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과 매?너를 지켜 즐?겁게 듀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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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빠르지도 쳐지지도 않게.
두 사람이 하굣길을 함께 할 때는 그렇게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암묵의 룰이나 다름없었다.
육체적인 피로가 확연히 줄었다지만, 해방감의 발로인지 유진은 교문을 나서며 기지개 켜는 시늉을 해본다. 그리고는 늘어져라 한숨.
하늘이 서서히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흔하다면 흔한 풍경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곧장 들어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한동안 걸음을 서두르고는 했지만, 그조차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유진은 얼마 전에 깨닫고 말았다.
언제든, 어디서든, 고립되어 있는 자신에게 안전한 곳 따위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든 각오하면 된다. 그게 말이야 쉽지.
그 쉬운 마음가짐을 관철하는 데에 드는 부담은 정신적인 피로를 더하고 있을 뿐. 분명히 몸에는 전보다 기운이 돌고 있음에도 딱히 힘이 넘치는 나날이 되어주지 못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나마 마음이 놓일 거리라면, 덱 케이스가 언제든 듀얼 디스크에 붙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소꿉친구 성아린이 아직 멀쩡히 옆에 있다는 것 정도.
그조차 정말 안심해도 될지 의심해야 했기에, 지금도 유진은 아린의 뒷쪽을 걸으면서 주변을 슬금슬금 살피는 중이었다.
이렇게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면 눈앞에서 납치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 반대로 눈앞에서 다치거나 인질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리스크도 존재했다.
뭐가 됐든 이변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하다못해 최악에 이르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것이 유진 나름의, 그리고 최선의 각오였다.
"어디 갈 데 있어?"
"딱히. 가서 문제집 풀어야지."
질문에 돌아오는 것은 건조한 대답.
슬슬 짜증을 내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다행히도 아직 그런 단계까지는 아닌 모양이다.
그럼에도 유진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대답은 학생으로서 모범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요컨대 공부, 즉 학생의 본분을 다하겠다는 것 아닌가. 장하기도 하지.
한 편으로는 오히려 유진의 기운을 더욱 쏙 빼놓는 소리이기도 했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잊기 싫어도 깨우치게 해주니까.
"그러고 보니 시험 어떡하냐."
"공부하고 있다며."
"성적이 보답해준다는 보장은 없잖아."
"평소에 좀 잘 하지."
그러다 유진은 뭔가 위화감을 느낀다. 유진의 불평불만에 여느 때처럼 딴지를 걸어대는 아린이었지만, 묘하게 그 어조에서 평소만큼의 장난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건조한 대답이 돌아오는 것 정도야 어제 오늘 날은 아니다만, 오늘은 아까부터 표정을 읽지 않아도 유독 불편해 하는 것이 엿보였으니까.
이건 단순히 귀찮은 질문 던졌다고 바뀐 태도가 아닐 것이다. 시험이 가까워져서 나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일까.
그럴리는 없다. 그 동안 같이 등하교를 해온 유진은 그렇게 결론 내릴 수 있었다.
유진의 태도가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일까. 때가 되었나 싶었는지 아린은 슬슬 본론인 듯한 질문을 꺼낸다.
"너 말야."
"응?"
"아까 유노하고 얘기 중이지 않았어?"
유진은 갑자기 눈앞이 막막해지는 것을 느낀다.
"봤어?"
"…응."
역시 그 애가 언성을 높인 탓이겠지.
기왕이면 인적이 더 드문 곳을 택하지 그랬냐며, 이 자리에 없는 유노에게 속으로 따졌다. 물론 그러다간 딱히 마주치고 싶지 않은 놈들의 보금자리를 들쑤시는 꼴이 될지도 몰랐지만.
"무슨 얘기했어?"
"어…, 얘기해도 되나?"
"얘기해."
그나마 다행이랄지, 유노와 나눈 대화를 머리로 되새겨 보면서 변명거리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는 있었다.
"그게, 사실은 메이드 카페에서 일하던 거 비밀로 해 달래."
"그건 나도 봤잖아."
"그래서 너도 찾았는데 내가 다 얘기해 줄 테니까 괜찮다고 했어. 걱정 마."
"으음…."
아직 미심쩍은 시선을 완전히 거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왜? 내가 다른 애하고 얘기하는 게 그렇게 불안해?"
스스로의 태도를 지적당하자 힐끔 돌아본다. 아무리 봐도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어? 아니, 묘하게 심각한 분위기 같던데. 뭔 일 있나 하고."
"심각해질 수밖에 없지. 들킬지 말지가 달렸는데."
"우리 학교 딱히 알바 금지한 거 아니잖아."
"아니, 걔 이미지가 있잖아. 별로 관심없어 보이는 애가 그런 데서 일한다는 소문이 나돌면 어떡해."
"왜? 귀엽던데."
"걘 별로래. 거기서도 카드 구할 돈 마련하겠다고 억지로 일한 거고. 듀얼 실력도 키울 겸."
그럭저럭 짜맞춰지는 이야기에 아린도 나름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튼 이벤트 때 잠깐 일한 거고, 이젠 그만뒀다니까. 미안하다고 전하랜다."
"아쉽네."
"이 참에 내가 주소 교환하라 그랬는데. 걔한테 뭐 얘기 들은 거 없어?"
"아직은?"
"그래."
사실 반 거짓 반인 이 변명을 정말로 믿고 있을까.
만에 하나 진짜로 유노와 같이 지내는 것이 확정된다면 더 곤란해지지 않을까.
혹시나 들릴까 하며 유진은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러던 유진은 은연히 자신에게 의문을 품었다. 긴장할 이유가 뭐가 있나, 하고.
설령 유노와 뭔가가 있다는 게 들통난다고 해봤자 지금의 관계에 딱히 불리해질 것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곧 그럴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른다.
더이상 그녀에게 마음이 없다고 스스로 속일 생각은 없었으니까.
확실해진다면 언젠가 고백이든 뭐든 할지도 모른다. 그런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관계가 계속 일직선행일 것이라 확정된다면 아쉽지 않을리가 없다.
역지사지로서 입장을 바꿔본다. 그녀가 다른 이성과 관심이라도 갖는다면 자신도 저렇게 초조해할지도 모르는 일.
'어, 잠깐. 아린이도 설마….'
그렇다는 건 지금의 아린이 그렇다는 말일까.
혹여나 자신의 변명을 눈치채고 여전히 불안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긴 머리에 뒤덮여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뒷통수에 대고, 들리지도 않는 물음을 던진다.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것을 차마 직접 묻기가 곤란하다.
그럼에도 어쩐지 텔레파시처럼 생각이 빨려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진은 고개를 떨궜다.
만약 정말로 서로간의 관계에 긴장을 품는 것이라면, 오히려 한 발짝 나아갈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 의문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최근에 함께 있었던 일을 되짚었다.
그녀가 다시 덱을 짜며 복귀한 것은 자신과 어울려주기 위함일까.
그녀가 끌어안아준 것은 위로 말고 다른 뜻이 있었을까.
같이 카페로 향했던 것을, 카드를 사러 나간 김에 저녁을 먹으러 갔던 순간을 데이트라고 여겨도 될 것인가.
자신을 품에 받아준 것은 마음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석해도 되는 것인가.
남의 일이었다면 그냥 사귀라고 한 마디 날려줬을지도 모른다.
이성 간의 관계가 친구 이상이라면, 그걸 지켜본다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감질나는 광경일 테니까.
실제로 둘이 사귀냐는 물음이나 이미 그런 관계로 취급하는 대접을 예전부터 겪어온 참이다.
어쩌면 둘만 서로 모르고 있을 뿐, 남들이 보기엔 이미 답이 나온 관계가 아닐까.
한 편으로는 그런 마음의 격동에 찬물을 끼얹는 반론이 들려온다. 그렇게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도 될 것인가, 하고.
그 날 밤 같이 잠에 들고도 아무 일 없던 것은, 여전히 친구 사이라는 인식에서 멈췄기 때문이 아닐까.
친구 사이라도 갑자기 누구와 사귄다는 얘기를 들으면 괜시리 시기가 생기는 법은 아닐까. 타다노 녀석을 대입해 보면 그럴 것도 같다.
실제로, 둘이 사귀냐는 물음을 들으면 조건반사적으로 '아니'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던가.
자신은 이렇게 마음을 숨기고 있는 단계일지라도, 아린 쪽이 진짜로 그렇다면 어떨까.
그런 상태에서 섣불리 다가갔다간 여태껏 유지되던 사이조차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뒤따랐다.
이런 식으로 오도가도 못하는 자신의 마음이 답답해진다. 이렇게나 우유부단한 녀석이었냐, 하고 스스로 등을 떠미는 속마음을 마주한다.
이런저런 불안감과 타협한 끝에 유진은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고백은 당장 무리더라도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겠지.
적어도 확인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저기…"
그렇게 마음을 먹은 유진인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어?"
없다.
방금 전까지 뚜벅뚜벅 잘만 걷고 있었던 성아린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유진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린아?"
서둘러 둘러본 주변 거리는 딱히 이변이라 할 것이 없어보인다. 아직 해가 떠있는 하늘 아래, 빌딩 사이에서 사람들은 평소대로 거리를 지날 뿐이고, 도로에는 차들이 평소대로 오가고 있다.
ABC가 만들어낸 풍경이 아닌, 늘 봐오던 하굣길일 터.
"뭐지? 여긴 분명…"
그러나 유진은 금세 위화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분명히 요란하기 그지없을 풍경이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져 있었으니까.
조금만 살펴도 이미 이변은 일어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은 '무심하다'는 표현도 모자라 아예 표정도, 눈빛도 전혀 읽을 수 없다. 대놓고 쳐다봐도 눈길을 주는 기색조차 없다.
사람 껍데기를 뒤집어쓴 안드로이드들의 행렬을 보는 것만 같다. 마치 자신이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듯이.
"저기요?"
당황한 나머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려는 심산으로 지나가던 행인 하나를 건드리려 해봐도, 접촉되지 않고 그대로 통과될 뿐이다.
이래서야 자신이 유령이라도 되어버린 것만 같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유진은 바로 D-패드를 꺼내든다. 그리고는 어딘가에 있을 아린이든 유노에게든 급하게 연락을 보내려던 순간이었다.
"왜 그래요?"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니 남자 한 명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다행히도 자신을 멀쩡히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 저 보여요?"
"네, 그런데요?"
"죄송한데, 혹시 그쪽은 상태 괜찮으세요?"
"저야 멀쩡하죠."
만약에 자신처럼 이상한 일에 휘말려버린 사람이라면 위험하다. 자신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도 자신과 관련된 일에 엮여버린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은 더욱 편하지 않다.
괜찮냐고 물어보려 했을 텐데도 도리어 자신이 그런 질문을 받자 행인은 어리둥절한 듯한 반응을 보인다. 유진은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
"아니, 거리가 갑자기 이상하게 보이거나 그러지는 않나요?"
"거리? 평소하고 뭐가 달라요?"
"그야 그런데, 마치 저만 유령이 된 것 같다고 해야되나, 사람들이 다 로봇 같다고 해야되나."
"원래 그러지 않았나?"
농담이 섞인 대답이겠지만, 사회를 보는 눈이 뭐 이리 비관적이람.
유진에게 사람을 잘못 붙잡았나 하는 감상이 들려는 찰나였다.
"신경쓸 게 뭐 있어요. 그쪽이 없어도 이 풍경은 그대로인데."
그 대답에 싸한 위화감을 느낀 유진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당신이 봐 오던 거리는 항상 그랬잖아요? 어차피 평소에도 갈 길 바쁜 사람들로 가득하니까, 누구 하나가 갑자기 사라져봤자 딱히 신경쓰는 일은 없을 텐데. 그냥 허깨비인줄 알고 넘어가겠죠. 그런 허깨비가 되어보신 소감은 어때요?"
"…당신 짓이야?"
대답을 대신하듯 그는 미소를 지어보인다. 쓸데없이 푸근해보이는 그 얼굴이 오히려 유진의 기분을 거스르게 만들었다.
동시에 그가 꺼내든 물건은 컵받침으로 쓰면 좋을 법한 크기의 펜터클 하나. 중앙에는 눈알을 표현한 듯한 원형이 하나, 그리고 가장자리에는 'Cogito ergo Sum'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묘한 빛을 띄우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물건이 의심할 여지없이 디젠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뭐하는 놈이야?"
