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 분이 제목에 대해 물어보는 글을 쓰셨다가 돌연 삭제하셔서
100% 확실하진 않지만 79년생 게이머로써
왜 X세대 이후의 세대들은
한국에선 콘솔 세대가 없었다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한국은 일본의 불합리한 정책에 의해 지배되었던 나라이고
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의 희생과
백성들의 조선에 대한 믿음,
저항의식으로
결국 독립을 이뤄냈고 이런 이유로 일본을 적대시 해왔었습니다
이 사실은 한국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겁니다
한국에 왜 콘솔 세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위의 사실에 의한
한국 국민 전체의 일본 자체를 거부하는 정서가 뿌리 깊게 남았기 때문입니다
콘솔 게임기는 아타리 제품의 세계적 성공으로 시작되었지만
1980년대 초 아타리는 [아타리 쇼크]라는 사건을 일으켜
전세계 게임 시장에 큰 타격을 주며 몰락했고
그 사건으로 혼란스럽던
그 시기에 닌텐도가 패미컴을 출시하면서
게임 시장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급격한 지각변동을 하면서 본격적인 콘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게임 시장이라는 건 1970년대 중반에 새롭게 탄생하여
1980년대 초 아타리 쇼크로 붕괴 위기가 오고
그 혼란을 닌텐도가 다잡은 영역으로
[[[지금에 비해 압도적으로 작은 시장]]]이었습니다
닌텐도의 마리오 1편 세계 판매량이 600만장 중반으로 알고 있는데
이 정도 수량이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죠
그 정도로 작았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시기에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전두환이 지배하던 군정부는 군 장성들이 정치를 했었기에 일반인들 보다 일본을 더더욱 증오하고 적대시했습니다
[[[[[그래서 '메이드 인 저팬'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제품은 모조리 수입을 금지했었어요]]]]]
당연히 패미컴도 그 대상 중에 하나였죠
한국 정부가 [[[[[일본 제품을 전면 거부하는 정책은 무려 15년]]]]]이나 이어졌었습니다
하지만 15년이라는 시기에 일본 제품은 최고 수준의 퀄리티를 지녔고 (세이코 시계, 패미컴, 소니 워크맨 등)
국민들 중 일부는 간절히 일본 제품을 원했기에 일본 제품을 불법으로 밀수해 들여오는 밀수범,
일명 보따리라는 범죄 직업이 탄생했습니다
암암리에 한국 국민들 인식에는 '일본 제품이 세계 최고다 굳이 비싼 독일 제품을 살 필요 없다'라는 생각이 각인되었고
보따리들의 수는 점점 많아졌었죠
저는 초등학교 2학년에 처음으로 오락실에 가서 비디오 게임이란 걸 접했고
무진장 감동했으며
제 인생이 바뀔 정도로 게임의 매력에 푹 빠졌고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을 7개월 동안 졸라서 패미컴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1989년의 일입니다
저는 성수동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잠실로 이사를 해 2021년까지 송파구 잠실에 살았던
잠실 토박이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잠실은 중상류층 동네입니다
잠실 거주자들은 일반 가정 보다는 여유가 있었고
당시 잠실에 사는 가장들은
사회적으로 엘리트로 분류되는 사람이 대다수였습니다
당연히 일본 출장을 가던 아버지나 어머니가 많았고
출장 선물로 아들들이 바라는 1순위 제품은 역시나 패미컴이었습니다
송파구 더 올라가면 서초구 강남구 가정에는 패미컴이 대부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가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패미컴을 보유한 가정은 극소수에 해당했었죠
제 부모님은 조그만 사업을 했고 일본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기에
저는 보따리가 밀수해온 패미컴을 구하는 방법 밖엔 없었습니다
수요는 많고 보따리가 일본에 가서 일본 제품을 숨겨 들여오는 양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심한 경우 일본 정가의 300% 높은 가격으로 판매가 되었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 2가 세상에 나왔던 2000년에도 보따리는 존재했고 당시 플스 2의 출시 시기의 가격은 최고 140만원으로 기억합니다)
