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투원, 파견합니다!
얼마전에 한국어 더빙 발표도 난 인기 애니메이션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의 작가 아카츠키 나츠메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천박함의 끝을 달리고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변태스럽고 악랄한 '신사' 주인공 '전투원 6호'와
그런 6호를 후방에서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소녀 안드로이드 '키사라기 앨리스'.
두 사람, 정확히는 한 사람과 기계가 자신들이 속한 악의 집단 '키사라기'의 명령을 받고
지구 밖 어딘가 이세계에 잠입해 식민지로 삼으러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거창한 SF 설정을 내세우는 시놉시스지만, 1화가 시작하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 이거 코노스바 재탕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판타지 개그 장르입니다.
주인공 6호와 나머지 히로인들 4명은 이름과 포지션만 약간 다를뿐
시력이 나쁜 사람이 바라봤을 떈 코노스바 제2악장이죠.
6호는 신체능력이 조금 올라간 카즈마고, 앨리스는 아쿠아의 조력자 포지션과 메구밍의 독설을 반반 섞었습니다.
나머지 아쿠아와 메구밍의 찌꺼기(?)는 각각 스노우와 로제에게 떨어졌고,
그림은 마조히스트 속성 대신 노쳐녀 속성이 붙은 다크니스입니다.
'코노스바'가 방영한지 만으로 5년이 지난 지금, 이젠 이러한 클리셰 비틀기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원작 작가 자신이 전작인 '짐승의 길'에서 한 번 더 써먹은 이력이 있죠.
『전투원』도 그런 의미에서 아주 참신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카츠키 나츠메 특유의 유머감각은 여전합니다.
속물, 천박함, 이기주의로 무장한 개그의 삼지창을 휘두르는 이 애니는
킬링타임으로 보기 아주 좋은 애니입니다.
2. 슈퍼커브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자동차든.
무언가를 자신이 직접 운전해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행위는 한 사람의 시야와 세계를 넓혀줍니다.
아버지를 사별하고, 어머니는 가출하고, 친척은 일절 없어서 혼자 18살이 된 소녀 코구마(아기곰).
그런 그녀가 어느날 자전거에 지쳐서 찾아간 바이크샾에서 자신의 인연을 만납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주인을 3번이나 사별한 가여운 1만엔짜리 '혼다 슈퍼 커브(cub, 아기곰)'.
채 500km에 불과한 계기판처럼 앳된 친구와 코구마는 그렇게 만나고, 세상이 넓어집니다.
현존하는 만화가 중에서 '여고생'이라는 개념에 가장 정통하고 집착을 보이는 '히로'가 그림을 맡은 작품입니다.
흑백의 틀 안에서 교복 주름과 그에 비치는 명암을 누구보다 심도있게 그려내기로 유명하죠.
하지만 그의 그림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다는 건 크나큰 모험입니다.
먹과 G펜의 손때가 묻은 그의 그림은 애니메이션 특유의 움직임을 소화하기엔 애로사항이 크기 떄문이죠.
하지만 애니 제작진은 신체비율과 전체적인 윤곽, 그리고 얼굴 부분에 히로 특유의 그림체를 남기고
나머지는 평범한 애니메이션의 스타일을 따라가는 타협을 해내면서 그림체를 소화했습니다.
그렇다고 애니가 히로의 그림체에 반 정도 따라가는 데 그친 범작이냐고 하면 절대 아닙니다.
담담하지만 서글픈 코구마의 이야기에 맞춰서 애니를 굉장히 섬세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채도'입니다.
만화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애니에서는 코구마의 현재 심정에 따라 애니 전체의 채도를 조절하는 식으로 연출합니다.
웹사이트에 공개된 다채로운 색의 키비주얼과 달리, 현재 4화까지 나온 이 애니의 전반적인 색은
흰색보다 회색에 더 많고, 보면서 탈력감이 느껴지는 비주얼입니다.
그러다가 친구인 레이코가 말 걸어 오거나 커브를 타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색이 잠시나마 돌아오는 식이죠.
여러모로 『유루캠△』이 떠오르는, 잘 만들고 있는 일상 치유 애니메이션입니다.
3. 섀도 하우스
살아있는 인형. 그리고 얼굴없는 일족.
인형과 '섀도 일족'은 2인 1조.
이 드넓은 섀도 하우스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절대 끊어져서는 안 되는 관계의 실.
인형은 섀도 일족을 섬기며 그들의 검댕을 치우고 그들의 얼굴이 되며,
섀도는 그런 인형들을 책임지고 교육하며 의식주를 제공한다.
그렇게 이 '섀도 하우스'는 돌아간다.
