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헤스티아님과 사랑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옆을 보니 헤스티아님이 곤히 잠들어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살며시 미소짓더니 손을 잡아왔다.
"벨... 어제 말했었지? 책임질 수 있다고."
"네, 책임지겠습니다. 헤스티아님."
"정말... 그만하라 했는데도, 계속하다니. 너무 거칠지 않았느냐?"
그 뒤에는 스테이터스를 갱신받았다. 뭔가 온 몸에서 힘이 넘쳐흐르는 기분이야,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인가! 그렇게 갱신된 스테이터스는
<힘:E403/내구:G200/기교:S999/민첩:F350/마력:???>
기교가 왜 풀로 올라버린 ㄱ... 아, 이거 설마 그건가? 메챠쿠챠해서 그런 건가? 하긴, 상대가 여신이니까, 그것도 처녀신이었으니까, 한 번에 천원돌파 해버려도 이상할 건 없겠지. 힘에 체력이 포함된다고 가정하면, 이것의 수치까지 한 번에 오른 건 위의 이유하고 같은 것 같고...
"고마워요, 헤스티아님. 오라리오에 내려와주셔서..."
"... 벨, 바람 피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예? 아, 네. 헤스티아님을 놔두고 바람필 일이 있겠습니까?"
대답을 듣자마자 품에 안겨온 그녀의 온기에 마음이 편해지는 게 느껴진다. 누군가 말했다, x을 x대로 놀리며 x된다. 불변의 진리이자, 사랑에 빠진 이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
오늘도 던전을 향해 달려간다.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면서 쭉쭉 내려가다보니, 어느새 7계층까지 도달해, 룸이라 불리는 던전 내의 널찍한 정사각형 공간에 도착하였다. 사각사각사각... 낙엽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킬러 앤트, 7계층에서 서식하는 불개미형 몬스터, 죽을 위기에 처하면 동료를 부르는 페로몬을 내뿜는 곤란한 녀석이다.
"빈약빈야아아아아아악!! 이 정도의 파워로, 날 이길 거라 생각한 거냐!?"
하지만 지금은 공짜 경험치죠. 죽을 위기에서 페로몬을 내뿜는다면, 그 전에 숨통을 끊어버리면 그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엔 보팔소드로 두 동강이 난 킬러 앤트들의 시체가 잔뜩 널부러져 있었다. 이제 마석을 채취할 시간, 한계까지 오른 기교 수치 덕분에 이전보다 쉽게 마석을 빼낼 수 있었던 것이다.
"키이이이익! 키이익!!"
"와바랏!"
그 다음으로 나타난 몬스터는 니들 래빗, 이름대로 머리에 뿔 하나가 솟아올라 있는 토끼다. 우효오오옷, 니들래빗의 뿔 GET다ZE☆! 다시 한 번 마석채취를 마친 후, 마석과 드롭 아이템들을 챙겨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문제가 있다면, 올라올 때의 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힘에 부치지는 않으나, 은근 걸리적거려 서포터가 마려워진다. 누메론 게이트가 있긴 하다만, 까딱하면 죄다 박살날 위험이 있기도 하다.
"한 번에 7계층까지 내려가면 어떡하니!? 까딱하면 죽을 수 있다고 계속 얘기했잖아!!"
"웃흥~! 스탯이 잔뜩 올라서, 별 거 아니던데요? 몇 개는 아예 E 이상이니까."
길드의 샤워실에서 씼고 나와, 에이나 누나의 경악 섞인 물음에 대답을 해주었다. 테크세터를 하지 않아도 7계층까지 무리없이 내려갈 수 있을 줄은 본인도 몰랐는데, 가능했다.
"... 저, 벨. 확인해볼 수 있을까?"
"미치셨습니까, 엘프?"
모험자의 스탯은 함부로 공개해선 안 된다. 무슨 문제가 생길 지도 모르는 데다, 까딱해서 상관없는 사람에게까지 퍼졌다간... 애초에 처음보다 폭발적으로 상승한 스탯에 다른 파밀리아가 어떤 트집을 잡을 지 모르기에 함부로 보여줄 수 없었다. 설령 에이나 누나라해도.
"그, 그렇게 정색할 것까진 없잖아..."
"죄송합니다만, 이건 누나한테도 못보여드리는 거에요... 저, 누나. 내일 저하고 쇼핑 좀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 아, 응? 그, 그래! 같이 가자!! 그럼 시간은..."
약속을 잡고 나서, 환전소에 들러 드롭 아이템과 마석들을 돈으로 바꾼 뒤에야 파밀리아 홈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헤스티아님하고 같이 가고 싶지만, 내일은 헤스티아님이 알바 뛰는 날이다.
