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라의 목소리를 들은 뒤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래. 키스하고 쉐라가 기대하고 있다. 맛있는 밥을. 조리를 전공한다던 애가 이런 거에 겁을 먹으면 안 되고.
라곤 해도...
-지긋-
노려보고 있었다. 토끼가. 누운 채로. 빛 한 점 존재하지 않은, 순수한 검은색의 공허의 눈빛으로. 울음소리도 없이, 무언으로 뭔가를 말하는 거 같았다.
'나 죽었어?'
"성운아-성운아-"
"성운이 학새에에엥-선생님 말씀 안 들리나요?"
"캬아아아악-"
쉐라하고 키스가 양옆에 서 있었다. 쉐라는 팔짱을 낀 채 그리고 키스는 앞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채 미소를 지으면서.
그 와중에 블레이즈는 날아와 내 머리위에 앉았다. 너 뭐해? 라고 말하듯 꼬리로 뒷통수를 탁탁 치면서.
"하도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와보았다. 식칼만 잡은 체 멍한 모습이 걱정되어서."
"언제부터 부른 거야? 나 못 들었는데"
"아까 전부터. 우리 둘 다 불러도 아무 반응 없길래 이 누나가 걱정되었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손에 약병을 드는 키스였다. 푸른빛 사과와 비슷한 색의 초록색을.
"이렇게 약까지 준비해 두었는데-"
"약까지는 마실 정도는 아니야 키스. 단지..."
쉐라는 토끼와 나를 번갈아 가보았다.
"너 설마 손질 못하는거야?"
가슴이 무언가에 찔리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한 쉐라의 말에.
"이런 것은 처음이라서. 평소에는 시장에서 파는 고기로만 요리해서."
"그럴 거 같더라."
박스에 놓인 단검 하나를 꺼내었다. 토끼 한마리를 자기 쪽으로 당기면서.
"지금부터 내가 하는 거 잘 봐둬."
쉐라는 옷소매로 단검을 조심스레 닦았다. 어느 정도 빛나는 윤광이 만족스러운 듯 음음-하면서. 토끼의 등가죽을 한번 일자로 그어낸 뒤, 양손으로 가죽을 잡고 그대로 당기는 쉐라였다. 종이를 찢어내듯.
지이이익-하는 찜찜한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토끼의 붉은 속살이.
"휴우-간신히 벗겼네."
"힘들지 않았어 쉐라? 힘좀 쓴거 같은데."
"괜찮아. 토끼 가죽 벗기는 힘 정도는 넘쳐흘러."
라곤 해도 쉐라의 이마에 땀이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긴 숨을 내뱉기까지 하면서. 쉐라가 가죽을 마저 벗기는 와중에, 나는 테이블에 놓인 또 다른 토끼 사채를 바라보았다. 등 부분만 찢긴 토끼를.
"이거 내가 해볼게."
"네가? 괜찮겠어?"
"해봐야지."
심호흡과 함께 그대로 토끼 사채를 내 곁으로 끌어들였다.
"너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나만 이럴 수 없잖아. 명색이 조리과 학생인데, 이런 거에 쪼는 것이 웃기기도 하고."
이미 살쾡이가 한번 물어 뜯은 흔적이 있어서, 굳이 칼로 도려낼 필요가 없었다. 쉐라가 했듯이, 나 역시 찢긴 등가죽을 양손으로 쥐었다. 내 몸에 전류가 흐르는 감각이었다. 손가락으로 전달되는 고기의 차가움으로 인해.
'쉐라도 해냈어.'
이 말을 되새긴 뒤, 그대로 가죽을 찢어냈다. 지이익-하는 귀를 거슬리는 소리와, 난생처음으로 느껴보는 이질감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 감각은 오히려...
"용쾌도 했네 성운아?"
가죽을 벗기는 내 손을 계속 움직이게 해주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가죽이 벗겨진 토끼가 보였었다.
"다리 부분도 벗기자. 고기 하나 남기지 말아야지."
쉐라는 토끼의 다리들을 가죽을 벗겼다. 손가락까지 동원하면서. 그리고..
서걱-서걱-
그대로 토끼의 발바닥과 머리를 잘라버리는 것이다. 단검으로. 잘리는 과정에서, 뼈가 잘리는 특유의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온 것은 덤.
"이것들은 왜? "
"못 먹는 부분이야. 고기도 별로 없고, 가죽 벗기는데도 애로 사항이 생기고 말이야. 쓸모없는 부분이랄까."
