야.
히비키 : 뭐가?
타카네 : 여기 추가주문이옵니다. 새우볶음밥에 천진반,
미키 : 코토리는 왜 결혼 안하는 거야?
히비키 : 우와아아아아아....
타카네 : 명란젖계란찜과 새우튀김
히비키 : 미키, 그거 설마 피요코한테 직접 물어본 건 아니지?
미키 : (갸웃)물어보면 안 되는거야? 그래서 사무실에서 코토리한테 물어봤을 때, 코토리가 울면서 뛰쳐나간거야?
히비키 : 우와아아아아아....
타카네 : 치킨 샌드위치, 타이피엔
미키 : 하지만 미키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거야.
히비키 : 아무리 그래도...피요코한테 그런 거 물어보면 안되지. 안 그래도 신경쓰고 있는 것 같던데.
타카네 : 푸룽세, 야끼우동
미키 : 미키, 허니랑 결혼하고 싶어도 아직 나이도 안되서 못하는 거지만 코토리는 나이도 많으면서 왜 안하는거야?
히비키 : 우와아아아아...
9. 실험실의 삼각형
실험실, 숙소, 실험실, 숙소, 실험실, 숙소, 실험실, 숙소, 실험실, 숙소, 실험실, 숙소, 실험실, 숙소, 실험실, 숙소, 실험실, 숙소, 실험실, 숙소, 실험실, 숙소,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 실험실을 오가는 생활을 한지도 어언……잠깐. 최근에는 그냥 실험실에서만 생활한 것 같은데.
……살려주세요. 집에 가고 싶어요. 제대로 씻고 싶어, 간이침대가 아니라 제대로 된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싶어, 이제 무규칙하게 보이는 문자나열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짓은 그만하고 싶어. 아니, 그냥 4시간 이상 연속으로 자고 싶어.
……같은 생활도 익숙해져버렸다.
잠깐, 인간적으로 이런 생활 익숙해지면 안 되는 거 같은데.
어라? 나 지금 엄청 중구난방으로 말하고 있지? 여러분! 이론마법학이 이렇게 무서운 학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려요! 오지마! 아냐! 다시 생각해보니 오는 게 좋겠어! 와! 많이 와! 많이 와서 나대신 이 지옥의 재물이 되어버려라!
“……선배, 뭐하세요?”
“……현실도피.”
10. 주인어른은 어째서 돌쇠에게만 흰쌀밥에 고깃국을 주었나?
‘주인어른은 어째서 돌쇠에게만 흰쌀밥에 고깃국을 주었나?’
도련님의 방을 청소하던 중에 발견한 책의 제목이옵니다.
실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제목이옵니다.
여기서 이 책의 제목을 말하는 자는 주인어른도 돌쇠도 아닌 제삼자라 사료되옵니다. 이 삼자를 임시로 마당쇠라고 명명하겠사옵니다.
마당쇠의 주인어른과 돌쇠에 대한 호칭을 보아하니 마당쇠는 돌쇠와 비슷한 하인이라 사료되옵니다.
허나 이 마당쇠는 은근히 자격지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사옵니다.
주인어른은 어째서 돌쇠에게‘만’ 흰쌀밥에 고깃국을 주었나?
여기서 ‘만’이라는 조사로 마당쇠의 자격지심을 읽어낼 수 있사옵니다.
흰쌀밥과 고깃국.
아, 이 어찌나 감미로운 울림인지요.
저희 같은 하인들에게는 쉬이 접하지 못할 귀한 음식이지요.
그런데 돌쇠는 이 흰쌀밥과 고깃국이라는 진미를 먹었사옵니다만 마당쇠는 먹지 못하였습니다.
절대적 빈곤보다 더욱 비참한 것은 상대적인 빈곤이지요. 그것도 다른 계급간의 상대성보다 동계급간의 상대성이 더욱 그러하옵니다.
저도 몸종의 입장이기에 마당쇠가 느끼는 박탈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사옵니다.
제가 마당쇠와 같은 일을, 그러니까 도련님께서 저를 빼놓고 저와 같은 몸종인 언년이에게만 흰쌀밥과 고깃국을 먹였다면 저는 분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언년이를 미워하게 될 지도 모르겠사옵니다.
유산계급이 무산계급을 분열시키는 방법은 이리도 간단하옵니다.
무산계급 중 일부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더욱 충성하게 만들고 다른 자들의 분노를 그 일부에게 돌리는 것이지요.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나뉘어져 있는 이상 이러한 갈등의 씨앗은 뿌려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이러한 갈등을 없애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모든 신분을 철폐하고 모두가 평등한 입장이 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옵니다.
유산계급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무산계급은 그것을 타파하여야 하옵니다.
이때 필연코 유혈충돌이 일어날 것이옵니다.
허나 기존의 사회질서는 폭력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옵니다.
유산계급이 무산계급의 힘 앞에 서 벌벌 떨게 하옵소서.
이러한 역경에서 무산계급이 잃을 것은 쇠사슬이고, 얻을 것은 흰쌀밥과 고깃국이옵니다.
전 세계의 하인이여, 단결하라!
……하오나 저는 따지자면 은혜를 받는 입장이기에 그냥 가만히 있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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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하드디스크에서 발췌...
극혐 도입부 중 최강은 역시나 쓰다가 만 글의 도입부겠지요. 으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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