패미컴은 1983년에 세상에 나온 걸로 기억합니다
1989년 당시 패미컴은 정가로 구입할 경우 8만원인가 그 정도면 살 수 있었는데
한국 밀수 시장에선 10만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르는게 값이 되던 일본 제품인데 패미컴은 정가와 그렇게 차이가 나진 않았습니다
이유는
1988년 세계 최초의 16비트 게임기인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가 출시 되었고
닌텐도 또한 슈퍼 패미컴 개발에 착수했다는
뉴스가 아시아 전역을 퍼진게 첫 번째 이유고
1983년에 출시되어 단 2년만에 세계 게임 시장을 독점한 패미컴의 파급력은 엄청났지만
중국, 한국 등 일본에게 지배를 당했던 국가들은 패미컴 수입을 막았었습니다
그렇지만 패미컴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비디오게임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취미가 존재하고 있고 그 재미가 압도적이라는 정보는 아시아 전역에 급속도로 퍼져있었죠
그 결과 아시아의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선 어마어마한 수요가 발생했고
중국의 불법 개발자들은 이 상황을 이용하여 패미컴과 똑같은 제품을
저렴한 부품을 이용하여 제품화하는데 성공 이 불법 카피 제품을 유통시켰고
당연히 한국 게임기 판매상들에게는 그 불법 카피 패미컴을 들여오는게 훨씬 안전하고
가격도 훨씬 싸니까 그 수입 루트로 정한 겁니다
그런 카피 패미컴은 한 가지 제품이 아니었어요
제가 알기로만 [[6가지의 다른 디자인의 패미컴]]이 존재했었습니다
제가 패미컴이 엄청난 인기를 받고 있고 아타리 보다 훨씬 재밌는 게임이 많다는 걸 초등학교 4학년 때 알았는데
친구를 통해 알게 된 패미컴은 카피 패미컴이었고
저는 몇 달간 그 디자인의 카피 패미컴이 정품인 줄 알고 있었을 정도로
수 많은 디자인의 카피 패미컴이 한국에 유통되어 있어 정품 패미컴이 어떤 디자인을 하고 있고 어느 제품인지
당시 아이들은 대부분 몰랐고
그저 가격이 가장 싼 제품을 사달라고 조르는 현상이 일어났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심각한 문제였었죠
저는 정말 잘사는 친구를 통해 일본 게임 잡지인 [[패미통]]을 초등학교 4학년 2학기에 생전 처음 보게 되었고
그제서야
'아 이게 닌텐도에서 만든 정품 패미컴이구나'
상황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부모님을 조르기 시작했고 7개월을 조른 끝에 초등학교 5년 초
정품 패미컴을 손에 쥐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79년생은 한국 베이비 붐이 정절에 이르렀던 시대인 건 다들 아시죠?
그래서 한 반 평균 학생 수는 50명 내외였습니다
그 중 패미컴을 보유한 친구는 50명 중 10명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강남구, 서초구에서는 더 많은 학생들이 패미컴을 보유했었겠죠
이렇듯 1980년대의 한국에서의 게임은 정부가 나서서 일본 제품 수입을 완벽히 막았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는 패미컴을 살 수 없었던 시절이었던 겁니다
이게 콘솔 세대가 없어보이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일본 제품이 한국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었어도 밀수를 통해 기기를 들여와
편법을 써서 [[[오락실]]]을 개업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고
호기심이 어마어마한 초중고 학생들은 처음 보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걸
[오락실 방문]이라는 행동을 통해 알게 되고
게임이 완전히 빠져버리는 학생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오락실로 직행하는 학생들이 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당연히 공부와는 점점 멀어졌고
이를 지켜보던 교사들은
- 오락실은 정부가 인정한 합법적인 장소가 아니다
- 오락실 출입을 하는 학생들은 대다수 성적이 급격히 떨어졌다
- 방과 후 오락실에서 사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고 심지어 수업을 빼먹고 오락실에 가는 학생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 게임은 엄청난 매력을 가지고 있고 초등학교 학생들도 용돈으로 접하는게 가능하기에 도박에 준하는 중독성을 가진