이번에 번 돈은 3000 발리스. 스탯이 오르니, 버는 돈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오, 다녀왔느냐! 벨!!"
"네, 다녀왔습니다. 헤스티아님... 응챠!"
"후에으응...!"
돌아오자마자 달려온 헤스티아님을 살며시 끌어안아 들어올렸다가, 다시 내려준다. 양뺨에 붉게 물들인 채, 기묘한 소리를 흘리는 그녀... 귀엽다. 정말 귀엽다. 그야말로 지고의 미(美).
식사, 설거지, 양치질...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쳐, 품에 헤스티아님을 안은 채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의 일들을 기대하면서... 그로부터 다음날,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오라리오 북부의 반원형 광장으로 향하였다.
"미안, 많이 기다렸지?"
"아뇨, 저도 금방 왔어요."
레이스를 댄 귀여운 흰새 블라우스에 짧은 스커트. 어딘가 패셔너블하고 시원한 인상. 매일 쓰던 안경은 벗은 상태... 허나 느껴지지 않았다. 헤스티아님에서 받았던 두근거림을, 에이나 누나에게선 느낄 수 없었다.
"어때, 잘 어울려?"
"... 아, 네. 잘 어울립니다. 옷이 날개네요."
적당한 칭찬을 해주고나서, 그녀와 함께 던전 위를 덮고 있는 바벨로 발걸음을 옮긴다. 길드가 소유하고 있는 바벨은, 모험자를 위한 공공시설의 역할이 첫번째. 간이식당, 치료시설, 환전소 뿐만이 아니라 일부 빈 공간을 여러 상인들에게 임대해주고 있다. 던전 바로 위에 있는 만큼 가게는 전부 모험자를 위한 전문점 뿐. 따라서 지금 우리들이 향하는 장소는 바벨에 있는 무기점이다.
'... 이거 엘리베이터잖아, 아무리 봐도.'
움직이는 물과 수레를 이용하고 있어도, 원리 자체는 '내'가 알고 있는 엘리베이터와 마찬가지였다. 무기점으로 들어간 후, 쓸만한 무기나 갑옷을 둘러보던 중 상자에 담긴 경갑을 보게 됐다.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순백의 빛깔과 몸에 착 달라붙은 것 같은 조그만 브레스트플레이트, 팔꿈치, 하박, 허리부분까지 최소한도의 부위만을 보호하는 구조... 그 경갑에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이 감정, 틀림없는 사랑이다!!
"그걸로 괜찮겠니?"
"네, 너무 무거우면 몸이 둔해지니까요... 중장갑은 맞지 않기도 하니까."
빠르게 움직여 강한 공격을 내지른 뒤, 다시 다른 곳으로 물러서다가 돌격하거나 재빨리 공격해서 쓸어버리는 것이 나의 전투 스타일이기에, 묵직한 갑옷은 내게 맞지 않는다. 제작한 사람 이름이 벨프 크로조인가.
"벨,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야."
"아, 아니에요! 괜찮슴다!"
가늘고 긴 프로텍터였다. 부속 건틀릿에 달아놓은 형태로, 손목에서 팔꿈치 정도 되는 길이다.
"나는 돌아오지 못했던 모험자를 너무 많이 봤어... 꼭 돌아와줬으면 좋겠는걸, 벨은. 아하하. 이래선 역시 나를 위해서가 되려나?"
젠장, 이러면 받을 수밖에 없잖아. 2만 발리스, 남은 돈 11000발리스. 그렇게 크지 않은 지출이구나. 에이나 누나와 헤어지고 나서 파밀리아 홈을 향해 되돌아가려던 순간, 눈 앞에서 달려오던 파룸 소녀와 부딪히고 말았다.
"괜찮나!?"
"이 망할 꼬맹이, 드디어 잡았다!"
"히히히! 못 가!"
험악한 인상의 모히칸 사내가 소녀가 달려온 방향에서 달려와, 뒤로 감춘 파룸 소녀를 붙잡으려 했다.
"아앙!? 다른 꼬맹이는 뒤로 빠져있어!!"
"어이, 듀얼해라."
"흥, 이 몸에게 듀얼로 덤빈 걸 후회하게 해주마!"
역시 듀얼 만능주의야, 성능 확실하구만. 듀얼디스크를 전개시켜 몇 걸음 뒤로 물러서 듀얼을 시작한다.
""듀얼!""
[모히칸/패5장/LP4000]
[벨 크라넬/패5장/LP4000]
듀얼이 시작되어, 선공이 모히칸으로 결정된다.
