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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애갤 유저 칼럼] 혼자서는 알 수 없는 말, 외면해서는 안 되는 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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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루리웹 애니메이션 유저 칼럼 시리즈입니다. 일정기간 동안 루리웹 애니갤러리 상단 공지로 노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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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에버가든〉은 과묵한 가인(佳人)같은 작품입니다.

가녀린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입가에 은은하게 번지는 미소에는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들이 담은 의미를

그 사람은 절반도 말로써 설명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아쉬운 나머지 그 사람의 속마음을 제멋대로 건져 올리면,

뜻밖에도 거기에서 들려오는 무섭도록 비장한 목소리는

쉴 새 없이 이렇게 되뇌고 있습니다.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중에서)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어떤 시련을 겪더라도 굳건히 버티며

아름다운 삶을 끝까지 추구하겠다는 간절한 열망을 담은 작품입니다.

비록 현실의 제약과 복잡성을 냉철하게 묘사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세련된 영상미와 서정적인 음악, 시적인 연출로 표현된

이상적인 삶의 모습들에는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건져 올린 메시지들을 마음 속에서만 되뇌기는 아쉬워서,

부족하나마 글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1. 대전쟁, 타자기, 기계 의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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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엽기와 증기선이 오가는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세계는

20세기 초엽의 풍경을, 더 구체적으로 말해

제1차 세계 대전(1914 ~ 1918) 직후 유럽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전쟁(The Great War)'이라고도 불렸던

제1차 세계 대전은 강력한 동원력을 갖춘 근대 국가들이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총력전을 펼치면 인명과 사회를 얼마나 광범위하게

파괴할 수 있는지 참혹하게 입증했습니다. 추산 4천만 명의 사상자를

낸 전쟁이 얼마나 많은 이별과 상실의 고통을 초래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전쟁의 상처는 그보다 더욱 깊었으니,

이는 전쟁 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반전문학 작품들 속에서

절절하게 묘사됩니다.


'우리는 이제 더는 청년이 아니다.

우리에겐 세상을 상대로 싸울 의지가 없어졌다.

우리는 도피자들이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의 삶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다.

열여덟 살이 된 우리는 세상과 그 안에서의 존재를 사랑했었다.

그런데 그것들에 대고 총을 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터진 유탄은 바로 우리의 심장에 명중했다.

우리는 활동, 노력 및 진보라는 것들로부터 차단된 채로 살았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의 실체를 믿지 않는다.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오직 전쟁밖에 없는 것이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없다 중에서)


전쟁은 사람들이 숭고하다고 믿어왔던 가치들을 폭력의 기억으로

오염시켜 무너뜨렸습니다. 그렇게 초래된 아노미 상태에서

경제적 혼란과 사회적 모순, 전후 체제에 대한 불만을 온건하게

해소할 수 없었던 인류는 불과 20년 만에 두 번째 세계 대전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래서 대전쟁 이후의 시기는 오늘날 '전후'가 아닌

'전간기'라고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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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쟁이 초래한 상실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회들도

열어 주었습니다. 총력전 체제 속에서 군인으로 차출된 노동 인력의

빈 자리는 반드시 채워져야만 했기에, 대전쟁은 그동안 소외되어 온

여성들이 보다 능동적인 경제적, 사회적 역할을 획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19세기 말엽부터 상용화된 타자기는 당시

새롭게 등장한 사무직 여성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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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쟁'이 남긴 상처와 '타자기'가 상징하는 새로운 기회.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실제 역사에서 빌려 온 이 두 가지 사실적인

소재에 정교한 기계 의수라는 공상적인 소품을 첨가합니다.

