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하늘을 날아다녔다.
날아다니는 동안 나는 수많은 풍경을 보았다.
초록빛을 띄는 나무들이 뺴곡히 자리잡은 울창한 숲
저 너머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산들
푸른 빛을 띄며 반짝이는 바다
저 높은 구름 사이로 살며시 비치는 햇빛
이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니 점차 내 마음도 진정되었다.
그녀의 죽음으로 인한 분노와 혼란스러움은 사라져갔고 내 마음속에는 그리움과 공허함만이 남아있었다.
오랜 시간 날아다니던 나는 슬슬 날개 부분이 아파 주변의 어느 숲으로 내려왔다.
그 숲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잠시 머무르기에는 적당해 보였다.
거대한 나무와 나뭇잎에 의해 햇빛은 가려져 쉬기 좋은 그늘이 만들어져 있었으며 나무들 사이로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시원한 느낌까지 주었다.
주변에 위협적으로 보이는 포켓몬들도 보이지 않아 안심할 수 있었다.
바닥을 보면 캐터피나 파라스 정도 밖에 존재하지 않았고
위를 바라보면 구구와 망키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본래의 모습을 한 채로 숲의 한 구석에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먼 곳을 바라보기만 하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살아왔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나는 키우미집에서 매일 비슷한 삶을 지내왔다..
키우미집이라는 울타리 안 세계에서 살아온 나의 생활은 반려동물의 삶과 비슷했다.
마치 길러진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 혼자밖에 없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앞으로 나 스스로 내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 무얼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 뒤 아무 생각 없이 숲을 돌아다녀보았다.
숲을 돌아다니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구구와 그들을 피해 다니는 캐터피를 보았다.
나는 또한 나무 구멍 사이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나몰뺌이를 보았고 단단한 껍질속에 오랜 잠을 자고있는 ㅁㅁ이를 보았다.
그리고 숲 속 연못에서 목을 축이던 사철록과 나를 경계하며 유심히 살펴보던 꼬렛이 있었다.
그렇게, 그렇게, 숲을 걷다 보니 어느새 거대한 절벽 위에 서게 되었다.
매우 가파른 절벽이었으며 조금만 앞으로 나아가도 떨어져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절벽의 끝자락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이 숲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꽤 큰 도시 하나가 있었다.
중간에 가장 거대한 건물이 있었으며 그 주위로 크고 작은 건물들이 놓여져 있었다.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고 수많은 포켓몬들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
거리의 모든 포켓몬들은 웃고 있었다.
그들은 행복해보였고 그들의 주인과 함께 있음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니 키우미집에서의 한 포켓몬이 떠올랐다.
녀석은 피카츄였다. 다른 피카츄보다 좀 더 강한 피카츄였다.
그는 나와는 반대로 굉장히 낙천적이고 활기찬 아이였다.
그는 자신의 트레이너에 대해 굉장히 자부심이 있었는데 나와 처음 만났을 때 했던 이야기가 자기트레이너에 대한 자랑이었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열렬한 그의 자랑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가 흥미로웠기에 나는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는 주로 자신과 그의 트레이너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행복했던 기억, 슬프고 분했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소년과의 추억과 그와 함께 여행한는 나의 모습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 소년은 내가 기억한 것만큼 좋은 이는 아니었다.
나를 보던 그의 미소는 그저 좋은 포켓몬을 발견함으로 인한 웃음이었다. 또한 그는 그저 화풀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죽을 정도로 폭행하였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 어쩌면 피카츄가 이야기하던 그 추억들 또한 자신만이 착각하고 있던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저 도시의 포켓몬들은 모두 녀석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자신들은 자신의 트레이너와 함께 하기를 즐거워한다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나의 과거의 모습 같았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쉬었다.
무엇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나의 주인이었던 그는 분명 우리를 자신과 대등한 존재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분명 우리를 노예와 같은 존재로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내 눈에 보이는 다른 이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포켓몬과 포옹을 하며 입맞춤을 하였으며 다른 이는 무릎을 굽혀 그들의 머리를쓰담으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들 모두 포켓몬을 자신과 대등한 존재처럼 대하고 있었다.
정말 인간들은 피카츄가 말했던 것처럼 선한 존재였던 것일까?
다만 그들 중 일부는 나의 주인처럼 악한 존재일 뿐이었을까?
만일 나의 주인도 선한 존재였다면 나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다시 한 번 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나는 인간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그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하며 말이다.
나는 소년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생각하는 바에 따라 나의 몸은 점차 변화해갔다.
빛나는 액체와 같은 모습에서 점차 인간의 형체를 띄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생겨나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져갔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증오하는 소년과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됐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태양을 가려보았다.
몸은 잘 움직였다.
육체가 잘 완성된 것을 확인한 나는 저 너머의 도시를 다시 바라보았다.
도시는 그리 멀지는 않아 걸어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절벽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도시를 향하여 걸어나갔다.
(IP보기클릭)121.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