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라 애송아. 정신을 놓으면 거기서 끝이다!”
마리오네트는 혀를 한번 차고 가이저를 노려봤다.
어둠의 게임은 플레이어의 정신력을 깎아 먹는다.
이런 어둠의 게임에 대한 내성이 없는 남해는 시커먼 주변 풍경과 점점 궁지로 몰려가는 전황, 전의 상실 등 완전히 스스로 무너져 자멸할 일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자멸을 한걸음 앞두고 가이저가 끼어들었다.
게다가 가이저가 단순하게 멘탈케어만 하는 게 아니었다.
어둠 속으로 파묻혔던 남해의 오른쪽 팔꿈치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가이저의 꼬리는 어둠 속으로 점점 사라져갔다.
‘주인 몫까지 부담하겠다는 건가…’
남해는 가이저가 나타나고서 뭔가 바뀌었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일단은 가슴이 아까만큼 답답하지 않았다. 서서히 자기를 둘러싼 어둠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압박감이 줄어든 기분이었고 정신이 들자 전황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남은 라이프는 1100. 그렇지만 아직 방법은 남아있다. 그리고 방금 드로우한 카드도 있다.
상대의 라이프는 2600. 회복수단을 꺼내지 않는다면 타천사의 효과는 두 번이 한계고 불의의 일격으로도 충분히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수치다.
“먼저 패에서 [제넥스 운디네]를 일반 소환!”
졸졸졸-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해의 필드에 생겨난 물웅덩이 안에서 푸른 로봇이 올라왔다.
“운디네의 효과로 덱에서 물속성 몬스터 하나를 묘지로 보내는 것으로, 덱에서 [제넥스 컨트롤러] 한 장을 패로 가져온다!”
“일반 몬스터잖아요? 자체 특수 소환 효과도 없고 소환권도 써버렸는데?”
마리오네트의 비웃음 담긴 말을 한귀로 흘리고 남해는 덱에서 카드 두장을 뽑아 하나는 묘지로 보내고 하나는 패에 넣었다.
그리고 남해는 다시 패 한 장을 집어 묘지로 집어넣고 방금 묘지로 간 카드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패의 [크리스트론-리온]을 버리고 묘지의 효과를 발동! 일어나, [크리스트론-설퍼프너]!!”
남해는 아까와 기세가 확연히 달라졌다. 목청도 커졌고 행동 하나하나가 아까보다 더 과장된 몸짓으로 진행됐다. 지금의 남해는 몬스터들과 완전하게 동조하고 있었다.
마리오네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 가이저가 뭐라고 저 몬스터의 응원 같지도 않은 말에 갑자기 상대가 기운을 되찾는단 말인가?
그동안 바닥을 뚫고, 수정으로 된 황룡이 남해의 필드로 뛰쳐올랐다.
“특수소환에 성공한 설퍼프너의 효과로 자신을 파괴하고, 파괴된 설퍼프너의 효과로 덱에서 [크리스트론] 몬스터 한 장을 필드에 수비표시로 특수 소환!”
설퍼프너는 온몸에서 에너지를 뿜어내다가 붕괴하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는 또다른 수정핵이 올라왔다.
그 수정핵은 황룡의 잔해를 흡수해 또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나갔다.
“등장이다. [크리스트론-로즈닉스]!!”
[크리스트론-로즈닉스/Lv4/1800/1000]
퀴아아아아아아-!!어둠 속에서 찬란하게 장밋빛으로 빛나며 붉은 수정 불사조가 개화하듯 필드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로즈닉스 자신의 효과로, 자신을 파괴해 덱에서 크리스트론 튜너 [크리스트론-시트리]를 덱에서 특수 소환!”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폭발하며 사방으로 영롱한 장밋빛 가루를 흩날리는 로즈닉스의 안에서 노란색 꼬마 로봇이 등장했다.
“이것으로 턴 종료야.”
“그렇게 오버하시더니, 고작 결과물이 튜너 하나랑 공격력 1200짜리 몬스터입니까?”
“쫄리면 뒈지시던지.”
남해는 마리오네트의 도발을 듣더니 손을 까딱까딱 거리며 역으로 상대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흐름이 다르다. 고작해야 저 가이저 하나가 남해의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흐름이 뭔가 이상해졌다.
