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주사를 놓은지 사십분이 넘어가는데도 이놈은 도통 잠들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양손 양발이 꽁꽁 묶인 남자는 수술대가 부숴져라 덜컥거리면서 재갈을 빵빵이 물린 입으로 무어라 연신 소리쳐 대고 있었다.
"야 환장하겠네. 의사양반? 얘 왜 마취가 안되는거야, 약 달라는걸로 구해다 줬잖아!!"
머리가 반넘게 훌렁 벗겨진 의사는 파리한 얼굴에서 식은 땀을 비오듯 흘리며
"저 겨, 경우에 따라서언 마 마취가 자자잘 안드는 경우도 있고... 저기 그러니까..."
하면서 횡설수설 변명만 늘어놓았다. 장기적출도 해본놈을 시켜야지, 조직에게 빚진 의사라서 뒷돈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데려왔더니 이런 난리판이 벌어지고 있다. 담배갑엔 담배가 세 개피 밖에 남지 않았다. 니코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 일은 내키지가 않았다. 예수님이 보면 십자가로 졸라게 쳐맞을 새끼들 씨부랄. 이것이 장기매매업자들에 대한 니코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기독교인도 아니다. 군대에서 쫒겨난 뒤로 성당엔 발꿈치도 들이밀지 않았지만 니코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평소에 통나무장수(장기매매업자들)과 대화도 잘 나누려 하지 않았다. 이게 다 KKE 때문이지. 오라질 놈.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며 니코는 낡은 쇼파에 퍼질러 앉았다. 냉전시절, 소련의 지원으로 건설하기 시작한 이 건물은 원래 15층으로 계획되었으나 지금은 7층 뿐. 소련이 붕괴하면서 작업은 중단되었고 이 콘크리트 덩어리는 십년이 넘게 비바람을 맞으며 을씨년스럽게 버려져있었다. 붕괴 위험으로 사람들은 근처에 가까히 가려고 하지 않았고 덕분에 이 건물은 지금과 같이 장기를 적출하는 일과 같은 구린내 나는 사업장으로 쓰인다. 수술대에 묶인 남자의 비명소리를 더 듣기 싫어서 니코는 TV의 볼륨을 점점 올렸다. TV에선 화려한 도시를 배경으로 느끼하게 생긴 양키새끼가 반쯤 벗은 여자의 입술을 쭉쭉 빨아대고 있었다. 니코는 여자보다 남자의 손목시계에 눈길을 주며 비싸보이네 우리가 다 쓰러져가는 폐건물에서 사람 써는 동안 돈 많은 저새끼는 고층빌딩 식당에서 랍스타 넙적다리를 썰고 있을것이다. 근데 랍스타한테 넙적다리가 있나 몰라 씨부랄 이런생각을 하며 담배를 뻑뻑 빨아댔다.
아래층에서 숨을 쒹쒹 몰아쉬는 소리가 들리더니 땀범벅이 된 거한이 나타났다. 니코는 돌아보지도 않고 인사를 했다. 돼지는 이마의 땀을 슥 닦으며 망할 수술장소를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잡았냐고 욕부터 해댔다. 돼지는 니코의 동료였다. 스스로를 돼지라고 불러달라며 껄껄 웃을정도로 넉살좋고 무식한 돼지는 무식한 만큼 주먹이 먼져 나가는 사람이었다. 돼지는 수술대의 남자를 돌아보았다.
"왜 마취 안했어?"
"아 으 저기 주사 했는데요 약이 잘 아아아 안 안들어서요...그... 저기... 네..."
돼지는 다짜고짜 남자의 얼굴 한복판에 주먹을 날렸다. 쉴새없이 버둥거리던 남자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자 수술해 의사양반"
"이 이러다가 수술할때 깨면..."
돼지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까보다 더 세게 남자의 머리를 서너 대 내리쳤다. 못깰정도로 때려서 기절시켜면 된다. 돼지의 머리에서 나온 최선의 방법이었다. 뒤를 돌아보자 울먹이며 떨고있는 의사의 모습과 수술대에서 뚝뚝 떨어지는 오줌물이 보였다. 방광이 열린걸 보니 필경 돼지의 주먹이 훌륭한 마취약이었거나 저새끼가 죽은 것이다. 이젠 수술이 진행 될 거니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니코는 원래 군인이었다. 입대를 하던 해에 소련이 해체됨과 동시에 군대도 붕괴를 했고 니코 역시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아프간에서 죽었고 어머니는 이태 전에 병사. 갈곳이 없는 니코는 사촌 로만에게 몸을 의지 했다. 로만은 마피아의 말단 조직원이었고 니코가 범죄조직에 밀려들어가는 것은 컵이 넘어지면 안에 있던 물이 흘러나오는것 만큼이나 뻔한 수순이었다. 니코는주로 밀입국자를 화물선에 실어 미국으로 보내는 일을 로만과 함께 했다. 로만은 5년 전에 미국으로 갔고 니코는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쇼파에서 퍼질러 자고 있던 니코를 돼지가 흔들어 깨웠다. 그제서야 니코는 파들파들 떨고 있는 의사의 손에서 피범벅이 된 지퍼백을 낚아챌 수 있었다. 니코는 양철로 된 쿠키통에 콩팥을 던져넣고 손에 범벅이 된 피를 의사의 가운에 문질러 닦았다.