증기 기관이 주요 동력원으로 쓰이던 시절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실제 역사에 등장하지 않은 이색적인 기술을 덧붙이는 것은,

낭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과거에 대한 향수와 SF의 흥미를 결합한

'스팀펑크(steampunk)' 장르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그런 기계 의수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그 기술이 인류 문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찰하는

작품이 아니기에, 엄밀히 말해 스팀펑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SF적 요소들이 거의 배제된 상태에서, 실현 불가능한 기계 의수는

이야기에 우화적인 성격을 가미하는 상징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 바이올렛의 의수는 전쟁이 그녀에게서 빼앗은 것들의

흔적이자, 그녀가 지키지 못했던 것들을 상기시키는 실패의 증거이며,

극단적인 폭력의 가해자였던 그녀를 평생 따라다닐 낙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부정적인 함의에도 불구하고, 기계 의수는 그녀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기회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계 의수'는 '대전쟁'과 '타자기'가 나타내는 것들을

바이올렛이라는 한 개인과 이어주는 장치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녀가 기계 의수를 다루는 방식은 '상실과 가치관의 혼란을 딛고

어떻게 의미있는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이 작품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이상적인 삶의 자세에 대한

고대 철학자들의 생각과 언어의 기능에 대한 고찰입니다.



2. 스토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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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화 초반에 나오는 조연 캐릭터들의 독백처럼, 언뜻 보기에

주인공 바이올렛은 무감정하고 명령에 철저히 복종할 줄만 아는,

마치 인형같은 인상을 주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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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두 팔이 의수로 바뀐 것을 깨달은 그녀는,

조금 낯설어 하는 것 외에는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상관에게 임무에 즉각 복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보고서를 작성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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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직 의수를 다루는 솜씨가 서툴지만, 찻잔을 들거나

식기를 사용해 보라는 타인의 말을 마치 명령처럼 받아들이고

무리하게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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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누군가가 이제 그만 쉬라고 말해주지 않는 이상

주어진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쉴 새 없이 일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바이올렛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시킨 일에만 매진하는 '도구'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작품은 바이올렛이 결코 무감정한 인형이 아님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묘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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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도입부에서 바이올렛은 에메랄드 브로치에서 소령의 눈동자를

발견하고는 어떤 깊은 감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언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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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마지막에 소령이 남긴 "사랑해"는 그의 진심이지만, 또한

바이올렛의 질문과 하나의 문답을 이루도록 의도적으로 연출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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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마지막에 잃어버렸던 에메랄드 브로치를 되찾은 바이올렛이

그 브로치를 대하는 태도는 "사랑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바이올렛의 행동 원리는 '명령과 복종' 보다는 '사랑과 헌신'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립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설명했던 장면들은

달리 해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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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두 팔이 의수로 바뀐 것을 깨달은 그녀는,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깨닫고 소령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새 팔에 빨리 익숙해지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소령에게

자신이 무사함을 알리고 하루빨리 다시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쓰는

것으로 재활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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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의수에 빨리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고,

무엇이든 일단 연습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의수는 튼튼하고 감각이 없으니 식기를 다루다 실수하더라도

다칠 위험은 적으므로 주저할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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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지인이 소개해 준 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일단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재활에 몰두하는 것이

그저 무력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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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하루를 보내고도 아직 에너지가 남은 그녀는

계속해서 의수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합니다.

 

이렇게 보면 바이올렛은 이해 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현재의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한 후, 어쩔 수 없는 일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이타적인 역할을 찾아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주체적 인물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후자의 해석이 맞다는 것이 점차 분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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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소령의 바람일지라도, 바이올렛은 자신이 추구하는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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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역할보다 소령에게 더 도움이 될 만한 역할을 찾았을 때,

바이올렛은 과감하게 새로운 역할에 도전합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시계와 햇볕을 받기 시작한

강아지 인형("길베르트의 개")은 그녀가 자동수기인형 일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되찾았음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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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지만,

현재로서는 그것이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유일한 일인 이상

끝까지 해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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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대표적 스토아 철학자들인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에픽테투스)

 

바이올렛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고대 헬레니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 사조였던 스토아 학파의 이상과 무척 잘 어울립니다.