''데카르트, 라고 부르시는 건 어때요? 인상깊은 주장을 남기신 철학자 분의 이름인데. 아, 그 쪽 소개는 됐어요. 이미 알고 있으니까."
"누구한테 들었는데?"
"글쎄요."
이름을 밝힐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작자가 과연 자신의 정보를 어디서 주워들었을까.
여태까지의 경험을 통해 추측의 범위는 어렵지 않게 좁혀들어간다.
"당신이 인식하는 정보는 어디에서 오고 있을까요?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일지 아닐지, 지금 자기 자신이 진짜 자신이 맞는지, 고민해본 적은 없으신지?"
느닷없이 이런 의문을 던지던 자를 기억한다. 평범하게만 보이는 자신이 재버워키가 맞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자신을 추궁해 왔다.
"갑자기 뭔 소리인데?"
"여기서 당신을 인식하는 건 저뿐이고, 저를 인식하는 것도 당신 뿐이죠. 이 순간 서로의 신경이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존재 뿐이라는 겁니다. 네, 그렇기에 저희는 이렇게 자아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죠."
어려운 소리가 나열되기 시작하자 유진은 눈을 찡그린다.
어쨌든 그의 말대로, 여전히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마주보고선 둘 중 아무에게도 시선을 돌리기는 커녕 접촉조차 되는 일이 없었다.
"당신이 늘 보고 있는 세계는, 당신 혼자만의 세계가 아닙니다. 이 시간, 이 공간을 살아가는 세계의 주민들이 주변에 있는 것을 서로 인식하고, 수용한 끝에 구축된 것이죠. 소위 '집합 의식'이라고들 하는 겁니다. 요컨대 당신이 속한 학교, 거리, 친구들의 얼굴까지, 그 모두가 사실은 같은 시공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인지하고 설정한 홀로그램 영상과 다를 바 없는 것이죠."
"홀로그램?"
"지금 보고 계시는 세계는 당신 혼자만의 뇌내 정보. 다른 사람들의 뇌내 정보도 없이, 집합 의식에서 고립된 당신 혼자만의 세계. 네, 당신의 감각이 뇌에 전해온 정보들만으로 만들어낸, 세계의 껍데기라는 겁니다."
즉, 허깨비는 자신이 아니라 지금 눈에 보이는 풍경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 허깨비를 보이면서 자신을 농락하려 들고 있음을 이 자는 알아서 실토한 것이다.
한 편 유진이 놓칠 수 없는 표현이 있었다. 감각을 통해 세계를 '만들어냈다'라.
문득 재버워키가 어떤 식으로 도미노 시의 풍경을 구현했는지 짐작이 갈 것도 같았다. 여전히 그런 힘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었는지는 도통 짐작할 수가 없었지만.
"내 뇌에서 이런 걸 뽑아냈다고?"
"네. 감각이란 생물이 세상을 인식하기 위한 수단. 그렇게 정보를 받아들여 나간 끝에 세계에 존속할 수 있는 온전한 자아라는 것이 구축되는 법이지요. 그렇게 나 자신으로서 생각하고, 존재할 수가 있는 겁니다."
데카르트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린다.
"하지만 간섭이 생기면 어떨까요. 신경에 이상이 생기든, 주변 환경에 어떤 변화가 생기든, 감각에 혼란이 생기면 제대로 세계를 인식하기가 힘들겠죠. 남들과 다른 세계를 인식한다는 걸, 세간에서는 미친 것으로 취급하기 마련이고. 당신이 그런 상태라면 과연 제정신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제정신이지. 너네같은 놈들보다야."
"그러시군요."
당돌한 대답이다. 이 무지에서 나온 확신이란.
"제정신인 당신이 우뚝 서있다고 해도 말이죠. 주변 사람들이 당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 세계 어디에서든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이딴 짓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냐!"
"그럼요. 지금 당신께 보이는 방법은 그것 뿐이겠죠."
더 거대한 고립의 세계를 빠져나왔기에, 이곳 역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모양이다.
분명 지금 이 세계는 '그 분'의 작품에 비하면 조잡하기 짝이 없을 테지만, 그렇게 단정하는 것은 역시 섭섭하다.
"그런데, 다른 방법이 있다면요?"
"뭐?"
"집합 의식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처음부터 이 세계 자체를 품을 수 있는 광활한 어둠을 자신의 세계로 삼는다면. 그런 존재론적인 고민 따위 아무런 필요가 없어질 텐데."
"어둠?"
어둠을 세계로 삼는다라. 여태껏 어둠의 게임 끝에 상대가 최후를 맞이하는 꼴을 보아온 유진 입장에서는 '죽어라'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내가 왜?"
"그 분이 원하시니까요."
'그 분'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유진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가 있었다.
"재버워키는 살아있다는 거지?"
"글쎄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애초에 그런 개념이 있기는 한지. 저도 실체를 접한 적이 없어서 확답은 못하겠네요."
데카르트는 잠시 자기가 꺼내든 펜터클을 슬며시 바라본다.
"애초에, 우리는 머릿속에 흘러들어오는 그 분의 자취를 통해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 뿐이죠. 집단 환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환각? 그럼 더 이해가 안 가는데. 어떻게 그런 걸 믿을 수가 있어?"
"누구의 머릿속이든 독자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강렬한 에고. 그건 이미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라고 인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새로운 깨달음을 기대할 수 있는 지름길로서."
"제정신이야?"
"제정신이죠. 나 자신이 스스로 믿고 따른다는 선택이 가능하니까."
역시나, 라고 유진은 결론내린다. 어려운 말을 늘어놓을 바에 이렇게 본론부터 꺼냈다면 이야기는 빨라졌을 텐데.
방금까지의 문답들을 통해 의심한 정체를, 유진은 넌지시 언급해본다.
"당신, 위저드 맞지?"
데카르트라 자칭한 남자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무슨 소리냐는 듯이.
"아, 그런 분도 계셨었죠. 당신과는 다르게 그 분께 적극적인 대화를 요구하신 분이시라던데. 제가 그 분과 닮았다는 말씀이신지?"
"닮았지. 다짜고짜 찾아와서 시비거는 것도, 그 재잘재잘대는 띠꺼운 말투도."
"그러세요?"
갸웃거리는 반응을 보면 썩 마음에 드는 평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뭔데?"
"혹시 '재버워키'라 자칭하시던 분께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그런데?"
"네. 그 분은 약속을 지키기로 하셨죠. 그런데 여전히 당신과의 소통을 원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대신 의견을 전할 사람을 보내게 된 것이고. 이전에 당신께 찾아오신 분도 그런 일환이고요."
위저드가 맞던 아니던,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이상한 짓을 저지르며 나타날 사람은 그쪽과 관련된 인물밖에 없다. 지금 이 인물조차 패배를 겪은 후 재버워키의 심복으로 되살아나버린 것일까.
저번같은 악몽을 체현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낯선 사람을 내보낼 필요는 없을 터.
그러나 기껏 영역 밖으로 나와 일상으로 돌아온 자신에게, 환영인사랍시고 이런 작자들을 보낸 것은 고약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악취미였다.
"무슨 의견?"
"생각을 바꿔달라는 겁니다."
"어떻게?"
"재버워키를 쓰러뜨리고, 구축된 세계까지 무너뜨린 당신은 인생의 시련 하나를 뛰어넘었다는 쾌감을 느끼셨을 테죠. 그런데 그런 성장과 승리를 축하해줄 사람 따윈, 이 거리에 존재하지도 않을 거에요."
데카르트는 잠시 주변을 슥 둘러본다. 여전히 주변에는 시선을 바꾸지도 않은 채 어디론가로 향할 뿐인 행인들만이 있을 뿐이다.
"다들 현실 살기도 바쁜데 남 일이 뭔 상관이겠어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지지 않으려고 발악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진정 원하십니까? 무미건조 그 자체일 텐데. 당신이 해온 것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어둠 속에 있지 않는 한은 말이죠. 네, 어둠이 있으니까 당신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가 있는 셈이에요."
"그래서 댁은 어둠 편을 들기로 했다?"
"그런 셈이죠."
"그럼, 어둠이 없으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네?"
유진의 반박에 데카르트는 기분이 다소 거슬린 듯 정색한다.
"사람은 원래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태어나는 대로 끝없이 주변 자극에 휘말리다가, 어느 날 어떻게든 사라지는 게 목숨이란 겁니다."
"그래서 뭣도 아닌 인생 살다가 그런 놈이 하는 말에 홀린 거야?"
초면인데도 소년의 태도에는 예의라는 것이 없다. 자칫하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데.
이런 어리석은 자에게 그 분은 스스로의 힘을 내주었단 말인가. 그것도 유희의 일환이란 것일까.
데카르트는 희미한 한숨을 쉬었다.
만약 어둠을 통해 더한 힘을 얻는다면, 그런 것까지 이해하게 될 수 있는 것일까. 데카르트는 머릿속을 정리할 겸 생각하다 그런 의문에 이른다.
"확실히, 뭣도 아닌 인생이었죠. 이런 힘, 이런 놀이를 알기 전까지는. 무감각한 세상을 계속 사느니 색다른 선택을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게…."
유진이 또다시 뭐라고 반박하려던 순간이었다.
그 직전에 데카르트가 손가락을 튕긴 직후, 시야에 비친 모든 것들이 유리창이 깨지듯 산산이 부서져나간다.
진짜 유리가 사방에서 깨지는 듯한 시각과 소리의 충격에 유진은 한 순간 움찔거린다.
그런 평면의 파편이 되어버린 세계 뒷편을 차지하던 것은, 사방을 끝없이 자리잡고 있던 어둠이었다.
"이렇게,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지루한 날은 폭발해버리는 셈인데. 굳이 그런 인생을 선택하시겠다니, 그 분께서도 도무지 납득을 못하시는 모양입니다."
"…깜짝이야."
다행히도 파편이 몸을 찌르는 일은 없었다. 이것 역시 환각. 이렇게까지 거친 퍼포먼스는 분명 화풀이일 것이라 유진은 추측했다.
이래서야 자신이 환각에 빠져든 시점에서 연락은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유진은 기가 찬다. 그런 소리를 꺼내서 현혹시킬 것이었다면, 차라리 그런 게임을 열기 전에 꺼냈어야 되지 않았을까.
"나한테 그런 꼴을 겪게 해놓고, 이제 와서 그딴 헛소리가 통할 줄 알아?"
"익숙해지실 줄 알았더니, 이렇게 날이 서있으실 줄이야. 그 분께서도 장난이 지나쳤나 보네요."
"그래, 덕분에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개떡같다고. 난 그냥저냥 평범하게 듀얼하면서 지내는 게 꿈인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눈치다.
"몇 번을 찾아와서 물어도 똑같을 거니까, 다치기 싫으면 당장 꺼져."
"글쎄, 다치는 게 어느 쪽일지."
못 당하겠다는 듯이 데카르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하는 수 없죠. 이렇게 말이 안 통하니까 저까지 불렀을 테니. 여기선 다른 소통의 수단을 동원하는 수밖에."
데카르트는 안주머니에서 꺼낸 D-패드를 바로 팔에 장착한다.
유진 역시 이렇게 되리라는 예상은 있었다. 주변은 이미 영역의 어둠이 가로막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결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까지 일상을 방해하겠다면 쓰러뜨리고 보기로.
"듀얼리스트인 당신께는 듀얼 만한 방법이 없을 테니까요."
유진이 선호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듀얼. 이런 식으로 협박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승부를 유진은 도저히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는 없다는 것을 안 이상, 이런 승부를 걸어온 상대를 쓰러뜨리는 데에 전념할 뿐이다. 유진은 별다른 주저없이 듀얼 디스크를 전개했다.
"진작 그럴 것이지."
"그래도 그 시련이 당신을 바꿨나 보네요. 역시 보기 싫은 건 인식하지 않으면 그만이죠. 인식할 일이 없게 만들면 그만인 겁니다. 다 어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그딴 소리 꺼내지 마. 안 넘어갈 거니까."
유진에게는 귀찮고 위험한 일일 뿐. 즐겁지 않다는 인식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니 아직은 유노를 마주할 자격 정도는 있을지 모른다.
사전에 유진은 반드시 짚고 넘겨야 할 것을 언급한다.
"아린이 어떻게 했어?"
"그 분은 영역 밖에서 당신과 같이 걷고 계십니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겠죠. 만에 하나 이긴다면 다시 진짜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요."
요컨대 그를 이기면 그만이란 것이다.
유진은 그나마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더는 망설일 필요 따위 없다.
