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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귀멸의 칼날] 죄와 벌, 그리고 화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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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멸의 칼날 20화를 본 이후 제가 이 작품에 대해 새롭게 느낀 점은 이 만화가 소년만화 치고 죄와 벌에 대해 상당히 진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소년만화에서 소위 말하는 "뒷 이야기가 있는 악역" 과의 대결은 보통 치열한 싸움 이후 화해와 용서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러 그 점을 노리고 악역의 캐릭터 설정을 상당히 불쌍하고 감정을 호소하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경우가 태반이죠. 그래야만 독자들도 악역에 대해 용서하기 쉽고 그 이후 아군으로 편입 시키기도 용이하니까요.

 

하지만 귀멸은 다릅니다. 분명 이 작품에 등장하는 혈귀들도 - 특히 이후 등장하는 혈귀들의 스토리는 정말 감정을 제대로 흔들어댑니다 - 각자 나름의 슬픈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야기를 일단 목을 자르고 시작합니다. 무슨 사정이 있건 혈귀가 개과천선해서 아군이 된 경우는 9화에 등장한 타마요와 유시로 뿐입니다. 그나마도 이 둘은 인간을 잡아먹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탄지로가 받아들인 것이지 이 둘의 스토리에 감화되거나 동정심에 내린 결과가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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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에 등장했던 기유의 경우를 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유는 탄지로의 통 사정에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네즈코의 가슴에 칼을 박아 넣었습니다. 물론 탄지로를 도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그에겐 혈귀가 되어 사람을 잡아먹을 위험이 있는 네즈코를 두고 볼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네즈코가 탄지로를 감싸는 행동을 보이자 그는 탄지로를 믿고 둘을 지켜주기로 결심하죠.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네즈코가 사람을 잡아먹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귀멸의 귀살대는 분명 혈귀를 증오하고 그들을 죽이는게 지상과제이지만 그들은 혈귀를 혈귀 자체로서 증오하지 않습니다. 그 혈귀가 사람을 죽이고 먹어치운다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들을 멸살하려는 것이죠. 흔히 말하는 죄는 미워하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나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전 지금까지 이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처벌하는데 죄를 지은 죄인을 미워하지 않는다는게 가능할까 싶기도 했죠. 하지만 귀멸을 보면서 이게 진정 죄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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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보다보면 키부츠지 무잔에 의해 혈귀가 된 이들의 이야기엔 정말 가슴 시린 뒷사정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과는 언제나 한결같았죠. 목이 떨어진다는 죄의 갚음 이후 그들의 뒷사정이 보여지며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개중에는 정말 죽이지 말았으면 하는 적도 있었죠. 하지만 어떤 아픈 이야기에 개인사라고 해도 결국 그건 그들의 사정일 뿐 그들이 죽이고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혈귀란 사람 잡아먹는 괴물일 뿐이며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할 죄인일 뿐입니다.

 

탄지로는 혈귀의 목을 벤 후 상대의 괴로움을 느끼고 공감하며 방금전에 동료들을 죽인 사악한 상대라도 손을 잡아주거나 명복을 빌어줍니다. 상대의 괴로움에 공감하고 동정할 수는 있지만 죄는 죄인 것이죠. 그들을 미워하거나 저주할 수는 없더라도 그들의 죄를 똑바로 보고 그 죄에 맞는 벌 - 책임을 떠 안을수 있도록 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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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에서 여동생이 사람을 잡아먹었을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던 우로코다키의 대사는 귀멸의 작가가 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실히 보여줍니다. 혈귀가 되어 사람을 잡아먹을 위험이 있는 여동생을 끝까지 비호하다가 그 여동생이 죄를 짓게 된다면 결국 그것은 죄에 대한 방관이 되며 그에 대한 책임은 죄인과 그 죄를 방관한 자가 똑같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죠. 보기에 따라 너무 가혹한 처사로 보일 수 있겠지만 위험에 대한 책임이란 그런 것입니다.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것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가혹하더라도 그것을 감내할 각오가 있어아먄 그 위험을 짊어질 수 있을테니까요.

