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하
길을 잘못 들어 당하, 들어갈 뻔하였다
어느 집 처마 아래로 햇볕이 싸묵싸묵 드나드는 게 보였다
차를 멈추고 마을 안쪽이 어디일까 잠깐 살펴보았다 당
하, 그 순간이 내게는 꽤나 진지한 응시라고 할 수도 있었겠
다 하지만 나는 너의 바깥일 뿐이었지
딩아 돌하 가는 모래 벼랑에, 너는 벼랑처럼 막아섰고, 구
운 밤 다섯되를 심어서, 나는 호미로 땅을 팠고, 그 밤이 움
이 돋아 싹이 터야만, 눈 내리는 밤이 살갗으로 지나가야만
너에게 닿으려니 하였다
당하에서도 누구나 생일상을 받고 부의 봉투를 쓰고 교미
를 하고 가보고 싶은 곳 다 못 가보고 살았겠지 가려니 생각
지도 않은 곳을 가볼 때도 있었겠지
차창을 닫고 당하, 당하, 혼자서 소리를 내보았다 집 아래,
집 아래, 빗물이 모이는 골짜기와 하체가 서늘한 고랑들
너에게 아주 오래된 거울 하나를 쥐여줄까 당하, 그 거울
속으로 들어가 석삼년 녹슬면서 기다릴 거라고 말할까 당
하, 내처 달릴까 당하,
물까치들이 울음소리를 찍어 바르던 풀숲 가에서 따라 울
던 바람
우리는 서로를 통과할 수 없는 바깥이라는 걸 그때는 알
지 못하였다
쉽게 내릴 수 없어서
아무것도 몰라도 다 아는 것 같아서
한가운데가 아니고 내가 너의 변두리쯤이어서 들어가지
못해서 좋았던 당하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안도현, 창비시선 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