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긴 기다림
한국에서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을 기다린다는 것은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재미있게도, 신 극장판 시리즈는 일본에서 공개 된 이후로 한국 개봉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게다가 이번 극장판은 놀랍게도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개봉에서 부터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서 까지의 기다림이 에반게리온 Q 개봉에서 부터 이번 신 극장판이 개봉할 때 까지 기다린 시간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전자는 애초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기다림 이었다면 이번엔 분명히 있을것이라는 기대감이 더욱 더 기다리기 힘들게 만든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판데믹 상황과 스튜디오 카라 측의 해외개봉에 소극적인 모습은 일본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극장에 거는 것 자체가 불투명했고, 결국 해외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먼저 선 보이는게 빨랐다. 그리고 캐릭터의 원안을 제공했던 작가가 혐한 발언을 해서 우리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 역시 악재였다. 모 인플루언서는 본인이 정말 좋아하던 작품을 더이상 소비하지 않는것으로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에반게리온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이미 스트리밍으로 감상을 했을 것이라 극장 개봉은 더더욱이 어려운 상황. 그러나 판데믹 상황은 우리에게 또다른 기회가 되었다. 판데믹 이후로 극장 수입이 확연히 줄어들었고 그나마 수익을 올리던건 그동안 찬밥신세에 가까웠던 극장판 애니메이션 시리즈들 이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시리즈들이 판데믹 상황에서도 눈에띄는 성과를 보여주자 누가봐도 황금알을 낳을게 분명한 에반게리온 이라는 IP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 할 것이고 결국 우리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을 극장에 걸며 모든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을 극장에 거는 쾌거를 달성했다.
(초호기의 등장은 아주 반가웠다.)
- 그래서, 영화는 좋았는가
영화를 판단하기에 앞서,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둘로 나누고 싶다. 먼저 영화 외부의 요인. 예컨데 4DX라는 점, 그리고 애니메이션 자체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액션신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특히 지금까지 겪어 본 4DX 영화의 부족함으로 솔직히 영화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훨씬 많이 들었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가능하면 4DX로 감상하는걸 추천 할 정도로 이번 영화는 궁합이 잘 맞는다. 시원시원한 액션신과 중간중간 피어오르는 연기는 4DX 덕분에 몰입이 훨씬 심오하게 되었다. 스트리밍 공개 당시 몇번이고 봤던 작품이지만 확실히 극장에 앉아서 보는것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다음으로 영화 내부적인 요인은 감상자에 따라 많은 판단이 나뉠 것으로 생각한다. 누군가는 아주 만족스러운 영화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10년을 기다린 작품에 못미친다고 할 수도 있다. 나로서는 후자에 가깝다고 느끼지만 그만한 사정이 있다.
- 지워져버린 레이
이번 극장판에서 가장 아쉬웠던 캐릭터다. 감독의 의도인지 전작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레이는 사실상 이번 극장판에서 철저하게 지워졌다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부터 중반에 접어들기 까지 나오는 레이는 사실상 레이가 아닌 붕어빵씨 이고,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레이는 영화 끝부분에 잠깐 등장한다. 예전에는 20년이 지나도 여전한 현역이라고 평가했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캐릭터는 완전히 죽어버렸고 더 이상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마치 곁들임 수준, 물론 이전 작품에서도 많이 지워졌고 심지어 진짜 아야나미 레이는 영화를 통틀어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 마지막 극장판에서 뭔가 달라질것이다 라고 생각한 내 생각이 틀렸다. 아야나미 레이라는 캐릭터가 이렇게 소비될만한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행보는 아쉽고 아쉽다.