기원전 3세기경 키티온의 제논이 창시한 스토아주의는 본래 체계적인

우주관에 기반한 그리스 철학 사상이지만, 로마인들에게 수용되는

과정에서 삶의 태도에 관한 실용적 지침의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로마 제국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주의의

핵심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매 순간마다 명확하게 판단하고,

매 순간마다 이타적으로 행동하며,

매 순간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을 흔쾌히 수용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에서)


'명확한 판단'은 사물이나 사건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감각 기관이

느낀 '인상'과 그것에 대한 '해석'을 구분하고, 후자의 과정에

주관이 개입되어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경계하는 태도입니다.

흔한 오류는 자연의 섭리에 의한 중립적인 현상에 섣불리 '좋다'

또는 '나쁘다'는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타적 행동'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성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태도입니다.

스토아 학파는 세상 모든 것들이 '로고스'라는 질서에 의해 하나로

연결된 것으로 보았고, 인간은 공적인 책임을 다하고 사회에

봉사함으로써 '로고스'에 부합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용'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행동하되, 결코 목표를 잃고 좌절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스토아 학파는 이 또한 '로고스'가 실현되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바이올렛은 누군가에게 특별히 배운 것이 아닌데도 이 세 가지 태도가

몸에 밴 듯한 인물입니다. 그녀가 사회 생활을 경험하면서 보여 주는

가파른 성장은 이러한 삶의 자세가 뛰어난 학습 능력과 결합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작품 초반부에서 바이올렛의 '이상적'인 품성은 

오히려 너무도 인형 같아서 불쾌한 인상마저 주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작품은 이 지점에서 언어를 통해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지적합니다.



3. Alexithymia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바이올렛만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아닙니다. 이 증상을 정신 의학에서는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이라고 부르는데,

원어는 '마음(thymos)을 표현하는 말(lexis)의 부재(a-)'를

뜻하는 그리스어입니다. 바이올렛의 상태와 매우 잘 맞아떨어지는

단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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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표현불능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신체적 감각이 어떤 감정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 판단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합니다. 그 사람은

지금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고이는 증상이 두려움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서운함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눈병과 부정맥

때문인지 전혀 판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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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 상태를 판단할 수 없다면, 그것을 남에게 표현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감정 상태를 묻는 말에 객관적인 상황 설명으로

동문서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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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치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고 그것에 공감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감정은 무의미하기에 사고 과정에서 아예 배제되곤

합니다. 따라서 감정표현불능증이 있는 사람은 대단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상상력이

부족하고 매정한 사람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정서적으로 욕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는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이올렛 역시 "사랑해"를 이해하겠다는 강력한 동기에 이끌리기

전까지는 자발적으로 바깥 세상을 탐색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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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증상들로 인해 바이올렛의 스토아주의적인 덕목들은

온전하게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감정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불가능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행동하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대인 관계가 협소해져서, 그녀의

'이타적 행동'은 오직 소령 한 사람을 대상으로만 작동합니다.

그런 소령의 존재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수용'할 경우,

그녀는 삶의 목표를 완전히 상실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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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과 바이올렛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흐릿하게만 보였던 메히티히의

밤거리처럼, 바이올렛은 자신의 세상 속 유일한 타인인 소령을 위한

헌신 외에는 다른 어떤 가치도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선택지가

제한된 상태에서 아무리 주체성을 발휘해 본들, 바이올렛은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감정표현불능증의 치료법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초기 단계이지만,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과 그 밑바탕에 깔린 감정을 연결짓고

그 감정을 표현해보는 다양한 연습 문제를 풀어 봄으로써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바이올렛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녀는

대필가로 활동하며 다른 사람들의 말 속에 담긴 감정을 헤아리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에 매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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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을 통해 감정들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 결과, 바이올렛은

감정을 사고에 반영하여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보다

'명확한 판단'을 내리게 되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헤아려

자동수기인형으로서 그들을 위한 '이타적 행동'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소령의 돌이킬 수 없는 부재를 '수용'하더라도 아직

삶의 목표가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충분한 언어 구사 능력이 뒷받침된 후에야,

바이올렛의 스토아주의적 덕목들은 비로소 진가를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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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바이올렛의 성장은 <십이국기>의 주인공 격인

'나카지마 요코'와 정확히 반대되는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요코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며 남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이 바라는 것들을 희생하며 살아온, 어떤 면에서는

바이올렛보다 더 '도구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불려간 이세계에서

왕위 계승권자가 되어 권력 다툼에 휘말림으로써,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 투쟁을 통해 나약한 자신을 극복하고 주체성을 획득합니다.

