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반게리온 극장판:||을 관람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인상적인 감상에 불과하더라도 담론을 나누고 싶기에 짧게나마 감상글을 올립니다.
글 자체는 경어가 생략되어 있는 점, 그리고 오타와 문장의 부족함이 있기에 많은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연민을 느낄 수 있는 마음과, 타인에게 건넬 손만 있다면 충분한 영화이니까..."
프라임비디오에서 안노 히데아키감독 신에반게리온 극장판:|| 관람완료,
드디어 2시간 34분 41초(프라임 비디오에서의 총 러닝타임 자체는 2시간 35분 45초)의 대장정을 마쳤다.
안노 히데아키감독이 어째서 특촬의 형식을 찍어야만 했는지,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넘어서 실사까지 보여줌에도 구작의 절망이 아닌 희망까지 품을 수 있었을까... 어째서 반복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대답으로서 마지막 1/3지점은 감탄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정도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브컬쳐의 세카이계의 우리들이, 안노감독의 의도를 받아들이지 못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까지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친절함이 없다면, 지금 시대는 받아들이지 못 할 만큼 마음을 닫아버린 것일까...
작품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안노감독이 답습을 돌파하기 위해 달려온 발자취는 NHK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도 (영화 밖의 관점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초반 1/3에서 냄새가 전해져오는 듯이 느껴지는 노스탤지어는 그의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들에게 전해진다.
이번 작품을 끝으로 25년간의 에반게리온은 안노 히데아키감독 자신의 손을 통해 (다시금)완전하게 종결되었다.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란 질문에, 여러 가지 결이 있음은 틀림없다.
우선 바로 밑의 심층에는 안노가 TV판 이후 살해 협박에서 무너져버린 직후 죽고 싶어도 죽기 직전 아플 것 같기 때문에 몇 번의 ■■충동을 그만두었다는 과거부터 시작하고 싶다.(NHK 다큐 안녕, 모든 에반게리온의 인터뷰등)
죽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기 위한 고통은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 할 것 같은 두려움, 이것은 TV과 구작 극장판과 지금의(살아있지만, 죽지도 못 하고, 그저 존재할 뿐인) 신지 그 자체와 같다.
아무리 에바 이후 다른 작업을 하더라도, 에바같은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 에바를 벗어나지 못 하는 자신, 그리고 에바가 고객(대중인 우리들)에게 전혀 받아들이지 못 했다는 사실, 오히려 공격 받았던 사실을 0에서부터 다시금 극복해내기 위한 작품으로서 신극장판을 바라보고 싶다.
때문에 신극장판의 마지막 작품인 3,0 + 1,0은 절망과 희망, 작별이자 시작, 서브컬쳐와 오타쿠에 대한 부정과 긍정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리피트와 다카포 어느 한쪽이 의미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완결시켜도 계속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 임팩트가 반복되더라도, 끈질기게 살아남고 그곳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생명과 신세기,
전후 일본의 남성성과 로봇애니메이션의 계보를 이어가지만, 여기선 분명하게 전후의 노스탤지어만을 가져오고, “그래도 살아가야만 하는 입장”에 방점을 찍는다.
그 외의 문제들은 이 작품에서 다룰 것이 아님을, 이 작품의 관심사가 아님을 분명하게 선을 긋고 호소한다.
그래서 마크9 아야나미타입 초기로드가 명령 없이 자신이 세상을 배우고 재정식화하며 살아가는,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듯)훈훈한 모습을 초반파트에 집중으로 보여준 것이다.(그리고 너무도 소중해서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회한처럼 느껴지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 그 친절함과 소중함이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의 상실을 통해서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을 선언한다.)
신극장판의 마지막 작품에 해당하는 이 작품에서 TV애니메이션을 파괴시켰던 안노감독은 영화(극장판 애니메이션)이란 형식으로 마무리 지을 경우, 결국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또 다른 판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없다가 아니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에, 실사영화, 미니어쳐, 모션캡쳐등 자신이 시도해봤던 애니메이션이외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이번 작품에 융합시킨다.
그리고 우리가 드디어 바라보게 된 마지막 작품에서 그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히스테릭한, 절망적이고 자기파괴적인 형식만이 아닌, 적어도 영화내의 서사와 형식이 일치하는 것처럼 현실에서 버텨내고 다시 일으켜 세운 자신을 통해 타인이자 지금은 지나버린 세대가 되어버린 시대에게 손을 내밀고 대화를 시도한다. 이렇게 (평범하게)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라고 말하듯이...
그 자신보다 우선인 에반게리온을 리빌드한 모습은 그래서 리피트와 다카포 모두를 품고 있다.
초반파트의 리얼하게 느껴지는 노스탤지어는 그의 미니어쳐를 직접 제작하여 건물을 배치를 계속해서 조율하며 만들어낸 현실 속 마을 그 자체이다.