(그러나 장발레이는 큰 호평을 받았다)
(도대체 이번 공개사진 셀렉 누가한거냐)
-사실상의 여주인공, 그러나
총 등장 시간부터 이야기의 전개, 그리고 그동안 베일에 쌓여 있던 본인의 이런 저런 설정까지 '에바 치고'는 꽤 쉽게 풀어줬다. 사실상, 이번 극장판의 여 주인공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레이의 캐릭터 성이 많이 약해진 만큼, 아스카의 캐릭터 성은 전작의 이야기와 설정을 계승하여 이번 작품에서 꽃피었다. 이번 극장판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전편의 캐릭터 성을 거의 그대로 이식해 오는 한편, 마지막에 살짝 변주를 주어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아스카의 모습을 살짝 보여준 팬 서비스 적인 모습은 우리의 기억속에 많이 남아있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서 이런 모습이 마지막이라는게 아주 자랑스럽다. 그러나, 에반게리온 이라는 작품 내에서는 별로 달가운 모습은 아니었다. 캐릭터의 붕괴가 느껴질 정도로 큰 변화였는데 과연 그것이 작품에 잘 녹아 들었는가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좋았지만 영화로서는 글쎄…
(감독은 이 캐릭터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길 바란거 같다)
-마스터피스가 되고싶었지만
이번 극장판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마리. 작품 내의 전개를 생각해보면 감독은 이 캐릭터가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을 이끌어 나가는 중추적 역할이자 마스터피스를 바란게 아닌가 싶다. 다만 그게 너무 눈에 보였다. 감독의 애정이 쏟아지고 이야기를 이 캐릭터 중심으로 끌고나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이미 에반게리온에는 캐릭터성이 아주 뛰어난 인물들이 너무 많이 있었다. 감독 또한 이 문제에 대해 고심하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최후의 승자로 만든것 같지만 오히려 그런 선택은 논란을 더 키우는 역효과가 일어났다. 심지어 이 캐릭터가 과연 그러한 '급'이 되는지에 대한 볼멘 소리도 나오고 있다. 마리는 극장판 4개 동안 관람자에게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데 실패했고, 작품 내에서 너무 꽁꽁 싸맨 결과는 신비로운 감정보다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한 매력이 과연 작품 하나 만으로 충분히 뿜어져 나올까 하던 나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마리는 매력적이지도, 작품 전체를 아울러서 끌고 갈만한 힘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 최종 승리자로서 기억될 뿐 이것이 효과적인지는 의문이다.
-너무 급작스런 변화구
영화가 두쪽으로 갈라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 전반부와 후반부의 신지는 아주 완전히 다른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전반부는 Q에서 볼 수 있었던 멘탈이 무너진 신지였지만 후반부에서는 파에서 볼 수 있었던 열혈신지가 되었다. 이전에는 작품 하나의 간격을 두고 변화한 신지여서 그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작품 하나 안에서 너무 급작스런 변화를 했다. 이런 큰 변화에서 변화의 계기가 너무 단순하다. 변화의 의미도, 변화의 계기도 약하다 보니 캐릭터가 약해지는것은 물론, 영화 전체의 짜임새도 더욱이 약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전작에서 변화된 신지의 모습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어색해도 변화하는 신지의 모습에 플롯적 타당성(핍진성)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과연 이게 제 역할대로 기동했는가는 의문이다. 마치 이번이 마지막이라 그냥 대방출한다 식의 논리까지 느껴지는 정도.
-영화가 진정 하고싶었던 이야기
이번 영화에서 가장 의외의 선택이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신지아버지 이카리 겐도에 대해서다. 내가 지금까지 익히 즐겨온 에반게리온 이라는 컨텐츠 (이는 2차창작을 포함한다.)에서, 이카리 겐도를 이렇게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많은 이야기를 한 작품을 본적이 없다. 그게 원작이라는 점이 매우 아이러니 하지만 이번 극장판의 사실상 숨겨진 주인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화는 이카리겐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애했다. 이 사람의 성격부터 왜 이렇게 비뚤어진 삶을 사는건지, 또한 신지에 대해 왜 이렇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 엿볼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그는 어려서부터 사랑받지 못했고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단 한사람, 자신을 이해해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사람은 너무 빨리 이별을 하게 되었다. 평생 어른처럼 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어른인 척 흉내만 내는 어린아이 였던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되고 싶었던 어른이었지만 평생 자기가 이해 못할거라 생각하고 아이인줄만 알았던 자신의 아들이 이미 자신이 되지 못했던 어른이 된걸 알게 된 순간 그는 아들에게 어른이 되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어른이 된 신지의 아이시절을 안아주는 장면은 그가 비로소 어른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늦게나마 해줌으로써 어른의 문턱 앞에 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평생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지 못했던 아저씨)
- 시대를 쫒아가지 못한,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 주는 안정감
우리가 에반게리온을 즐기던 시절의 우리는 지금보다 많이 젊은 시절의 우리였다. 그때 당시의 우리가 지금의 에바를 보면 또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에반게리온을 즐기던 10대의 우리는 이제 시간이 흘러 20대, 30대가 되었고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성숙해지고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영향만 있었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예를 들어, 이번에 새로 등장한 세력인 ‘크레딧’의 경우 예전에는 작품 내에서 크레딧이 반드시 등장했어야 하는 이유, 작품 내에서 크레딧이 가지는 위상 같은걸 찾거나 생각하는것 만으로도 즐거움을 찾았겠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크레딧은 그저 스튜디오 카라가 IP장사를 위해 네르프와 빌레로 부족한 제3의 세력을 등장시켜서 그저 세계관을 확장시키려는 속셈으로 보이는것은 내가 때가 많이 묻은 어른이라는걸 자조하게 만든다. 에반게리온 특유의 알 수 없는 메타포로 가득찬 작품은 요새 작품이라면 아주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를 들을것이다. 그만큼 시대가 변한것이고, 에반게리온은 굳이 그 시대의 급류를 타지 않는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에바를 보고 즐기는 세대의 연령층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으로 에반게리온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10대의 우리, 20대의 우리, 30대의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분명 다를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 그저 더 많은 경험과 삶을 겪은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이 더 다양해졌다는 반증이다.