"그럼 나의 선공! [디지털 버그-웰솔더]를 일반 소환, 레벨3의 곤충족 몬스터를 일반 소환했으므로, [디지털 버그-레지스트라이더]를 특수 소환!!"
[디지털 버그-웰솔더/레벨3/ATK500]
[디지털 버그-레지스트라이더/레벨3/ATK1000]
전뇌세계에 서식하는 푸른빛의 거미, 웰솔더와 소금쟁이, 레지스트라이더가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빛을 발하는 레지스트라이더.
"[레지스트라이더]의 효과, 이 카드와 [웰솔더]의 레벨을 7로 변경!! 레벨7 [웰솔더], [레지스트라이더]를 오버레이, 엑시즈 소환!!"
필드로 펼쳐진 은하 속으로, 빛줄기로 화한 두 벌레가 빨려들어가 섬광을 폭발시켰다. 이윽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청색의 존나 큰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 하나.
"나타나라, [디지털 버그-라이노세버스]!"
[디지털 버그-라이노세버스/랭크7/ATK2600->3600]
이름하여, 라이노세버스. 그 공격력은 레지스트라이더의 효과 덕분에 1000 상승해 3600까지 치솟아오른다.(모히칸의 패/5->3)
"카드를 1장 세트하고, 턴 엔드!!"
모히칸이 차례를 마치자, 내게로 차례가 넘어온다.
"그럼 나의 턴, 드로!"
"함정카드 [좀먹는 인분]! 이 카드를 [라이노세버스]에게 장착, 상대가 몬스터를 일반 소환, 특수 소환하거나 카드의 효과를 발동할 때마다 상대 필드의 앞면 표시 몬스터 전부에 인분 카운터를 하나 놓지!!"
그리고 놓여진 인분 카운터 하나당, 공격력이 100 하락. 강한 효과는 아니나, 성가신 효과다. 좋은 효과다, 감동적이군, 허나 무의미다.
"... 마법카드 [번개], 상대 필드의 몬스터를 전부 파괴."
"뎃?"
"[맘모스의 무덤]을 일반 소환!!"
[맘모스의 무덤/레벨3/ATK1200]
하늘에서 내리꽂힌 번개가 라이노세버스를 집어삼키자마자, 뼈로 이루어진 맘모스인 맘모스의 무덤이 달려나와 울부짖었다.
"배틀! [맘모스의 무덤]으로 다이렉트 어택, 예아돌진(鋭牙突進)!"
"■■■■■■■■■■!"
맘모스의 무덤이 모히칸을 향해 돌격하여, 녀석을 뒤로 날려보냈다.
"크아아아악!"
[모히칸/LP4000->2800]
순식간에 줄어든 LP, 자리에서 일어난 모히칸은 비릿한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말한다.
"하지만 이걸로 네놈의 몬스터는 공격 종료...! 다음 턴에..."
"무슨 착각을 하는 거냐?"
"HYO?"
"아직 내 배틀 페이즈는 끝나지 않았어! 속공마법 발동, [버서커 소울]!!"
자신의 공격력 1500 이하의 몬스터가 다이렉트 어택으로 전투 데미지를 주었을 때에 발동하는 속공마법. 패를 전부 버리는 것으로, 덱 위의 카드를 하나 넘겨 몬스터 카드였을 경우, 묘지로 보내 500 데미지를 준다. 그 후, 몬스터 이외의 카드가 나올 때까지 최대 7번 넘겨 같은 효과를 처리한다.
"이 효과 처리는 상대 LP가 0이 되어도 계속 돼... 먼저 1장째! 드로, 몬스터 카드 [실버 팽]을 묘지로 보내어 500 데미지!! 2장째 드로! 몬스터 카드, [언체인드트윈스 아루하]!! 드로, 몬스터 카드! 드로, 몬스터 카드! 드로, 몬스터 카드! 드로, 몬스터 카드! 드로, 몬스터 카드! 드로, 몬스터 카드으으으으으으!!"
누메론 월, 드레이크, 메카레온, 마계의 가시나무, 자리건, 월 섀도우. 효과 처리가 전부 끝날 때까지 맘모스의 무덤의 몸통박치기는 멈추지 않았다.
"으아악! 악! 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모히칸/LP2800->0]
1972년 11월 21일, 모히칸은 오렌지 병이었던 버서커 소울로 쓰러졌다. 모히칸은 완전히 뻗어버렸으며, 파룸 소녀는 어느새 사라져버린 상태. 나도 파밀리아 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