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미래로 추정되는 시대의 어느 날,
외행성계로 캠프를 나간 학생들이 정체불명의 구체에 빨려들어 그대로 우주 공간에 던져집니다.
혼란스럽고 다급한 순간, 학생들은 때마침 근처에 표류하는 정체불명의 우주선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대피합니다.
기적적으로 우주선 시동이 걸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지구로 똑바로 귀환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
다행히 지구를 향한 길목에 행성들이 적절하게 배열돼 있어, 행성마다 들러 보급을 한다면 귀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렇게 시작된 주인공 일행의 생존기가 이 작품, 《저 너머의 아스트라》의 내용입니다.
제작사는 《암살교실》, 《쓰레기의 본망》, 《하쿠메이와 미코치》 등을 만들어 온 <라르케>입니다.
항상 안정적인 퀄리티 유지와 준수한 완성도의 결과물로 유명했던 제작사라 그런지 본작도 러닝타임 내내 작화가 안정적이고 연출도 적확한 편입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시네마스코프 화면비가 있는데요, 저로서는 정확히 어느 장면에서 이 기법을 쓰는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처음에는 회상씬에만 쓰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냥 감독이 강조하고 싶은 장면마다 쓰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장르는 SF입니다. 이 시대에 아주 마이너한 장르죠.
분명 시대는 옛 SF물의 배경이 되었던 미래사회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SF의 인기는 줄어들고만 있습니다.
(AKIRA, 1988)
왜일까요? 20세기 말에는 ‘미지의 21세기’에 펼쳐질 찬란한 과학 문명사회를 기대했지만
막상 21세기가 돼 보니 생각과는 다른 따분하기 그지없는 현실이 도래해 실망하기라도 한 걸까요?
아니면 나 하나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싸이언스는 뭔 얼어 죽을 싸이언스야 뭐 이런 걸까요?
아무튼 이런 SF 가뭄의 시대에 SF를 표방하는, 심지어 SF ‘애니메이션’이라는 물건이 튀어나와서 SF 매니아인 저로서는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감상 결과, 역시나 요즘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춰 시나리오가 성립하기 위한 조미료 정도로만 SF 요소를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하드 SF는 절대로 아니에요. 오히려 하드 SF 팬들은 감상 도중 답답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대기 구성물질이 뭔지도 모르고 어떤 미생물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이 툭하면 헬멧 벗고 다니기 일쑤인데,
‘우연히도’ 방문하는 행성의 대기 구성물질이 죄다 지구와 흡사한 모양이죠?
(Alien: Covenant, 2017)
어... 리들리 옹이 그렇다면 그런가보지 뭐...
이왕 그럴거면 초반에 이랬던 것처럼 생태계 묘사 좀 신경써서 꾸며보던가 그것도 초반 한정이고...
심지어 생존에 가장 중요한 물은 어딜 가나 넘쳐납니다.
먹어도 되는 동식물인지 판별해주는 기계는 우주선에 남은 재료로 뚝딱 만들어냈습니다.
위기가 전무한 건 절대 아니지만, 평상시의 주인공 애들 분위기만 보면 무슨 소풍 나온 줄 알겠어요.
나중 가서는 바닷가에서 바캉스까지 즐기니 말 다했죠.
이 작품을 감상하려 하신다면, 우주에서 조난당한 것치고는 긴박함이 적다는 점을 알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본작에 ‘SF’의 ‘Science’는 조미료 수준으로 쓰였고 메인은 ‘Fiction’인 듯합니다.
우주 조난을 소재로 삼은 작품인 만큼 공간적 배경은 당연히도 우주입니다. 하지만 우주의 비주얼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들었어요.
우주라는 공간이 갖는 특유의 공허함, 광활함, 고독함, 공포, 어둠, 혹은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본작에서 우주라는 공간은 나무 판넬에 남색 페인트를 칠한 뒤 별이랍시고 하얀색 점을 찍어 놓은 공연무대 배경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우주의 존재의의는 여행을 위한 무대 이상 이하도 아닌 것 같았어요. 행성들의 비주얼도 아쉬웠습니다.
생태계가 나름 그럴싸하게 잘 짜인 행성(개인적으로 위 사진의 에피소트 좋았습니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비슷비슷한데 색깔만 약간 다른 이세계 판타지 수준이었습니다. 식생의 생김새가 약간 다른 걸 제외하면,
앞서 설명했듯이 대부분 지구와 비슷한 동식물 생태계가 있고, 물도 있으며 대기 조성마저 지구와 비슷하거든요.
후반부에 나온 한 행성은 인터스텔라의 밀러 행성 짝퉁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1화에서 나온 이 장면은 통째로 그래비티 오마주였어요. 이런 거 보면 그냥 감독이 SF영화들 오마주하고 싶었던 건가 싶기도 하고...
뭐, 계속 말하지만 이 작품의 주제는 우주 모험이 아니긴 해요. 우주의 비주얼을 무대 배경처럼 그려 놓은 건 이런 이유도 있을거에요.
아무튼, 이런 이유로 미지의 우주에 대한 다채로운 묘사 면에서 저 너머의 아스트라는 꽤 나태한 자세를 취합니다.
본작의 진짜 주제는 주인공 일행의 자아 찾기에 더 가깝습니다.
이들은 겉보기에 굉장히 전형적인 인물상을 갖고 있습니다. 마냥 천진난만하고 긍정적인 분위기 메이커, 열정적이고 허당끼가 있는 리더,
잘생겼는데 똑똑하기까지 한 능력자, 무뚝뚝하지만 듬직한 남학생, 불평불만을 달고 다니지만 알고 보면 정이 많은 여학생,
남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는 시니컬한 아웃사이더, 강력한 친화력으로 친근하게 굴지만 숨기는 게 있어 보이는 인사이더,
소심해서 대화에 끼지 못하는 조용한 캐릭터까지 여타 학원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상이죠.