마리오네트는 혀를 한번 차고 덱에서 카드를 뽑았다.
“그럼 카드 하나를 세트하고, 배틀! 마스테마로 시토리를 공격합니다. 마신장!!”
마스테마가 한번 손뼉을 치자 시토리를 향해 하늘에서 검은 손바닥이 낙하해왔다. 그러나 공격은 시토리의 머리 위를 덮은 황수정 격벽에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격벽 아래에서, 황수정 안에 갇힌 로즈닉스의 머리가 바닥에서부터 솟아올랐다.
“레벨 2 시토리와 레벨 4 로즈닉스를 튜닝, 레벨 6의 기계족 [인잭트론 파워드]를 싱크로 소환한다!”
[인잭트론 파워드/Lv6/2500/1600]
키이이이이-잉!!귀를 찢는 격렬한 금속음과 함께 시토리가 로즈닉스의 머리를 안고 사라진 구멍 안에서 곤충을 닮은 꽤 덩치 큰 로봇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걸 끝으로 황수정 격벽이 사라지자 또다른 손바닥이 인잭트론 파워드를 향해 내리꽂혔다.
“제기랄, 시끄러워!!”
푸화아아…. 폭연이 남해의 필드를 뒤덮었다. 그러나 폭연 안에서 파워드는 조금의 흠집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잭트론 파워드는 말야. 소환에 성공하면 그턴 파괴되지 않고 플레이어가 받는 데미지도 0으로 만든다고.”
마리오네트는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입을 뗐지만 이야기를 하는 대신 한숨을 쉬고 한손으로 제넥스 운디네를 가리켰다.
“그래, 그래, 그래요. 알겠으니까, 다 알겠으니까!! 그 조무래기들이랑 같이 닥쳐봐요 좀!”
가이저의 등장으로 흐름은 분명히 변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전의라곤 전혀 보이지 않던 남해는 역으로 전의로 가득 차서 마리오네트를 도발하고 있다.
앞으로 고작 한걸음 남아있던 일이 망쳐진 마리오네트는 초조함을 잠재우기 위해 속으로 자신을 달랬다.
어차피 남은 라이프는 고작 1100. 화라도 풀 겸, 운디네라도 박살 내버리자.
“이슈탐으로 제넥스 운디네를 공격, 울티모 익스타브.”
이슈탐이 살짝 손짓하자 사방에서 제넥스 운디네를 향해 포격이 빗발쳐왔다.
마리오네트의 마음이라도 읽은 듯 이슈탐은 완전히 운디네를 세상에서 지워버릴 기세로 검은 광선을 난사했다.
“운디네는 이걸로 파괴-”
푸화아아-!! 마리오네트가 말을 끝마치기 전에 남해의 필드에서 거대한 폭풍이 일어왔다.
공격을 끝마치고 경건한 자세로 앉아있던 마스테마와 달리 아직 자리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한 이슈탐은 폭풍에 휘말려 허공을 몇바퀴 돌다가 간신히 필드로 착지했다.
그리고 제넥스 운디네가 있던 자리에는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주황색 구체가 대신 놓여있었고 그 구체는 잠시 후 펑! 소리를 내며 터지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패트랩 몬스터 [크리보르]. 어라, 그런 말 몰라? 패에서 소환하면 몬스터, 패에서 내면 마법, 그리고 패에 쥐고있다면 패트랩이라고.”
남해는 아주 여유롭게 마리오네트를 도발했다. 이제 흐름은 분명히 남해에게로 넘어와 있었다.
마리오네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남해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턴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턴, 종… 료…!!”
남해는 씩 웃으며 차례를 받았다. 그리고서 가이저를 한번 슥 돌아봤다.
눈은 핏빛으로 타오르고, 다리는 여섯 개에 두상은 늑대를 닮았지만, 어딘가 뒤틀려있다. 틀림없이 이런 존재가 자신의 근처에 있다면 너무나도 불안할 것이다.
그렇지만…
왜 자신은 불안하지 않고 더 마음이 놓이는 걸까?
“드로우. 몬스터 한 장을 세트하고 운디네와 인잭트론 파워드를 수비표시로 돌리고 턴 종료야.”
하지만 기세를 탔다고 해서 몬스터들의 능력치가 강해지진 않는다.
