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루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우루는 호주에 귀속된다. 1951년에 지방 정부 회의가 나우루에 설립되고 섬에 일부 자치행정이 부여된다. 나우루는 영연방과 합의하에 1968년 독립하게 된다. 1970년에는 호주, 뉴질랜드, 영국이 갖고있던 인광석 채굴권을 나우루에 넘겨주게 된다.
그리고 나우루의 본격적인 황금기가 시작되는데, 광업 초기에 국영회사는 광산 지대에 땅을 소유한 나우루인들에게 선적된 인산 1톤에 대해 1/2 페니씩을 지불했으며, 연간 선적양은 백만 2천 톤에서 2백만 톤에 이르렀다. 20년 동안의 인광석을 채굴하는 신탁회사들의 로열티만 하더라도 2억 3천만 달러로 추정된다.
당연히 국민들은 부자가 되었고 워낙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13,000명) 부의 분배도 공평해서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 오일머니 저리가라 급으로 돈지랄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전 국민이 모두 잘 살았다. 예를 들자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피지나 하와이, 싱가포르로 매일같이 쇼핑을 하러 가고, 도로가 나라에 딱 한 개 (그것도 길이 18km, 제한속도 40km.) 있는 데도 너도나도 람보르기니, 포르쉐같은 고가의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그것도 두 대는 기본. 그 좁은 섬에 여객기만 9대, 주유소는 29개나 있고, 걸어다니기 귀찮아 얼마 안 되는 거리도 차를 타고 다녔으며, 마트에서 쇼핑하기도 귀찮아서 차를 몰고 마트앞에 가서 전화하면 종업원이 지정한 물건을 들고 나왔다.
물론 집에는 각종 가전제품, 심지어 그 당시에는 부자들만 가질 수 있던 컴퓨터나 게임기도 있을 정도다. 채굴산업엔 현지인들은 없고 외국자본가, 외국인 노동자만 있었는 데도 이 정도였다! 국민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들이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은 전부 외국인 노동자로 때웠다. 심지어 공무원까지 외국인이였다. 세금도 없고 주택도 학비(유학도!)도 병원도 모두 국가에서 대주었기 때문에 그냥 공짜였다.
이런 곳이
지금은 빈국이 되었지요.
2013년 전만해도 은행이 없었는데
최근에 호주 이 은행이 들어간걸로 아는데
어찌되었는지는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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