 

우리는 살면서 자신의 잘못을 너무 주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됩니다. 비단 타인의 경우 뿐 아니라 자신을 돌아봐도 그런 예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죠. 공부를 못한것, 살을 못뺀것, 금연을 실패한 것 등등 사소한 실패에 대해선 그 책임을 주변 사람들이나 상황에 의해 그렇다고 떠밀어내며 자신을 합리화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하지만 그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결국 그 죄는 자신의 것이며 죄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죄를 직시하지 않고 외면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하면 결국 더 큰 죄로 돌아와 더욱 끔찍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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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섬찟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던 시노부의 대사에선 저지른 죄를 용서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시노부가 누나 거미에게 되뇌였던 처벌은 당사자로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끔찍한 처벌이었겠지만 "정당한 처벌" 이란건 애초에 가해자가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더 중요한 법이죠. "처벌이 끝난 후에야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 란 시노부의 섬뜩한 대사는 결국 너무나 단순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올바른 수준의 처벌과 사죄, 책임을 지는 태도가 보여야만 그들이 진짜 용서하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문득 일제 시대와 2차세계 대전 약탈의 칼을 휘둘렀던 일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한다는 거창한 명분아래 식민지를 수탈하고 나아가 세계를 향해 총부리를 들이밀며 스스로 잔인한 혈귀가 되어 남의 피와 살을 탐했습니다.

 

하지만 전후 대부분의 죄는 몇몇 전범들의 책임으로 돌려지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잔인할 정도로 이어진 폭격과 핵폭탄에 의해 엄청난 희생자를 낸 피해자처럼 자신을 여기고 있습니다. 전쟁이니 어쩔수 없지 않느냐,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등을 떠밀린 평범한 사람들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고 할 지 모르지만 그들은 당시 미쳐버린 위정자들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죠. 평범한 80%는 과격한 20%를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구요. 자신들의 잘못에 의해 두들겨맞고도 그것을 어쩔수 없었다고, 우리도 피해자 였다고 변명하는 비겁함은 그들이 아직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으려면 한참 멀었다는걸 잘 보여줍니다.

 

어떤 일본인들은 이제 더이상 사과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들은 사과 할 만큼 했다고 말하며 우리가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여있다고 말하죠. 하지만 그 사과가 과연 피해를 당했던 우리를 이해시킬 만큼 진정한 것이었는지는 돌이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겁니다. 과연 가해자 맘대로 정한 사과가 피해자를 얼마나 설득시킬수 있을까요? 귀멸의 혈귀마냥 목을 내놓으라는 정도도 아닌, 진정한 사과조차 못하는 그들이 언제가 되어야 우리와 화해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댓글 | 8
1


(4723599)

106.102.***.***

BEST
역으로 뭐 닌자만화는 너무 악역을 용서해서 그 선이 넘은지 오래라 오히려 주인공들도 동류 취급 되어 간다는게..
19.08.20 22:07
BEST
오로치마루 : 끼요오오옷~!!!
19.08.20 22:10
(1730192)