안타깝게도 파워드의 공격력은 2500. 이슈탐의 수비력을 뚫기엔 부족하고 마스테마의 공격력보다도 한수 아래다.
여기서 고성능 튜너가 나왔다면 모르겠지만 나온 몬스터는…
‘아냐, 이 정도만 하자고.’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가이저의 그 말에 남해는 불안감을 완전히 덜어낸 기분이었다. 그래, 수성전이야말로 이 수정룡성의 특기 아닌가.
그리고 한동안 마리오네트를 내려다보던 가이저가 다시 입을 뗐다.
“그나저나 저 녀석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응? 타락천사가 강덱이기야 하지.”
“아냐, 달라. 저놈은 뭔가가 뒤틀렸어. 꼭… 뭐야, 그런 거냐? 그게 가능해?!”
“왜요? 이제야 깨달으셨나 봐요? 네, 가능해요!! 듀얼 에너지의 가능성은 무궁무진, 기적을 만들어내는 힘이니까요!!”
가이저가 뭔가 모르는 게 약일 것을 깨달았단 반응을 보이자 마리오네트는 오히려 바로 그거라는 듯이 손을 이상하게 움직이며 신나서 목청껏 대답했다.
남해는 마리오네트를 보면서 뭔가 징그러운 것이 목덜미를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마치 사람을 보면서도… 사람이 아닌 것을 보는 기분.
“네, 네, 네! 그래요. 맞아요! 제가 하필 당신을 상대로 고른 이유!! 그 가이저! 그 덱!!
당신만큼 그 에너지를 가득 품은 사람은 처음 봤어요. 당신이라면, 당신을 집어삼킨다면!! 저도!!”
남해는 조증환자처럼 갑자기 너무 텐션이 올라간 마리오네트가 꼭 실을 붙잡은 누군가가 막 흔들어대는 인형처럼 보였다.
대체 왜 저렇게 난리인 거지?
“아, 그래. 일단 당신을 집어삼키는 게 우선이죠? 네? 그렇죠? 맞아요. 드로우!”
팟. 카드를 뽑은 마리오네트는 방금의 요란함은 어디가고 전원 꺼진 로봇처럼 행동을 멈추더니 자신의 카드들을 아주 유심히 살폈다.
“마침 찾아왔어요! 그래, 이 어둠을 걷어내고 제 미래를 열어줄 샛별이요!
떠올라라 모닝스타, 흑단 같은 날개로 하늘을 뒤덮어라,
마귀들의 왕으로서 세계의 순리에 저항하라!”
극도로 감정이 격앙된 마리오네트가 소환영창을 읊어나갈 때마다 마스테마와 이슈탐의 몸이 허공에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그리고 영창이 끝나고 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직후, 거대한 빛의 기둥이 필드에 내리꽂혔다.
[타락천사 루시펠/Lv11/3000/3000]
”[타락천사 루시펠]을 어드밴스 소환!!”
구콰아아앙-!!빛의 기둥 안에서 은발의 천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날개와 갑옷은 검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 붉은 눈동자에서는 고귀한 기품이 흘러넘쳤고 꼭 다문 입술에서는 굳건한 의지마저 내비쳐보였다.
그 모습에서 풍기는 경건함은 만일 날개만이라도 흰색이었다면 아마 저쪽의 필드에 서있음에도 아군이 아닐까 혹했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세상에…”
가이저가 작게 탄식을 중얼거렸다. 남해는 패드를 조작해 그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했다.
타락천사 루시펠은 자신도 알던 카드다.
물론 카드의 작은 일러스트로 보는 것과 이렇게 솔리드 비전으로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만 가이저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루시펠이 어드밴스 소환에 성공했을 때, 상대 필드의 효과 몬스터의 숫자까지 덱에서 [타락천사] 몬스터를 불러올 수 있지요.
그쪽 필드에는 인잭트론 파워드와 제넥스 운디네의 두장이 있으니까 덱에서 [타락천사 제라토]와 [타락천사 스펠비어]를 특수 소환하고…
세트한 [리빙데드가 부르는 소리]로 묘지의 이슈탐도 부활입니다.”