평범한 소녀였던 그녀는 한 나라의 군왕이라는 지극히 특별한 존재로

거듭남으로써 자아를 실현합니다.


반면 바이올렛은 하루하루 생존을 쟁취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서

자라나며 이미 거의 완성된 주체성을 갖춘 상태이지만, 제한된 경험과

빈곤한 언어의 덫에 걸려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접하는 안온한 일상 속에서 풍부한 언어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배움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주체성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비밀 병기에 가까운 특별한 존재였던 그녀는 대필가라는

평범한 직업에서 소박하지만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 직업의

사회적 역할을 다함으로써 자아를 실현합니다.


이처럼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언어의 적절한 의미를 찾는 과정이

상실을 딛고 바람직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역설합니다. 이 주제는 세심하게 설계된 언어적 장치들을 통해

더욱 부각됩니다.



4. 언어와 삶의 의미


말은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획득할 수 있고,

사람들은 그런 풍부한 의미들을 배움으로써 삶의 의미를 보다 깊게

고찰할 수 있습니다.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몇 가지 핵심적인

말들의 의미가 맥락에 따라 변화하거나 심화되는 모습을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 반복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이야기의 통일성을

강화시키고 언어와 삶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1) 혼자서는 알 수 없는 말들, 외면해서는 안 되는 말들


바이올렛은 전쟁으로 인해 많은 것들을 잃었지만,

빈곤한 언어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판단하지 못합니다.

1화에서 하진스는 바이올렛이 '화상투성이'라고 지적하지만,

그 말은 아직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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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은 자동수기인형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언어를 통해 그들과 자신의 공통점들을 발견합니다.

이 과정은 소령과 그녀의 유대감을 표현하는

세 가지 말들을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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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과 헤어진 이래 바이올렛은 언제나 어떤 심적 고통을

느끼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그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6화에서 바이올렛은 또다른 고아 소년 리온과의 공감을 통해

그 고통에 '쓸쓸함'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그것이 소령과의

이별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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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에서 종탑 꼭대기에 올라 라이덴의 경치를 바라보며,

바이올렛은 소령이 전우들의 무덤 앞에서 자신에게

"언젠가 반드시" 보여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물인지 확인하고 감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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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는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끄는 가장 중요한

말입니다. 바이올렛은 소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사랑해"에 답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바깥 세상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녀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것의 보편성을 곳곳에서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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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의 기억 때문에 바이올렛은 누군가가 "사랑해"를 말하는 순간들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반드시 부탁받은 상대에게 전하고

그 답을 얻어야 할 말로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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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 말이 '쓸쓸함'과 "언젠가 반드시"에 맞닿아 있음을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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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의 기억과 연관된 이 세 가지 말들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확인하면서, 바이올렛은 자신이 '무기'로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세상에 퍼뜨렸는지 깨닫고 깊은 회한을 느낍니다.


그녀는 '화상'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스토아주의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그 말들의 의미를 외면하지 않았고,

그래서 자동수기인형 일이 그 말들이 표현하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역할이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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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은 그렇게 말의 더 깊은 의미를 배움으로써

'무기'로서의 과거와 결별하고

대신 추구할 만한 더 나은 가치를 발견하며 성장합니다.