14.138.***.***

BEST
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때, 근본이 이미 타락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인의 경우로 보면 죄의 무게가 주는 책임을 짊어질수 있느냐 없느냐로 피해자가 인정할때까지 용서를 구할수 있느냐 없느냐로 갈리지 않나 싶습니다. 또한, 개인의 양심에 따라서 죄가 주는 마음의 무게를 덜기 위해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자의 앙금이 용서의 진정성과 세월이 퇴적됨에 따라서 씻겨져 내려가고 청명을 되찾았을때 가해자의 죄를 사한다는 표시를 하면 그때야 말로 다시 관계는 수평에 가깝게 복원이 되고 어쩌면 이를 계기로 보다 건설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을겁니다. 다만, 이런 관계의 회복을 유일한 해답이라고 한다면 방해가 되는 요소가 많은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1. 과실이 있었는데 책임소재가 분산되어있거나 불분명한 경우. 2. 책임을 짊어지고 용서를 구했으나, 짊어지지도 않을 죄와 책임까지 떠맡아버려 마음이 압사당하거나 그럴 위험이 큰 경우. 3. 약육강식이 정의라 굳게 믿고 약한자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우. 4.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할때 자신뿐만 아니라 관계없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해가 갈 필연적인 상황에 있는 경우. 5. 자신의 명예와 체면이 그 무엇보다 우선시 될경우. 가오가 죽는걸 치욕스럽게 여기는 것. 6. 개인은 용서를 적극적으로 구하려 하나 조직과 단체가 입을 막는 경우. 7. 유아독존에 찌들어있거나 그냥 인간혐오인 경우. 8. 사회적인 위치의 격차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존재할 경우, 사과를 해도 되는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을 대중이 구분지어 버리거나 때로는 시간이 지나 흐지부지해지길 바라는것. 9. 배경 믿고 끝까지 버티는 경우. 10. 면식이 없는 곳에서 분쟁이 일어날 경우에는, 해당 공간안에서 친목도가 어느쪽이 높냐에 따라 잘잘못이 구분되어버릴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 이런 정도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잘못을 구해서 자신이 어떠한 종류의 책임을 덜어버려서 남는 이익이 없을때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양심에 털났다고 할만한 일들이 일어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19.08.20 21:26
BEST
댓글 이미지 입니다. 이미지를 보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귀멸의 칼날을 보고
19.08.20 22:17
(263229)

113.30.***.***

BEST
나무위키에서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에 관련된 내용을 보다가 이런 인용문을 발견했습니다. ['''"한국은 '도덕적으로 우위'라는 정당성에 의한 '도덕적 오만'을 즐겨 왔다. '피해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인권을 둘러싼 의식구조에 안주해 왔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탈제국주의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지향성이 죄를 지은 가해자의 수치와 회개를 이해하려고 한 적은 없다. 오만은 상상력이 빈곤하다. 그리고 그런 오만과 규탄은 상대를 오히려 위축시킨다. 그런 도덕적 지향성이 상대방의 굴복 자체를 목표로 하는 지배욕망의 뒤틀린 형태가 된 적도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천황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할 때까지 나는 용서할 수 없다"(『뉴스로닷컴』2011년12월13일자)고 하는 위안부의 말은 그런 심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굴복시키고 싶은 -- 꿇게 하고 싶은 욕망은 굴욕적인 굴복 체험의 트라우마에 의한 또 다른 강자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대일본제국의 이인자로서 구미연합군 포로를 학대한 역사를 상기하면, 그런 욕망이 새로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있다. 그것은 식민지화의 상처가 만든 뒤틀린 심리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99-300쪽) 스기타 아츠시 「근원은 가부장제 국민 국가 체제」(『제국의 위안부』서평) 『아사히 신문』, 2014년12월 7일자 조간 ] ...............오만이고 나발이고 피해자가 만족할 때 까지 닥치고 사과하는 것이 가해자의 의무지,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싶더군요. -_-;;;
19.08.21 09:34
(1730192)