과연 이 자는 패배하거든 또다시 나타나버릴까. 그런 의문도 이기고 나서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 LP 8000]
[서문유진: LP 8000]
"제가 먼저네요. 그럼 '미러 스워드나이트'를 소환."
[미러 스워드나이트: 환상마족 / 빛 / 레벨 4 / ATK 1900 / DEF 300]
맨 먼저 나온 것은 커다란 거울을 중심으로 투구와 견갑, 검을 달아놓은 듯한 조형의 괴인이였다.
그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하자마자 유진은 낯선 듯, 어디선가 본 듯 하기도 한 키워드에 갸웃거렸다.
"환상마족…?"
"처음 보세요?"
"예전에 들어본 것 같은데…"
유진은 어렴풋한 기억을 뒤져보았다.
'매직&위저드'로 서비스되던 당시 몬스터 카드의 스테이터스 분류에 '소환마족'이라는 개념이 있던 시절, '환상마족'은 그 중에서도 수가 적은 편인 소환마족이었다고 한다. 듀얼킹의 에이스 카드로도 알려진 '블랙 매지션'이 속한 '흑마족'이라는 소환마족과 상성상 유리한 반면, '데몬 소환'이 속한 악마족이나 언데드족 다수가 속한 '악마마족'에 상성상 불리했다. 창시자인 페가수스 역시 이러한 환상마족 카드를 다수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 구시대의 개념이, 지금 몬스터의 종족으로서 떡하니 나와 있는 것이다.
"그럼 '미러 스워드나이트'를 릴리스하고 ①의 효과 발동. '키메라 퓨전'이라는 카드와 관련된 다른 몬스터 하나를 덱에서 특수 소환합니다. 체인은?"
"…없어."
패에 '하루 우라라'만 잡혀 있었어도 소환권을 써서 나온 전개의 흐름을 끊어먹을 수 있었겠지만, 그런 운까지 따라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대익의 바포메트: 악마족 / 어둠 / 레벨 5 / ATK 1400 / DEF 1800]
그 다음은 이름 그대로 큼직한 날개를 가진 마인이 뒤이어 나타난다. 2쌍의 팔과 산양의 뿔을 달고 있는 모습은 전승으로 그려지는 악마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었다.
"특수 소환된 '대익의 바포메트'의 ①의 효과. 레벨 4의 야수족 몬스터, 그리고 이 카드를 가져오겠습니다. 가져온 속공 마법 '키메라 퓨전'을 발동. 필드의 '바포메트'와 패에 있는 '환조의 왕 가젤'을 융합. '환상수왕 키메라'를 융합 소환.
[환상수왕 키메라: 야수족 / 바람 / 레벨 6 / ATK 2100 / DEF 1800]
서로 다르게 생긴 두 머리와 새의 날개를 달고 있는 짐승이 필드에 안착한다. 처음 보는 것 같은 그 이름과 모습은 어쩐지 유진의 눈에 어렴풋이 익는 것이었다.
"융합 소재가 된 '가젤'과 '바포메트'의 효과, 그 다음 융합 소환된 '키메라'의 ②의 효과를 순서대로 처리. 이건 엔드 페이즈에 적용되는 거니까 넘기고, '바포메트'의 효과로 덱에서 악마족 몬스터 하나를 묘지로. 그 다음 '가젤'의 효과를 처리해서 묘지에 있는 환상마족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
[미러 스워드나이트: 환상마족 / 빛 / 레벨 4 / ATK 1900 / DEF 300]
"또 다음은 묘지에 있는 '키메라 퓨전'의 ②의 효과. 제 필드에 '유익환상수 키메라'가 있으면 패로 회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카드가, 앗…"
뒤늦게 텍스트를 확인한 유진이 입을 다문다.
"네. 여기 있는 '환상수왕 키메라'는 '유익환상수 키메라'로 취급되는 몬스터. 따라서 무사히 조건은 채워졌죠. 그럼 가져온 '키메라 퓨전'을 다시 발동. 이번엔 '키메라'와 필드의 '미러 스워드나이트'를 융합, '환상수마왕 바포메트'를 융합 소환."
[환상수마왕 바포메트: 악마족 / 바람 / 레벨 6 / ATK 2400 / DEF 600]
이전에 필드에 나온 '바포메트'가 '미러 스워드나이트'의 검을 팔 한짝씩마다 쥐고 있는 듯한 모습의 몬스터가 튀어나온다. 마수의 얼굴은 마수 자신의 것을 형상화한 듯한 가면이 씌여 있었다.
"융합 소환된 '환상수마왕'의 ②의 효과로, 덱에 있는 악마족 몬스터 하나를 묘지로. 카드 1장을 세트. 그리고 엔드 페이즈에 '환상수왕 키메라'의 ②의 효과를 적용해야죠. 패를 1장 버리세요."
"쳇…"
패를 털어버린다는 행위의 불쾌함을 유진은 잊을 만하려는 순간 접해야 했다.
"그럼 내 턴이야."
[서문유진: 패 5장]
[데카르트: 패 3장]
"스탠바이 페이즈, 이 순간 묘지에 있는 '환상수왕 키메라'의 효과. 자신을 제외하고, 묘지에서 악마족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합니다."
[심연의 결계상: 악마족 / 어둠 / 레벨 4 / ATK 1000 / DEF 1000]
그것도 모자라 갑자기 튀어나온 악마 형상의 조각상을 보고서 유진이 얼굴을 한껏 찌푸린다.
"이런…."
'심연의 결계상'은 어둠 속성 몬스터 이외의 특수 소환을 막는 카드. 그 불의의 기습에 메인 페이즈를 맞이하려던 유진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패에 '크샤트리라 펜리르'가 있음에도 이래서는 꺼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그 동안 또다른 '크샤트리라'를 입수하는 데에 실패한 대신, 충분히 전력이 되어줄 여러 테마의 카드들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선보일 차례라는 것이다.
"그럼 'VS(뱅키시 소울) 라젠'을 소환."
[VS 라젠: 전사족 / 화염 / 레벨 4 / ATK 1800 / DEF 1500]
"'라젠'의 ①의 효과로, 덱에서 다른 'VS(뱅키시 소울)' 몬스터 하나를 패에 추가할 수 있어."
"그럼 묘지에 있는 '미러 스워드나이트'를 제외하고 ②의 효과 발동. '유익환상수 키메라'가 필드에 있으면, 필드에서 발동하는 몬스터 효과를 무효로 할 수가 있죠."
"설마 그 '바포메트'가…"
"네, '환상수왕'과 같습니다."
텍스트를 살펴보고서 사실임을 확인한다. 애초에 거짓이라면 진짜로 적용될리도 없었을 테니.
결국 이 상황에서 별다른 어드밴티지를 벌 수단은 딱히 없다는 뜻이 된다. 그래도 몬스터를 꺼낸 시점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배틀, '라젠'으로 '심연의 결계상'을 공격!"
유진 필드에 소환된 청년이 호쾌한 기합과 함께 돌진한다.
그러자 양손에 들고 있던, 톤파라기엔 매우 거추장스럽고 육중해 보이는 쇳덩어리 내부에서 터빈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직후 배기구처럼 뚫린 톤파 끝부분으로부터 부스터가 분사되어 속도를 더했고, 앞부분에는 내부의 열기로 발화된 듯한 불꽃이 새어나와 쇳덩어리를 뒤덮기 시작한다.
그렇게 양팔 끝에 만들어진 화염의 로켓을, '라젠'은 힘차게 적에게 내려친다. '결계상'은 그대로 산산히 격파되며 사라졌다.
[데카르트: LP 8000 → 7200]
"됐어!"
제법 시원한 광경이었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고작 시작할 기회를 붙잡은 것에 불과하니까.
소환권, 배틀 페이즈까지 희생하고 나서야 유진은 특수 소환 견제를 꺼버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 남은 적 몬스터는 건재했기에, 이 틈에라도 필드를 재정비해둘 필요가 있다.
"메인 페이즈 2. '라젠'을 소재로 링크 1 '아카샤 느와르'를 링크 소환. ①의 효과로 자신을 물 속성으로 변경. 그리고 ②의 효과로 내 필드에 그와 같은 속성의 '아카샤 토큰'을 특수 소환한다."
[아카샤 느와르: 사이킥족 / 어둠 → 물 / LINK-1 / ATK 900 / ↓]
[아카샤 토큰: 사이킥족 / 물 / 레벨 1 / ATK 0 / DEF 0]
"물 속성인 '아카샤 느와르'와 '아카샤 토큰'을 소재로 'ET레인저 하이드로블루'를 링크 소환. ①의 효과로 물 속성이 아닌 몬스터를 특수 소환할 수 있어."
[ET레인저 하이드로블루: 사이킥족 / 물 / LINK-2 / ATK 1800 / ←→]
[환상수기 오라이온: 기계족 / 바람 / 레벨 2 / ATK 600 / DEF 1000]
"그 다음 '하이드로블루'의 ②의 효과. 내 필드의 링크 몬스터 하나의 마커 수만큼 덱 위를 넘겨서 그 중 하나를 패에 추가한다."
[서문유진: 패 5장]
'호오, 저것이….'
필드에 나타난 푸른 슈트 차림의 전사를 데카르트는 잠시 주목한다.
단순히 봐도 충분히 쓸 만한 성능을 가진 카드인데, 저런 카드를 자신 정도가 포착하지 못했을리 없다. 즉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카드. 분명 재버워키가 얘기한 재미있는 카드가 저것이리라.
이 듀얼의 요건은 저들을 얼마나 대항해내느냐, 라는 것이 데카르트의 추론이었다.
"계속해서 '하이드로블루', '오라이온'을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2 '에스:피 리틀나이트'를 링크 소환. '오라이온'이 묘지로 갔으니까 '환상수기 토큰'도 하나 특수 소환한다."
[에스:피 리틀나이트: 전사족 / 어둠 / LINK-2 / ATK 1600 / ←→]
[환상수기 토큰: 기계족 / 바람 / 레벨 3 / ATK 0 / DEF 0]
"그리고 '리틀나이트'의 ①의 효과! 링크 몬스터를 소재로 링크 소환하면, 필드의 카드 1장을 제외할 수가 있어. '환상수마왕 바포메트'를 대상으로 지정."
선봉 자리를 이어받은 쿠노이치 소녀가 나타나는 즉시 빛나는 수리검을 날린다. 그것이 가면이 씌워진 '바포메트'의 머리에 그대로 꽂히려는 순간,
"패에 있는 '탈론즈 오브 슈리렌'의 효과를 체인! 악마족인 '환상수마왕'을 회수하고, 자신을 특수 소환하죠."
[탈론즈 오브 슈리렌: 환상마족 / 빛 / 레벨 6 / ATK 2100 / DEF 2050]
[데카르트: 패 2장]
갑자기 '환상수마왕 바포메트'의 형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면서 표적을 잃은 수리검이 맨 바닥에 꽂혀버린다.
그제서야 허공이 된 자리에 안개가 형체를 갖는 것처럼 또다른 몬스터가 출현했다. 인간 여성의 상반신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의 팔다리가 합쳐진 듯한 기이한 형상. 그 합쳐진 지점의 경계선에 해당하는 허리 부분에는 눈동자 문양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도금 장식으로 보이는 그 눈동자는 진짜로 자신을 주시하는 듯 형용하기 힘든 불안감을 선사해 온다.
"그럼…."
당장 치워내고자 '리틀나이트'의 또다른 효과를 사용하려던 유진은, 그 낯선 카드의 능력을 잠시 확인하고서 철회했다.
저 카드에겐 자신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효과를 피해가고 반격하는 효과가 있었으니까.
"효과 안 쓰시는구나. 현명하네요. 역시 살아남은 사람은 달라."
"……."
예의상으로 건네는 듯한 칭찬의 속뜻은 분명 조롱이겠지. 유진은 그저 입을 다물고 노려보는 표정만으로 응답할 뿐이다.
이후 카드를 더 꺼내기 위해 유진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LP를 500 지불하고 속공 마법 'VS(뱅키시 소울) 컨티뉴'를 발동. 묘지에서 'VS(뱅키시 소울)' 몬스터를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
[서문유진: LP 8000 → 7500, 패 4장]
[VS 헤비 보거: 기계족 / 어둠 / 레벨 7 / ATK 2500 / DEF 1500]
"'헤비 보거'의 효과. 어둠 속성인 'VS Dr.매드라브'를 공개하고 1장 드로우. 이어서 'VS(뱅키시 소울)'의 효과 발동을 위해 패를 공개했을 경우, 패에 있는 '쟈오롱'도 특수 소환할 수 있어."
