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스피드는 유희왕에서 오래된 주제들 중 하나입니다. 적절한 게임 속도가 어느 정도냐에 대한 논의는 항상 뜨거운 감자였죠.
대부분의 분들이 게임 속도가 빠르다는 데는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느린 덱을 밀어주고 게임 속도를 늦추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죠. 이는 '함떡'으로 대표되는 느린 덱들이 상대를 꽁꽁 묶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상대하는 입장에서 짜증난다는 점이 한 몫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 이러한 덱들은 게임 턴수를 늘리기는 하나 느린 덱은 아닙니다. 덱의 속도는 덱이 얼마나 빠른 시간(턴) 내에 플레잉을 해내느냐로 구분하는데, 함정을 세트하는 것 또한 해당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는 플레잉의 일부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선턴 5세트 함떡덱은 첫 턴에 카드 5장을 플레이하는 엄청 빠른 덱이죠. 옆 동네 하스스톤에서 카드 세트에 대응하는 비밀 걸기에 코스트가 들어가고, 그 때문에 첫 턴에 비밀 서너개 이상을 걸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희왕의 덱들이, 심지어 게임을 길게 가져가는 덱들마저 빠른 덱이 되어야 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꽤 많은 수의 다른 TCG 게임들은 '마나' 혹은 유사한 시스템을 차용합니다. 공통적으로 카드를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비되어야 하며, 시간(턴)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더 많이 쌓인다는 특징을 가지는데, 이 마나의 부재가 유희왕의 제일 큰 특징 중 하나죠. 마나는 특별한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초반에는 매우 적게 제공되고 일정량 이상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턴을 버텨내야 합니다. 그 때문에 초반에도 쓸 수 있는 카드와 후반에서만 쓸 수 있는 카드가 생기고, 초반에 찔끔찔끔 주는 마나를 바닥까지 긁어모아 쓸지(어그로) 최대한 버티고 버텨 대량의 마나가 공급될 때까지 시간을 끈 후 비싼 카드들을 사용해 승기를 잡을지(컨트롤)의 아키타입 분류가 생깁니다.
마나가 없다는 것은 이러한 특징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희왕에서 시간은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10턴에 쓸 수 있는 카드는 1턴에도 쓸 수 있죠. 플레이어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목표(대부분 승리)를 가지고 경기에 임하고, 턴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기며, 그 하나하나가 변수로 작용해 목표 도달 확률을 낮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느린 덱은 기본적으로 빠른 덱보다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그런데다 시간을 끈다고 해서 특수한 카드가 사용 가능해진다던가 하는 메리트조차 없으니, 유희왕에서 느린 덱은 빠른 덱보다 나은게 하나도 없는 수준이 된 것입니다. 결국 최대한 변수를 배제하고 안정적으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1턴에 목숨을 걸게 되고, 1턴에 전투는 불가능하니 견고한 집을 지어 2턴 상대를 봉쇄하고 3턴에 게임을 끝내기 위한 덱들과 이를 막기 위해 1턴에도 상대 견제가 가능한 패트랩과의 끊임없는 싸움이 계속될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는 다음에 새로운 룰이 추가된다면 소환법같은 종류가 아니라 이런 종류였으면 합니다. 마나를 채용하기에는 너무 머나먼 길을 왔지만 다른 방법으로라도 시간을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룰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간단하게는 첫 패 수를 줄여 초반에 플레이할 수 있는 카드의 수를 줄여 비슷한 효과를 낸다던가(다만 이 경우 운빨요소가 늘어나기 때문에 멀리건 등의 룰을 같이 채용해 해당 부분을 상쇄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등의 방법이 있고, 그 외에도 유희왕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도 충분히 도입 가능한 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룰은 초반 턴에 사용 가능한 필드 칸 수에 제약을 거는 형태인데, 턴 시작할 때 턴 플레이어가 세로열 5개 중 하나를 고르고, 그렇게 골라진 이후부터 해당 세로열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룰입니다. 1턴에는 마함존 1칸과 몬스터존 1칸(선택에 따라 엑스트라존까지 2칸)을 쓸 수 있을 것이고, 모든 존을 다 사용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5턴이 지나야 하죠. 함떡을 한다 하더라도 1턴에는 함정 1장만을 세트할 수 있고, 다량의 몬스터를 전개하여 게임을 끝내고 싶어도 필드가 적당히 해금될 때까지 수 턴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1턴에 목숨을 거는 문제는 완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펜듈럼 문제라던가 융의/싱엑간 밸런스 등의 몇몇 문제가 있어서 아직 고민중에 있습니다.
펜듈럼과 링크를 거치면서 대격변 규모의 룰 변경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만큼 이후에 굳이 마나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측면의 룰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시스템적으로 큰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개인적으로 커스텀 룰 적용해서 듀얼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커스텀 룰에 대해 완전히 자신하고 있지 않기도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즐겨주실지에 대한 불안도 있어서 쉽사리 도전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위에 이야기한 룰에 관련된 의견이나 다른 생각이 있다면 공유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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