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은 원래 카드 게임 만화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만화의 주제는 '게임'이 아니라 '게임을 통해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그렇기에 만화 내에서는 '게임 같은 것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장면이 자주 강조되고, 오히려 듀얼같은 게임 따위로 사람을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게 만드는 부류의 인간이 사악하거나 추하게 묘사됩니다.
때문에 작중에서 듀얼은 대화의 수단이자 은유입니다. 원작의 게임 룰이 다소 일관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면모가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 유희왕 문고판 13권 후기 中
카이바는 아버지 고자부로의 승리중심주의 사상과 본인의 심한 애정결핍의 결합 때문에 승리에 집착해왔다는 설정이 있습니다.
카이바의 원래 목적은 아템에게 승리하여 배틀시티에서 우승하는 방식으로 최종적으로 고자부로에 대한 콤플렉스를 넘으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결국 끝내 고자부로의 사상에 얽매인 채일 뿐입니다.
작가분 또한 배틀시티에서 카이바는 비록 패배했지만, 그로 인해 고자부로에게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승자라고 표현하신 바 있습니다.(문고판 18권 후기 中) 배틀시티 결말부의 알카트라즈 폭파가 갖는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작중에서 듀얼은 대화의 수단이자 은유입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카이바가 가장 격렬하고 진심으로 부딪쳤던 상대는 아템입니다.
그렇기에 카이바의 인생에서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아템이었을 것입니다. 유희는 그냥 실력만 좋은 생판남일 뿐이지요.
때문에 저는 신극장판의 일들은 카이바가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이 없어졌기에 생긴 것이라 해석합니다. 그렇기에 신극장판에서 카이바는 거의 기뻐하거나 웃지 않으며, 시종일관 우울하고 조급한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오벨리스크의 임팩트에 가려지기 쉬운 부분인데요, 그 승부욕 강한 카이바가 유리한 상황임에도 먼저 듀얼 중단을 선언하고 자리를 뜹니다.(DVD 비하인드 영상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합니다)
오벨리스크가 나왔으니 사실상 카이바의 판정승이라는 평가가 크기도 하지만, 뒤에 나올 아이가미 vs 유희 직전에 자신이 아이가미를 먼저 상대하겠다는 투의 태도로 보아 본인 또한 확실히 결판이 나지 않았음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분명 아템과 함께 사라졌을 오벨리스크를 직접 눈 앞에 데려왔으니, 카이바의 아템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집념 또한 한층 더 확고해졌을 것입니다.
신극장판에서의 연설 장면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작가분의 사상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약하면 사람은 태생적으로 싸워야 하는 생물이지만, 듀얼을 통해 이제 아무도 다치거나 죽을 필요 없이 마음껏 싸워도 된다는 내용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도 경쟁은 절대 없어져선 안되는 것이니만큼, 이렇게 다치거나 죽는 사람 없이 경쟁이 지속되며 끊임없이 발전해나가는 모델이 제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명계 엔딩입니다.
사실 신극장판 이전 단편 만화 TRANSCEND GAME에서부터 이미 카이바는 명계에 진입을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시스템 및 키사라로 추정되는 인물과 모쿠바의 개입으로 중단되었지요.
하지만 신극장판의 일들로 인해 결점이 보완되었고 최종적으로 카이바는 목적을 이루는 데에 성공합니다.
때문에 저는 처음 봤을 때 꽤나 감명깊었던 장면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산 자가 저승으로 가면 된다느니 하는 광기 밈으로만 쓰이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저승으로 간다는 건 여러 신화 등에서도 빈번하게 나오는 소재라 딱히 이상하게 느끼지 않기도 했고요.
어째 카이바에 대한 옹호글을 자주 쓰는 것 같습니다만 제가 원작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죠노우치입니다.(...)