[VS 쟈오롱: 환룡족 / 화염 / 레벨 5 / ATK 2400 / DEF 2100]
"필드의 '리틀나이트', '환상수기 토큰', '헤비 보거', '쟈오롱'을 소재로 '소명의 신궁-아폴로우사'를 링크 소환!"
[소명의 신궁-아폴로우사: 천사족 / 바람 / LINK-4 / ATK 3200 / ↑↙↘↓]
"엔드 페이즈에 묘지에 있는 '하이드로블루'의 효과로 다른 링크 몬스터 하나를 부활. 끝났어."
"제 턴이죠."
[에스:피 리틀나이트: 전사족 / 어둠 / LINK-2 / ATK 1600 / ←→]
[서문유진: 패 4장]
[데카르트: 패 3장]
확실히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데카르트는 확인한다. 기습 견제를 어떻게든 뚫고 저만한 견제책을 내세워 보였으니까.
이를 주어진 패 3장으로 뚫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전투 데미지가 크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 점에서 메인 페이즈 1 동안 특수 소환을 지체시킨 선택은 분명 틀리지 않았다고 데카르트 스스로 판단했다.
"마법 카드 '별을 부르는 천의대(셀레스티얼 세크스턴트)'. 필드의 레벨 6 몬스터인 '슈리렌'을 덱 아래로 되돌리고 2장 드로우. 다음 마법 카드는 '데스완구 패치워크'. 덱에서 '융합'과 '에지임프' 몬스터를 하나씩 가져오죠."
[데카르트: 패 5장]
'에지임프'. 유진의 뇌내에 정보가 존재하는 이름이었다. 분명 '퍼니멀'이라는 테마의 몬스터와 함께 '데스완구'라는 융합 몬스터의 융합 소재가 되는 악마족 몬스터군이었을 것이다.
연이은 융합 소환도 그렇고, 저 상대 역시 위저드처럼 융합 소환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 패를 1장 버리고, 패에 있는 '환혹의 견습 마술사(나이트메어 어프렌티스)'를 특수 소환."
[나이트메어 어프렌티스: 환상마족 / 어둠 / 레벨 6 / ATK 2000 / DEF 1700]
"특수 소환된 '나이트메어 어프렌티스'의 ②의 효과를 발동. 여기에 묘지로 간 '에지임프 체인'의 효과를 체인. 덱에서 '데스완구' 카드를 하나 가져옵니다. 체인 있으세요?"
"……."
턴 우선권을 이용해 체인을 꼬아서 중요한 서치 효과를 막을 기회를 차단한다. 역시 '에지임프'는 미끼에 불과할 터. 그나마 어드밴티지를 조금이라도 덜 가져가도록 간섭을 시도할 필요는 있었다.
"'아폴로우사'의 효과로 체인. '에지임프 체인'의 효과를 무효로."
[소명의 신궁-아폴로우사: ATK 3200 → 2400]
[데카르트: 패 4장]
"하나 막혔나. 그럼 '어프렌티스'의 효과를 처리해서 환상마족 몬스터인 '콘필드 코아틀'을 서치. 계속해서 LP가 상대보나 낮고, 엑스트라 덱에서 특수 소환된 몬스터가 상대 필드에만 존재하면, 마법 카드 '페이탈 오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습니다. 2장 드로우."
[데카르트: 패 5장]
"'콘필드 코아틀'을 패에서 버리고 ①의 효과를 발동. 덱에서 '키메라 퓨전'과 관련된 몬스터 하나를 가져오죠."
"안 돼."
[소명의 신궁-아폴로우사: ATK 2400 → 1600]
[데카르트: 패 4장]
"또 막혔네요. 마법 카드 '융합강병'. 엑스트라 덱에 있는 융합 몬스터 하나를 공개하고, 그 소재가 되는 몬스터 하나를 엑스트라 덱이나 묘지에서 특수 소환할 수 있습니다. 그럼 '환상마수 키메라'를 공개. 그리고 그 융합 소재인 '유익환상수 키메라'를 특수 소환."
[유익환상수 키메라: 야수족 / 바람 / 레벨 6 / ATK 2100 / DEF 1800]
[데카르트: 패 3장]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비로소 원조가 등장.
뻔하다. 분명 저것을 소재로 삼아서 방금 보여준 융합 몬스터를 그대로 융합 소환할 작정이겠지. 유진 입장에서는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리틀나이트'의 ②의 효과! 상대가 효과를 발동했을 때, 내 필드를 포함한 필드의 몬스터 2장을 이번 턴동안 제외시킬 수 있어."
"더 이상의 방해는 그만. '키메라'가 필드에 있으면, 묘지에 있는 '콘필드 코아틀'을 제외하고 ③의 효과 발동. '리틀나이트'의 효과를 무효로 하고 파괴합니다."
필드에 튀어나온 몬스터를 급습하려 시도하던 '리틀나이트'가 갑자기 바닥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뱀의 꼬리에 구속된다. 그대로 늪으로 빠지듯 바닥으로 가라앉혀지려는 찰나,
"'아폴로우사'의 효과를 또 한 번 체인!"
[소명의 신궁-아폴로우사: ATK 1600 → 800]
아군을 습격으로부터 구하고자 '아폴로우사'는 이번에도 빛나는 화살을 뱀의 꼬리에 명중시킨다. 그제서야 꼬리는 '리틀나이트'의 몸을 풀어버리고서 혼자 땅 속으로 꺼져버렸다.
그러나 기껏 구사일생한 목숨을 내던지듯, 풀려난 '리틀나이트'는 원래 표적이었던 '키메라'를 향해 달려들어 검집에 들어있던 검을 빼낸다. 형광빛으로 빛나는 검을 적에게 꽂는 순간 '키메라'의 두 머리가 고통에 괴성을 지른다. 곧 격한 발광이 일어나면서 두 몬스터가 일제히 사라졌다.
"기어이 '키메라'를 치워버리셨네. 이러면 일이 꼬이는데."
기껏 마련된 소재가 결국 사라져버린 것에 데카르트가 아쉬운 반응을 보이는가 싶더니,
"그래도 안심하기는 이르죠. '융합'. 이걸로 패에 있는 2장째 '대익의 바포메트'와 필드의 '어프렌티스'를 소재로, '환상수마왕 바포메트'를 다시 융합 소환합니다."
[데카르트: 패 1장]
[환상수마왕 바포메트: 악마족 / 바람 / 레벨 6 / ATK 2400 / DEF 600]
"그럼 융합 소재가 된 '대익의 바포메트'의 ②의 효과 발동. 여기에 융합 소환된 '환상수마왕 바포메트'의 ②의 효과를 체인. 자, 체인하셔야죠?"
"…'아폴로우사'로 체인."
[소명의 신궁-아폴로우사: ATK 800 → 0]
기분이 나쁘더라도 상대의 유도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 '환상수마왕'으로 뭘 묻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몬스터가 되살아나는 것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이미 눈에 익혀둔 몬스터가 나온다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면 '환상수마왕'의 효과는 무효. '대익'의 효과를 처리해서, 묘지의 환상마족을 특수 소환합니다."
[나이트메어 어프렌티스: 환상마족 / 어둠 / 레벨 6 / ATK 2000 / DEF 1700]
"아시다시피 '환상수마왕'은 '키메라'로 취급이 가능해요. 이번에도 묘지에 있는 '키메라 퓨전'의 효과를 발동할 수 있다는 겁니다."
[데카르트: 패 2장]
"배틀. '환상수마왕 바포메트'로 '아폴로우사'를 공격!"
이번에도 힘을 다 써버린 '아폴로우사'에게 '바포메트'가 휘두르는 검격을 막을 힘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그 충격이 고스란히 주인인 유진에게 전해진다.
[서문유진: LP 7500 → 5100]
"'나이트메어 어프렌티스'로 다이렉트 어택!"
그 다음 마술사 소녀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끝에 달린 금장식으로부터 밀려나오는 충격파가 직접적으로 유진에게 전해져 온다.
날붙이나 불꽃 따위가 튀는 것이 아닌데도 그 고통은 제법 몸을 쑤셔왔다.
[서문유진: LP 5100 → 3100]
"좋은 자극 되셨나요?"
"시끄러."
"흠. 카드를 1장 세트. 턴 엔드."
"엔드 페이즈에 '리틀나이트'의 효과로 제외된 몬스터들은 귀환. 그럼 내 턴이야."
[유익환상수 키메라: 야수족 / 바람 / 레벨 6 / ATK 2100 / DEF 1800]
[에스:피 리틀나이트: 전사족 / 어둠 / LINK-2 / ATK 1600 / ←→]
[서문유진: 패 5장]
[데카르트: 패 1장]
"'VS(뱅키시 소울) Dr.매드라브'를 소환. 효과로 'VS(뱅키시 소울)' 마법이나 함정 하나를 패에 추가. 그 다음 가져온 2장째 '컨티뉴'를 발동해서 묘지에 있는 '라젠'을 부활. 효과로 덱에 있는 'VS' 하나를 패에 추가."
[VS Dr.매드라브: 악마족 / 어둠 / 레벨 4 / ATK 1200 / DEF 2000]
[VS 라젠: 전사족 / 화염 / 레벨 4 / ATK 1800 / DEF 1500]
[서문유진: 패 5장]
"패에 있는 어둠 속성의 '헤비 보거'를 공개하고 '매드라브'의 ②의 효과를 발동. 필드의 몬스터 하나의 공격력과 수비력을 500 다운."
'Dr.매드라브'라는 이름의 발명가 소녀는 음침한 미소를 띄우고는 등에 배낭처럼 맨 기계를 작동시킨다. 곧 기계에 달려 있던 커다란 양 손가락 사이로 정체불명의 액체가 들어있는 시험관이 끼워지더니, 이를 표적으로 삼은 '환상수마왕 바포메트'에게 집어던졌다.
날아간 시험관은 총 5개. 부딪히면서 깨지는 것과 동시에, 액체를 뒤집어 쓴 '환상수마왕'의 기력이 점차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환상수마왕 바포메트: ATK 2400 → 1900 / DEF 600 → 100]
패에 땅 속성인 '크샤트리라 펜리르'까지 보여줘서 바운스 효과를 쓰는 것도 가능했지만, 저쪽이 '키메라 퓨전'을 사용해서 필드의 몬스터를 바꿔놓는 순간 자신의 몬스터를 되돌릴 수도 있다는 리스크가 생긴다.
그렇다고 공격력 500 내리는 것 정도로는 그리 큰 타격이 아닐지도 모른다.
"소용 없어요. 세트한 '키메라 퓨전'을 발동. 그럼…."
"상대가 효과를 썼으니까, 다시 '리틀나이트'의 효과를 발동! 자신과 '환상수마왕 바포메트'를 제외!"
어차피 이 효과가 진짜로 먹힐지 아닐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저번과 같은 과정으로 필드의 몬스터 둘이 자취를 감춘다. 소재가 하나 줄었으니 데카르트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효과는 처리해야죠. 필드의 '키메라'와 환상마족인 '어프렌티스'를 융합. '환상마수 키메라'를 융합 소환."
[환상마수 키메라: 환상마족 / 어둠 / 레벨 8 / ATK 3100 / DEF 2800]
확인해본 바 '환상마수 키메라'에게는 상대 턴에 써먹을 만한 효과는 없다. 저번 턴에 어차피 저걸로 끝을 내는 건 불가능했을 테니 아껴둔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데카르트의 심기가 다소 불편해보였다.
하지만 공격력만큼은 높았기에 이 상태로는 상대할 수도 없는 노릇. 다른 전력을 챙기기로 한다.
"'칠성의 보도'. 레벨 7의 '펜리르'를 제외하고 2장 드로우. 그리고 필드의 '매드라브'를 패로 되돌리고 '헤비 보거'를 특수 소환. '헤비 보거'의 ②의 효과로 이번에도 '매드라브'를 보여주고 1장 드로우."
[VS 헤비 보거: 기계족 / 어둠 / 레벨 7 / ATK 2500 / DEF 1500]
[서문유진: 패 6장]
"아직이야. 이번엔 '라젠'을 패로 되돌리고 이 카드를 패에서 특수 소환한다. 'VS 용제(카이저) 바리우스'!"
[VS 카이저 바리우스: 드래곤족 / 땅 / 레벨 8 / ATK 3000 / DEF 1500]
육중한 기갑을 두른 사이보그 옆으로, 백금발의 갈기를 휘날리는 검은 몸체의 드래곤 하나가 새롭게 출현한다.