우리가 그 장면에서 흙냄새를 함께 맡을 수 있다면, 세상의 냄새를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안노감독이 호소하는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끝과 시작이 계속해서 반복하는 삶 자체를 신극장판의 형식이라면 이제서라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 작품에서 그려낸(반복시킨) 상실을 각자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에 있다.
원작자가 안노 히데아키감독이 안노 자신보다 우선시 하는 에반게리온을 완결이자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기어코 파괴할 때,
팬의 위치에 있는 서브컬쳐의 오타쿠인 우리들은 그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란 거대한 질문이 남아있다.
자신의 상실에 눈이 멀어 세상은 어찌되던 상관없는 입장을 취하는 에반게리온 이후 세카이계의 모든 작품들의 주인공들에게, 자신이외의 타자의 상실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과거 TV판의 결말에 대한 광기처럼, 안노 히데아키감독조차 부정하고 오히려 살해위협까지 가하면서 에반게리온이란 세계, 세계관 설정, 캐릭터 모에요소등의 환상에 집착하고 계속해서 이야기소비론적인 임팩트의 반복을 시도할 것인가?
그것은 이 작품 속에서 언급(에바파에서 아버지도 나와 같은 상실을 겪어야만 한다는,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며 타인을 결코 이해하지 않았던 신지의 말에 무언으로 반응하는 겐도...) 했던, 그려내지 않았던 인물의 내면들을 그려내야만 그제야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처럼, 에반게리온이 아닌 너의 세계, 반복과 재시작이 아닌, 리셋이 아닌, 지금까지의 삶과 자신의 나약함을 이제서라도 받아들이고, 지금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나이임을 자각하고 지금부터라도 신세기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마을이란 현실에서 다시 일어서는 초반파트와 스크립트들은 그래서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서있다.)
이 작품은 신에바 리피트이자 다카포는 그러기 위한 에반게리온에 대한 작별이다.
안노는 이 작품의 제작이 끝남과 동시에 결과를 직접 관람하지도 않고 다음 작품의 제작을 위해 나아갔다.
작품세계에 심취한 오타쿠인 우리는 에반게리온이란 환상을 위해 현실을 얼마만큼 등한시했나? 자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금 다른 관점이긴 하나, 완벽하게 완결된 토미노 요시유키의 기동전사 건담이란 작품을, 우리는 작품 자체의 메시지가 아닌, 우주세기란 세계관 심취하여 감독 자신이 아무리 자신의 세계관을 파괴하고 끝내는 것을 시도하고, 반복하더라도, 끈질기게 그 가공의 세계관이란 환상을 놓치지 않고 지금도 우주세기를, 건담이란 세계관이란 이야기소비론적인 소비를 이어나가고 있는가?? 란 질문도 존재한다. 이것에 대한 담론 또한 매우 흥미롭고 깊이있게 다룰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선 하나의 예시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즉 오타쿠는 세대가 아무리 지나더라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환상이 너무 좋아서 환상과 현실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애니메이션을 해체한 후 에반게리온이 없는 현실세계로 나와버린 인물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흥미진진하다.
후반 파트에서 애니메이션이 현실과 환상이 결합하였을 때 보여지는 LCL을 통해 인지가능해진 시각정보는 그가 시점을 잡아내기 위해 모션캡처를 촬영하던 무대이자 특촬물과 같은 형식 그대로 보인다. 여기서 애니메이션이란 형식은 에반게리온이란 작품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완결과 헤이세이를 지나 레이와가 당도한 지금 세대를 위해서, 이카리 신지를 연기한 성우분의 “안녕, 모든 에반게리온”이란 대사는 그래서 에반게리온에 대한 25년간의 감정을 함축하기까지 리테이크했던 것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의미심장하게 심층묘사를 하는 장면들에는 노골적이고 파렴치한 카메라의 시점이 의도적으로 존재한다. 캐릭터의 모에요소, 페티시즘과 ㅅㅅ심볼만을 볼 것인가, 그것이상의 표층 아래의 심층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작품의 최소한의 허들은 그것을 구분하고 자신이외의 타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손을 건네는 것으로 비로소 끝남과 동시에 시작한다.
여기까지 짧게나마 사유의 단편을 올려봅니다.
이 작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 해석의 방향성을 위해 어떤 관점을 지향할 것인가, 부족하지만 자신이외의, 다른 분들의 관점의 사유를 만나보고 싶기에 그러기 위해 게시판에 글을 올려봅니다.