 


(2) 인형과 '인형'


인형은 바이올렛의 개성과 직접 맞닿아 있는 단어입니다. 이 작품은

그 단어에 의도적으로 두 가지 서로 대립하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1화 초반부, 하진스는 병실에 놓인 인형을 보고 소녀병 시절

바이올렛을 떠올리며 이렇게 독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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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인형은 누군가가 시킨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는

섬뜩한 존재입니다.


반면 2화 끝 부분에서, 에리카는 직장 후배 바이올렛의 숨겨진

본모습을 깨닫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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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이야기하는 인형은 선망받는 전문직인 여성 대필가의 별칭인

'인형'이며, 그 유래는 한 남편의 사랑이 탄생시키고

그 아내의 꿈을 이뤄 준 초기형 타자기입니다. '인형'은

바이올렛이 처음에는 소령에게, 나중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선택한 '역할'이고, 그 기원에 얽힌 이야기는

그녀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계기가 되는 "사랑해"와

"언젠가 반드시"를 연상시킵니다. 따라서 인형과 '인형'의 의미는

거의 정반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바이올렛의 성장은 '전장'의 맥락 속에서 자라난 그녀가

'전후 사회'라는 새로운 맥락을 경험하며 첫 번째 의미가 어울리는

존재로부터 두 번째 의미가 어울리는 존재로 스스로 변화해 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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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 변화는 각각의 에피소드 안에서도 일어나는데, 첫 독백의

화자였던 하진스만 하더라도, 인형 같던 바이올렛이 '인형'이 되려는

포부를 밝히는 순간 그녀의 주체성과 감정에 대한 평가를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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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의 리온은 약간 다른 각도의 인식 변화를 보이는데, 그는 본래

'인형'을 인형 같은 차림새로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직업으로 보고

경멸했지만, 나중에는 '인형' 일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아를 실현하는

바이올렛에게 매료되어 자신의 롤 모델로 삼을 정도로 생각이

바뀝니다. 그는 인형과 '인형'을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다가

바이올렛 덕분에 둘의 차이점을 깨닫게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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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품 전반에 걸쳐 인형은 부정적으로, '인형'은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편이지만, 10화는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이 구도를 재치있게

뒤집기도 합니다. 손님들 때문에 엄마와 떨어져 있는 외로움을

인형으로 달래는 앤의 입장에서, 편지를 쓰는 '인형' 바이올렛은

엄마의 시간을 더 빼앗는 결코 달갑지 않은 존재지만, 움직이는

인형 바이올렛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신기한

존재입니다. 바이올렛이 그런 앤의 마음을 헤아려 맥락에 따라

'인형'이 되기도 하고 인형이 되기도 하는 모습은 그녀가 풍부해진

언어를 통해 얼마나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게 되었는지

잘 보여 주는 장치입니다.



(3) 명령과 "사랑해"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한 단어가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경우 외에도, 보통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 두 단어가

개인의 성장 환경 때문에 의미의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중요하게

다룹니다. 바이올렛의 내면에서 '명령'과 "사랑해"가 충돌하는

방식이 그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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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듯이, 바이올렛이 소령에게서 받은 에메랄드 브로치를

바라보는 장면들은 누가 보더라도 "사랑해"라는 말로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해"의 의미를 배우기 위해 그 브로치를 목에

걸고 1년 간 '인형' 일을 하면서도, 바이올렛은 둘의 연관성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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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역할에 지나치게 충실했던 소령은 바이올렛에게 베푸는 사랑에

언제나 명령의 외피를 씌웠고, 따라서 바이올렛은 그런 소령에게

느끼는 감정을 명령과 복종의 맥락에서 파악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사랑해"는 소령이 마지막 순간에 아무런 '맥락 없이' 남긴

말이었고, 이미 바이올렛의 마음 속에 고착되어버린 '명령'이라는

단어를 쉽게 대체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바이올렛은 에메랄드

브로치를 바라볼 때의 감정을 '명령에 대한 갈망'과 비슷한 것으로,

"사랑해"는 자신이 그런 갈망 때문에 숱한 목숨을 빼앗음으로써

짓밟고 만, 바깥 세상에 별도로 존재하는 어떤 숭고한 감정으로

파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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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언어의 맥락을 혼동하고 있는 바이올렛의 마음 속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이 대립 관계는, 작품의 종반부인 11 ~ 13화에서