이들의 공격력만으로는 여전히 '키메라'를 상대할 수는 없어도, 마침 충분히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이 마련되어 있었다.
"패에서 땅 속성의 '판테라', 화염 속성의 '라젠', 그리고 어둠 속성의 '매드라브'를 보여주고 '바리우스'의 효과를 발동한다! '환상마수 키메라'를 파괴!"
'바리우스'가 근육으로 다져진 앞다리를 쳐드는 순간, 그 주변으로 붉은 스파크가 발산하기 시작한다. 그런 뜨거운 에너지가 담긴 주먹을 땅바닥에 때려박자, 붉은 에너지로 된 파도가 일직선으로 뻗어나가 그 궤도에 있던 '키메라'를 휩쓸어버린다.
이제 적수는 남지 않았으니, 무방비 상태가 된 적에게 공격을 내리꽂을 차례다.
"배틀! '헤비 보거', '바리우스', 다이렉트 어택!"
[데카르트 : LP 7200 → 1700]
사이보그의 금속 마디로 이뤄진 철권과 단단한 근골로 이뤄진 용제의 투기가 담긴 주먹을 차례로 얻어맞으면서 데카르트의 몸체가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곧 그 얼굴은 건방진 미소를 유지할 새도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전력을 하나 더 마련해놓기만 했어도, 하다못해 '리틀나이트'가 필드에 남아만 있어도 그대로 끝낼 수 있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그런 불안을 삭히듯 유진은 그냥 이대로 무난하게 싸움을 끝낼 수 없을지 생각해보았다. 저렇게 고통에 서린 표정을 봐야 하는 것도 자신이 고통을 겪는 것만큼이나 마음이 편치 않으니까.
그냥 아무 일 없이 끝낸다는 선택지는 정녕 불가능하단 말인가.
그러나 이내 무리라는 것을 떠올린다.
자신이 걸었든, 남한테 걸렸든, 승부가 끝나는 순간 재버워키가 넘겨준 디젠 때문에 벌칙은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으니까. 무난한 결말이 가능했더라면 진작에 했겠지.
그렇다고 자신이 기권을 해버리자니, 승리를 차지한 상대가 아무런 벌칙없이 넘어가주리라는 보장 따윈 없다. 명백히 '재버워키'에게 동조하고 있는 자라면 더더욱.
누군가가 피를 봐야 하는 이런 상황을 재버워키는 처음부터 강요해왔다.
이건 결코 자신 때문이 아니라고 여기고 싶었다. 유노가 위로로 던진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안 끝났어. 덤비자고 한 건 그 쪽이잖아."
그 말에 데카르트는 금방이라도 욕을 내뱉을 것만 같은 눈매를 거두고, 캄캄한 바닥에 딸려 있던 먼지를 털며 일어선다.
"그러게요. 못 끝내셨네."
"굳이 계속 할 거야?"
"왜요? 제가 역전이라도 할까봐?"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
필드도, 패도 전부 바닥난 상황에서 아직도 전의를 불태울 수 있단 말인가.
그 물음에 데카르트는 먼저 웃음으로 답했다.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는 분이시네. 그러니까 그 분이 관심을 갖지."
"뭐?"
그 비웃음 너머로 분노를 거둔 것일까. 아니면 잠시 감춰뒀을 뿐일까.
"이런 상황 한 두 번 겪습니까? 의문을 가질 게 있나?"
맞는 말이긴 했다. 자신도 위기 상황이야 여러 번 몰려본 참이다. 적어도 저렇게 웃음이 나와본 적이 없을 뿐.
"당신만 누려온 게 아니라서요. 힘겹게 얻은 승리, 미래, 달성감. 그걸로 가치 있는 삶을 지내다 보면, 어느 샌가 그 이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지 않던가요? 그러니까 관두지를 못하는 거고."
그래. 대놓고 '즐긴다' 소리를 해온 상대들이라면 이런 마인드겠지.
유진에게 두려운 사실은, 그 마음을 아예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딴 거 몰라. 난 그냥 덤비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뿐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유진의 대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인정해서는 안 된다. 인정해버리는 순간 자신의 미래 따윈 없다. 지금 자기 자신이 분노하고 적대해오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리퍼에게 사냥당해 마땅한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셈이니까.
그런 그를 데카르트는 여전히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본다.
"그 분께서 첨언하셨거든요. 자기가 즐기는 게 뭔지 제대로 이해도 못하는 가엾은 분이라고. 게임을 한 두번 해 본 것도 아니면서 설마 아직도 그러겠나 싶었는데, 세상에."
아무래도 그 웃음은 진심인 듯 하다. 바보 천치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다.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단정짓고 있는 것이다.
곧 더 싸늘해진 시선을 의식했는지 데카르트는 웃음을 겨우내 멈췄다.
"윤리 의식 때문인가? 어둠은 거부해야 된다는 사고 방식을 차마 못 떨치시는 거겠죠?"
"내가 위선이라도 떤다고?"
"아뇨, 그럴 수 있어요. 사회화된 사람이라면 주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마련인걸요. 어차피 그런 게 닿을 일 없는 어둠 속이라면 부질없는 고민이지만."
"그 어둠이 제일 문제라고. 너같은 애들이 앞으로 몇이나 튀어나올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
"지긋지긋해요? 잘 됐네. 희망이 안 보이는 미래 쯤이야 두 번 다시 볼일없을 타인한테 양보하시죠."
"싫어."
지금 밖에서 뭘 하고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애를 위해서라도 이곳을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 목적이 있는 자신더러 저만의 쾌락을 이유로 승리를 양보하라니. 말같지도 않은 소리다.
그의 말대로 유진은 생각을 바꾸었다.
그냥 어떻게든 끝장을 내버렸어야 했는데. 어서 벌칙이든 뭐든 내려서 저 입을 닥치게 해버렸어야 했는데.
"그러세요? 역시 끝까지 가봐야 알겠네요."
데카르트도 대답과 함께 미소를 완전히 거둔다.
"카드 1장을 세트. 턴 엔드."
"이번에도 엔드 페이즈에 몬스터들은 귀환. 그럼 제 턴."
[에스:피 리틀나이트: 전사족 / 어둠 / LINK-2 / ATK 1600 / ←→]
[환상수마왕 바포메트: 악마족 / 바람 / 레벨 6 / ATK 2400 / DEF 600]
[데카르트: 패 2장]
[서문유진: 패 5장]
"'키메라'가 필드에 있으니까, 묘지에 있는 '키메라 퓨전'을 패로 회수하죠."
[데카르트: 패 3장]
아직 나설 필요는 없다. '키메라 퓨전'을 발동해서 융합 소환을 실행하려는 순간, 이번에도 '리틀나이트'의 효과로 필드의 '환상수마왕 바포메트'를 치워버리면 확실하게 불발로 끝날 것이다.
그걸 경계해서 곧장 배틀로 들어가 공격을 시도한다? '카이저 바리우스'의 효과를 다시 사용해서 터뜨려주면 되는 일.
유진의 머릿속에는 그런 계산이 끝나 있었다.
"패에 있는 2장째 '콘필드 코아틀'을 버리고 ①의 효과를 발동."
'어, 잠깐…?!'
그러나 속공으로 개입해 오는 묘지 효과가 있다면 어떨까. 새로운 적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는지 유진은 서둘러 저항을 시도한다.
"그럼 효과를 발동했으니까, 이번에도 '리틀나이트'로 체인!"
"'키메라'로 취급되는 '환상수마왕'이 필드에 있으니까, 묘지에 있는 '콘필드 코아틀'의 효과를 제외하고 ②의 효과를 체인. 제 카드를 대상으로 하는 효과를 무효로 하고 파괴합니다."
"아까 3장을 다시 공개하고, '카이저 바리우스'의 효과를 체인! '환상수마왕 바포메트'를 파괴!"
체인이 종료되면서 다시 '바리우스'가 땅에 내지르는 주먹의 불길이 '환상수마왕'을 휩쓸며 산화시켜버린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저번에 나타났던 뱀 꼬리가 땅바닥으로부터 다시 튀어나오더니 기어이 '리틀나이트'를 끌고 사라져버렸다.
결과는 양자손실. 아니, 유진 쪽이 더 손해다. 이 상황에서 유진은 뭔가 실수를 해버렸다는 것을 직감한다.
"마지막 처리로 '콘필드 코아틀'의 효과를 적용. 2장째 '미러 스워드나이트'를 서치합니다. 그 다음 소환."
[미러 스워드나이트: 환상마족 / 빛 / 레벨 4 / ATK 1900 / DEF 300]
[데카르트: 패 2장]
"'미러 스워드나이트'를 릴리스하고 ②의 효과. 이번엔 2장째 '환조의 왕 가젤'을 특수 소환하죠. '환조'의 효과로 3장째 '대익의 바포메트'를 서치."
[환조의 왕 가젤: 야수족 / 땅 / 레벨 4 / ATK 1500 / DEF 1200]
[데카르트: 패 3장]
더 이상 막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다음에 튀어나올 것까지 그냥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키메라 퓨전'. 이번엔 필드의 '환조의 왕 가젤', 그리고 패에 있는 '대익의 바포메트', '파괴신 버사고'를 융합하겠습니다. 삼위일체! 힘과 지혜, 위험을 고루 갖춘 마수가 지금 이 자리에. '가디언 키메라'를 융합 소환!"
[가디언 키메라: 야수족 / 어둠 / 레벨 9 / ATK 3300 / DEF 3300]
이번 융합으로 탄생하는 키메라는 전에 나왔던 것들보다도 거대했다. 검은 맹수의 몸뚱아리에 달린 것은 맹금류의 새, 뿔달린 짐승, 뱀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제각각으로 생긴 머리가 세 개. 꼬리 역시 뱀의 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 등에 달린 날개는 그 거대한 질량을 띄우고도 남는 너비를 자랑해 온다.
가운데에 자리잡은 머리가 이빨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할 듯한 기백. 그 질량까지 더하면 끝없는 어둠이라는 공간이 비좁게 느껴질 만큼 인식이 왜곡될 지경이다. 적어도 저것을 눈앞에 둔 유진의 소감은 그러했다.
"융합 소환한 '가디언 키메라'의 효과. 여기에 '대익', '환조'의 효과를 순서대로 체인. 그 쪽도 뭐 있나요?"
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했겠지. 그런 뜻을 품은 듯 흙 씹은 표정으로만 받아칠 뿐이다.
"알겠습니다. 먼저 '환조'의 효과를 처리. 환상마족인 2장째 '나이트메어 어프렌티스'를 서치. 그리고 '대익'의 효과. 묘지의 환상마족을 특수 소환."
[나이트메어 어프렌티스: 환상마족 / 어둠 / 레벨 6 / ATK 2000 / DEF 1700]
"마지막으로 '가디언 키메라'의 효과를 처리. 패에서 융합 소재로 삼은 수만큼 드로우, 그리고 소재로 삼은 필드의 몬스터 수만큼 상대의 카드를 파괴할 수가 있지요."
'가디언 키메라'의 세 머리가 고막을 찢을 기세로 괴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그 파장이 필드에 거센 폭풍을 일으켰고, 곧 폭풍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꼴이 된 '바리우스'가 꼼짝도 못하고 휘말리며 사라진다.
"그리고 특수 소환된 '어프렌티스'의 효과로 환상마족인 '대음양사 타오'를 서치. 그 다음 패에 있는 '타오'를 버리고 2장째 '어프렌티스'를 특수 소환. 묘지로 간 '타오'의 효과로 묘지에 있는 다른 환상마족 몬스터도 특수 소환할 수 있습니다."
[나이트메어 어프렌티스: 환상마족 / 어둠 / 레벨 6 / ATK 2000 / DEF 1700]
[미러 스워드나이트: 환상마족 / 빛 / 레벨 4 / ATK 1900 / DEF 300]
[데카르트: 패 3장]
설마 저기서 뭘 더 꺼낼 속셈일까. 그 자체로도 충분히 전력으로 삼을 만한 몬스터들이지만, 어쩐지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조합을 보고서 유진은 불안을 품는다.
그리고 그 불안은 곧바로 현실이 되어버린다.
"자, 더 남았어요. 레벨 6의 '어프렌티스' 하나에 레벨 4 '미러 스워드나이트'를 튜닝. 빛과 어둠을 아우르는 한 쌍의 날개, '카오스 앙헬-혼돈의 쌍익-'을 융합 소환!"
