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일본 내각총리대신이라고
매끼 프렌치 코스 요리와
일본의 정통 고급 식단만 먹을 것 같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입맛은
사실 싸구려였다.
식탁에 등장한 건
으리으리한 저택과 어울리지 않는
어묵탕과 정종
즉
일본식 맑은 술이다.
그 이유인 즉슨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어릴 적부터
정치 명문가 출신이어서
오히려
정치에 별 뜻이 없었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그런 파티장에서 먹는 것 보다는
일드 고독한 미식가처럼
일반적인 회사원들이 즐기는
그런 조용한 곳에서 먹는 것을 즐기는 것이
그대로
굳어졌다고 해야 할까.......
“ 장가는 안 갈 거냐?”
“ 왜요?
누구 소개시켜주려고요?”
“ 원한다면.”
“ 에이. 영감님.
인맥이라고 해봐야
재벌가 아님 정치인인데,
난 그런 숨 막히는 집구석이랑 안 맞습니다.
아.
신지로 형이나
영감님은 논욉니다.
정치가이긴 하지만 입맛도 그렇고
좀... 싸구려죠.
게다가
저는 이미 약속을 한......”
거기가지 이야기한 신이치는
빨개진 얼굴로
어묵꼬치를 들어 보이며 히죽 웃었다.
“ 싱거운 놈.
그래.
일 년 동안 어쩔 거냐?”
“ 어쩌긴요.
신나게 놀러 다닐 겁니다.”
“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일 텐데?”
“ 그건 제대로 놀아본 적 없는 영감님 같은 워커홀릭이나 그렇고요.
잘 노는 사람은 다릅니다.”
“ 놀러만 다니는 것도 힘든 일 아니더냐?”
“ 하하.
무슨 멍멍이소릴!”
그 거침없는 발언에
식탁 옆에 서 있던
이오리 무가와
쿠도 신이치와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앉은 탁자 옆에 앉아있던
스즈키 회장 부부가 움찔했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쿠도 신이치의 그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 영감님도 이참에 저랑 놀러나 다니시죠?
은퇴할 나이도 지났잖습니까?”
한국의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것과 같은
일본의
1970년대부터 1990년대 버블경제 직전까지의 황금시기를 만든
할아버지세대의 헌신과 노력은
충분히 존경받을 가치가 있지만
은퇴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건
역시 한국인과 일본인의 고질병이다.
진짜 아름다운 사람은
마지막 떠나는 모습도 아름답단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은퇴와 노후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니
죽음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 일본정계의 일언거사(一言居士, "정치가로서 하고 싶은 말은 한다."라고 말하면서
당의 입장에 개의치 않고
신념대로 발언하는 데서 연유한 별명) 등으로 불리며
괴짜 정치가로 불리고
정계의 이단아니
정치개혁의 선구자니
주변에서 추켜세우니
영감님이
뭐 진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왕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 완전히 아니라곤 말 못하겠구나.”
“ 내 그럴 줄 알았지.
그거 중2병이라니까요?”
천운이 필요하단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쿠도 신이치는 충분히 예상했었다.
일본인과
한국인들은
스스로 잘 인식하지 못하는 고정관념 혹은 관습인데
일본인도 그렇고
한국인도 쓸데없이 책임의식이 높다.
책임감이 높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되묻겠지만
외국물을 오래 먹어본 쿠도 신이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외국인은
높은 책임의식을 칭찬하기보단
월권이라고 오해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책임감이 높으면 이곳저곳 안 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책임감엔 한계가 없다는 동양인과 달리
서양인은
어떤 권한이든
명확한 선을 긋길 좋아했다.
혼자서 다 책임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직의 운명을
개인과 합치하는 동양사상을
서양에선 잘 이해하지 못했다.
“ 영감님.
당신은 일본의 천황도 아니고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이유가 없어요.
그냥 정계와 재계에 인맥 많은 노인네일 뿐이지.
