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출처 : 칼부림
건주 여진이 통일 되기 전인 16세기 중후반 무렵. 같은 건주 여진에 속했던 닝구타 버일러 세력1과 동고 세력은 한 세대 가까이 원수 지간으로 지냈다. 그 원인은 바로 동고의 주인 커쳐 바얀의 아들인 얼기 와르카가 비적들에게 피살된 사건 이었다. 그 전말을 처음부터 살펴보자면 대강 이러하다.
닝구타 버일러 연맹의 일원중 '아하나 워지거'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하나는 닝구타 연맹의 버일러중 한 명이자 닝구타 버일러 육형제의 막내였던 '보오시'의 아들이었다.
아하나는 샄다 지역의 대인(amban, 여기서의 대인은 영주의 의미로 쓰였다.) '바스한 바투루'2의 여동생을 본인의 아내로 맞이하고자 했다. 그러나 바스한 바투루는 아하나의 집안이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닝구타 버일러 육형제중 다섯째인 보올랑가와 여섯째인 보오시의 일족들은 다른 일족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곤궁한 처지에 놓여 있었는데, 아하나는 보오시의 일족이었으므로 응당 재산이 별로 없었다. 그 탓에 바스한은 본인의 여동생을 아하나에게 주지 않았다. 아하나에게 본인의 여동생을 시집보내어 봤자 하등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바스한 바투루는 아하나보다 훨씬 조건이 좋은 혼처인 동고부의 암반 '커쳐 바얀'3의 아들 '얼기 와르카'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시집보내어 자신의 세력과 동고부간 외교관계를 강화했다.
아하나는 자신의 집안이 곤궁한 탓에 본인이 눈여겨 보던 여인을 빼앗기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바스한 바투루에게 넘기며, 자신은 기필코 포기치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던 어느날 얼기 와르카가 샄다의 처가를 방문하였다가 본인의 땅으로 돌아가던 도중 본인을 노린 비적들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사건 이후 비적들 사이에 '아하나'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정보가 얼기 와르카의 부친인 커쳐 바얀에게 전해졌는데, 그 탓에 보오시의 아들 아하나가 결혼상대를 빼앗긴 원한 때문에 일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한 커쳐 바얀은 자신의 아들의 죽음에 관한 책임이 닝구타 버일러 세력에 있다고 판단하여 그들에게 책임을 요구했다.
두 세력간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당시 여진에서 가장 강력했던 국가인 하다의 지도자, 완 한(Wan Han)이 이들을 중재하려고 했다. 완 한은 커쳐 바얀에게 사신4을 보내어 '닝구타 버일러 세력은 그대의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 그대의 아들을 해친 자들은 어투 아루5의 부하들이다. 그대의 복수를 내가 도와줄 터이니 그대는 내 뜻에 따르라.'는 뜻을 전한다.
닝구타 버일러들과 완 한의 중재 주장에 따르면 어투 아루의 아홉 비적들이 얼기 와르카를 살해했는데 그 비적들 사이에 '아하나'라는 동명이인이 있었으며 그것이 커쳐 바얀에게 보오시의 아들 아하나로 잘못 전달된 것이었다.6
하지만 커쳐 바얀은 그들의 주장과 완 한의 중재에 대하여 마뜩치 않은 태도를 보이며 오히려 완 한이 닝구타 버일러들을 감싸고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닝구타 버일러와 완 한간에는 정략혼 관계가 성립이 되어 있었고 덕택에 완 한이 닝구타 버일러들에게 정치적으로 더 가까웠던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커쳐 바얀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커쳐 바얀으로서는 강력한 세력군주이던 완 한의 중재를 일부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해당 문제에 대하여 커쳐 바얀은 '닝구타 버일러들이 하다에 재물을 주고 어투 아루의 아홉 도적들을 데려오라. 본인이 어투 아루의 아홉 비적을 심문하여 그들이 닝구타 버일러들의 죄가 없다고 하면, 닝구타 버일러들에게 그들이 하다에게 넘긴 재물의 2배를 배상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커쳐 바얀이 완 한의 중재를 어느 정도 수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닝구타 버일러들 중 한 명인 소오창가가 커쳐 바얀에게 뜻 밖의 말을 전한다. 얼기 와르카를 죽이는 일에 자신의 수하들이 참여했는데 그들을 자신이 죽일 터이니 그들에 대한 목숨값을 본인에게 지불하라고 한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닝구타 버일러들과 중재자 완 한이 주장한 '어투 아루의 도적들이 얼기 와르카를 죽였다'는 말에 대립되는 발언이었다.