"뒤처리 잘해라 돼지야"
"걱정말고 전달이나 잘해 니코"
"수고 했수 의사양반"
지폐 몇 장을 주머니에 찔러주고 니코는 건물 밖을 나섰다.
니코는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공중전화 박스로 갔다. 애인과 통화중인 것처럼 보이는 제비같은 남자새끼의 허리춤을 잡고 밖으로 내치고 수화기를 들었다. 주화를 넣고 번호를 누른다음 한 두번의 수신음이 들이고
"왜 이렇게 늦어 새끼야"
"인제 뽑아냈어요."
"오 그래 알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리냐."
"한시간 반이면 가요"
"알았다 빨리 와라. 늦으면 죽여버릴거니까 그렇게 알어"
전화받는 새끼는 영 싸가지가 없다. 니코는 들릴락말락하게 욕을 하고 수화기를 쾅 내려 놓았다. 환전구에서 동전이 굴러 떨어졌다. 생각보다 적게 나와서 신경질스럽게 구멍을 쑤셔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몇 초 밖에 통화 안했는데 비싸게 받는다. 길가에 세워둔 자동차로 가면서 니코는 공중전화가 더 비싼지 창녀가 더 비싼지 잠깐 궁리해보다가 식이 복잡해지니까 이만 포기했다.
"이런 씨부랄"
한시간여만에 도시에 도착한 니코는 생각보다 일찍왔다고 속으로 즐거워함도 잠시, 콩팥을 넣어둔 쿠키상자에 얼음을 채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시간 밖에 안지났으니까 상관없겠지 고기도 몇 시간 가지곤 멀쩡하지 않는가. 덥다고 땀까지 흘렸던 니코지만 애써 오는길이 덥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했다. 수술이 잘못되면 큰일난다. KKE는 니코가 일하는 부두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조직 대장이고 그 잔혹함은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니코가 고분고분 내키지도 않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듣자하니 이번 손님은 KKE의 지인이다. 정말 만에하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니코는 마취도 없이 산채로 온몸의 장기를 뜯기고 풍선처럼 축 쳐진 몸뚱이를 하고 상어밥으로 던져질것이다. 불안한 생각을 애써 털어내며 니코는 얼음은 원래 파는 물건이 아니라는 호프집 주인의 주머니에 지폐를 몇줌 찔러 주고 얼음을 한 자루 퍼가지고 나왔다.
얼음이 그득한 과자상자 안에 손을 넣고 연신 콩팥이 차가운지 안차가운지 확인하며 니코는 병원으로 가는 발을 바삐 했다. 병원 입구엔 아까 전화를 받은 조직원이 서 있었다. 니코는 서둘러 상자를 넘겼다.
"으악 졸라 차갑네 양철상자 씨불!"
차갑다는 말에 니코는 조금 안도했다. 잘될 것이다. 이식도 잘될거고 봉합도 잘될거고 그 빌어먹을 환자새끼도 잘 일어나서 걸어다니고 술쳐먹고 약하고 여자랑 빠구리도 뜨고 하여간 잘될것이다. 니코는 이런 생각을 하며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니코 뭐 할말 있어?"
니코는 조금 흠칫하며
"어 아니 저... 불. 불 좀 줘봐요."
남자는 주머니에서 지포를 꺼내 던져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니코는 슬쩍 작별인사를 하고 남자의 손에 지포를 쥐여줌과 동시에 뒤를 돌아 그자리를 벗어났다.
잘 될 것이다. 모든게 잘 될거다 씨부랄
부두엔 화물선이 도착해있었다. 입이 거친 선원들은 크레인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물을 싣고 있었다. 배 아래쪽엔 밀항을 할 몇 사람이 죽 서 있었다. 얼굴이 반반한 여자와 힘이 세보이는 남자. 애를 업은 엄마 할머니 머리가 벗겨진 노동자. 다들 불안감과 함께 기대감으로 물씬 흥분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니코에겐 수도 없이 마주친 광경이었다. 저 여자는 창녀로 몇 루블에 팔렸고 몇 루블인 저 남자는 이제 공장 밖으로 한 발짝도 못나오겠지. 다들 팔려가는줄도 모르고 저런 표정을 하고 있을 거다. 물론 저중에 몇은 성공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비싼 양복을 사입고 비싼 시계를 차고 고층빌딩을 배경으로 반쯤 벗은 여자의 입술을 쭉쭉 빨아대겠지. 하지만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나는 그냥 부두에서 사람 숫자를 세고 배에 태우고, 그게 전부다 그것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콩팥은 니코의 머리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니코는 챠트를 펴서 인원수를 채크하며 뭔갈 열심히 퍼먹고 있는 돼지에게 다가갔다. 돼지는 니코를 보자마자
"편지왔다 니코"
"어디서?"