-우리 손으로 만든 신화의 완성
신화라는 것은 그저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만들어 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의 발생 시점부터 오랜 기간 사랑받고 끊임없이 이야기 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포스트 에반게리온 이라고 많은 애니가 나왔지만 에반게리온 이후로 에반게리온을 넘어서거나, 동급의 이야기는 아직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과연 앞으로도 작품이 종료된 10년, 20년이 지난 시점에도 새로운 극장판이 나오고 그걸 즐겨줄 사람들이 존재하는 애니메이션이 생겨날수 있을까? TV판과 구 극장판은 가이낙스가 우리에게 쥐어준 그저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을 점점 더 발전시키고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영역으로 이끈 것은 지금도 수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마니아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이야기의 후속을 우리 손으로 만든 신화의 영역으로 올려놓았다.
이제 이야기는, 모든 에반게리온에게 안녕을 고하고 끝이 났다. 나의 10대도 드디어 끝이 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수 많은 신화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수 많은 이야기를 파생 시킬 것이다. 우리 손으로 만든 신화는 완성 되었지만 이 완성된 신화가 가져 올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잔혹한 천사처럼 소년은 신화가 되었다)
(IP보기클릭)121.169.***.***
저도 그 눈내리는 연출이 정발 좋았어요
(IP보기클릭)1.11.***.***
신지가 행복진 것 하나만으로도 저에게는 걸작입니다.
(IP보기클릭)39.113.***.***
영화가 신지가 변하면서부터 에반게리온을 끝내겠다고 직접적으로 말 하는 수준으로 전개되는데 그 때문에 이게 끝이라는 걸 절실하게 어필해줘서 끝이 씁쓸했습니다. 몇가지 몰입에 방해되는 단점들과 중반부터 쳐지는 듯한 이야기, 옥에티같은 엔딩씬 등 아쉬운 부분들이 분명히 보였지만 이별과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밀려오는 그 씁쓸한 감정이 파도처럼 아쉬운 부분들을 쓸고 가버리는 마지막 극장판이었네요 여담으로 캐릭터 관련해선 글 쓴 분 말처럼 아스카를 여주인공처럼 비춰줘서 개인적으로 좋았어요. 심상세계에서 둘의 마지막만 좀 더 할애해줬으면 했는데, 그런 감정 표현은 정식 시리즈 처음이라 그런지 더 아쉬웠네요 ^^...
(IP보기클릭)106.102.***.***
개인적으로 저는 이 엔딩에 대해 나름 납득하고 용납하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엔딩을 용납못할것 같단 생각을 합니다. 차라리 만화판하고 신극장판 결말이 서로 바뀌었으면 좀더 납득이 쉽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더군요
(IP보기클릭)39.113.***.***
4D 연출은 눈 내리는게 정말 좋았습니다
(IP보기클릭)118.235.***.***
(IP보기클릭)106.102.***.***
개인적으로 저는 이 엔딩에 대해 나름 납득하고 용납하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엔딩을 용납못할것 같단 생각을 합니다. 차라리 만화판하고 신극장판 결말이 서로 바뀌었으면 좀더 납득이 쉽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더군요
(IP보기클릭)175.124.***.***
(IP보기클릭)39.113.***.***
영화가 신지가 변하면서부터 에반게리온을 끝내겠다고 직접적으로 말 하는 수준으로 전개되는데 그 때문에 이게 끝이라는 걸 절실하게 어필해줘서 끝이 씁쓸했습니다. 몇가지 몰입에 방해되는 단점들과 중반부터 쳐지는 듯한 이야기, 옥에티같은 엔딩씬 등 아쉬운 부분들이 분명히 보였지만 이별과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밀려오는 그 씁쓸한 감정이 파도처럼 아쉬운 부분들을 쓸고 가버리는 마지막 극장판이었네요 여담으로 캐릭터 관련해선 글 쓴 분 말처럼 아스카를 여주인공처럼 비춰줘서 개인적으로 좋았어요. 심상세계에서 둘의 마지막만 좀 더 할애해줬으면 했는데, 그런 감정 표현은 정식 시리즈 처음이라 그런지 더 아쉬웠네요 ^^...
(IP보기클릭)39.113.***.***
닉값못함
4D 연출은 눈 내리는게 정말 좋았습니다 | 22.10.06 20:01 | |
(IP보기클릭)121.169.***.***
저도 그 눈내리는 연출이 정발 좋았어요 | 22.10.06 20:08 | |
(IP보기클릭)1.11.***.***
신지가 행복진 것 하나만으로도 저에게는 걸작입니다.
(IP보기클릭)221.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