(IP보기클릭)61.80.***.***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좋게 평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IP보기클릭)122.35.***.***
블루레이 박스에 담겨 있던 TVA의 오디션 음성 파일을 들어보거나 극초기의 기획서 등을 열람해봤을 땐 EOE, 만화판, 신극으로 세 번이나 변주된 이야기의 기본 틀은 결국 변함이 없었다는 느낌이죠. TV판만은 시간과 예산 부족으로 감정선만 묘사한다는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사실 돈과 시간과 인력만 충분했다면 TV판 때 신에바의 결론까진 도달하고도 남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거기서 업계와 팬들에게 버림받았던 쓰러린 경험이 짧은 길을 엄청나게 먼 샛길로 빠지게 만든 거죠.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겁니다. Q와 신에 관해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은 무시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당장 남극에서 넘쳐나온 검은 물질들은 대지진 당시의 쓰나미를 연상케 했습니다. 중간 작품인 신고지라까지 포함하자면 완전히 빼도박도 못 하고요. 그래서 저는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를 아낌없이 내비쳤을 뿐만 아니라 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제시하려 시도한 안노 감독에게는 무한한 찬사와 감사를 보냅니다. 다만 이 작품의 이상향인 제3마을은 동일본대지진 이후의 일본에겐 어느 정도 해답이 될진 몰라도 2021년의 코로나 시국에는 약간 뒤쳐진 느낌도 들었습니다, 인구 밀도가 너무 높다 보니 전염병 같은 거 퍼지면 한 보름만에 쑥대밭 될 것 같은;;; 물론 제작 기간을 고려할 땐 어쩔 수 없었지만요. 그런 건 신 가면라이더 이후의 작품에 기대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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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박스에 담겨 있던 TVA의 오디션 음성 파일을 들어보거나 극초기의 기획서 등을 열람해봤을 땐 EOE, 만화판, 신극으로 세 번이나 변주된 이야기의 기본 틀은 결국 변함이 없었다는 느낌이죠. TV판만은 시간과 예산 부족으로 감정선만 묘사한다는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사실 돈과 시간과 인력만 충분했다면 TV판 때 신에바의 결론까진 도달하고도 남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거기서 업계와 팬들에게 버림받았던 쓰러린 경험이 짧은 길을 엄청나게 먼 샛길로 빠지게 만든 거죠.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겁니다. Q와 신에 관해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은 무시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당장 남극에서 넘쳐나온 검은 물질들은 대지진 당시의 쓰나미를 연상케 했습니다. 중간 작품인 신고지라까지 포함하자면 완전히 빼도박도 못 하고요. 그래서 저는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를 아낌없이 내비쳤을 뿐만 아니라 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제시하려 시도한 안노 감독에게는 무한한 찬사와 감사를 보냅니다. 다만 이 작품의 이상향인 제3마을은 동일본대지진 이후의 일본에겐 어느 정도 해답이 될진 몰라도 2021년의 코로나 시국에는 약간 뒤쳐진 느낌도 들었습니다, 인구 밀도가 너무 높다 보니 전염병 같은 거 퍼지면 한 보름만에 쑥대밭 될 것 같은;;; 물론 제작 기간을 고려할 땐 어쩔 수 없었지만요. 그런 건 신 가면라이더 이후의 작품에 기대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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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장면은 확실히 현실의 알레고리를 끌고오는 면이 강했습니다. 그런 대재해 이후에도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 살아가야만 하는 것, 일본에서는 전후에 그런식의 대재해가 몇번이고 반복된 것도 안노의 신에바란 작품 속(신고질라에서의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알레고리는 깊게 사유하지 않더라도 노골적으로 보여지는 층이 있지요.) 정념으로 투영되는 면이 있을 겁니다. 저 또한 안노감독이 그때 삶을 포기하지 않고, 완전히 무너졌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와서라도 에반게리온이란 작품을 완결시켜준 것이 너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기다려왔던 사람들과, 지금 세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자신의 이상과 서브컬쳐란 장르적 컨벤션 양쪽 모두를 충복시키려한 각고의 노력이 보여졌던 작품이었습니다.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작품인 만큼,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하던 찰나, 이렇게 답글을 적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21.08.16 16: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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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기대심리와 함께, 작품을 접하게 된 시기에 따른 세대론적인 관점의 차이는 당연히 존재하겠지요. 제가 궁금했던 것은, 세카이계의 시초라고도 일컫는 에반게리온을 실시간으로 접한 에바세대와, 이후 세카이계를 주류서브컬쳐 문화로 즐겨왔던 세카이계 세대 혹은 00년대세대에게 있어서 이번 에반게리온의 완결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궁금한 지점이었습니다.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과거와 똑같은 캐릭터성과 연출을 시도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매너리즘(이자 그저 다른 신작화의 다른 판본)이라고 공격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TV판과 같다"라고 흔히들 말해지는 서의 경우, 영화의 리듬과 편집된 화면들, 스크립트등을 사유해본다면 "진화의 시작이다"라는 캐치프라이즈의 의미에 도달할 수 있는(TV판과는 분명하게 다른) 지점을 향해가는데 말이지요. 정말로 궁금한 지점은 그렇게 서로 다른 각자의 상징적 매트릭스에 대한 담론을 나눌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 이야기게시판의 대부분의 글들은 "인상" 혹은 "감상적인 주장"이 상당수이지 않나 싶습니다. | 21.08.18 22: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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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좋게 평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21.08.18 22:5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