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가 끝나고 자신의 개인연구실로 돌아가려는 교수를 한 학생이 불러 세웠다.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수업에 대한 열의가 강하고, 수업에 대한 이해도 빠른 학생이었다. 그 학생에 대해 나름 호의를 가지고 있었던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엇인가요?”
학생은 들고 있던 무거운 책을 펼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설명했다.
해당분야에 대해서 좀 더 깊은 지식과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지금은 몰라도 상관없는 부분이군요. 원래대로라면 내년 즈음에 배우게 될 겁니다만……학생군은 그냥 넘어가지는 못하겠지요?”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제 연구실에 가서 설명해드리지요. 아, 혹시 이후에 다른 강의가 있나요?”
“두 시간 뒤에 있습니다.”
“충분하군요.”
그렇게 둘은 교수의 개인연구실로 갔다.
교수의 설명은 근 30분 동안 계속되었다. 교수는 학생이 아직 배우지 못한 부분이 나오면 거기에 대해서도 추가로 설명하고, 학생은 설명을 듣다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질문했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교수가 말했다.
“이해하셨나요?”
“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봐야겠습니다.”
학생은 연습장에 방금 자신이 들었던 설명을 자신이 나름 이해했던 대로 써내려갔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교수는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꺼내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10여 분이 지난 후.
“교수님은 어째서 결혼을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학생은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내던졌다.
학생이 갑자기 꺼낸 당돌한 질문에 당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교수의 연구실에는 학생과 교수밖에 없었던 데다가 이 당돌한 질문의 대상이 된 교수도 이런 질문에 당황하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수는 별 동요 없이, 자신이 보고 있던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말했다.
“질문이 잘못되었군요. 저는 결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겠건만 학생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어째서지요?”
교수는 한숨을 내쉬고는 책을 덮었다. 아무래도 대충 넘기기는 힘들 것 같았다. 지금 확실하게 답을 내줘야 다음번에 이 같은 주제로 다시 대화를 하는 일이 없으리라.
“저는 결혼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없지만 적어도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요소들이 부족합니다.”
“교수님은 매력적이신 분입니다.”
학생은 얼굴하나 붉히지 않고 말했다. 교수도 마찬가지로 얼굴하나 붉히지 않고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허나 매력이라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기준이 애매모호한 요소입니다. 학생 군에게 제가 매력적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매력적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결혼은 매력만으로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매력만을 고려하고 이루어진 결혼은 몇몇 특이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필연코 불행으로 끝나고 맙니다.”
“교수님은 학계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학자이시지 않습니까.”
“저명한 학자라는 건 제 전문분야에 관련된 발언에 신뢰성이 있다는 거지, 결혼하기에 적당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저명한 학자라는 것이 제가 결혼하는 것을 방해하겠군요.”
“저명한 학자라는 게 어째서 결혼을 방해하는 겁니까?
“자신의 배우자는 자신보다 멍청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사실 여부를 떠나서 학자라는 사람들은 보통 타인에게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여겨지지요.”
학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대로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 만큼이나 혹은 자신보다 똑똑하길 바라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있지요. 허나 그런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수는 쓰게 웃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지요.”
교수는 단순히 자신의 배우자상을 말한 것이기에 거리낌 없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나 교수의 말을 들은 학생은 굳은 표정으로 억지웃음을 흘렸다. 부자연스러운 학생의 표정을 보고 교수는 어째서 학생이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추리해보았다.
잠깐의 사고 끝에 교수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 으. 그러니까 이건 저, 저보다 똑똑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나만큼이나 혹은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없어서 결혼을 못했다.’라는 뜻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 발언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여기에 대해서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했다.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더, 더군다나 저, 저는 제 전문분야 외에는 무지하고, 말주변도 없고, 사교성도 떨어지는데다가, 모아둔 재산도 없고, 연구 외에는 흥미를 가지지도 못하는데다가, 성격도 이상하고, 혼자 생각에 잠겨서 실수하는 일도 많고, 스스로를 꾸미는 것도 못하고, 나이도 결혼적령기를 지난데다가 그, 그리고 저 좋다는 사람도 없고……아으.”
변명하는 대신에 오만한 발언을 한 것을 희석시키려고 자신의 결점을 횡설수설하면서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말하면 말할수록 자신만 비참해지는데다가 학생의 표정도 점점 이상해지기에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억지로 말을 끊는다.
“…….”
“…….”
교수의 연구실에 제3자가 들어와 주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색한 침묵’이라는 자가.
어색한 침묵이 연구실에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할 때에 학생이 말했다.
“대충 이해했습니다.
교수는 의기소침해진 채로 말했다.
“……제가 결혼 못하는 이유요?”
“……수업이 끝나고 질문 했던 부분 말입니다.”
학생은 자신의 연습장을 교수에게 내밀었다.
“보시고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지적해주십시오.”
교수는 학생이 내민 연습장을 받았다. 마음이 어수선했기에 처음에는 그 내용이 눈에만 들어오고 그것이 머리로 전해지지는 않았으나, 아주 약간의 정보가 머리로 전해지고 머리가 그 정보가 자신의 전문분야라는 것을 인식하였을 때, 교수는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은 전부 잊고 연습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교수는 연습장에서 눈을 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하셨군요.”
“감사합니다.”
교수가 돌려준 연습장을 자신의 가방 안에 넣고 학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걸요. 그리고 학생 군이 잘 이해해주셔서 저도 가르친 보람이 있었습니다.”
학생은 미소를 짓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저는 다음 수업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다음에도 질문할 게 있다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학생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연구실을 나갔다.
교수는 학생이 나간 문을 잠시 보다가 방금 전까지 자신이 보고 있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다가 잠시 후 다시 얼굴을 붉히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방금 전의 대화를 다시 떠올렸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아아.”
아무래도 오늘밤에는 조금 늦게 잠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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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썼던 글이 갑자기 생각나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