이 조합 자체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만, 중요한 건 이면의 과거사입니다.
각자의 사연은 어두운 편으로, 이는 인물상을 입체적으로 조형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이들 개개인을 한 명씩 조명해 나가는데요, 이러한 방식은 동 제작사의 암살교실을 떠오르게 합니다.
어... 지금까지 불평불만이 많았는데요, 이 작품이 초반부에 너무나도 정석적인 전개를 선보이기에 취향이 안 맞으면 지루할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행성 간 여행에 대한 일종의 공식이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후반부에 이야기의 초점이 ‘지구로 향하는 여정’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때,
여행 관련된 부분은 아까 만든 공식(매번 반복되는 내용은 쿨하게 해결하고 넘겨!)으로 적당히 얼버무리고
본격적으로 이 작품의 진짜 주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그 시점이 작품 중반부 즈음인데요, 이때부터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듯한 짜릿하고 두근두근한 전개의 연속입니다.
떡밥이 거듭해서 던져지고 회수되는 과정에서 그 스케일이 점점 커지는데요,
이들 떡밥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큼직한 충격을 가져오며 이야기의 구도를 휙휙 뒤집는 데다 그 회수도 착실하게 진행돼서
작품 후반부는 정말이지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이 떡밥이라는 게, 주인공 일행이 추측하는 족족 진짜 사실로 밝혀지는지라
(정확히는 시청자들에게 밝혀집니다. 그게 사실이라는 걸 주인공 일행은 아직 모릅니다) 김이 빠지는 감도 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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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는 스포주의)
주인공 일행이 캠프 하러 나온 학생들인 만큼, 당연히 집에 남아 있는 각자의 가족들이 있습니다.
자식이 행방불명된 상황에서 이들이 어떤 행동과 태도를 보이는지 관전하는 것도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조난물에서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야 그리웠던 가족의 실물을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는 방식이 큰 감동을 주지만,
본작처럼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사람을 동시에 보여 주다가 나중에 만나게 해 주는 것도 어떻게 보면 감동이 두 배가 되는 게 아닌가 싶네요.
많은 떡밥을 통해 거대해진 스케일의 이야기를 끝마치는 방식은 약간 아쉽습니다.
학생들의 귀환에 있어 가장 큰 장벽은 우주가 아니라 지구에 들어간 직후부터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이 말도 안 되는 규모로 쌓여 있는 과제를 어떻게 처리하나 싶었는데,
막상 끝을 보니 너무나도 심플하게 해결해 버려서 김빠지더군요.
그래도 직후의 에필로그 덕에 막판 가서 작품 완성도 깎는 일은 다행히 없었습니다.
이렇게 큰일을 겪은 캐릭터들일수록 시청자로서는 그 후일담이 고픈 법이죠.
다들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제대로 확인시켜줘서 너무 만족스러웠습니다.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감상해 오면서 느끼는 거지만, 마무리가 좋으면 작품 전체에 대한 평가도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전반부 지루했던 걸 생각하면 10점 만점에 7~8점이 적당하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지만, 마무리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9점 줄래요.
‘S’cience ‘F’iction의 ‘S’쪽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비교적 지루한 초반부를 버텨낸다면 오락적 재미의 극한을 보여 주는 ‘F’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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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끝난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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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아요. 애니를 보고 나서 원작을 보면, 뭔가 아쉬웠던 부분이 채워지실 거예요. 4컷 만화도 깨알 재미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애니에선 모두 편집됐지만요. (단, 그걸 버리긴 아까웠는지 스탭롤 사진 등에 있답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화는 애니판이 각색을 잘했다고 생각해요. 기본 토대는 같은데 애니에서 좀 더 보강을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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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무어(두번째 별)에선 물 문제가 제기됩니다. 애니에선 선인장에서 보급한 것만 나오지만, 실제로는 타조같은 그 동물이 사는 동굴에서 물을 보급받죠. (선인장에 있던 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가 언급되고요.) 애니에선 생존 관련 얘기를 줄이고, 아이들의 심리랑 진상에 집중해서 살짝 아쉬웠던 분들 많으셨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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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무난,평범하게 시작했다가 커브 예술적으로 돌더니 놀이기구 타는기분으로 완주한 기분. 감독,각본가가 완급조절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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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끝난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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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밥 스케일에 비해 마무리는 진짜 깔끔했죠 | 21.04.06 20: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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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무어(두번째 별)에선 물 문제가 제기됩니다. 애니에선 선인장에서 보급한 것만 나오지만, 실제로는 타조같은 그 동물이 사는 동굴에서 물을 보급받죠. (선인장에 있던 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가 언급되고요.) 애니에선 생존 관련 얘기를 줄이고, 아이들의 심리랑 진상에 집중해서 살짝 아쉬웠던 분들 많으셨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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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 쳐 낸 묘사가 몇 있나보네요 | 21.04.06 20: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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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ELEC
생각보다 많아요. 애니를 보고 나서 원작을 보면, 뭔가 아쉬웠던 부분이 채워지실 거예요. 4컷 만화도 깨알 재미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애니에선 모두 편집됐지만요. (단, 그걸 버리긴 아까웠는지 스탭롤 사진 등에 있답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화는 애니판이 각색을 잘했다고 생각해요. 기본 토대는 같은데 애니에서 좀 더 보강을 했거든요. | 21.04.06 20: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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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입니다. | 21.04.06 21: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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