일본에선 청년지 '영 점프'에서, 한국에선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중인 만화 원작입니다.
양식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가 떠오르는 고딕 세계관에
『약속의 네버랜드』가 떠오르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3화까지 나온 상황에서 이 애니의 스토리는 솔직히 뭐라 평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메인 디시인 '선보이기'는 시작하지도 않았고,
3화나 할애해서 겨우 세계관 설명이 끝났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니의 미래는 칠흑빛으로 찬란하게 빛납니다.
가장 먼저 들어오는 '섀도 일족'의 '얼굴이 없다'는 특징은 섬뜩하면서도 흥미롭죠.
처음 볼 때만해도 주인공 인형에게 가혹한 악역의 역할인가 의심이 갔지만,
이윽고 얼굴이 없어도 인형보다 더 다채로운 감정표현을 하면서 눈에 확 들어옵니다.
특히 2화때, 섀도 '사라'와 인형 '미아'가 보여준 섀도 일족의 진짜 모습은 시청자들을 단숨에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완결까지 따라갈만한 수작 미스터리입니다.
4. Vivy -Fluorite Eye's Song-
먼 미래. AI와 인류가 공존하는 그런 미래.
어느 날 전세계의 AI가 폭주하여 인류를 멸망시킨다.
이유는 불명. 하지만 그런 미래를 피하기 위해 인류 최고(高)의 과학자는
최고(古)의 AI에게, 100년 전의 그 AI에게 사명을 쥐어준다.
그 AI의 이름은 비비.
노래로 인류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사명을 안고 태어난 최초의 자율인형 AI다.
또 WIT STUDIO의 SF입니다.
프로덕션 I.G 시절부터 이어진 이 SF 사랑은 2년이나 3년에 한번은 돌아오는 올림픽 수준이지만
항상 높은 퀄리티로 우리의 시선을 일단 사로잡습니다.
결말이 흥하든 망하든 상관없이 말이죠.
Vivy는 일단 시작이 좋습니다. 1,2화를 한번에 방영한다는 대담한 프로듀싱은 물론,
비중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액션 시퀀스도 준수합니다.
무엇보다 SF의 장르가 가진 특유의 몰입감을 각본이 100% 발휘하고 있습니다.
애니의 플롯이 100년의 세월을 조금씩 뛰어넘으면서 진행하다보니
주변 인물들의 시간이 비비와 마츠모토를 빼고 지나가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1화에 나왔던 어리숙한 테러리스트 말단이 겨우 4화밖에 안됐는데 수염 빼곡한 리더가 되어있는 식이죠.
그 외에도 100년간의 역사를 바꾸는데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미래도 눈에 띄고요.
WIT STUDIO의 SF가 그렇듯 스토리에 매력과 떡밥은 넘쳐나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걸 끝까지 살리면 『진격의 거인』처럼 홈런을 치는 거고, 망하면 『갑철성의 카바네리』가 되는 겁니다.
끝까지 지켜봅시다. 한 손에 위장약을 들고서.
5. 미소년 탐정단
의뢰인. 보랏빛 눈이 예쁜 소녀. 도지마 마유미
단장. 미학에 미친 하늘색 소년. 소토인 마나부
부단장. 미성을 가진 회색 학생회장. 사키구치 나가히로
반장. 미식가이자 셰프인 빨간 불량소년. 후쿠로이 미치루.
라이더. 다리가 아름다운 미각인 노란 육상부 에이스. 아시카가 효타
실세. 혼자서 재단 하나를 이끄는 미술 실력인 이사회 실세. 유비와 소사쿠.
이 애니는 이 6명의, 『이야기』다.
2009년 이래 12년째 이어지는 샤프트 x 니시오 이신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캐릭터 속성이 츤데레든 얀데레든 4차원이든 별의별 참피같은 성격이든 간에
등장인물들이 이야기하는 걸 듣다보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내용이죠.
태어났을 때부터 분명 니시오 이신은 어머니에게 울음소리 대신
"어머니와 같은 분을 앞으로 가족으로서 함께할 수 있게 되어 참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며 못해도 30분은 만담을 했을 겁니다.
한국의 레전드 박찬호와 토크쇼 자리를 만들고 싶을 정도입니다.
제목답게 의뢰인 소녀 마유미와 나머지 5명이 별 시덥잖은,
물론 시덥잖다고 하기엔 스케일이 좀 남다르지만 아무튼 시시콜콜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작화는 니시오 이신의 전작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다른 스타일입니다.
원래 그리던 와타나베 아키오는 『쓰르라미 울 적에』 신작 만들러 가있어서 대신 야마무라 히로키가 맡았는데
예전보다 더 반짝이고 다채롭고, 무엇보다 목을 덜 꺾습니다.