소오창가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커쳐 바얀에게 전했는지, 그 이유는 확실치 않다. 후금측 사료에는 소오창가가 커쳐 바얀의 재물을 탐하여 이런 '거짓말'을 했다는 듯이 서술되어 있지만 과연 이러한 뉘앙스의 서술이 사실일지는 의문이다. 해당 부분과 전후상황간 연계가 상당히 매끄럽지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후금의 실록내용과는 달리 얼기 와르카를 죽인 것이 정말로 보오시의 아들 아하나이며, 커쳐 바얀이 어투 아루의 아홉 비적들을 심문하여 진상을 알게 되면 보오시의 아들 아하나가 커쳐 바얀의 원한을 사 죽임을 당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소오창가가 자신의 수하 두 명을 제물로 삼아 그를 보호하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따르면 후금의 사관들은 '닝구타 버일러 세력'이 동고를 상대로 먼저 잘못을 저지른 것을 은폐하려고 '보오시의 아들 아하나'의 얼기 와르카 살인을 '거짓'으로 서술하고 어투 아루의 수하들에게 그 죄를 떠넘긴 것이다. 이러한 추정에 따르면 소오창가는 이 '잘못의 은폐 과정'에서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도 결국 추정에 불과한지라 사실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이 사건의 진실이 어쨌건간에 커쳐 바얀은 소오창가의 이러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완 한과 닝구타 버일러들이 서로 합작하여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고 여기고 닝구타 버일러 세력을 향해 검을 뽑아들었다. 결국 그로 말미암아 닝구타 버일러 세력과 동고 세력간 전쟁이 발생했다.
전쟁은 닝구타 버일러 세력의 지속적인 패전으로 말미암아 닝구타 버일러 세력의 열세로 이어졌다. 닝구타 버일러 세력은 전력이 분산된 반면 동고는 원수를 갚기 위해 하나로 뭉쳤기 때문이었다.
결국 닝구타 버일러 세력은 정략혼 관계를 토대로 상호보완적 조약을 맺고 있던 하다에게 병력 지원을 요청하여 가까스로 동고의 공세를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닝구타 버일러 세력의 힘은 크게 위축되었고 안그래도 하다에게 영향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더나아가 하다에 강하게 종속되게 되었으며, 동고와도 원수지간이 되어버렸다.
닝구타 버일러 세력의 힘은 1580년대 초엽까지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르러 닝구타 버일러 세력를 묶어두던 하다가 내분으로 인해 힘이 약해지고 여진 세력 전체가 혼란에 휩쌓이자 닝구타 버일러 세력은 그 틈을 타서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여기에는 명나라의 여진내 세력분쟁 개입도 한 몫 했다.
닝구타 버일러 세력의 흥기의 중심에는 닝구타 버일러 세력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한 젊은 영웅, 누르하치가 있었다. 그는 1583년서부터 2년 사이에 닝구타 버일러 세력내의 친하다파 대부분을 제거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계모이자 하다 왕가의 친족여인인 컨저까지 제거했는데, 하다의 세력내 영향력을 완전히 몰아내려 한 것도 있으나 컨저가 어린 시절의 자신을 학대했기 때문도 있었다. 즉슨 외부세력의 개입여지와 자신의 원한을 동시에 푼 것이었다.7
---
1.후일 건주 여진의 통일자이자 후금의 건국자가 되는 누르하치의 일족
2.실제 이름은 바스한. 바투루는 접미 칭호이다. 뜻은 용사, 영웅이라는 뜻이다.
3.후일의 후금 오대 개국공신 호호리의 조부
4.이 사신이 누구인지는 실록등에는 적혀 있지 않으나 현행전례에는 노이모혼 이라고 적혀 있다. 건주내 세력인 '안투 구왈기야'의 주인이었던 노이모혼(만주실록에는 놈혼으로 기록되어 있다)과 동명이인인 것인지 아니면 동일인물인지 확실치 않다.
5.여진 세력 '토모호'의 당시 주인
6.후금~청의 실록들과 현행전례는 '어투 아루'의 도적들이 얼기 와르카를 죽인 것을 '사실'로 서술했다.
7.이상 현행전례 계미년 음력 2월 이전 기사, 만주실록 계미년 음력 2월 이전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