순식간에 전개된 초대형 몬스터 네장. 평균타점이 거의 3000점에 달하는, 그야말로 승부의 행방을 결정짓기엔 충분한 화력이다.
“배틀 페이즈, 돌입합니다. 먼저 하나.”
제라토가 검을 휘두른다. 인잭트론 파워드가 꼭 원래 둘이었던 것처럼 아주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그리고 둘.”
이슈탐이 운디네에게 아까의 되갚음처럼 광선을 폭격한다. 폭발이 걷혔을 때는 탄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이번에 셋.”
스펠비어가 세트된 몬스터를 주시하자 검은 에너지가 세트 카드를 순식간에 감싸고, 그 안에서 작은 폭음이 바깥으로 새어나왔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루시펠!! 심판의 시간입니다. 저지먼트 오브 모닝스타!!!”
루시펠이 날개를 크게 활짝 폈다. 사방으로 검은 깃털이 흩날렸고 루시펠의 칼끝은 남해를 가리켰다.
“끝이다.”
루시펠의 칼 끝에서부터 검은 번개의 폭풍이 남해를 덮쳤다.
그 직후 남해의 라이프는 1100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1000…
900…
700…
400…
…300.
그러나 라이프의 하강은 끝내 300에서 멈춰섰다.
“기억력이 왜 그렇게 짧은 거야? 내 덱은 말야, 크리스트론만이 아니라 룡성도 있는 덱이라고!!”
-강남해/LP 1100 → 300
프슈우우우우… 연기가 걷힌 남해의 필드에는 몸이 너덜너덜해진 토우테츠가 버티고 서있었다.
토우테츠의 공격력은 2200으로 루시펠의 3000에 맞설 수는 없었지만, 남해가 버티기엔 충분한 수치였다. 토우테츠는 남해를 한번 돌아보고는 서서히 공중으로 사라져갔다.
토우테츠가 사라진 자리에서는 토우테츠의 정수만이 남아 다시 붉은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세트된 비시키가 파괴되고서 불러낸 몬스터야. 토우테츠가 파괴되었으니 덱에서 수비표시로 불러올 몬스터는… 그래, 슌게이로 하겠어.”
“하…? 이 상황에 아직도 희망을 품는 겁니까?”
“난 아직 더 할 수 있어. 가족은 만나야지! 이 이상하고 비상식적인 곳에서 탈출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할 거 아니야!!”
마리오네트는 헛웃음을 지으며 남해를 잠시 쳐다보다가 턴을 마쳤다.
서서히 바스라져가던 토우테츠가 마지막으로 남해를 돌아보고 눈을 마주치더니 꼭 남해에게 뭐라 말하는 것처럼 고갤 끄덕이던 그 모습은 남해에게 꼭 “너는 할 수 있어.”라고 격려해주는 것만 같았다.
“뽑아라.”
“알고 있어.”
어느새 어둠에 거의 전신이 가라앉고 머리만 남은 가이저의 말을 들은 남해는 조용히 덱 위에 손가락을 얹고 심호흡을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위기가 맞다.
라이프는 풍전등화에 패에 남은 것은 제넥스 컨트롤러 한 장, 필드에는 슌게이 혼자인 반면 상대 필드 위에는 공격력이 3000 가까이 되는 몬스터가 네장이다. 그 와중에 루시펠은 타락천사 몬스터들의 존재로 대상내성까지 손에 넣었다.
하지만 듀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카드도 뽑지 않았다.
‘포기하면 안돼, 게임 아직 안 끝났어, 게임을 했으면… 이겨야지…!‘
“간다! 드로우!!”
결국 남해는 카드를 덱에서 뽑아냈다.
그리고 남해는 조용히 머릿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갔다.
“지금부터, 턴이 좀 오래 갈거야. 패에서 [제넥스 컨트롤러]를 일반 소환한다.”
남해의 필드에서 작은 로봇이 하나 걸어나왔다. 남해는 가이저가 아까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정신을 놓으면 끝이라고.
지금 남해는 어느 순간보다도 정신이 맑은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그 카드도 소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우, 하. 레벨 4 슌게이와 레벨 3 제네컨을 튜닝. 불꽃처럼 타오르며, 지금 적의 숨통을 물어뜯어라!레벨 7 [사룡성-가이저]를 싱크로 소환!!”
