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일, 인스타그램 릴스를 넘기다가 손이 멈췄습니다.
레이저와 에반게리온의 콜라보 소식이었어요. 바로 캡처해두고, 주변 에바 팬들에게 공유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기대되는 신제품이 나오는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한 달 뒤, 저는 요코하마 30주년 기념 행사장에 서 있었습니다. 에반게리온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틈틈이 챙겨보는, 현역으로 아직도 돌려보는 작품인데 그 30주년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어요. 주변에서는 한국 행사로 대신하면 되지 않냐고 했지만, 저한테는 그게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행사장에 들어서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어릴 때 TV 앞에 앉아서 보던 그 장면들이 전시물로 걸려있고, 그 음악이 흘러나오고. 30년이라는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제 진짜 30주년을 제대로 보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걸로 마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그 키보드가 머릿속에 남아있었습니다.
틈틈이 레이저 공식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을 확인했어요. 언제 국내 스토어에 풀리는지 정보가 없어서, 그냥 조용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잊혀지나 싶었는데, 며칠 전 우연히 N+ 스토어에서 검색을 해봤어요.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판매 중인 페이지가 떴습니다.
망설임 없이 바로 구매했어요.
오래 기다린 만큼, 그 순간은 생각보다 담담했습니다. 오히려 결제 완료 화면을 보고 나서야 실감이 왔어요. 평소에 주변기기에 큰 돈을 쓰는 편이 아닙니다. 그런데 에반게리온 팬에게 이건 단순한 키보드가 아니에요. 매일 손으로 쓰는 굿즈입니다. 30년을 함께한 작품인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택배가 온 날, 다른 일을 미뤄두고 천천히 열었습니다.
꺼내는 순간, 요코하마에서 느꼈던 감성이 다시 올라왔어요. 붉은 알루미늄 프레임, 스페이스바의 EVA-02 각인. 책상에 올려놓고 한참을 그냥 바라봤습니다. 키캡 하나하나에 숨겨진 NERV, PILOT:ASUKA, A.T.FIELD, TOP SECRET 같은 디테일들을 찾으면서, 1월에 처음 릴스를 봤을 때 설렜던 이유를 다시 느꼈어요. 이름만 가져다 붙인 콜라보가 아니라, 에반게리온이라는 세계관을 깊이 이해하고 만든 물건이라는 게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실사용도 만족스럽습니다. 텐키리스 폼팩터 덕분에 작업 공간이 넓어졌고, 타사의 저소음축만 고집하며 사용했었던 제가 레이저의 오렌지축을 써보면서 기분 좋은 타건음이 들리는게 마치 네르프의 리츠코와 마야의 키보드씬이 상상되곤 했습니다 . 어두운 환경에서 에반게리온 테마 RGB 라이팅이 들어오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아스카 2호기의 색상인 빨강과 주황을 레이저 시냅스의 조명효과로 파이어 모드를 키게 되면 압도적인 2호기 감성이 느껴집니다.
요코하마에서 30주년을 느꼈을 때, 그게 마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어요. 택배를 받고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이 키보드를 사용하는 시간 동안, 그 붉은 프레임과 EVA-02 각인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요코하마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조용히 다시 올라옵니다. 콜라보 릴스를 처음 봤던 순간부터, 요코하마 행사장에 서 있던 순간, 그리고 N+ 스토어에서 우연히 판매 페이지를 마주쳤던 그 순간까지.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키보드 하나로 이어진 느낌이에요.
30년 된 작품이 이렇게 일상 속에 자리를 잡는 경험이, 생각보다 훨씬 깊습니다.
이건 단순한 키보드가 아니에요. 30년의 기억을 매일 손끝으로 만지는 물건입니다.
본문
[소감] 레이저 에반게리온 30주년 콜라보 2호기 키보드 샀습니다
2026.03.26 (03: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