[카오스 앙헬-혼돈의 쌍익-: 악마족 / 어둠 / 레벨 10 / ATK 3500 / DEF 2800]
'대익의 바포메트'의 ①의 효과를 쓰지 않았으니 융합 몬스터 이외의 엑스트라 덱 몬스터를 꺼내도 문제는 없다. 더구나 유진도 기억하고 있었다.
'카오스 앙헬'은 굳이 튜너가 없어도 어둠 속성이나 빛 속성 조합만으로 불러낼 수 있는 특수한 싱크로 몬스터. 딱 이럴 때 꺼내기 좋은 카드라는 것을.
"특수 소환한 '카오스 앙헬'의 효과로 필드의 카드 하나를 제외할 수 있죠. 마지막 남은 '헤비 보거'를 지정."
"'헤비 보거'의 ②의 효과! 땅 속성의 '판테라', 화염 속성의 '라젠'을 보여주고, 상대에게 1500 데미지를 준다."
적의 공격에 대비하듯 '헤비 보거'가 강철로 된 손바닥을 펼친다. 곧 중앙에 포구처럼 뚫려 있는 구멍이 밝게 빛나는가 싶더니, 불덩어리가 발사되면서 데카르트 쪽으로 작렬했다.
[데카르트: LP 1700 → 200]
결과는 명중. 덕분에 적의 LP는 아슬아슬하게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 보복인지, 그 동안 양손에 생성된 빛과 어둠의 에너지를 응축시킨 '카오스 앙헬'이 불길한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구체를 만들어서 내던진다. 곧 그 튼튼해보이는 장갑이 무색하게도 '헤비 보거'의 거체는 구체에 닫는 즉시 증발해버렸다.
"그럼 이제…."
"'위협하는 포효'! 이번 턴 공격은 못해."
유진에게 더이상 지켜줄 몬스터는 없지만, 다행히도 아직 목숨을 부지할 부단이 남아 있었다.
데카르트는 이번 공격으로 끝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며 남은 카드를 다시 들여다 보았다. 다음 턴에 이 패로 얼마나 받아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카드 1장을 세트."
그래. 더 할 것은 없겠지. 그나마 한 시름 덜었다는 사실에 유진이 한숨을 쉬기도 잠시.
"후우…."
떨리면서도 더 뚜렷한 한숨을 데카르트가 내쉬었다.
"여기서 누가 이기던,"
태연한 척 사담을 건네는 그 이마에는 식은 땀이 베인 듯 살짝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런 살 떨리는 순간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될 겁니다. 그 때야말로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겠죠."
"이번에도 그러고 싶다고?"
"물론이죠.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기게 될 기회니까. 좋은 배움의 순간 아니겠습니까."
"점잔빼지 마. 뭔 소리를 해봤자 너도 다른 놈하고 똑같으니까."
"거기에 본인은 포함 안 시키고요?"
"뭐?"
"소중한 게 있으시잖아요? 그걸 위해서 싸우는 것 아니었나요?"
"어디서 비교를 하고 있어? 너처럼 자기 즐거우라고 싸우는 게 아니라고."
"그러시군요. 그 소중한 걸 지켜내면서 보람을 느낀 적이 정말로 없던가요? 그 분마저 이겨 본 당신이?"
끈질기다. 그런데 저 소리를 무작정 부정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생기는 머리를 제 스스로 질책한다.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건 시련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없는, 녀석의 끈질긴 농간에 지나지 않는다. 유노는 이런 소리를 얼마나 들어왔을까.
"시끄러."
"감각을 부정하지 마시라니까. 사람의 이성은 그 동안의 감각으로 축적된 거나 다름없는데, 그런 식이면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꼴이에요. 윤리라는 가면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
다르게 생각해보자. 이 타이밍에서 이런 소리를 꺼낸다는 것은, 패색이 찾아오는 것을 대비해 자신의 심리를 뒤흔들어볼 속셈이겠지. 이런 수법에 넘어가버리는 순간 앞날 따윈 없다.
"턴 끝낼 거야, 말 거야?"
"네, 알겠습니다."
[서문유진: 패 6장]
[데카르트: 패 2장]
게임에 임해버린 자신에게 망설이고 있을 여유 따윈 없다. 그저 이기는 것만 생각하면 될 뿐.
'이기고 싶다'가 아니다. 이겨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이 있으니까.
그 점에서만큼은 서로가 같은 생각이겠지. 다음을 위해 양보할 수 없다는 것까지도.
그런 동감을 통해 오히려 이기고자 하는 마음을 다질 수가 있다.
마침 패도 충분히 쥐어진 참이니, 저 정도의 적진이라 해도 어떻게든 돌파해볼 수 있을 터.
"새로 뽑으셨죠, 그럼 스탠바이 페이즈. 묘지에 있는 '환상수마왕'을 제외하고 ②의 효과 발동. 제외된 환상마족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합니다."
[미러 스워드나이트: 환상마족 / 빛 / 레벨 4 / ATK 1900 / DEF 300]
그러나 그에 대비해 상대도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
LP는 유진 쪽이 한참 더 높지만, 상대 필드에 서있는 몬스터들의 공격력을 따진다면 어차피 공격 한 방에 결판이 날 수 있다는 점은 피차일반.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예나 지금이나 알 수 없어도, 적어도 이것만큼은 직감할 수 있었다. 서로에게 이번 턴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 서로가 같은 걱정을, 기대를 품고 있다.
막연히 다음 순간을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동감한다. 어서 다음이 오기를 재촉할지, 아니면 영원히 맞이할 일이 없기를 바라야 할지 망설여질 정도로.
그렇기에, 지금의 유진 역시 마찬가지로 숨이 떨리고 있었다.
스스로를 또 다독인다. 어차피 한 두 번 일도 아닐 이런 일에 침착해야 한다고.
그럼에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했다. 어차피 어떤 괴로운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까지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이런 괴로운 순간을 정말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이것을 정말 '괴로움'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이 조마조마한 가슴은, 어쩌면 희열을 받아들이려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자신은 '즐거움'을 기대하고 있을 뿐이지 않을까.
'서문유진.'
익숙한 목소리에 화들짝. 또 한동안 잠잠하던 것이 드디어 머릿속에서 제지를 걸어오고 있는 모양이다.
정신을 다잡은 유진의 시선에는 문득 다시 필드로 튀어나온 '미러 스워드나이트'의 모습이 들어왔다.
몬스터의 이름 그대로 공중에 떠 있는 몸체 중앙에는 거울 하나가 달려 있었다. 다소 탁하기는 해도 유진 본인의 얼굴이 비춰보일 만큼의 투명함은 간직하고 있다.
비춰진 표정은 겁에 질린 듯 굳어 있다. 그 이마에는 거울 자체에 새겨진 우자트 눈의 문양이 딱 자리잡고 있었다. 저러니까 마치 뭐에 홀려 있기라도 한 모양새다.
어쩌면 정말로 뭐에 홀려 있는 것은 아닐까.
눈을 껌뻑이고 시선을 정리했다.
방금 전까지 품었던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영락한 꼬라지를 그동안 봐 왔지 않은가. 자신이 적대해 왔던 이들과 같은 꼴이 되는 것은 사양이다.
적어도 자신에겐 폭주를 막아줄 최소한의 브레이크가 존재한다. 유노에게 '리퍼'라는 존재가 있듯이. 유진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일단 이기고 나서 생각해 보자. 그런 식으로 유진은 정신을 온전히 카드 쪽에 집중하기로 한다.
"메인 몬스터 존에 몬스터가 없으니까 패에 있는 'VS 판테라'의 효과 발동. 자신을 특수 소환."
"그럼 체인해서 '미러 스워드나이트'의 효과. 릴리스하고, 덱에서 3장째 '환조'를 특수 소환합니다. 불러낸 '가젤'의 효과로 2장째 '키메라 퓨전'을 서치."
[환조의 왕 가젤: 야수족 / 땅 / 레벨 4 / ATK 1500 / DEF 1200]
[VS 판테라: 야수전사족 / 땅 / 레벨 4 / ATK 1700 / DEF 1900]
[데카르트: 패 3장]
패에 가져왔으니 당장 쓸 수는 없는 카드일 터. 문제는 미리 뒤집어놓은 카드다.
"그리고 함정 카드 '퓨전 듀플리케이션'. 묘지의 '키메라 퓨전'을 제외하고 그 효과를 복사하죠. 소재로 필요한 '유익환상수 키메라'를 패에 있는 '일루전 시프'로 대체하고, 필드에 있는 환상마족 '나이트메어 어프렌티스'와 융합. '환상마수 키메라'를 다시 융합 소환합니다."
[환상마수 키메라: 환상마족 / 어둠 / 레벨 8 / ATK 3100 / DEF 2800]
저것으로 적진에 위치한 몬스터의 총 공격력이 또 늘어났다. 제일 공격력이 낮은 '가젤'은 이들 중 유일하게 수비 표시이므로, 나머지를 상대하려면 최소 공격력 3100은 넘겨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개별 능력 하나하나가 고비나 다름없었다. '카오스 앙헬'이 있는 이상 데카르트의 몬스터는 몬스터 효과나 전투 파괴로도 처리할 수 없으며, '가디언 키메라'는 묘지에 '융합'이 있는 이상 상대 효과의 대상이 되지 않으니까.
그만큼 반격하기가 더 까다로워졌음을 의미한다.
정공법 외에 다른 승리 플랜이 없나 생각해본다. 다른 'VS' 전용 마법 카드인 'Stake Your Soul(스테이크 유어 소울)!'이라도 있었더라면 2장째 '헤비 보거'를 불러내서 데미지 효과로 게임을 끝낼 수가 있었을 테지만, 덱에 투입한 것 중 어느 하나도 뽑지 못한 지금 상황에서는 꿈에 불과하다. 'VS 컨티뉴'는 이미 다 써버린 상태. 설령 조건이 갖춰지더라도 방금 묘지로 간 '미러 스워드나이트'의 효과가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이 상황을 자신이 타개할 방법은 역시 하나. 유진은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
"내 필드의 몬스터 수가 더 적으니까, '다이너레슬러 판크라톱스'를 특수 소환."
[다이너레슬러 판크라톱스: 공룡족 / 땅 / 레벨 7 / ATK 2600 / DEF 1000]
"상대가 몬스터를 특수 소환한 순간, 패에 있는 '특이점의 악마'의 효과를 발동. 패의 마법 카드를 1장 버리고, 그 몬스터를 파괴하죠."
[데카르트: 패 0장]
'판크라톱스'의 효과로는 현재 상황을 돌파하기가 불가능. 그럼에도 같은 속성의 몬스터가 필드에 둘 갖춰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 상대는 'ET레인저' 하나를 보는 것만으로 파악해버린 모양이었다.
"'라젠'을 소환. 효과로 덱에서…."
"'미러 스워드나이트'를 묘지에서 제외하고 ②의 효과. '라젠'의 효과를 무효로."
[VS 라젠: 전사족 / 화염 / 레벨 4 / ATK 1800 / DEF 1500]
[서문유진: 패 3장]
괜찮다. 오히려 여기서 막아준 것이 유진에겐 다행일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저쪽과는 달리 패가 더 남았으니까.
"화염 속성인 '쟈오롱'을 제외하고, 패에서 '화염의 정령 이프리트'를 특수 소환."
[화염의 정령 이프리트: 화염족 / 화염 / 레벨 4 / ATK 1700 / DEF 1000]
"……!!"
또다시 같은 속성의 몬스터가 둘. 그 광경에 데카르트의 표정이 살짝 흐트러진다.
유진은 그 반응만으로도 더 이상 견제할 거리가 떨어졌음을 직감했다. 무심코 가슴 한 편의 근심을 살짝 덜어낸다.
"그럼 화염 속성의 '라젠'과 '이프리트'를 소재로, 'ET레인저 파이로레드'를 링크 소환. '파이로레드'의 ①의 효과로 덱에서 화염 속성이 아닌 레벨 4 이하의 몬스터도 특수 소환."
[ET레인저 파이로레드: 사이킥족 / 화염 / LINK-2 / ATK 1800 / ↑↓]
[이피리아: 파충류족 / 땅 / 레벨 2 / ATK 0 / DEF 1800]
"특수 소환된 '이피리아'의 효과로 1장 드로우. 땅 속성의 '판테라'와 '이피리아'를 소재로, '파이로레드'의 링크 앞에 'ET레인저 지오옐로'를 링크 소환. '지오옐로'는 땅 속성이 아닌 걸 불러낼 수 있어."