“그래, 그래! 기다렸다고!!”
콰장창!!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만 남기고 전신이 어둠에 가라앉아 있던 가이저는 어둠을 뚫고 커다란 파열음과 함께 날아올라 남해의 필드로 착지했다.
쿠웅,하고 필드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착지한 가이저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마리오네트의 필드를 노려봤다.
“가이저, 그게…”
“다 안다. 카드는 정의가 없이 그저 주인이 원하는 걸 따를 뿐이니까.”
머뭇머뭇 무언가 말하려던 남해의 말을 가이저는 툭 끊어버렸다. 게다가 가이저가 필드로 등장하자마자 삽시간에 몸이 어둠에 먹혀가던 남해는 더 이야기를 이을만한 처지도 아니었다.
대신 가이저는 자신의 이야기를 쭉 이어갔다.
“힘은 원래 그렇다. 옳고 그른 것은 주인이 쓰기에 달린 거야. 그래서 저놈들이 뒤틀린 거다.”
남해는 이야기를 묵묵히 들은 후 패드의 가이저를 터치한 후 가이저와 [타락천사 제라토]를 연달아 눌렀다.
“가이저의 효과 발동, 필드 위의 룡성 몬스터와 상대 필드의 카드 한 장을 선택해 두 카드를 파괴한다. 내가 파괴할 카드는 가이저와 제라토! 흑랑아!!”
가이저는 입을 크게 벌리고 시커먼 소용돌이를 제라토를 향해 뿜어냈다.
제라토는 그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공격이 맞은 곳부터 시커멓게 부식되어가며 완전히 바스러져버렸다.
가이저 역시 그 공격 직후에 몸이 분해되며 정수만이 남아버렸다.
“가이저의 효과로, 덱에서 환룡족 몬스터 한 장을 수비표시로 불러오겠어! 내가 불러올 몬스터는 [어버이해마]!”
가이저의 정수가 한번 빛나며 안에서 거대한 덩치의 늙은 해마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해마의 뒤로 새끼 해마 세 마리가 연달아 나타났다.
“어버이해마의 효과 발동, 자신의 레벨을 1 내리고 필드에 [해마 토큰]을 특수 소환할 수 있고 이 효과는 한턴에 세 번까지 발동할 수 있어!
이 효과로 어버이해마의 레벨을 7에서 4까지 내리고 세 마리의 해마 토큰을 특수 소환한다.
이어서 레벨 1 토큰 하나와 레벨이 4가 된 어버이해마를 튜닝!”
“약소 몬스터들로 뺑뺑이를 아무리 돌려봐야 변할 건 없어요.”
[원룡성-보우텐코우/Lv5/0/2800]
“끝까지 보면 알겠지. 신성수의 인도자, 레벨 5 [원룡성-보우텐코우]를 싱크로 소환!”
빛의 기둥이 남해의 필드로 내리꽂히더니, 사방이 어둠으로 꽉 막힌 필드에 은은한 빛이 내리쬐며 하늘 위에서 금박을 입힌 듯 광채를 발하는 용이 내려왔다.
그와 함께 남해의 덱에서도 카드 한 장이 뽑혀 나왔다.
“보우텐코우가 특수 소환에 성공했을 때, 덱에서 [룡성] 카드를 한 장 패에 넣을 수 있어.
내가 가져올 카드는 [룡성의 휘적]. 이어서 휘적을 발동해 묘지의 슌게이 세장을 전부 덱으로 되돌리고 덱에서 두장을 드로우.”
무조건 여기서 돌려야하는 카드는 슌게이여야만 한다. 남해는 그렇게 생각했다.
최악의 경우 휘적으로 두 마리가 패에 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덱에 한 마리는 남아야 한다.
묘지에서 뽑혀 나온 세장의 슌게이를 전부 덱에 넣은 남해는 셔플된 덱의 위에서 다시 카드 두장을 뽑았다.
“그리고 보우텐코우의 효과를 발동, 덱에서 레벨 4 슌게이를 묘지로 보내고 자신의 레벨을 4로 조정하겠어.”
-원룡성-보우텐코우/Lv5 → 4
“계속 해보시죠. 그런 몬스터들로 솔리티어를 돌려봐야 뭐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액셀 싱크론/Lv5/500/2100]
“다시 레벨 1 해마 토큰을 레벨 4 보우텐코우와 튜닝! 레벨 5 [액셀 싱크론]을 싱크로 소환!”