그렇게 걱정되시면
차라리 기부나 자선사업을 하세요.
아님
다시 자민당 총재선에 출마해도 되겠네요.”
쿠도 신이치의 그런 독설적인 충고에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피식 웃었다.
그 주변엔
아무도
이런 직언을 해주는 인물이 없었다.
그저 말씀이 옳다고
굽실거리기나 할 뿐이다.
“ 아버지.
저 왔습니다.”
누군가가 들어오면서 하는 말에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이오리 무가와
스즈키 회장 부부
그리고
마침 쿠도 신이치가 와 있다는 소식에
급히 그 곳에 온
오오카 모미지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입이 접시마냥 딱 벌어졌으니......
그 사람은
바로
일본 내각관방장관이자
현재
일본 총리임시대행을 맡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였으니......
그렇게 SP를 대동한 채로 들어오는
고이즈미 신지로와
탁자에서
피식 웃으면서 쳐다보는
쿠도 신이치
그리고
그 옆에서
한숨과 쓴웃음을 동시에 토해내는 듯한 모습을 한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모습을 보면서
오오카 모미지는
도대체 저 쿠도 신이치가
누구길레
모미지 콘체른도 함부로 못하는
엠파이어 콘체른이
저 소년과 면담을 원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어던 댓가라도 치루겠다는 것에 대해서 가지게 된 의문이
순식간에 풀리는 것과 동시에
저 소년이.......
어떤 존재이길레
자신의 집사인 이오리 무가가
완전히 왕의 지시를 기다리는 시종마냥
돌처럼 굳은 모습으로
쿠도 신이치의 옆에 서 있고
스즈키 회장 부부의 얼굴도
자신의 집사 이상으로 긴장된 모습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새로운 의문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고
그런 그들의 긴장된 분위기와는 틀리게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총리임시대행은 들어와
고이즈미 준이치로에게 인사했고
쿠도 신이치는
손을 흔들어주는 걸로 답인사했다.
“ 앉아라.”
“ 벌써 한잔 하셨네요?
아버지.”
“ 하하.
오랜만에 아들놈이 따라주는 술이나 마셔보자꾸나.”
고이즈미 부자는 술을 좋아했지만
평소 건강을 염려해 술자리를 피하는 편이었다.
셋은 한동안 말없이 대작만 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술이 함께하니
말은 불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불콰하게 취한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미리 대기중인
SP의 부축을 받으며
별채 쪽으로 사라지자
고이즈미 신지로는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노인네가 아직도 술은 세단 말이야.
죽겠어. 죽겠어.”
“ 이야!
천하의 고이즈미 신지로 총리임시대행이
정종 몇 병에 약한 소리라니?
우리 형님도 나이를 먹긴 먹었구먼?”
“ 야!
내 나이가 마흔하나다.
마흔하나.”
“ 인생은 육십부터 아닌가요?”
“ 그거야말로 개소리지.
사십 넘어봐라.
비아그라 찾는 인간들 꽉 찼을 걸?”
“ 다행하게도
난 아직 십대.”
“ 너도 금방이야.
새꺄.”
신지로가 손가락을 튕기자
이오리 무가가 미리 준비해둔 대로
술부터 안주까지 메뉴가 싹 바뀌었다.
“ 아버지한테 얘기 들었어?”
“ 뭐?
천운이 필요하단 말 말인가요?”
“ 그것뿐이야?”
“ 네.”
“ 허!
중요한 얘긴 하나도 안 하셨네?”
상대방의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에
쿠도 신이치는 어깨를 으쓱했다.
위스키를 담은 잔을 빙빙 돌리던
고이즈미 신지로는 쓴웃음과 함께 입술을 뗐다.
“ 우리나라는 좀 특이한 나란 거 알지?”
“ 한국이랑 맨날 으르렁거리고
중국, 러시아에 치이고
전쟁 이후로는
미국의 51번주니 뭐니 할 정도로
미국에 절대적인 복종을 해야 하고
자민당 1당 독재에...