매우 위험한 취미로 구분해야한다
이렇게 게임이란 것을 정의 내리고 이는 교육부 장관에게까지 전해졌으며
교육부 정책에 게임은 중독을 유발하는 위험한 매체로 규정하여 교사들은 오락실을 다니는 학생들을
[[[[[문제아]]]]] 중 하나
로 분류하고
학생회 소속 교사들은 간헐적으로 학교 주변에 있는 오락실을 급습해서
게임을 하고 있는 학생을 구속하여 훈육하기 (손바닥, 엉덩이를 매로 때리는) 시작했습니다
저도 세 번 오락실에서 게임하다가 잡혀서 엉덩이가 시퍼렇게 될 정도로 매질을 당했었습니다 ㅎㅎㅎㅎㅎ
오락하다가 교사가 들이닥치면 다들 뒷문 혹은 교사와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소동이 종종 벌어졌다는 겁니다 ㅎㅎㅎㅎㅎ
(현재 경찰들이 불법 도박단의 정보를 입수해 몰래 들이닥쳐 전원 검거를 하는 장면과 거의 일치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교육부의 적극적 제재는 1998년도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문화를 단계적으로 수입 허용하는 정책이 시작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4단계인가 5단계에 걸쳐서 일본 문화, 제품들을 정식 수입을 할 수 있게 변화를 시도했는데
제 기억으로는 그 정책이 완료될 때까지 게임기 수입은 이뤄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애니메이션도 위험 매체였기 때문에 현재 12세 관람가 수준의 애니메이션만 수입이 되었었을 겁니다
이렇게 게임은 국가가 나서서 단속을 하는 [[[[[또다른 타입의 도박]]]]]으로 간주했기에
단속에도 불구하고 오락실 출입을 멈추지 않은 상당수 학생들은 [[[[[문제아]]]]] 취급을 받으며
자기 자식이 오락실 다니는 친구가 있으면 부모가 나서서 혼을 내며 같이 못놀게 하는 문화가
절대적으로 자리 잡았었습니다
하지만 콘솔 게임기를 사주는 부모는 분명히 존재했고 오락실 다니는 것과 콘솔 게임기로 게임을 하는 건
조금은 다른 성격으로 구분되었던 것 같습니다
교내에서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들 중 한 30% 정도는 콘솔 게임기를 보유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송파구 잠실 기준)
이런 또다른 변수는 교사들이 제재할 수 없었기에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자식에게 게임기를 사주고 싶긴 한데
애가 삐뚤어지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기 까지 했었죠
한국엔 콘솔 게임 세대가 없었다는 주장은 거짓입니다
게임은 한국 국민들에게 새로운 타입의 유희 매체로 강력하게 각인되었었고
당시 학생들은 부모에게 게임기를 사달라고 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습니다
다만 국가가 엄격히 제재하고 있고 합법적으로 수입되지 못하는 현상을 체감하던 당시 부모들은
결국 게임기를 사주지 않는 방향으로 갔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히 콘솔 게임 세대의 수는 매우 적었던 것일 뿐입니다
1989년도 그러니까 닌텐도에게 압도적으로 밀려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세가 8비트 게임기를 보며
제 2차 게임 대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인 세가가 결국 먼저 메가 드라이브라는
16비트 게임기를 1988년 초인가 아무튼 그 즈음 세계를 강타시킨 시기에
저는 겨우 겨우 정품 패미컴을 손에 쥐었었습니다
7개월을 졸라서 얻어낸 패미컴이지만 저는 딱 1년 6개월 행복하다가
메가 드라이브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 다시 부모를 조르게 되었고
엄청나게 많이 맞으며 부모님을 걱정하게 했습니다
저는 결국 메가 드라이브는 입수하는데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이 실패로 인해
1990년에 세상에 나온 제 2의 게임 시장 지배자인
슈퍼 패미컴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고
1년 정도를 졸라서
'그럼 반에서 10등 안에 들면 사주겠다'
는 제안을 받았고
난치 희귀 뇌질환인 기면증 (한국에 8900명 밖에 없음)에 당시엔 존재조차 몰랐던
ADHD 환자였던 제가 정말 죽을 각오로 학교 기말 고사를 준비해
'9등'에 랭크되는 기적을 이뤄냈고 (이 성적 결과 이후 다시는 반에서 9등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없었습니다 ㅎㅎ)