“레벨 5 싱크로 몬스터의 레벨을 내려서… 레벨 5 싱크로 몬스터를 뽑는다고요…? 그게 무슨 바보같은…”
“이때 보우텐코우의 몬스터 효과가 발동, 보우텐코우가 필드를 벗어나면 덱에서 룡성 몬스터 한 장을 불러올 수 있다고.
내가 불러올 몬스터는 [암룡성-죠쿠토]!”
“대체 뭔 헛짓거리에요? 아까부터 조무래기만 줄줄이 늘어놓고. 그딴 개수작 집어 치우고, 어서 패배나 받아들이라니까요?!”
남해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플레이를 계속해갔다. 남해가 덱에서 카드를 한 장 뽑아내자 점점 남해의 발 밑이 밝아지며 불티가 어둠을 밝히기 시작했다.
불티는 점차 커지며 불씨가 되고 불꽃이 되어 남해의 주변을 밝혀갔다.
“액셀 싱크론의 효과로 덱에서 레벨 1 [제트 싱크론]을 묘지로 보내고 자신의 레벨을 그만큼 올리겠어.”
-액셀 싱크론/Lv5 → 6
잠시 타오르던 불꽃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사그라든 불꽃은 이내 남해를 감싼 불꽃의 고리가 되어, 푸른 빛으로 맹렬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남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이 맑아졌고 몸 안에서 무언가가 강렬하게 타오르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자, 간다!! 레벨 1 해마 토큰에, 레벨 2 죠쿠토와 레벨 6 액셀 싱크론을 더블 튜닝!!
두 개의 영혼을 여기서 하나로! 거신의 육체에 닿아, 모든 것을 분쇄해버리는 신룡의 기병을 일깨워라!”
우직, 우지지직…남해가 패드의 세 마리 몬스터를 연달아 터치하고 팔을 앞으로 쭉 뻗자, 갑자기 사방에서 뭔가가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남해의 패드는 데이터를 출력하다 말고 오류를 일으키며 격한 진동과 함께 경고음을 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제 조금이야.
“싱크로 소환!!”
남해의 필드에 굉음과 함께 거대한 푸른 마법진이 그려졌고 그 안에서부터 금빛의 작은 비행체가 날아올랐다.
하늘로 날아오른 비행체는 파동을 방출하며 마법진 안에서 거대한 수정 결정을 뽑아냈다.
쿠구구구구- 쩌적... 쩌저저적...
쨍강-!그러나 그 몬스터가 채 소환되기도 전에 주변의 어둠이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이 부숴지고 말았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어둠 너머로 원래의 공원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결국 양쪽의 패드는 과부하를 이겨내지 못하고 전원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어…?”
“하, 하… 하. 그래요. 오늘 듀얼은 여기까진가봐요. 이런 건 예상 못 했는데 말이에요. 제가 너무 당신을 얕본 것 같네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듀얼이 끝나자마자 남해는 갑자기 머리가 쪼개질 듯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마리오네트는 그대로 방향을 돌려 현장에서 벗어났고 남해는 상대를 쫓으려 했지만, 발을 내딛는 순간 더는 피로감을 견뎌내지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
“아… 아아…?”
남해가 눈을 떴을 때는 익숙한 천장이었다. 자기 방 천장. 틀림없는 교회였다.
“오오, 일어났구나. 남해야.”
남해의 옆에서는 목사님이 커피를 홀짝이며 앉아있었다.
저가형 접이식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킨 남해는 머리에 몰려오는 두통에 머리를 붙들고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거냐? 오밤중에 나가서는 공원에 쓰러져 있었다니…”
“그건… 일이 좀 있어서…”
남해는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어둠의 듀얼이니, 듀얼 에너지니 하는 허황된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것이 낫겠다 여겼다.
목사님은 걱정된다는 얼굴로 남해를 쳐다보다가 다른 손에 들려있던 잔을 남해에게 내밀었다.
남해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상반신을 일으키다 그 잔을 받아들었고 목사님은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이야길 이었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묻지 않으마. 그런데 밤산책을 나갈 정도면 뭔가 깊은 고민이 있던 거 같은데…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은 찾았니?”