뭐 질곡의 역사긴 하지요.”
“ 대외적으로 보자면
일본은 한국만큼은 못해도
투자처로 적당한 곳은 아니야.”
“ 아아.
신지로 형.
복잡한 얘기는 됐고, 본론만. 오케이?”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 분위기자
쿠도 신이치는 지체 없이 참견했고,
그 고이즈미 신지로 총리 임시대행을 이름으로 부르는
쿠도 신이치의 모습과
그런 신이치의 모습을 당연하다는듯이 받아주는
고이즈미 신지로를 바로 옆에서 보는
이오리 무가는
자신도 모르게 꼴깍 침을 삼키고
스즈키 회장 부부와
오오카 모미지는
자신들도 모르게 두려움과 공포로 가늘게 떨고 있었다.
“ 정 없는 놈!”
“ 아무리.......
우리 사이라도
비즈니스에 정이 끼어들면 안 돼지요.
그래서
요점이 뭔데요?”
“ 정권이 바뀌면
인기몰이를 위해 큰 기업 한두 개쯤은 날려버리는 일이
언제부턴가 관행처럼 굳어져버렸어.”
“ 아.
자민당 총재선이
내가 벌인 깽판 직전에 있었지요?
내가 벌인 깽판때문에
총재선이니 뭐니 하는 거
완전히 나가리가 되고
아베 신조 이하 그 패거리들도
내가 직접 천벌을 내려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설마 아직도
그 귀신 기와집 (일본 총리 관저의 별칭, 하도 유령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붙여졌음) 에서
우리 노인네와
스즈키 그룹를 박살내겠다고 덤빈 건가요?
일단은
그 집 주인은 형님일텐데.....
형님 뜻까지 거스르면서까지 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돌집 거리 (나가타쵸의 별칭, 일본국희의사당 때문에 그렇게 불림) 전체의 의사인 건가 보군요.”
“ 아직은...
눈치만 보고 있는 듯싶다.”
“ 이제 곧 그럴 거란 뜻으로 들리는데?
흠.
나가타쵸의 돌머리들이 합심해서 내릴 결단이 아닐 테니...
미국이 관여한 건가요?”
“ 그럴지도 모른다는 첩보가 있어.”
“ 왜요?”
신이치의 마지막 말은
고이즈미 신지로가 아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 왜?’
스즈키 그룹이 미국의 이익을 방해한 적이 있나?
물론 있다.
스즈키 그룹은 미국기업이 아니니까.
스즈키 그룹의 이익은
곧 일본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한 것과 다름없고
반대로 보자면
미국경제엔 손해를 입혔다.
단순하게 보자면 그렇지만
글로벌 어쩌고저쩌고 하는 세상에서
타국의 기업이 이익을 봤다고
우리에게 무조건 손해란 발상은
지극히 1차원적인 생각이었다.
스즈키 그룹의 주가가 오르면
현재
카리스마 그룹 문제를 처리해주는 스즈키 그룹에 투자하는
미국인 투자자는 좋아할 수밖에 없으니
눈에 보이는 손해는 보이지 않는 이익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이빨이 맞부딪치는 것 조차도 모를 정도로
덜덜 떠는
스즈키 지로 회장을 바라보던 신이치는
곧바로
스즈키 지로 회장에게 질문을 하자
스즈키 지로 회장은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뒤에
신이치의 질문에 답을 하기 시작했으니......
“ 지금 스즈키 그룹에서 인수하려는
카리스마 그룹 연구소에서 뭐 좋은 거 개발했어요?”
“ 좋은 거라...
다 좋아서 딱 뭐라고 찍기는 힘들구나...듭니다만.....”
“ 그룹 차원에서 중국과 친하게 지낸 적은요?”
“ 없지....요.
도리어 중국법인 때문에 골치 아픈데....습니다만......?”
“ 그럼 뭘까요?
분명 코쟁이에게 밉보인 게 있을 텐데?”