[ET레인저 지오옐로: 사이킥족 / 땅 / LINK-2 / ATK 1800 / ↑→]
[VS Dr.매드라브: 악마족 / 어둠 / 레벨 4 / ATK 1200 / DEF 2000]
"'매드라브'의 효과로 'VS 이나선류설풍(스노우 데블)'을 서치. 그리고 '파이로레드'의 ②의 효과! 링크 앞에 있는 몬스터의 공격력만큼 이 카드의 공격력을 올릴 수 있어. 지금 뒤에 있는 '지오옐로'의 공격력만큼 파워 상승!"
[ET레인저 파이로레드: ATK 1800 → 3600]
"이런…!"
저 반응을 보건대 이미 결판은 났다.
유진은 비로소 남은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한다. 이 시점에서 상대가 얼마나 요구에 따라줄지는 차처하더라도.
"당신 보낸 놈 어딨어?"
"…대답하면 살려주시게요?"
"그건 당신이 어떤 벌칙을 내렸느냐에 달렸어."
"아……,"
썩어도 재버워키를 가까이 해온 자라는 것인지, 그 말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이해한 모양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데카르트는 고개를 젓는다.
'봐주지 않겠다'고 그는 받아들인 것이다.
"실은 모르겠거든요."
"진짜 모르는 거야? 아님 말하기 싫은 거야?"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그 분이 어디 사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 하나 아는 게 없어서요. 머릿속에 들리는 그 분 목소리를 따를 뿐."
조건까지 자신과 겹칠 줄이야. 자신과 마찬가지로 재버워키는 어느 날 그의 머릿속에 말을 걸어와 어둠의 듀얼을 제안했을 것이다.
다른 어둠의 듀얼리스트들 역시 거의 다 그런 식이었겠지만, 그렇기에 유진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걸, 어떻게 따를 생각을 해?"
"전지전능한 존재는 일반적인 인식을 초월하는 법이니까.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면,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 것 아닐까요. 실체 따윈 처음부터 없이 누구에게나 깃들어있다고 생각해도 된다는 뜻이겠죠. 뇌내에서 타인의 개념처럼 접하게 되는, 그리고 그걸 몇몇 분들과 공유하는 정체불명의 상. 그건 거스를 수 없는, 아니 거스를 이유가 없는 하나의 절대적인 의지인 겁니다."
"뭐야, 그게? 상상 친구의 신이라도 돼?"
"신이라. 입증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네요."
어떻게 논리를 비약해야 저런 결론에 이른단 말인가.
얼마나 몰려 있어야 그런 것을 신처럼 따르게 되는지, 유진은 아직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런 존재가 당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째서일까요? 대체 뭐가 당신께 그만한 가치를 부여했을지. 뭐가 잘나서 그만한 애정을 받고 있는 건지. 짐작이 가는 거라도 있나요?"
"…하나도."
"아니, 그럴리가. 필사적으로 찾는 제가 절대로 얻지 못하는 걸 가지고 계시는데, 전혀 고마워하시는 것 같지가 않거든요. 어째 불공평하지 않나요?"
반대로 추궁을 시작하는 데카르트의 표정에서 언뜻 분노가 비춰보인다. 위저드를 상대했을 때를 연상시키는 기시감.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물으려던 유진은, 순간 제 머릿속에서 답을 찾아낸다.
"왜 그렇게 집착하는데? 그런 거 없이는 못 살 만큼 인생이 괴로워? 그렇게까지 자극이 필요했어?"
"…네?"
그 말을 들은 데카르트에게서 분노의 기색이 더 뚜렷해지는 것이 보인다. 정답이라는 뜻이겠지.
"자기한테 아무것도 없으니까, 미래가 불안해서 차라리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이라도 한 거야?"
"무슨…!?"
영락없이 헐뜯는 소리에 불과한 물음을 곧바로 반박하지 않는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는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딱 봐도 흔들리는 기색을 그는 미처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정답이겠지.
그렇다면 이번 문답을 통해, 눈앞의 남자가 생기라고는 결여된 가짜 거리 만큼 공허한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딴 녀석에게 잠시라도 두려움을 느꼈던 자신이 바보 같아진다. 위저드도 이런 인간이었을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는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딱 봐도 흔들리는 기색을 그는 미처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정답이겠지.
그렇다면 이번 문답을 통해, 눈앞의 남자가 생기라고는 결여된 가짜 거리 만큼 공허한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딴 녀석에게 잠시라도 두려움을 느꼈던 자신이 바보 같아진다. 위저드도 이런 인간이었을까.
자신도 결국은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닐지 불안이 생겨 온다.
부정하고 싶다. 마치 그 애정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계속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암시해 오는 것만 같다.
어찌 됐든 여태껏 상대해 온 적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그들처럼 때려부수면 되는 일이었다.
"배틀! '파이로레드'로 '가디언 키메라'를 공격!"
마지막 공격을 위해 '파이로레드'가 도약하고는, 주먹을 뻗으며 '가디언 키메라'를 향해 온몸을 날린다. 그 주먹을 기점으로 붉은 몸 주변에 거센 불꽃 회오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불은 정중앙에 있던 짐승의 머리와 격돌한 충격으로 꺼지는가 싶더니, 다시 격하게 점화되면서 이마부터 안면 전체를 불사른다. 이윽고 불이 붙은 머리를 중심으로 곁에 있던 두 머리, 나아가 몸통마저 차례차례로 연소시켜 나갔다.
'카오스 앙헬'의 가호 아래 불사신이나 다름없던 '가디언 키메라'의 육체였지만, 몸이 불타는 고통만은 어찌할 수가 없는지 찢어질 듯한 괴성의 트리오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불이 사그라들고서, 결국 반동을 이겨내지 못한 '파이로레드'는 그대로 튕겨져나가 필드에 착지. 고통에 신음하던 '키메라'의 육체는 힘이 빠진 듯 그 자리에서 무너지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는다. 어쨌든 둘 다 필드를 떠나는 일은 없었다.
서로의 공격력은 겨우 300 차이. 그 데미지가 주인인 데카르트에게도 피드백된다. 그나마 비명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고통이었기에 따라서 주저앉는 일은 없었지만, 이미 남은 라이프(생명)는 그조차 버텨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데카르트: LP 200 → 0]
그렇게 주인의 생명(라이프)이 다하면서 곁에 있던 몬스터들이 차례차례 신기루처럼 사라져간다.
마지막으로 몸에 찾아온 충격에 신음하던 남자는, 억지로라도 미소를 쥐어짜내 보인다. 조소를 보낼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는 듯이.
"…그래도, 이제야 고비 하나 넘으신 거에요. 다음에는 다른 고비가 있겠지만."
"그럼 어째야 돼?"
"그야, 그걸 고비라고 여기지 않는 거죠. 마음 먹기 달린 일 아닌가요?"
이제 와서 존댓말로 돌아가려 들다니. 듣기 싫은 소리에 유진의 표정은 더욱 험악해진다.
"싫으면?"
"뭐 어떡해요. 제가 아닌 당신 인생인데. 이거야말로 앞으로 주어진 당신 인생이에요."
"이딴 인생 필요 없어."
그 한 마디에, 데카르트의 머릿속에 있던 무언가가 또다시 끊어지는 듯한 감각이 찾아온다.
"…평생 그렇게 자기 자신이나 속이며 사시던가."
분명히 패배했음에도, 잠시 쏘아보는 그 눈빛은 아직 지지 않았다고 주장해오는 듯 했다.
"뭐?"
"누구보다 자기 인생이 소중해서 발버둥치는 주제에 어디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냐 이겁니다. 남한테 미래가 불안하니 뭐니 하는 망언을 내뱉을 자격이 있을리가 없잖아요."
제 딴에는 일침이라고 생각하겠지. 물론 반박할 수는 없는 발언이었다.
본인의 인생이 소중하니까 이렇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니까 이렇게 발버둥치고 있는 것도 맞다. 그래, 지금 그의 말은 분명 틀린 것은 없다.
그러나 이 남자 스스로라고 다를까. 스스로 그걸 알았기에 '서로 다를 것 없는 처지다'라는 논조로 입을 털어대지 않았을까.
그러던 그가 정신적 여유를 잃어버리고서는 그런 논조조차 포기하고 자신을 헐뜯어보려 하고 있다. 말 그대로 '패배자의 발악'이라는 것이다.
이러면서 세계 멸망을 떠드는 상상 친구의 이해자를 자처하고 있다니.
그걸 알아버린 이상 무슨 소리를 내뱉든 별다른 동요가 찾아올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유진은 가볍게 답해줄 수 있었다.
"없긴 왜 없어?"
"네?"
"난 이겼잖아. 최소한 다음이라는 게 있거든."
"고비 뿐인 인생인데도?"
"정말 그럴지 어떻게 알아. 발버둥이든 뭐든 치다 보면 바뀔 수도 있잖아. 기회도 없는 댁이랑은 다르게."
돌아오는 것은 데카르트의 코웃음.
"그거야 끝까지 이긴다는 전제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무슨 배짱으로 그런 소리를?"
"그래, 까짓 거 이겨서 버텨 보면 되는 거지."
"무…, 뭐?"
"네?"
"난 이겼잖아. 최소한 다음이라는 게 있거든."
"고비 뿐인 인생인데도?"
"정말 그럴지 어떻게 알아. 발버둥이든 뭐든 치다 보면 바뀔 수도 있잖아. 기회도 없는 댁이랑은 다르게."
돌아오는 것은 데카르트의 코웃음.
"그거야 끝까지 이긴다는 전제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무슨 배짱으로 그런 소리를?"
"그래, 까짓 거 이겨서 버텨 보면 되는 거지."
"무…, 뭐?"
당연한 반응일지도 몰랐다. 본인이 생각해도 당치않은 허세에 불과하니까.
계속 이긴다니. 그 동안 어이없는 실수와 패배를 한 두번 겪은 게 아닌 자신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이번 듀얼만 해도 힘겹게 이긴 주제에.
"그러니까, 진 놈한테 더 들을 얘기 없다고."
그럼에도 지금 주어진 살 길이 그것 뿐이라면 고수해야 한다.
실천할 수 있다고 허세로라도 내뱉는 수밖에 없다. 내뱉은 책임을 져서라도 실천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게 가능키나 하냐는 의심은 치워버려야 마땅하다.
여태까지도, 이번만 해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버텨내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그러면 된다.
마지막이 될 문답에서 들은 것이 이런 어이없는 허세인 것도 모자라, 졸지에 패배자 취급까지 당한 데카르트는 기가 막히다 못해 화가 치밀기 시작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진은 슬슬 디젠이 반응해오는 것을 느꼈다. 곧 이 남자의 입도 진짜로 닥치게 되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유진은 슬슬 디젠이 반응해오는 것을 느꼈다. 곧 이 남자의 입도 진짜로 닥치게 되겠지.
"듣자듣자 하니까! 이게 말이라고…!"
언성을 높여가던 데카르트가 멱살을 잡든 뭐든 해올 생각이었는지 한 발짝 다가오려던 순간,
머릿속에서 한 순간 분노를 식혀버리고도 남는 경련이 일어난다. 무언가의 신호라는 듯이.
직접 겪는 일은 처음이지만 무엇일지 대충 짐작은 갔다.
이것은 자신의 깨달음을 뒤틀어서 상대에게 내리던 저주.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나름대로의 배려였을 것이다.
"아, 안 돼…."
그렇다면 지금 이 깨달음이야말로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지식이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여태까지 어떻게든 모아 온 지식을 이렇게 잃어버릴 수는 없다.
기억해야 한다.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을?
생각을 하는 것 자체에 의문을 느끼게 되어버린다. 어떻게 해답을 내야 할지 그의 머리는 떠올리지 못한다.
답을 낼 수 있는 정보가 그 머리를 떠나버린 듯이. 마치, 그 개념을 배우기 전으로 돌아가버린 것처럼.
그렇게 자기 자신을 이루던 정보에, 데카르트는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나는 어쩌다 졌는가.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몸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숨은 어떻게 쉬는가.
……
당연히 알고 있었던 것들이, 마치 신기루였던 것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져간다.
그동안 겪고 생각해 온 모든 것이 허상, 나아가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환각이었다는 것처럼.