(바로 사주진 않았기에)
1991년 여름
반에서 4명만 보유하고 있던 그 비싼 슈퍼 패미컴을 5번째로 보유하여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존재가 되었었어요 ㅎㅎㅎㅎㅎ
이렇듯
학생들의 게임에 대한 열정은 지금과 비교해서도 대등한 수준이라고 생각되고
콘솔 게임기를 보유한 학생들은 굳이 오락실을 가지 않고도 그러니까 교사 단속이라는 리스크 없이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콘솔 게임기 세대는 분명히 존재했었습니다
불법 루트로 들어와 부르는게 값이었던 덕에 너무너무 비쌌고
게임이라는 새로운 취미에 대한 학부모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너무나도 강력했기 때문에
잠실 기준
전교생의 60% 정도는 절실히 콘솔 게임기를 열망했었지만
콘솔 게임을 획득하는데 성공한 학생은
전교생의 15% 정도? 밖에 안됐던 겁니다
중상류층 동네인 잠실에서 15%, 서초구나 강남구에선 훨씬 높은 비중으로 콘솔 게임기 유저가 있었겠지만
한국 전체를 일반인 눈으로 봤을 땐 콘솔 게임기 세대는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 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한국 대다수는
콘솔 게임기 세대가 존재한 적 없다고 하는 겁니다
분명이 존재했고 그 증인이 바로 접니다
저는 절대적으로 따져봤을 때 상위 매니아 칭호를 받기엔 열정이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게임에 열정적이었던
집안 배경이 유복한 학생들이 존재했었다는 점은 분명한 팩트입니다
(IP보기클릭)121.170.***.***
90년대 한국 기준이면 PC 게이머보다 콘솔 게이머가 더 많았을 것 같네요. 90년대 중반 개인PC가 486 DX2, 팬티엄 정도 기준으로 잡아도 모니터&본체 포함으로 최소 100만원이 넘었을텐데 그 당시 시급 1500원 안 되는 시절에 일반 가정에서 100만원이 넘는 개인PC를 부모가 사주는건 엄청 큰 경제적 부담이었죠. 반면 삼성 슈퍼겜보이(메가드라이브), 현대 슈퍼컴보이가 20만원 이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새턴, 플스도 아무리 비싸봐야 용산기준 40~50만원 이하였고) 한국에서 게임용 PC가 제대로 보급되기 시작한 IMF 이후 스타1 흥행과 전화요금이 비싼 모뎀에서 ADSL,케이블 등이 퍼지면서 인터넷의 중요성 때문에 부모들이 그나마 아이들에게 개인 PC를 사줘야한다는 분위기가 생긴 이후로 기억하네요.
(IP보기클릭)125.242.***.***
님께서 저보다 더 선택 받은 존재인 겁니다 제가 자세히 서술하지 않아서 그렇지 제가 새로운 신형 콘솔을 구입할 때 마다 저희 집은 전쟁터가 따로 없었을 정도로 난리통을 겪었습니다 말을 꺼낼 때 마다 맞았고 팬티만 입고 집에서 쫓겨나는 건 일상다반사 별 별 고문을 장기간 받으면서 싹싹 빌어야 두 달간 부모님이 절약해서 패미컴 슈퍼 패미컴 플레이스테이션 1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 2 이 5개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ㅎㅎㅎ
(IP보기클릭)125.242.***.***
1990년대의 일본 콘솔 게임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5, 6 드래곤 퀘스트 4, 5 택틱스 오우거 이 3인방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RPG는 시스템이 매우 고차원적이어서 아직까지 리메이크 되고 있잖아요
(IP보기클릭)125.242.***.***
추가로 설명드립니다 닌텐도가 지배하던 1980년대 1990년대에는 세계적으로도 콘솔 게임기가 압도적으로 칭송받았습니다 1980년 즈음부터 IBM의 주도하에 PC 즉 퍼스널 컴퓨터라는 존재가 세상에 나왔고 어마어마한 가격이지만 지속적으로 PC를 보유하는 가정이 세계적으로 늘고 있었습니다 저는 1989년 패미컴을 손에 쥐기 전에 286 컴퓨터를 아버지가 대뜸 사주셔서 보유했었습니다 즉, 저는 콘솔 게임 PC 게임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던 거죠 처음 286을 받고 서비스로 3개의 게임을 공짜로 받았는데 [[스키냐 죽음이냐 (SKI or DIE)]] 라는 게임은 제 인생 게임 중 하나였습니다 이 게임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죠 하지만 제가 패미컴을 추가로 입수하면서 286 컴퓨터의 전원을 켜는 빈도수는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이유는 PC 