그녀가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명령에 대한 떨치기 힘든 집착으로

오해하고 그것을 억누르느라 지속적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는

원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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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바이올렛은 에메랄드 브로치와 끝까지 함께 했고,

마지막화에서 소령의 어머니는 바로 그런 행동이

"사랑해"의 결과임을 알려 줌으로써 그녀를 구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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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를 '명령'과 혼동하는 바이올렛의 모습은 앞서 인용한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토로했던 가치의 상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전쟁의 가장 큰 폐해는, 승전을 위해서 가장 고결한 감정들조차

폭력과 희생을 강요하는 '도구'이자 '무기'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선의를 가지고 폭력을 휘두른 기억은

'화상'처럼 남아서, 한때 소중하게 여겼던 가치들을 허울좋은

명분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바이올렛은 그런 고통 속에서도

평화에 대한 신념과 에메랄드 브로치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으며,

꾸준한 소통과 공감을 통해 "사랑해"와 '명령'을 서로 분리해

냅니다. 그런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바이올렛 에버가든〉

전쟁의 가장 아픈 상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처를 극복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보여 줍니다.



5. 바이올렛 에버가든〉 자세히 보기


(1) 라임이 느껴지는 연출들 (링크)


옴니버스 형식의 성장물은 자칫 에피소드 간 연계가 약화되어

주인공의 이야기가 잘 이어지지 않는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시청자들에게 지난 이야기를 상기시켜주기 위해 매화마다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지난화 장면을 삽입한다면, 해당 장면의

감성이 훼손되고 낭비되는 시간이 많아질 것입니다.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서로 다른 에피소드에서 비슷한 구도를

반복적으로 연출함으로써, 시청자가 기시감을 느끼고 그 장면들을

서로 연결해서 곱씹어 볼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시청자에게 다소

부담을 주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여러 차례 반복해서 시청하다 보면

마치 시를 정독하는 듯한 느낌으로 바이올렛이 성장하는 모습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2) 배경 음악의 의미 (링크)


Evan Call이 작곡한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배경 음악은

작품의 중요한 요소들을 음악으로 '번역'한 후 어울리는 장면에

'출연'시킵니다. 그런 음악적 요소들이 사용되는 방식은 이야기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적절하게 반영합니다.


(3) 구성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시간 순서가 불분명했던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재배치하고, 바이올렛이 '인형' 일을 배우는 초반부 에피소드들을

추가함으로써 그녀의 성장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들려 줍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층적으로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1 ~ 2화: 감정의 언어가 결핍된 삶의 문제

3 ~ 5화: 진솔한 소통의 힘과 사회적 역할의 발견

- 바이올렛의 감정 수업 (1 ~ 5화)

 

6 ~ 9화: 공감을 통한 상실의 수용과 극복

- 컨택트 (6화)

- 웹스터 씨 구하기 (7, 8화)

- 운명에 대한 사랑 (8, 9화)

 

10 ~ 11화: 죽음이 가르치는 삶의 자세

- 간주곡 (10화)

- 귀향 (11화)

 

12 ~ 13화: '명령'의 극복과 "사랑해"의 의미

- 대결 (12화)

- "사랑해"의 의미 (8, 13화)



6.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넘어

외상 후 성장(PTG)의 가능성을 거듭 이야기합니다. 이 개념을

연구해 온 심리학자 스티븐 조셉은 PTG의 양상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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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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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관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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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생관의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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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세계관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지만, 그것이 초래하는 PTSD는 그 사람이