"완전히 쓸모없는 것은 아니지."
잘린 머리의 이마에 달린 뿔을 한손으로 잡은 키스는 단검을 들더니...
푹-
"에?"
"너 또 뭐 하는 거야 자칭 미소녀 연금술사 씨?"
"재료 수집."
미약하게 찌르는 소리가 두세 번 들려온 뒤, 뿌리째로 뿔을 뽑는 키스였다. 막 뽑힌 충치마냥, 뿔 아래에는 피가 한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이것들은 보이는 대로 모아둬야 되. 포션 재료로서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들인데."
"아무렇지도 않아 키스? 마치 이런 거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는 듯한 실력이네."
"딱히. 그렇게 따지면 성운이 너도 요리하기 위해 칼로 고기를 베거나 뼈를 빼고 그러잖아. 그거하고 별 차이가 없다고 보는데?"
혀를 쏙 내미는 키스였다. 윙크까지 하면서. 그녀의 행동은, 여긴 현실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마우스 클릭만 하면 몬스터의 전리품을 얻는것이 아닌. 게임속의 주인공들도 다 이런 과정을 거친 거겠지? 사채의 부위를 단검으로 자르는것들을 말이야.
내장까지 빼낸 뒤, 테이블 위에 놓인 토끼는 나에게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귀여운 외모를 가졌던 녀석인데... 가죽을 벗기니 정육점에서 파는 고기하고 외견이 다르지 않았다.
그덕분인지 몰라도.
탁-탁-
아까와 달리, 고기 자르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눈앞에는 평소에 쓰던 재료가 놓여져 있다고 생각하니. 한입 먹기 좋게, 포크로 찍어 먹기 좋을 만큼 잘게 자르면서.
"뭐를 만들어 먹으려고 이렇게 잘게 자르는 거야?"
"심플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 정도?"
피를 빼내기 위해 고기들을 물에 담갔다. 안에 월계수 잎 같은 허브까지 넣으면서.
"원래 이런 것은 돼지고기로 구워야 참 진미지만, 토끼라고 해도 맛은 보장될 거야."
"너희 고향에도 돼지가 있었어? 사나운 몬스터를 말이야."
"사나워?"
키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평소에 느긋하게 우릿간에서 느긋하게 뒹굴고 있는 돼지들을 생각하면서. 그 와중에 블레이즈가 브레스로 장작을 태우고 있었다.
느긋하게.
"그것들은 단순히 자신의 영역에 침범했다는 이유로 꿰에엑-하고 달려들 정도로 사나운 거로 유명한 것들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무리를 짓고 다니기도 해서, 모험가 협회에서 퇴치 요청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라고. 방치하는 순간 무고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잡으면 정말 맛있는 고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
혀를 다시는 쉐라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돌 정도로 맛이 있나 보다.
“깊어진 밤하늘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모닥불에 구워지는 고기가 얼마나 진미인데. 타닥타닥하는 모닥불 소리와 함께 하늘 위에 보름달과 별을 바라보며 코를 찌르는 고기 굽는 냄새는 쌓였던 피로도가 확 가시고도 남지.”
"맛은 있긴 한데, 나는 많이 못 먹겠더라고.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 좀 찜찜하거든. 느끼하기도 하고."
자기 외모와 몸매에 신경을 쓰는 키스 다운 대답이었다. 하기사, 아무리 맛있는 돼지고기라도 풍부한 지방 떄문에 다이어트에서 기피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삼겹살이라면 눈이 돌아가는 한국인들 입장으로서는 이보다 괴로운 상황이 없겠지만. 당장 한시내만 해도 삼겹살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인데.
"키스 너 혹시 철판 있어? 고기 굽기용 말이야"
"철판? 프라이팬 말하는거야?"
"프라이팬보다 좀 더 넓적한 거였으면 좋겠는데. 무쇠로 만들어진 말이야."
"무쇠로 만들어진 넓적한 거면 네 뒤에 있잖아."
쉐라가 검지로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니, 정말로 무쇠로 만들어진 무언가가 벽에 기대어져 있었다. 인터넷에 올려진 중세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많이 본, 기사라면 꼭 하나씩 들고 다닐 방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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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https://novelpia.com/viewer/3607611
지난번 루리웹에 몇편 올리는것을 깜빡해서 올립니다. 죄송합니다...꾸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