의문의 격류는 말 그대로 데카르트의 숨통을 조여 온다. 벌칙을 받은 그는 그 의문을 영원히 해소할 수 없는 몸이 되어간다. 감각이라는 것을 수용하고 기억할 수 없는 몸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들까지 잃어가는 그에게는 절규하고 있을 틈조차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머릿속이 비어가고 있음에도,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려는 그는 결국 뭔가를 생각해내야만 했다.
그러나 곧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은 문장으로조차 성립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단어 하나 떠올리기도 벅찬 시점에서 그는 결국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이윽고 그의 머릿속에서 생각이라는 것을 이루던 일말의 단어마저 증발해간다.
……
…
한 편 사라지는 어둠 사이로 가려져 있던 진짜 거리의 모습이 드러난다.
빠져나온 유진과 데카르트가 서로를 마주본 채 서 있었던 가운데를, 어느샌가 지나가던 사람들이 채우고 있었다.
시선 너머에서 데카르트는 무언가 목에 걸리기라도 한 듯 컥컥 거리기 시작하더니, 다리를 가누지 못한 채 쓰러진다. 그 상태로 몸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곧이어 주변을 걷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쏠리고, 태연히 지나칠 뿐인 사람들 사이에서 몇 명이 접근하기 시작했다.
"뭐야?"
"몰라, 갑자기 넘어졌어."
"이 사람 안 일어나는데."
"저기, 괜찮아요? 정신 차리세요. 괜찮아요?"
"어, 야, 이거 어떡하냐?"
행인 하나가 더이상 움직이지 않을 몸을 흔들어본다.
옆에 있는 사람은 119에 연락을 하려는 듯 거리 주소를 확인하며 통화에 들어갔다.
"심장마비? 뇌졸중?"
"숨을 안 쉬는데, 이거 인공호흡 해야 되는 건가?"
"그냥 가자. 난 또 뭐라고."
"네, 젊은 남성 분이요. 그냥 가다가 갑자기 쓰러지셨고요. 잠시만요, 여기 주소가…."
그밖에도 어쩌지 하고 허둥지둥 대는 사람이 보인다. 사진이나 영상 따위를 찍기만 할 뿐인 사람들도 보인다. 제일 많이 보이는 것은 그냥 뭔 일인지 힐끗 구경하고 지나갈 뿐인 사람들이었다.
"뭔 일이야?"
유진이 목소리에 흠칫해 보니, 눈앞에는 있어야 할 아이가 멀쩡히 있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데카르트의 말대로 현실에서의 성아린은 무사히 바로 곁에 걷고 있었던 참인 것이다. 뒤를 보고 걷던 그녀는 어느 샌가 바로 옆에 있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넌 괜찮아?"
새삼스럽다는 반응을 동그란 눈으로 드러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녀가 딱히 해를 입은 듯한 기색은 없다.
"나야 괜찮지. 너야말로, 아까부터 대답도 안 하고 걷기만 하던데 뭔 일 있어?"
일이야 있었고 말고. 그 일을 유진 자신과 저 남자 말고 아는 이는 없겠지.
보아하니 이제는 자신 혼자밖에 알지 못할 것이다.
유진은 생각을 바꿨다. 그녀가 자신과 같이 있다고 해서 안전하다는 보장 따위 없다는 것을.
적이 자기 자신만을 노려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야될 정도다.
반면 더욱 확고해진 생각이 있다면, 자신한테 도망칠 곳 따위는 없다는 것이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될지를 생각하니, 여전히 '이기고 본다'는 답 말고는 떠올리지 못하는 머리가 아파져 왔다.
정말 이 아이는 이런 무책임한 녀석과 함께 있어도 괜찮을까.
"빨리 가자."
"어, 유진아?"
적어도 여기 오래 있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확인이 끝났으니 인파들 사이에서 유진은, 아린을 데리고 그대로 뒤돌아가기를 택한다.
뛰고 있는지, 빠르게 걸을 뿐인지 구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유진은 빨리 그 자리를 떠나고만 싶었다.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앞으로의 일에 대한 불안만이 있을 뿐.
그 현장을, 다른 한 명은 흥미로운 듯이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
"이거다."
일시 정지.
그리고 멈춘 모니터에서 포착된 카드 이미지를 통해 텍스트를 포함한 정보를 찬찬히 확인해 본다.
"흠, 이렇게 돼 있구나."
이걸로 제보는 사실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어둠의 에너지가 반응을 일으키는 특수한 카드, '코스모화이트'. 그 카드가 영역 사이에서 개화를 마친 것이다.
"이걸 썼다는 건 조건을 클리어했다는 건데…. 동료들이 다 모여야 나타나는 대장이라 이건가.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
아무리 수없이 거래되는 카드들을 확인해 온 그라고 해도 실존을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떤 팩을 뜯어도, 어떤 이벤트에 응모해도 절대로 입수할 수 없는 레어 중의 레어 카드니까. 데이터 베이스에도 띄우지 않고, 어떤 매매 기록도 없다면 누구도 그 카드의 존재를 확인할 길은 없다.
'엔보이드' 같은 극비 시리즈처럼, 진실은 여전히 카드 제작의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진 '인더스트리얼 일루전'만이 알고 있을 노릇이리라.
그들은 이미 예전부터 어둠의 듀얼이라는 이변을 예측하고 대비해왔다. 창시자부터가 그에 깊이 얽혀 있는 인간이었고, 사내 격동의 역사 속에서 후계자 역시 어둠의 듀얼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회사가 '카이바 코퍼레이션'에게 합병되는 과정에서도 카드 디자인의 최종 승인 역할만큼은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것 역시 이런 이유와 관련이 있었다.
그러한 이들의 행동은 주로 카드라는 결과를 통해 나타난다. 아무리 KC를 비롯한 외부에서 심사를 거쳐봤자, 결국 환경의 판도는 여전히 그들이 허락하거나 내놓는 카드에 달려 있었다.
대회든, 경제든, 기타 여러 사회 관계든, 심지어 목숨마저도. 그들이야말로 듀얼리스트들의 운명을 사로잡고 있다고 봐도 좋다.
카드라는 떡밥에 일희일비하는 듀얼리스트들을 볼 때마다, 그들은 일루전의 손가락에 맞춰 춤추는 꼭두각시가 아닌가 생각하고는 했다.
승리의 달콤함에 낚여서 저마다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을 걸었던가. '듀얼 킹'이라는 칭호를 두고서 얼마나 많은 재주를 선보였던가.
최후의 승리자는 결국 카드를 통해 수익을 벌어들이는 쪽인 것이다. 그것은 어둠의 듀얼이라는, 세간의 시선에 들지 않는 환경에서조차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거기에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기에, 그는 그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어쨌든 때가 오긴 왔다는 건데, 아…, 야단났네. 지금 처리해도 되나."
어쨌든 알았으면 조치를 고려할 차례다.
판단은 신중할 수록 좋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너무 끄는 것은 좋지 않다. 카드 주인의 신변이 이 판단에 달려 있다면 더더욱.
'빠를 수록 좋기야 하겠지만, 과연 저쪽이라고 모를까? 더구나 지금 상황은 하필…'
더구나 타이밍조차 썩 좋지 않다. 하필이면 지금에서야 발견해내다니. 마치 이 순간을 노렸다는 것만 같다.
자신조차도 누군가의 손가락에 놀아나는 신세라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이 고민에 드는 시간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자기 파멸적 예언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 사람이라면 아랑곳 않고 바로 행동에 나섰으리라는 것을.
때는 찾아오게 되어 있다. 그 순간을 기대해야 할지, 우려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그런 그가 당장 취할 행동이란,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놀리는 일이었다.
일시 정지.
그리고 멈춘 모니터에서 포착된 카드 이미지를 통해 텍스트를 포함한 정보를 찬찬히 확인해 본다.
"흠, 이렇게 돼 있구나."
이걸로 제보는 사실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어둠의 에너지가 반응을 일으키는 특수한 카드, '코스모화이트'. 그 카드가 영역 사이에서 개화를 마친 것이다.
"이걸 썼다는 건 조건을 클리어했다는 건데…. 동료들이 다 모여야 나타나는 대장이라 이건가.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
아무리 수없이 거래되는 카드들을 확인해 온 그라고 해도 실존을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떤 팩을 뜯어도, 어떤 이벤트에 응모해도 절대로 입수할 수 없는 레어 중의 레어 카드니까. 데이터 베이스에도 띄우지 않고, 어떤 매매 기록도 없다면 누구도 그 카드의 존재를 확인할 길은 없다.
'엔보이드' 같은 극비 시리즈처럼, 진실은 여전히 카드 제작의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진 '인더스트리얼 일루전'만이 알고 있을 노릇이리라.
그들은 이미 예전부터 어둠의 듀얼이라는 이변을 예측하고 대비해왔다. 창시자부터가 그에 깊이 얽혀 있는 인간이었고, 사내 격동의 역사 속에서 후계자 역시 어둠의 듀얼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회사가 '카이바 코퍼레이션'에게 합병되는 과정에서도 카드 디자인의 최종 승인 역할만큼은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것 역시 이런 이유와 관련이 있었다.
그러한 이들의 행동은 주로 카드라는 결과를 통해 나타난다. 아무리 KC를 비롯한 외부에서 심사를 거쳐봤자, 결국 환경의 판도는 여전히 그들이 허락하거나 내놓는 카드에 달려 있었다.
대회든, 경제든, 기타 여러 사회 관계든, 심지어 목숨마저도. 그들이야말로 듀얼리스트들의 운명을 사로잡고 있다고 봐도 좋다.
카드라는 떡밥에 일희일비하는 듀얼리스트들을 볼 때마다, 그들은 일루전의 손가락에 맞춰 춤추는 꼭두각시가 아닌가 생각하고는 했다.
승리의 달콤함에 낚여서 저마다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을 걸었던가. '듀얼 킹'이라는 칭호를 두고서 얼마나 많은 재주를 선보였던가.
최후의 승리자는 결국 카드를 통해 수익을 벌어들이는 쪽인 것이다. 그것은 어둠의 듀얼이라는, 세간의 시선에 들지 않는 환경에서조차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거기에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기에, 그는 그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어쨌든 때가 오긴 왔다는 건데, 아…, 야단났네. 지금 처리해도 되나."
어쨌든 알았으면 조치를 고려할 차례다.
판단은 신중할 수록 좋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너무 끄는 것은 좋지 않다. 카드 주인의 신변이 이 판단에 달려 있다면 더더욱.
'빠를 수록 좋기야 하겠지만, 과연 저쪽이라고 모를까? 더구나 지금 상황은 하필…'
더구나 타이밍조차 썩 좋지 않다. 하필이면 지금에서야 발견해내다니. 마치 이 순간을 노렸다는 것만 같다.
자신조차도 누군가의 손가락에 놀아나는 신세라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이 고민에 드는 시간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자기 파멸적 예언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 사람이라면 아랑곳 않고 바로 행동에 나섰으리라는 것을.
때는 찾아오게 되어 있다. 그 순간을 기대해야 할지, 우려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그런 그가 당장 취할 행동이란,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놀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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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화 올린지 벌써 한 달이나 넘게 지나버렸네요.
듀얼 자체야 다 쓴지 꽤 됐는데도 오리카 새로 그리겠다고 시간을 잡아먹어버렸습니다. 슬픈 소식은 다음 듀얼에 오리카가 나올 가능성이 높기에 또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지요 따흐흑
이번 에피도 나름 몇 가지 오마주를 시도해봤는데 알아봐주실지, 이번 묘사에 어울리기는 할지도 걱정 반이군요.
역사와 전통의 어둠의 게임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벌칙인데 본인이 봐도 이걸 소홀히 생각한 감이 있습니다. 뭔가 기발하면서도 맛이 간 느낌을 연출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면서도 생각대로 되지를 않는달까. 그 흔적이라도 전에 써본 적이 있습니다만, 정작 주인공 앞에서 현재진행형으로 터뜨리자니 심리적 영향 묘사까지 고려하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뭐 안 터뜨린다는 건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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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만에 올라온 새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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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여기 어둠의 듀얼은 현실의 묻지마 범죄 같은 이미지도 있네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휘두르는 그런 범죄. 그 정도로 폐급인생이 아니면 구태여 저런 짓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런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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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8.03 15: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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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여기 어둠의 듀얼은 현실의 묻지마 범죄 같은 이미지도 있네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휘두르는 그런 범죄. 그 정도로 폐급인생이 아니면 구태여 저런 짓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런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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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젠이라는 물건을 라이드 슈터로 치환해도 내용은 비슷할지도 모르겠군요 | 24.08.03 18:3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