기존의 세계를 되찾으려고 애쓰는 대신, 그 잔해로부터 새로운

세계관을 재구성함으로써 삶의 방식을 개선하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결말은 그런 PTG의 상징들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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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은 '혼자서는 알 수 없는 말'을 배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거기서 찾은 '외면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아무리 괴롭더라도 마음 속에 고이 간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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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소령만을 바라보느라 세상을 흐릿하게만 볼 수 있었던 그녀에게,

이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의 풍경이 또렷이 보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소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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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은 '쓸쓸함'을 느끼며 눈물짓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흘린

눈물 덕분에 그녀는 진정 '그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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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사랑해"를 전하는 '인형'의 역할에 깊은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으로 어떤 운명이 기다리든,

그녀는 삶의 의미를 결코 잃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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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8일, 쿄애니 제1스튜디오가 방화로 인해 전소하고

직원 서른 네 분이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그의 여섯 번째 교향곡 〈비창〉을 초연하고 불과 9일

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그리고 그로부터 12일 후

두 번째 연주회가 열렸을 때, 청중들은 거장이 자신을 위한 진혼곡을

작곡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합니다.

〈바이올렛 에버가든〉 마지막화가 방영된지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작품의 주제와 그 작품을 만든 분들의 운명이

어떻게 맞물리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쿄애니가 보여준 것들을 깊이 사랑하게 된

시청자로서, 〈비창〉처럼 작별과 애도로 이 글을 끝맺고 싶지는

않습니다. 〈바이올렛 에버가든〉에 어울리는 인사는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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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J. Poquérusse et al., Alexithymia and Autism Spectrum Disorder: A Complex Relationship, Front. Psychol. 9, 1196 (2018).


- J. Löf et al., Symptom, alexithymia and self-image outcomes of Mentalisation-based treatment for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a naturalistic study, BMC Psychiatry 18, 185 (2018).


- 트로스트가 말하는 우리의 마음, "감정이 사라지다. 감정표현 불능증"


- Stephen Joseph, "What doesn't kill us..."


Marcus Aurelius Antoninus, 〈Meditations〉, translated by Gregory Hays, The Modern Library (New York, 2012)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자성록〉, 박민수 옮김, 열린책들 (2012)

 



댓글 | 10
1


(3296510)

211.118.***.***

BEST
오오 잘 좋은 해석글이네요ㅎㅎ 저도 애니 보기 전까지는 바이올렛이 정말 감정없는 인형캐릭터인 줄 알았어요.
19.06.04 13:35
(3296510)

211.118.***.***

BEST
오오 잘 좋은 해석글이네요ㅎㅎ 저도 애니 보기 전까지는 바이올렛이 정말 감정없는 인형캐릭터인 줄 알았어요.
19.06.04 13:35
(5216263)

49.142.***.***

키쥬
감사합니다 :-) 그러고 보니 PV에서도 감정이 없는 주인공이라는 식으로 홍보를 했었지요. | 19.06.13 01:53 | | |
(78856)

121.163.***.***

잘 보고 갑니다. ㅎㅎ
19.06.05 11:55
(5216263)

49.142.***.***

종이[賢]
감사합니다. ㅎㅎ | 19.06.13 02:04 | | |
(1580249)

210.105.***.***

잘 보고 갑니다 :)
19.06.06 00:45
(5216263)

49.142.***.***

MS06S
감사합니다 :) | 19.06.13 02:05 | | |
바이올렛에게 이입할 수 있는 건 그녀의 캐릭터가 입체적이기 때문이겠죠.
19.06.06 00:46
(5216263)

49.142.***.***

키타하라 카즈사
네. 그리고 그녀가 겪는 어려움과 추구하는 목표는 결국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는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겁니다. | 19.06.13 02:00 | | |
(1320026)

39.121.***.***

이런 상징있는 장면은 생각없이 멀뚱멀뚱보고만 있었는데 이런식으로 암시하는거였군요
19.06.06 06:54
(5216263)

49.142.***.***

四季
원작 소설처럼 텍스트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이렇게 보완한 것 같습니다. | 19.06.13 02:0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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