미국이 막무가내 같아도
거기엔 항상 철저한 계산이 깔렸다.
스즈키 그룹이
자국에 이익이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호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 지금 한번 알아볼게요.”
“ 고맙다.”
“ 고맙다고 말해도 비용은 깎아줄 수 없는 거 알지요?”
“ 안 깎아! 인마.”
“ 딜?”
“ 딜.”
고이즈미 신지로가 파악한
쿠도 신이치는
재벌이라고 우대하지 않았다.
하긴 본인 자체가
유럽 명문귀족의 후예인데다가
외국에 나가 로열패밀리를 상대하다보면 일본재벌이나 정치 명문가라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 난놈은 난놈이란 말이야.’
전 세계의
각국 실세들의 개인직통번호를 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 스즈키 재벌 말고
다른 경단련 회원들 쪽에서도 눈치 챘나요?”
“ 아닐 걸....니다?
우리도 겨우 알아낸 거야....입니다.”
스즈키 지로 회장의 확신에 찬 말이 아니더라도
일본재계 부동의 1위란 이름값이 없었다면
일본 정부측에서
벌써 배신자가 생기진 않았으리라.
“ 글쎄요.
진짜 미국이 관여했다면 형이 안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 거에요.
아님 조만간 알게 되든가.”
“ 정보기관에서 움직일까?”
“ 당연하지요.
컴퍼니는 옛날부터 경제암살자를 잘 써먹었거든요.”
회사Company는
미국중앙정보국 CIA의 별명이었다.
“ 이란사태도 그렇고
중남미를 보더라도
요즘엔 군대를 보내는 것보다
경제암살자를 보내 정권을 뒤집는 게 효과적이지요.
장담하는데
스즈키 그룹, 모미지 콘체른
그리고
형네 직원들 중에도 첩자가 있을 걸요?”
“ 진짜로?”
“ 그렇다니까요.
잠깐만요.”
주머니에서 진동하는 휴대폰 때문에
양해를 구했다.
“ 나야. 말해. 어. 어. 그래? 알았어. 응. 멈춰. 응.”
통화를 끝낸 쿠도 신이치는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모를 표정으로
고이즈미 신지로와 스즈키 지로 회장,
그리고
오오카 모미지를 돌아봤다.
“ 된통 걸린 것 같은데요?”
“ 왜?”
“ 엠파이어 콘체른도 엮인 거 같아요.
그 카리스마 그룹 문제를
스즈키 그룹이 전담해서 처리한다고
그 조직 새끼들이
장난을 시작한 것 같아요.
뭐.....
보스는 잡았지만
아직 조직 자체를 완전히 뿌리뽑지 못했으니.........”
“ 뭐?”
고이즈미 신지로는
방금 전
스즈키 지로 회장과 오오카 모미지가 그랬던 것처럼
한숨을 푹 내쉬었다.
“ 헤지펀드 하나가 작전을 시작했다네요.
형도 알 거야.
프라우스라고.”
“ 프라우스 인터내셔널?”
신이치는 어깨를 으쓱했고
고이즈미 신지로와
스즈키 회장 부부
그리고
오오카 모미지는
완전히 겁에 질린 모습으로 변하더니
다급하게 방을 나서고
부리나케 사라지는 그들을 위해
쿠도 신이치는 건배했다.
‘ 알아서 잘하겠지.’
그렇게
쿠도 신이치와의 만남도 못해보고
다급하게 그 곳을 벗어난
오이치 모미지와 이오리 무가는
그들에게 닥칠 재난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
본문
[연재] 유니콘 프로젝트 외전 퍼스트 컨텍트 (217) [2]
2025.11.21 (0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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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모미지는 진짜 권력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본인의 할아버지조차도 쿠도 신이치를 막기는 커녕 살려달라고 싹싹비는 그 정도급의 충격을 제대로 느끼게 될 거고 말입니다. | 25.11.21 20:3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