게임은 전세계 게이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극도로 적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에 나오는 PC 게임 대부분의 퀄리티가 너무 너무 허접했습니다 1989년 부터 플레이스테이션이 세상에 탄생한 1994년까지 저는 PC 게임에도 적지만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제가 기억하는 PC 명작 게임은 스키냐 죽음이냐 페르시아의 왕자 레밍즈 원숭이 섬의 비밀 시리즈로 대표되는 미국식 어드벤쳐 게임들 이것 말고는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국에서 게임 소프트를 사는 일은 매우 힘들 일입니다 그렇기에 게임 하나를 선택해서 사면 다른 게임은 포기해야했기에 무조건 초명작만을 찾는게 당연한 일이었고 콘솔 게임기의 신작을 포기하고 PC 게임을 선택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콘솔 세대가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IP보기클릭)125.242.***.***
저도 286 486 팬티엄 모두 보유했었습니다 저는 사달라고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PC에 있어선 무슨 이유인지 계속 사주셨어요 하지만 PC 전원을 켜는 일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인터넷이 전화를 불통시켜서 할 수 있었고 전화 요금이 미친 수준으로 나오기 때문에 PC 게임을 하기 위해서만 PC를 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아버지는 최신 제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PC는 최신 제품을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계속 사주셨어요 대신 콘솔 게임기를 사달라고 하면 '내가 사줄 형편이 못돼' 이러셨거든요? 유추해보면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PC는 현대 가정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품으로 아버지가 인식하신 것 같아요 300만원 짜리는 잘 사주시면서 60만원 짜리 콘솔은 잘 안 사주시는 현상 이게 제 기억입니다
(IP보기클릭)2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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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일본 콘솔 게임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5, 6 드래곤 퀘스트 4, 5 택틱스 오우거 이 3인방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RPG는 시스템이 매우 고차원적이어서 아직까지 리메이크 되고 있잖아요 | 26.05.13 09: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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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정식발매된 게임들은 간단한 게임 위주로 선정되었고 텍스트가 많은 게임들은 국내에 보급되지 못했죠. | 26.05.13 09:14 | |
(IP보기클릭)12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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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한국 기준이면 PC 게이머보다 콘솔 게이머가 더 많았을 것 같네요. 90년대 중반 개인PC가 486 DX2, 팬티엄 정도 기준으로 잡아도 모니터&본체 포함으로 최소 100만원이 넘었을텐데 그 당시 시급 1500원 안 되는 시절에 일반 가정에서 100만원이 넘는 개인PC를 부모가 사주는건 엄청 큰 경제적 부담이었죠. 반면 삼성 슈퍼겜보이(메가드라이브), 현대 슈퍼컴보이가 20만원 이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새턴, 플스도 아무리 비싸봐야 용산기준 40~50만원 이하였고) 한국에서 게임용 PC가 제대로 보급되기 시작한 IMF 이후 스타1 흥행과 전화요금이 비싼 모뎀에서 ADSL,케이블 등이 퍼지면서 인터넷의 중요성 때문에 부모들이 그나마 아이들에게 개인 PC를 사줘야한다는 분위기가 생긴 이후로 기억하네요.