14.138.***.***

BEST
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때, 근본이 이미 타락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인의 경우로 보면 죄의 무게가 주는 책임을 짊어질수 있느냐 없느냐로 피해자가 인정할때까지 용서를 구할수 있느냐 없느냐로 갈리지 않나 싶습니다. 또한, 개인의 양심에 따라서 죄가 주는 마음의 무게를 덜기 위해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자의 앙금이 용서의 진정성과 세월이 퇴적됨에 따라서 씻겨져 내려가고 청명을 되찾았을때 가해자의 죄를 사한다는 표시를 하면 그때야 말로 다시 관계는 수평에 가깝게 복원이 되고 어쩌면 이를 계기로 보다 건설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을겁니다. 다만, 이런 관계의 회복을 유일한 해답이라고 한다면 방해가 되는 요소가 많은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1. 과실이 있었는데 책임소재가 분산되어있거나 불분명한 경우. 2. 책임을 짊어지고 용서를 구했으나, 짊어지지도 않을 죄와 책임까지 떠맡아버려 마음이 압사당하거나 그럴 위험이 큰 경우. 3. 약육강식이 정의라 굳게 믿고 약한자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우. 4.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할때 자신뿐만 아니라 관계없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해가 갈 필연적인 상황에 있는 경우. 5. 자신의 명예와 체면이 그 무엇보다 우선시 될경우. 가오가 죽는걸 치욕스럽게 여기는 것. 6. 개인은 용서를 적극적으로 구하려 하나 조직과 단체가 입을 막는 경우. 7. 유아독존에 찌들어있거나 그냥 인간혐오인 경우. 8. 사회적인 위치의 격차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존재할 경우, 사과를 해도 되는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을 대중이 구분지어 버리거나 때로는 시간이 지나 흐지부지해지길 바라는것. 9. 배경 믿고 끝까지 버티는 경우. 10. 면식이 없는 곳에서 분쟁이 일어날 경우에는, 해당 공간안에서 친목도가 어느쪽이 높냐에 따라 잘잘못이 구분되어버릴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 이런 정도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잘못을 구해서 자신이 어떠한 종류의 책임을 덜어버려서 남는 이익이 없을때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양심에 털났다고 할만한 일들이 일어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19.08.20 21:26
(4723599)

106.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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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으로 뭐 닌자만화는 너무 악역을 용서해서 그 선이 넘은지 오래라 오히려 주인공들도 동류 취급 되어 간다는게..
19.08.2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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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77
오로치마루 : 끼요오오옷~!!! | 19.08.20 22:1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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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주인공이란 자들은
19.08.20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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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멸의 칼날을 보고
19.08.20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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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을 해야합니다.
19.08.20 22:17
근데 만화판에선 왜 귀걸이를 그걸로 한건지.. 진짜 모르고 쓴건가.
19.08.21 09:00
(4723599)

106.102.***.***

루리웹-7291398376
솔직히 현지에서는 그건 그냥 태양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아는 사람도 많아서 침략의 의미로 사용한건 아닌거 같네요.. 예로 원펀맨 ONE 작가도 그게 침략의 의미로 사용되는 문양인지 전혀 몰랐다고 했으니.. | 19.08.21 09:20 | | |
(263229)

1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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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에서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에 관련된 내용을 보다가 이런 인용문을 발견했습니다. ['''"한국은 '도덕적으로 우위'라는 정당성에 의한 '도덕적 오만'을 즐겨 왔다. '피해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인권을 둘러싼 의식구조에 안주해 왔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탈제국주의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지향성이 죄를 지은 가해자의 수치와 회개를 이해하려고 한 적은 없다. 오만은 상상력이 빈곤하다. 그리고 그런 오만과 규탄은 상대를 오히려 위축시킨다. 그런 도덕적 지향성이 상대방의 굴복 자체를 목표로 하는 지배욕망의 뒤틀린 형태가 된 적도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천황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할 때까지 나는 용서할 수 없다"(『뉴스로닷컴』2011년12월13일자)고 하는 위안부의 말은 그런 심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굴복시키고 싶은 -- 꿇게 하고 싶은 욕망은 굴욕적인 굴복 체험의 트라우마에 의한 또 다른 강자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대일본제국의 이인자로서 구미연합군 포로를 학대한 역사를 상기하면, 그런 욕망이 새로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있다. 그것은 식민지화의 상처가 만든 뒤틀린 심리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99-300쪽) 스기타 아츠시 「근원은 가부장제 국민 국가 체제」(『제국의 위안부』서평) 『아사히 신문』, 2014년12월 7일자 조간 ] ...............오만이고 나발이고 피해자가 만족할 때 까지 닥치고 사과하는 것이 가해자의 의무지,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싶더군요. -_-;;;
19.08.2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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