언제부턴가 유희의 무한루프 밈과 더불어(혹시 몰라서 덧붙이지만 애니의 삼환신 공략에서 마그넷 워리어는 합체한 적도 없고 나아가 루프 자체가 나온 적이 없습니다) 카이바도 밈에 먹힌 것 같아서 참 안타깝습니다. 좀 깊게 파고들면 카이바는 열등감에 찌든 캐릭터로 볼 수가 없거든요. 오히려 투쟁광에 가까울 것입니다. 정확하진 않겠지만 당장 생각나는 캐릭터 비유로는 블리치의 자라키 켄파치가 있겠군요.
성질이 급하고 인성이 좀 더러운 건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만. XD
그리고 무엇보다 유희왕은 듀얼에서 이기기만 하면 다 된다거나 유희 짱짱 데단해 하면서 치켜세우는 내용이 아닌데, 라이트팬분들이야 그렇게 이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심한 경우 만화를 제대로 본 적도 없으신 분까지 영향을 받아 이상한 이야기를 하시는 경우까지 있더군요. 요즘 논란되는 요약본만 보는 경우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유희왕 만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더 깊이 알아보려 여러 자료도 찾아보았지만, 제가 만화와 애니 이야기를 하는 건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좋겠군요. 최근 오프 실전 티어게임에도 흥미가 생기게 되면서 여러모로 카드를 보는 마인드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106.101.***.***
카이바군 실드 글…로 느껴지진 않고 재미있는 고찰이 많아서 읽기 편한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211.234.***.***
그치만 전속전진이다 밈이 너무 재밌어서 그만
118.235.***.***
듀얼이 갖는 메세지... 그냥 볼 때는 사실 너무 휙휙 지나가서 알기 어렵습니다만, 이제 이걸 두번 세번 복기하다보면 "어?" 하는 씬들이 보이지요 이제 그 장면을 갖고서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석할지는 독자의 몫이고... 카이바가 열등감에 찌들었다는 것은 해석이 갈릴 수 있습니다만 아템을 유일한 이해자로 생각한다는 점은 저도 공감이 크게 가네요
1.219.***.***
생판 남...은 좀 너무한 얘기지 싶긴함다(...)나름 같은학급 급우였는데.... 물론 주로 대적해왔던건 왕님이고 현재의 카이바가 완성됐다고 볼수있는 킹덤편이후의 접점은 사실상 꼬리말고 도망간놈정도의 인상일거라곤 생각하지만(...) 이게 다 카이바가 왕님 담궈지는걸 직관못해서 생겨난 비극...(?)
58.232.***.***
카이바도 유우기를 어느정도는 인정하고 있긴하지만, 동시에 무시하고 있기도 하죠, 원작에서는 최종 듀얼을 카이바가 보지 못했고. 유우기를 아템의 그릇이었던 애로만 인식하고 있었기도 하고요
106.101.***.***
카이바군 실드 글…로 느껴지진 않고 재미있는 고찰이 많아서 읽기 편한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119.204.***.***
읽기 편하셨다니 다행이네요. 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읽는 사람에게 잘 전해질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 23.01.29 18:21 | |
106.101.***.***
읽으면서 확실히 대화의 부재, 이해자의 부재, 맞수의 부재 등 복합적인 결핍을 가진 카이바의 아템에 대한 집착을 단순히 '이긴 상태로 도망치다니 비겁하다 ㅂㄷㅂㄷ' 로만 해석하기엔 어려운 부분들이 있죠 싶었고 그런 면에서 유희는 카이바에게 '아템보다 모자란 상대' 보다는 '넌 뭔데'에 더 가까웠을 거란 생각도 드는 거죠 자기가 이제까지 대화(듀얼)하고 이해(듀얼)해온 상대는 아템이었지 유희가 아니었기에, 그냥 게임 잘 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재밌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신극 보고 싶어졌네요 (*´▽`*) | 23.01.29 19:14 | |
118.235.***.***
듀얼이 갖는 메세지... 그냥 볼 때는 사실 너무 휙휙 지나가서 알기 어렵습니다만, 이제 이걸 두번 세번 복기하다보면 "어?" 하는 씬들이 보이지요 이제 그 장면을 갖고서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석할지는 독자의 몫이고... 카이바가 열등감에 찌들었다는 것은 해석이 갈릴 수 있습니다만 아템을 유일한 이해자로 생각한다는 점은 저도 공감이 크게 가네요
119.204.***.***
적어도 배틀 시티 이후로는 카이바는 열등감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천공 콜로세움에서 카이바를 연호하는 홀로그램 관중들과, 신극장판에서 아무도 필요없이 조용한 성당에서 홀로그램 아템과 듀얼하는 장면이 대비된다는 해석이 유명하기도 하죠. 저는 오히려 카이바의 행동을 열등감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가끔씩 보여 놀랐습니다. | 23.01.29 18:24 | |
1.219.***.***
생판 남...은 좀 너무한 얘기지 싶긴함다(...)나름 같은학급 급우였는데.... 물론 주로 대적해왔던건 왕님이고 현재의 카이바가 완성됐다고 볼수있는 킹덤편이후의 접점은 사실상 꼬리말고 도망간놈정도의 인상일거라곤 생각하지만(...) 이게 다 카이바가 왕님 담궈지는걸 직관못해서 생겨난 비극...(?)