샤프트 목꺾기는 이번 작품에선 보기 힘들겁니다.
자신이 니시오 이신의 팬이다? 꼭 보세요.
6. 86 -에이티식스-
누군가 물었다
"죽어야만 지옥 갈 수 있나요?"
그는 대답했다
"굳이 죽을 필요 없단다"
SF와 밀리터리에 미친 '여성' 작가 '아사토 아사토'의 라이트노벨 원작 애니입니다.
라노벨이라고 말은 하지만, 한 번도 라이트노벨을 써본적이 없고
남동생 따라 어려서부터 건담을 본 호러영화 팬이 만든 물건이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보면 무수한 물음표 핑이 머리에 찍힐 겁니다.
분명 일러스트에선 개성있고 매력적으로 보이던 캐릭터가 갑자기 죽어있고
SF 밀리터리 장르인데 비장의 작전 따위 없이 발버둥만 계속 치는,
거기에 일러스트까지 얼마 없는 썩은맛 소설입니다.
애니는 그런 소설에 한술 더 뜹니다.
분량상 1권 하나만으로 1쿨 11화를 소화한다는 모험을 한 제작진.
원작의 건조한 문장을 커피 콜드브루 처럼 진하게 내린듯한
굉장히 섬세한 연출이 눈이 띕니다.
슈크림이나 강아지를 이용해서 일상과 전쟁터를 손바닥 뒤집듯이 교차하는 연출이 가장 좋은 예죠.
『에토타마』로 이름을 알렸고 최근엔 밀리애니 제작을 맡아서 화제가 된 시로구미의
메카닉 CG는 연출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고요.
개인적으로 원작을 아주 좋아해서 마지막이 기대되는 애니입니다.
7. 불멸의 그대에게
인생은 아름다워
그 어떤 결말을 맞이하던 간에
『목소리의 형태』로 데뷔 첫 장편에서 만루홈런을 때린 타자 '오이마 요시토키'의 차기작 만화가 원작입니다.
절대 죽지 않고 늙지 않는 존재 '불사'가 여러 생명을 딛고 수백년에 걸쳐 성장하는 이야기죠.
이야기의 전개가 굉장히 과감하고 감정묘사를 정말 격렬하게 하는 작가의 특성이 이번 작에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그 덕에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그림체에 담긴 감정의 밀도는 자타공인 정상급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불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흐뭇해하기도 하지만
그의 주변 사람을 세월이 앗아가든, 사람이 앗아가든 간에 어쨌든 불로불사인 그의 주변이 외로워지는 걸 보면서
해피엔딩을 바라게 되는 원작 만화입니다.
애니는 무려 NHK 교육방송 편성입니다.
『로그 호라이즌』처럼 설령 작가가 탈세를 하더라도 최소 3기 이상, 최대 원작 완결까지 보장해주는 시간대죠.
그 외에도 제작위원회가 어지간히 빵빵한 건지, 작화에 연출에 어느 한 곳 빼놓을 데 없이 지폐로 포장한 티가 납니다.
당장 오프닝 노래부터 남다르죠. 한 때 전세계 음반 판매량 1위에 빛나는 전설적인 디바 '우타다 히카루'의 곡입니다.
버블시대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애니메이터들도 대거 이름이 크레딧에 보여서 그런지 작화가 약간 색다릅니다.
3화에서 늑대로 변한 불사와 오니구마가 싸우는 장면이 좋은 예.
『시로바코』에서도 나왔다시피 이정도로 정교한 동물 애니메이션은 베테랑의 영역입니다.
거창하게 시작했고, 완결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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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요새는 종합 애니커뮤가 전부 망해서 분기에 뭐하는지 알기 어려웠는데 한눈에 알수있게 정리해주시니 좋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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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구마가 커브(cub)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사거리 교차로에서 직진을 선택하면 집으로 바로 가는 반복적 코스(루틴) 커브(curve)를 틀면 평소와 다른 해방감을 느끼게 되는...(이쪽도 어떤 의미로는 super curve 네요.) 곰처럼 우직하게 배우고, 삶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화면과 경음악 배경에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매주 빼먹을 수가 없네요. 커브를 타는 여고생 버전의 '델마와 루이스'를 보는 기분이에요. 아직 못 본 작품들도 있어서 참고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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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요새는 종합 애니커뮤가 전부 망해서 분기에 뭐하는지 알기 어려웠는데 한눈에 알수있게 정리해주시니 좋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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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리뷰하셨던 우마무스메는 2기가 수~명작으로 종영, 메갈로 복스2가 현재 호평 방송중이니 시청하는걸 추천합니다. | 21.05.07 01: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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