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게이 하나의 요청이 있어서 쓰는 오늘의 마지막 고려사
일딴 꼴짤 올리고
유게이의 요청에 따라 특별편으로 삼별초에 대해 조금 써보기로 합니다.
일단 저번에 수업때 다룬 내용과 박용운 선생님의 [고려시대사]를 기반으로 정리 한번 해봄
다들 삼별초 항쟁에 대해서는 대체로 학교 수업이나 한능검 공부하면서 배우긴 했지만 보다 상세하게 다뤄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 일단 '별초'라는 단어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거 같습니다.
사실 이 '별초'는 외적의 침입이나 대규모 반란에 대응해 조직된 임시군입니다. 실제로 별초의 편성에 대한 기록은 최씨정권 이후에도 종종 찾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들을 개경에서 편성한 별초, 즉 '경별초'라고도 부릅니다.
거기다 중앙군에서만 편성하는게 아니라 지방에서도 편성한 걸로 보이는데, 이들을 따로 '외별초'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지방+별초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위주별초, 태주별초 등이 발견됩니다.
그 외에도 노비들로 편성된 노군, 잡류별초 등 별초는 특별히, 임시적으로 편성된 부대를 얘기하는 것으로 보이니다.
삼별초라는 조직이 처음 생긴 건 최씨 무신정권 2번째 집권자인 최우의 통치기였습니다.
최우는 최충헌의 권력을 물려받은 후, 무신정권을 더욱 강고하게 하기 위해서 당시 중앙통치기구인 도방을 확대시키고, 도방의 무력기반을 확충시켰습니다.
그때 구성된 조직이 기병 특수부대인 마별초, 그리고 이번 글의 주제인 삼별초입니다.
삼별초의 원래 명칭은 야별초로, 이에 대한 기록으로 <고려사>를 약간 인용해보겠습니다.
사료에서 보이다시피, 일단 삼별초의 설치 명분은 치안이었습니다. 夜별초라는 이름에서도 대충 짐작이 가능하죠. 그런데 이 치안이라는 점에서 사료에는 '도적'을 잡는다고 명시되어있지만, 실제 삼별초의 활동을 보면 도성의 수비, 최우의 친위대로써의 임무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몽전쟁이 지속되면서 지방으로 파견 및 수비를 담당, 대몽 특별군으로써도 활동한 기록을 찾을 수 있죠.
그런 한편 이들은 최씨 정권의 사병으로써도 활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방금 인용한 기록의 다음을 살펴보죠.
글에서 보이듯 삼별초는 권신들의 사병으로 활동하면서, 명목상으로는 국가의 군인이되 실질적으로는 사병의 역할도 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삼별초의 소속과 존재의의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많이 갈리고 있습니다만, 최근 연구동향에 따르면 '사병화한 공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국가의 군대로 편성되었지만 최씨정권의 독재 하에서 그들의 사병 노릇을 했다.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네요.
거기다 방금 쓴 '도적'이라는 건 진짜 악당들이 아니라 최씨정권에 반발하는 민란 등의 진압, 최씨 정권에 반항하는 정계 세력들 모두 포함했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결국 최씨정권의 정권유지를 위한 사병세력으로써의 성격이 상당히 강했던 걸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삼별초의 구성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삼별초, 그러니까 야별초가 처음 만들어졌을때는 좌/우 별초로만 편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삼별초의 편성이 정확히 몇년도인가는 알 수 없고, 편성 당시 구조가 어떠했는지도 모르지만, 삼별초 중 하나인 신의군은 야별초에 대한 기록 이후에 나오는 걸로 봤을때 좌우별초보다 뒤에 편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술했듯 삼별초는 집권자들의 사병조직으로써, 여몽전쟁기간동안 여러 지방에 파견되어 대몽전쟁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삼별초에게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왔는데,
고려가 결국 원에 항복하고, 무신정권은 마지막 집권자인 임유무가 제거되면서 붕괴한 겁니다.
고려 조정은 지방에서 원에 대항하던 삼별초에게 종전을 알리고 해체할 것을 명령합니다...만
삼별초는 항복하라는 고려 조정의 명을 거부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현대에는 여러 해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려 무인 정신에 따른 항복 거부, 무신정권에 붕괴로 인한 삼별초 존재의 위기 등...
이유가 뭐였든 간에, 삼별초는 항복을 거부합니다. 항복을 거부한 삼별초는 지방의 관아를 무단으로 점령, 부고를 열어 젖히고 본격적으로 항쟁에 들어갑니다.
이게 학교 한국사에서도 무조건 다루고 넘어가는 삼별초의 난, 삼별초 항쟁입니다.
원종은 이런 삼별초의 명령 불복종에 삼별초 혁파와 명부 회수라는 단호한 조치를 취합니다.
이에 배중손과 노영희를 중심으로 한 삼별초는 본격적으로 고려 조정에 반기를 들게 됩니다.
이들은 승화후 왕온을 국왕으로 받들고 새 정부 수립을 자칭하고, 남아있던 원의 군대와 유격전, 수비전을 중심으로 항쟁을 계속합니다.
삼별초는 진도, 제주 등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거제 등을 비롯한 주변 섬 지역을 차지하면서 대몽항쟁을 이어갑니다.
이들이 섬 위주로 정복한 이유는 고려 조정의 강화도 천도와 같은 이유입니다.
육상, 기병중심인 몽고는 바다로 못 넘어오니까요.
몽골은 이 삼별초 토벌을 위해 고려와 연합군을 편성, 결국 1년여에 걸친 삼별초의 난은 원종 14년에 완전히 끝나고 맙니다.
삼별초의 난에 대한 평가는...글쎄요. 아직 여러 견해가 나뉩니다.
한반도의 강인한 정신을 보여주는 항쟁이었다, 의미없는 싸움이었다, 무신정권 수호를 위한 발악이었다, 이민족에 대한 거부의식이었다 등등...
판단은 직접 하실 일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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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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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짤만 보고 내용 까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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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짤 없으면 보지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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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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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짤만 보고 내용 까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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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짤 없으면 보지도 않으니까! | 24.04.30 17:5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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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4.30 17:5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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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오늘 4편쓴거중에 1편은 어째 추천 많이 받아서 가더라 ㅋㅋㅋㅋ | 24.04.30 17:57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