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도는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이라는 내용을 보다가 아래와 같은 대목을 발견했다.
"1차대전 전 이탈리아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를 침략. 6천명의 병력이
독가스탄과 기관총까지 들고 침공했으나 창과 활로 무장한 원주민 3천명에게 대패.."
이 내용을 읽었다면 아마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반응이 나올 것이다.
1) 뭐야 내가 알던 그 파스타군대 그대로네
2) 아무리 이탈리아군이라도 반절도 안되는 부시맨들한테 졌다고?
사실 인터넷에 떠도는 이탈리아군에 대한 루머 중 거의 대부분은 과장되고 부풀려진 것들이 많다.
물론 이 루머 또한 그렇다.
그럼 조금이라도 유식한 유게이가 되기 위해 이 루머의 근원이 된 사건인 1895년에 벌어진 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 대해 araboza.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이탈리아의 맞수였던 에티오피아에 대해 알고 넘어 갈 필요가 있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통일 제국으로서 무려 1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강국이었다.
게다가 시기적절하게,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즉위한 황제 메넬리크 2세는 열심히 근대화를 실시해 국력을 더욱 키우고 있었다.
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메넬리크 2세와 군 지도부의 모습이다
위엄과 간지가 쩌는 이들이 어딜 봐서 이들이 부시맨 족장들과 동급이란 말인가
메넬리크 2세의 노력으로 군사력도 크게 확충되었는데, 자료에 의하면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제국군의 병력은 약 20만명에 가까웠다.
더 놀라운 사실은, 20만의 병력 중 대부분이 징병되었다는 사실인데, 당시 유럽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 징병제 시스템을 굴릴 역량이 되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 중 8만여 명의 병력은 최신 장비를 지급받고 근대적 편제로 구성된 정규군이었다.
당시 에티오피아 정규군의 모습이다.
병사들이 모두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가운데 병사가 들고 있는 기관총이 보이는가?
그렇다. 당시 에티오피아 정규군은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창이나 활을 쏴대는 부시맨들과는 급이 달랐다.
에티오피아 기병과 장교의 모습이다.
간지폭풍을 풍기는 이 병사들의 정체는 에티오피아 군의 최정예인 황제 근위병이다. 전쟁 당시 약 3만명이 있었다고 한다.
영국의 근위병들이 그렇듯, 단순히 황제를 지키는 것 뿐만이 아니라 최전선에 투입됐다.
뱀발로, 한국전쟁때 에티오피아 황제 근위사단이 참전하기도 했다.
일단 여기까지 본다면 저 루머의 대부분이 반박된다. 에티오피아 병사들은 창과 활이 아니라 소총과 기관총, 대포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그 수는 3000명이 아니라 20만명에 육박했으며, 기병대와 근위병까지 갖춘 근대화되고 체계적인 군대였다.
이탈리아는 전쟁 초기에 이 대병력에 맞서 겨우 2000명의 병력을 파병했는데, 전쟁 준비가 덜 된 에티오피아는 초반에 고전하지만 이탈리아군을 수적 우위로 찍어누르며 궤멸시킨다.
이에 빡친 이탈리아는 2만명의 병력을 파병해서 한판 싸움을 벌이는데, 이것이 1896년 3월 벌어진 아도와 전투다.
이탈리아군은 2만명의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진격시켰는데, 중앙을 맡은 부대가 갑자기 진격을 멈췄고(...)
이를 알아챈 에티오피아군은 그 틈새를 파고들어 이탈리아군을 각개격파했다.
아도와 전투를 기록한 에티오피아의 성화(이콘) 이다. 우리가 미술시간에 배웠던 그 기독교의 이콘 맞다.
에티오피아는 4세기부터 기독교 국가였다.
내용을 요약 해 본다면
1. 에티오피아를 침략한 이탈리아군 병력은 약 2만명이었다.
2. 이에 맞선 에티오피아군은 20만명이었다.
3. 에티오피아군은 창과 활이 아니라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했다.
우리 모두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아무 루머나 받아들이지 않는 합리적인 유게이가 되도록 노력하자.
(IP보기클릭)223.39.***.***
(IP보기클릭)182.227.***.***
(IP보기클릭)116.42.***.***
(IP보기클릭)202.150.***.***
에티오피아가 개바름 | 17.10.25 16:09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