(IP보기클릭)125.242.***.***
저도 286 486 팬티엄 모두 보유했었습니다 저는 사달라고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PC에 있어선 무슨 이유인지 계속 사주셨어요 하지만 PC 전원을 켜는 일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인터넷이 전화를 불통시켜서 할 수 있었고 전화 요금이 미친 수준으로 나오기 때문에 PC 게임을 하기 위해서만 PC를 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아버지는 최신 제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PC는 최신 제품을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계속 사주셨어요 대신 콘솔 게임기를 사달라고 하면 '내가 사줄 형편이 못돼' 이러셨거든요? 유추해보면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PC는 현대 가정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품으로 아버지가 인식하신 것 같아요 300만원 짜리는 잘 사주시면서 60만원 짜리 콘솔은 잘 안 사주시는 현상 이게 제 기억입니다 | 26.05.13 09:42 | |
(IP보기클릭)84.17.***.***
286 250~300사이에 샀던 기억이;;; ㅋㅋ 그리고 당시에 포터블 카세트, 정품 스피커 해서 50만원;;;에 사주셨더랬죠 | 26.05.13 10:53 | |
(IP보기클릭)59.5.***.***
전 삼보컴퓨터 286S 램1MB 하드 20MB 칼라모니터 14인치 195만원 기억남,., 원숭이섬의 비밀 22000원 원숭이 섬의 비밀2 25000원 인디아나존스 3 15000원 인디아나존스4 25000원 삼국지3 43000원 정품도스겜 몇개 많이 있음 | 26.05.13 14:31 | |
(IP보기클릭)125.242.***.***
당시 사운드 카드의 양대 산맥은 사운드 블래스터와 한국 제품 [옥소리]였는데 저는 옥소리를 사용했었어요 ㅎㅎㅎ | 26.05.13 14:34 | |
(IP보기클릭)125.242.***.***
전 메이커 제품이 아닌 제품을 샀기에 가격차가 크게 났었을 겁니다 우수한 286 PC를 삼보 같은 메이저 업체 제품 대비 엄청 싸게 사고 당시엔 엄두도 못냈던 EGA 모니터를 샀습니다 한동안 컬러 모니터 구경하겠다고 다른 반 친구들까지 해서 약 70명이 모니터를 구경하며 신세계라 외쳤던 적이 있네요 | 26.05.13 14:37 | |
(IP보기클릭)84.17.***.***
그리고 한글 문제로 한글 PCI 카드까지 달았었죠 ;;;ㅋㅋ | 26.05.13 14:40 | |
(IP보기클릭)118.130.***.***
(IP보기클릭)125.242.***.***
님께서 저보다 더 선택 받은 존재인 겁니다 제가 자세히 서술하지 않아서 그렇지 제가 새로운 신형 콘솔을 구입할 때 마다 저희 집은 전쟁터가 따로 없었을 정도로 난리통을 겪었습니다 말을 꺼낼 때 마다 맞았고 팬티만 입고 집에서 쫓겨나는 건 일상다반사 별 별 고문을 장기간 받으면서 싹싹 빌어야 두 달간 부모님이 절약해서 패미컴 슈퍼 패미컴 플레이스테이션 1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 2 이 5개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ㅎㅎㅎ | 26.05.13 10:35 | |
(IP보기클릭)152.193.***.***
(IP보기클릭)125.242.***.***
쓸데없는 것만 잘 기억하는 겁니다 ㅎㅎㅎ | 26.05.13 22:21 | |
(IP보기클릭)118.235.***.***
(IP보기클릭)125.242.***.***
아~ 재믹스 (MSX) 얘기를 완전 까먹고 있었네요 초등학교 2학년 당시 친했던 친구네 집에 MSX가 있었고 [[[몽대륙]]]이라는 게임에 푹 빠졌었던 적이 있었죠 코나미에서 만든 [[[몽대륙]]] 역시 제 인생 게임인데 이 게임은 패미컴이나 세가 마스터 시스템으로 이식이 안되어서 정말 아쉬웠었어요 대신 똑같은 팽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남극탐험]]] 이 존재는 했었죠 몽대륙의 전투 파트를 삭제하고 오로지 팽귄이 목적지를 향해 장애물을 피해 달려가기만 하는 게임이었기에 별로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 26.05.13 22:48 | |
(IP보기클릭)112.155.***.***
(IP보기클릭)125.242.***.***
제 이모부가 1999년 한국 마이크로 소프트 CEO, 그 이후 곧바로 한국 시스코 CEO를 하셨는데 그 덕으로 다들 구입하기 힘들었던 윈도우 95 윈도우 98 윈도우 XP 를 공짜로 밀봉 정품을 받았었어요 한국 마이크로 소프트 CEO 임기가 끝나고 갑자기 한국 시스코 CEO를 바로 맡으셨는데 그 덕에 윈도우를 공짜로 겟하는 찬스는 영영 사라졌어요 ㅎㅎㅎㅎㅎㅎ | 26.05.13 23:3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