“그건… 찾은 거 같아요.”
“그럼 됐다. 그 고민이 뭔지는 몰라도 네 해답은 옳았을 거야. 나는 일이 있어서 슬슬 가봐야겠구나.”
신부님이 방에서 나가고 남해는 한동안 컵에 든 코코아를 홀짝이며 꿈에서 본 광경과 그날 밤에 있던 듀얼을 되새겨봤다.
뭔가 그것들 말고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눈 것도 같았지만 더 떠오르지는 않았다. 남해는 코코아를 다 마시고 빈 잔을 옆애 슬쩍 내려놓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듀얼 에너지… 혹시…”
“몸은 좀 괜찮나?”
그때 남해의 앞에 가이저의 머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남해는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뺐고 가이저는 머리만 둥실둥실 떠다니며 남해 주위를 빙빙 돌았다.
만일 누가 옆에서 이 광경을 같이 지켜보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자신의 눈을 의심했을 법한 모습이었다.
남해는 어버버 거리면서 굳어있다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가이저의 얼굴을 매만져보았다.
잠시 손끝에 플라스틱처럼 매끈하고 단단한 촉감이 느껴졌지만, 곧 가이저의 몸이 반투명해지며 손은 가이저를 지나쳐 남해가 덮은 이불로 떨어졌다.
“호들갑 떨지 마라, 네놈한테만 보이니까.”
“나, 나 유령도 볼 수 있었어?”
“그거에 대해선 천천히 설명하기로 하고. 그래, 이제는 좀 삶에 목표가 생겼느냐?”
남해는 가이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고 가이저는 남해의 대답을 듣자 스스스 허공으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남해는 새 목표가 생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을 위해 싸운다.
…반드시 돌아간다. 반드시.
그리고 그걸 위해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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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작가입니다. 주인공은 8화만에 완전히 결심을 굳히게 되었읍니다.
가이저가 적이라 생각했나요? 유감! 조력자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놈이 무기력증에 걸리지 않고 딱지를 칠까, 그걸 생각해봤는데 결국 딱지만능주의 시리즈답게 딱지를 잘치면 귀가할 수 있다! 는 떡밥을 주기로 했습니다.
마리오네트 같은 경우는 정통파 라이벌 포지션의 지민과 다르게 유희왕 시리즈에서 항상 보이던 리그의 라이벌 포지션으로 설계했습니다.
...사실 디자인 컨셉아트가 없는건 외모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조우]가 유독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 작성이 늦었는데요, 가장 큰 문제는 저 떡밥과 동기가 도통 설계가 되질 않았단 말입죠.
그래도 이제 동기도 떡밥도 만들었으니 남은건 교내대표 선출을 위한 듀얼 마라톤.
9화는 이미 도입부는 작성 끝나고 로그를 쓰고 있습니다.
현마룰로 넘어가는거는... 2학년에서 떡밥을 뿌리고, 3학년에서 넘어갈 생각입니다. 제가 좀 더 부지런했다면 이미 2학년 마치고 3학년을 썼을텐데 으으으 너무 귀찮아요...
이미 4월, 중간고사도 슬슬 다가오고 그간 의욕도 없어서 딱지도 별로 적극적으로 치지 않은 남해는 과연 교내대표로 선출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다음 편에서!
끝으로 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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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흑화떡밥이 아닙니다! 뭐 다른분들 소설 같으면 예쁘장한 아이돌 카드에 정령이 붙어서 다니겠지만 이쪽은 흉악하게 생긴 가이저에 붙어있네요. 사실 이제야 주인공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가 풀어졌으니 가이저의 정체에 대한 것이나 의도도 지금부터 쭉 풀어나가야죠. 플랜은 이미 3기까지도 완성되어있으니 가는 데까지는 가보고도 싶고... | 19.01.23 23: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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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생각중인 디자인은 이브&리스나 윈다쪽의 디자인을 참고할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아이디부터가 마리오네트다보니 꼭두각시 캐릭터들의 이미지를 안 살릴 수가 없을 거 같더라구요. | 19.01.23 23: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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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오마쥬 형식이로군요!? 비슷하면서도 또다른 매력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응원합니당😉 | 19.01.23 2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