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 진리교의 수행자들은 아사하라 쇼코가 소유하는 거대하고 깊고 균형이 깨진 자아에 자신의 자아를 고스란히 동화하고 연동함으로써 그들은 의사자율적 파워 프로세스를 부여받는다. 즉 자율과 시스템의 대립을 개인의 힘과 전략으로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대리 집행자인 아사하라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것이다.
아사하라는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시부야구를 포함한 선거구에 입후보했고, 여기저기서 그 괴이쩍은 선거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상한 음악이 매일 선전차 스피커를 통해 울려나오고, 코끼리 가면이나 아사하라 가면을 쓴 젊은 남녀가 하얀 옷을 입고 센다가야 역앞에 늘어서서 손을 흔들기도 하고 정체불명의 춤을 추기도 했다.
옴진리교라는 교단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그런 선거 캠페인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이해의 범위를 벗어난 불쾌함이었다. 왜일까?
하나의 가설이 있다. 그것은 옴진리교라는 존재가 실은 나에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 존재는 우리가 예상도 하지 않았던 스타일로, 우리 자신의 뒤틀린 모습을 취함으로써 우리 목에 날카로운 가능성의 나이프를 들이밀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애써 의식적으로 배제해야만 했던 것이 혹시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것이다.
일반시민의 논리와 시스템과, 옴진리교의 논리와 시스템은 서로를 비추는 일종의 거울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누군가에게 자아의 일정한 부분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어떤 제도=시스템에 인격의 일부를 맡기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그 제도는 언젠가 당신을 향해 어떤 광기를 요구하지 않을까?
당신의 자율적 파워 프로세스는 올바른 내적 합의점에 도달해 있는가? 당신이 지금 갖고 있는 이야기는 정말로 당신의 이야기일까? 당신이 꾸고 있는 꿈은 정말로 당신 자신의 꿈일까? 그것은 언제 어떤 악몽으로 변해버릴지 모르는 누군가의 꿈이 아닐까?
우리가 옴진리교와 지하철 사린사건에 대해 꺼림칙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무의식적 의문이 실제로는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이런 생각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중에서-
최종전에서 지하철에서 패럴라이저를 맞고 기절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건 옴 진리교의 사린가스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 '너를 클리어하게 해주겠다'는 카무이의 달콤한 말은 아사하라가 말하는 '정신적 해방'에 대응합니다. 카무이 일당과 시빌라 사회의 구조가 '집단적 의식 속에서 주체적 책임을 회피한다'라는 점에서 묘하게 겹치는 게 2기의 감상 포인트였는데, 하루키의 옴진리교에 대한 논조와 상당히 흡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윤리라는 것은 개인이 자신을 규제할 사상을 세워 외부 집단과 마찰하고, 좌절하기도 하며 이뤄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유로운 윤리적 주체의 의미를 모르는 사회는 쾌락적 방종과 복종으로만 이뤄진 체제가 됩니다. 그런 세계 속에서 나타난 것이 일본 제국이고, 만주국이고, 적군파이며, 헤이세이에는 옴진리교라고 하루키는 조심스럽게 논설하고 있습니다.
외부 세계와 마찰하며 윤리적 주체로서 거듭나는 자율적 프로세스(푸코는 이것을 자기-배려라고 합니다)가 희박한 사회의 거울쌍으로서 옴 진리교가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그 왜상은 그 어떤 범죄자보다도 사회인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사회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워 없애려고 합니다. 마치 시빌라가 카무이를 처형하지 않고 그저 소거해버리려 하듯이 말입니다.
결국 카무이는 끝까지 집단적 의식 속에 의탁하는 개인에게, 그 윤리성의 행방을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2기는 1기에 마키시마가 했던 질문의 연속이라고 봅니다. 너는 법적으로는 일반 시민이다. 그러나 너는 정말로 자율적인 의미에서 윤리적 주체인가? 라는 골치 아픈 질문 말이지요.
물론 카무이와 아사하라 쇼코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아사하라는 자신의 뒤틀리고 모순적인 부분을 의식하지 못한 채 끝까지 실행한 범죄자에 불과합니다. 그에 반해 카무이는 그런 거울쌍같은 구도를 스스로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격한 행동을 통해 그 구조를 폭로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아사하라 쇼코가 사이비종교 그 자체라면, 카무이는 사이비종교의 이미지를 빌려 사회의 단면을 풍자하는 아방가르드 연극을 했다고 봅니다.
다만 카무이는 그럼에도 '대의를 위해 사람을 희생시킨다'는 시빌라적인 논리를 그대로 답습해 버렸다는 점에서, 시빌라의 거울쌍을 벗어나지 못한 비극적인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최종화에서도 아카네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고 말하며 그것을 시인합니다. 2기 마지막에 카무이 일당이 미화되어서 이런 거울쌍 같은 구도가 흐릿해졌다는 것이 문제라고 보는데, 분량이 더 많았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이코패스] 카무이 키리토와 옴진리교_1.webp](https://i2.ruliweb.com/img/26/10/08/1a11aa9f54b4bdc0e.webp)
![[사이코패스] 카무이 키리토와 옴진리교_2.webp](https://i3.ruliweb.com/img/26/10/08/1a11a6ee62f4bdc0e.webp)
![[사이코패스] 카무이 키리토와 옴진리교_3.webp](https://i1.ruliweb.com/img/26/10/09/1a11e7d60124bdc0e.webp)
![[사이코패스] 카무이 키리토와 옴진리교_4.webp](https://i1.ruliweb.com/img/26/10/08/1a11a7376884bdc0e.webp)
![[사이코패스] 카무이 키리토와 옴진리교_5.webp](https://i3.ruliweb.com/img/26/10/08/1a11aa504314bdc0e.webp)
![[사이코패스] 카무이 키리토와 옴진리교_6.webp](https://i1.ruliweb.com/img/26/10/09/1a11e7bec9e4bdc0e.webp)
![[사이코패스] 카무이 키리토와 옴진리교_7.webp](https://i3.ruliweb.com/img/26/10/09/1a11e7aa6024bdc0e.webp)
![[사이코패스] 카무이 키리토와 옴진리교_8.webp](https://i3.ruliweb.com/img/26/10/08/1a11aabe3864bdc0e.webp)
![[사이코패스] 카무이 키리토와 옴진리교_9.webp](https://i2.ruliweb.com/img/26/10/09/1a11e7f11874bdc0e.webp)
![[사이코패스] 카무이 키리토와 옴진리교_10.webp](https://i3.ruliweb.com/img/26/10/09/1a11e7e0e834bdc0e.webp)
(IP보기클릭)221.151.***.***
(IP보기클릭)119.201.***.***
그 부분을 좀 더 확실하게 구분해서 수정했습니다 | 26.10.09 13: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