편지라니 의외다.
"미국에서"
"미국?"
"로만이 보냈어 사무실에 뒀으니까 읽어"
사무실의 지저분한 테이블 위에 갈색 서류봉투가 놓여있었다. 도장이 어지럽게 찍힌 봉투를 대충 찢어 열자 편지봉투와 네모진 뭔가가 떨어졌다. 편지는 로만이 보낸것이 맞았다.
니코 잘지내냐 로만이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난 여기서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거 같다. 구린일을 좀 하긴 하지만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돈도 상당히 벌었다. 해변에 아파트도 있고 스포츠카도 샀다. 형제처럼 자란 너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그런데 니코, 여긴 다 좋은데 일손이 부족하다. 미국으로 와라. 여긴 기회의 땅이다. 날 좀 돕다보면 너도 보란듯이 성공할 수 있다 니코. 올 줄로 알고 기다리고 있겠다.
-로만
미국이라. 니코는 픽 웃음이 나왔다. 니코는 마지막 남은 담배를 꼬나물고 담배갑을 구겨 던져버렸다. 미국이라. 나도 미국에가면 성공해서 비싼양복에 시계를 차고 고층빌딩을 바라보며 반쯤 벗은 여자의 입술을 쭉쭉 빨아댈 수 있는걸까? 봉투에 같이 들어있던건 낙타그림이 그려진 담배였다. 처음 보는 양담배(처음은 아니었다. 그의 보스가 양담배를 피우니까. 하지만 니코는 처음처럼 생각하고 싶었다)를 만지작 거리며 니코는 의자에 길게 기대어 앉았다. 로만은 스포츠카를 샀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뭘 하든 로만에게 앞서는 니코였다. 로만도 샀는데 나라고 스포츠카를 못사랴? 번쩍이고 기름도 많이먹는 놈으로 하나 사서 신나게 몰고 다니다가 옆자리에 여자를 하나 태워야지. 아니 뒤에도 태울까, 근데 비싼차에 뒷자리가 있었나? 타들어가는 담배연기를 바라보며 공상을 하던 니코의 휴대전화가 순간의 정적을 깨고 날카롭게 울려댔다. 아까 그남자. 병원앞에서 쿠키상자를 받아든 남자였다. 콩팥은 넘겼다. 지포도 확실히 넘겨줬다. 이남자는 나에게 볼일이 없을텐데 왜 전화를 걸었을까. 일 잘했다고 칭찬해줄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니코는 아랫배가 싸들해지고 오장육부를 빌딩 꼭대기에서 낙하시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난처한 표정으로 식은땀만 뻘뻘 흘리던 니코의 귀에 출항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이젠 틀렸다 나는 모르겠다. 이래가지고선 이판사판이다. 니코는 전화를 서랍속에 쑤셔넣고 급히 옷 몇가지를 스포츠 가방에 쑤쎠박은 다음 로만의 편지봉투를 집어 들었다.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단걸음에 계단을 내려간다음 니코는 허둥지둥 배에 올라탔다. 돼지는 당황한 표정으로
"야 니코 이새끼야 뭐해 배 출발해 내려!!"
"돼지야! 돼지... 그러니까, 이 씨부랄 모르겠다 나 미국간다 돼지야!!"
"무, 뭐어? 미국??"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돼지의 멍청한 표정을 뒤로 하고 배는 부두를 벗어났다. 돼지의 얼굴은 점처럼 작어지더니 이윽고 돼지가 점처럼 보이더니 어느새부두가 돼지만해졌다. 니코는 멍하니 자신이 인생의 삼분의 일을 넘게 살아온 부두를 바라보았다. 부두가 멀어진다. 저기서 니코는 일을 하고 담배를 피고 밥을 먹고 여자를 안고 또다시 일을 했다. 부두에서 이외의 삶을 상상조차 잘 해보지 않은 니코였다. 부두 끝에서 끝까지도 멀다고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데 그 부두가 이젠 사무실에 있던 어항만해보이지 않는가!
니코는 복잡미묘한 심정으로 새 담배갑의 비닐을 벗겨내고 담배를 한가닥 꺼내 물었다. 불이 붙자 익숙하지 않은 담배에서 쓴맛이 났다. 니코는 억지로 낯선 담배를 후욱 빨아들여 연기를 허파 안에 꾹꾹 눌러 담았다. 담배연기에 가려진 부두는 담배연기가 사라져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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