119.204.***.***
킹덤 편 일에 대해서는 오히려 감사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도 자주 밈으로 쓰이지만 그 때는 승부보다 모쿠바를 구하는 것이 더 우위에 있는 목적이었으니 말이죠. 실제로 카이바는 안즈의 지적에 반박을 못하며 꼼짝 못했고, 배틀 시티 편에서 본인도 구울즈에 대해 게임으로 사람의 목숨을 거는 건 당장 막아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하죠. 본문에도 적었듯, 원래 게임 따위에 사람의 목숨을 거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요. | 23.01.29 18:28 | |
106.248.***.***
카이바가...남한테 감사의 마음을 가진단건 상상이 안가요...... | 23.01.29 19:57 | |
211.234.***.***
그치만 전속전진이다 밈이 너무 재밌어서 그만
119.204.***.***
그거랑 작붕이 재미있긴 합니다 ㅋㅋ 실제로 캐릭터성이 그런 것도 있고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밈에 먹혀버린 것 같아요. | 23.01.29 18:31 | |
58.232.***.***
카이바도 유우기를 어느정도는 인정하고 있긴하지만, 동시에 무시하고 있기도 하죠, 원작에서는 최종 듀얼을 카이바가 보지 못했고. 유우기를 아템의 그릇이었던 애로만 인식하고 있었기도 하고요
119.204.***.***
네. 때문에 신극 중반까지 카이바에게 유희는 그저 생판남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특히나 신극에서는 아템에 대한 집착에 미쳐있었으니 유희를 면밀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도 있겠죠. 그리고 유희 및 조크가미와의 듀얼 후 유희를 확실하게 인정하는 장면으로 정리되지요. | 23.01.29 18:33 | |
221.153.***.***
119.204.***.***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기쁘네요. :) | 23.01.29 19:57 | |
59.5.***.***
119.204.***.***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기쁩니다. 말 나온 김에 그... 정말 가끔 보이는 경우지만, 유희를 무슨 우상화시키면서 이입하며 마스터베이션 용도로 사용하시는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캐릭터에 이입하는 건 딱히 나쁘게만은 안봅니다. 실제로 지인 중에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동경한다고 다이어트해서 진짜로 감량 성공한 사례도 있거든요. 하지만 그건 만화 원작 내내 강조하는 유대와 우정, 커뮤니케이션과 유희의 자립이라는 주제와 배치되는 일일뿐더러, 위 사례처럼 자신이 캐릭터를 본받아 딱히 뭔가를 하지도 않을 용도라면 소위 양산형 이세계물도 많은데 왜 잘 모르는 유희왕에서까지 그러시는지 좀 궁금하기도 합니다. 유희도 굉장히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밈 때문에 정도 이상으로 띄워지면서 예전보다 약간 거부감이 생겨난 것 같아요. | 23.01.30 10:1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