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웨어의 장인정신을 엿볼수 있는 2D 횡스크롤 아트워크는 시각적으로 높은 감흥을 전달한데다
SF장르의 문화 컨텐츠에서 흔히 볼수 있는 소재와 클리쉐가 뒤범벅되어 있던 스토리가 매력적인 게임이었습니다.
80년대 일본 학창시절에 관한 추억도 시나리오의 많은 부분에 녹여져 있었고요.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SF소재를 내세운 충격적인 시나리오는 분명히 아닙니다.
대신에 향수를 자극하는 익숙한 소재들을 굉장히 절묘하게 섞어놓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고 유행처럼 번졌기때문에 클리쉐로 자리잡았던 그 소재들의 매력을 적절하게 융합시켰다는거죠.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상케하는 2D 비주얼의 캐릭터들이 등장하기에 겉보기엔 오타쿠만을 겨냥한 학원물 애니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닐라웨어가 내세운 이 게임의 장르는 '드라마틱 어드벤처'로 실제론 2D로 그려낸 일본 청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아무도 모른다.'라는 애니메이션을 오타쿠만을 겨냥한 학원물 애니로만 바라보지 않는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네요.
이 게임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않은 고민과 감성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가는 흥미진진한 군상극으로 이뤄져있습니다.
40년대, 80년대, 현대, 그리고 상상을 자극하는 미래의 고민과 감성을 모두 활용하기에 다채로운 개성의 인물들이 충돌하더군요.
13명의 주인공과 이름이 달린 조연들은 단 한명도 무의미하게 지나가지않으며 각 인물에 대한 인상이 끊임없이 변합니다.
내가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주인공조차 정확히 어떤 녀석일지 확신할수가 없기에 미스터리 장르의 묘미를 매우 잘 살렸다고 느꼈습니다.
이 게임의 스토리진행은 주인공 13명의 지나간 기억을 위키를 보는것마냥 마구잡이로 휘저으며 세계관의 진실을 파고드는 방식입니다.
스토리파트가 '회상편'이라 붙여진건 그래서죠.
친절하게 시간순대로 전개해주진 않기때문에 각 주인공에게 주어진 키워드와 인물, 사물과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추론해야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진행이 매우 불친절할거 같지만, 게임의 진행은 의외로 친절한 시스템 덕분에 헤맬 일이 거의 없습니다.
분기맵도 쉽게 체크할수 있고, 분기조건도 거진 표시되며, 표시되지않는 조건은 일자진행으로 뚫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매우 복잡한 다원적인 구성의 이야기임에도 게임진행만큼은 복잡하지 않게끔 세심하게 배려해둬서 편안하게 즐길수 있었습니다.
다만 본편을 켠 이후 가장 처음으로 시작할 가능성이 높은 쿠라베 주로편의 분기조건이 좀 복잡한 편이라
쿠라베 주로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골랐다면 게임의 진행이 조금 어렵다고 느낄수도 있고 헤맬 여지가 좀 있긴 합니다.
귀여운 외모를 지닌 여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먼저 골랐다면 13명 중에서 복잡한편인 주로편보다야 어렵지 않겠지만요.
주로편 외에도 분기 조건이 난감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대놓고 힌트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가끔 있고요.
그래도 지나간 텍스트를 잘 살펴보면 플레이어가 뭘 해야할지 추론해내기 용이합니다.
무수한 설정이 쏟아지고 인물간의 관계구조가 매우 복잡하기때문에 헷갈릴때마다 한번씩 체크해보라고 '탐구편'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인물과 세계관의 설정에 대해 사전처럼 풀어놓은 미스터리파일과 지나간 이벤트를 다시 재생할수 있는 이벤트 아카이브로 구성되어 있죠.
나중에 한꺼번에 보려고하면 사전을 읽는것마냥 눈이 어질어질할수도 있는데 다 읽을 필요는 없고 긴가민가한것만 봐주면 됩니다.
이것까지 봐야만... 뭐 그런건 거의 없는데 본편에서 일일히 다 설명했으면 지루했을거 같은 설정들을 디테일한 서술로 풀어놓긴 했습니다.
붕괴편에서 얻을수 있는 미스터리 포인트를 통해 해금가능한 잡다한 문서도 많기때문에 사전을 채워나가는 소소한 재미도 있습니다.
이 게임의 전투 파트를 담당하는 '붕괴편'은 기병과 괴수들이 마커로 표시되어있어 시인성이 떨어진다는 첫인상을 지니고 있었죠.
튜토리얼에 가까운 데모 이후로 본편에 접어들면 각 기병의 특성에 맞춰 전술적인 움직임과 병기의 전략적인 활용을 점점 요구합니다.
시각적으로는 볼품없지만, 의외로 시뮬레이션 전투의 기본틀은 괜찮게 짜여진 편입니다.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전황 속에서 활용할 병기를 선택하는 UI에서는 시간이 정지하기때문에 전략을 고민할 여지 역시 충분히 제공하고요.
다만 각 기병이 1~4세대로 분류되는 선에서만 구분되지 주인공들만큼이나 개성적이지 못했던 점을 개인적으로 좀 아쉽게 생각합니다.
캐릭터의 패시브 스킬로 구분되는 측면도 있긴 합니다만, 병기 특성에서는 기병간의 개성을 확실히 살려내지 못했으니까요.
그렇다보니 전투의 흐름도 너무 단순하다고 느껴지더군요. 할만은한데 금방 질립니다.
기병과 괴수와의 전쟁을 시각적으로 제대로 연출하지 못한건 전투의 재미를 떠나 붕괴편을 본편의 덤처럼 느껴지게 만든데 일조했다고 봅니다.
그나마 전투의 난이도가 쉽고 한판, 한판이 빨리빨리 끝나서 플레티넘 트로피를 노려도 노가다 작업이 딱히 필요없었던게 다행이었죠.
글을 마치며 사놓고 좀 하다 말았던 바닐라웨어 게임들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딘스피어랑 드래곤즈크라운 둘 다 초반에 접어서 엔딩까지 가보지도 못했거든요.
물론 2D 횡스크롤 아트워크를 잘 살린 유니크한 특징을 제외하면 13기병방위권과는 전혀 다른 매력이겠지만 다시 끌리네요.
바로 하는건 좀 그렇고 해적무쌍4 좀 하다가 파판7 리메이크 발매전까지 시간 좀 남으면 다시 꺼내봐야겠습니다.
긴 소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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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첫짤에서 "우사미짱~" 이 들리는 것 같네요 ㅋㅋ 저도 정말 재밌게 했습니다 붕괴편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갈수록 빠져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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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구분만 되지 같은 세대 내에서 기병끼리 차별화되는 개성은 좀 적었던거 같아요. 중복되지않은 필살기라도 하나씩 있었으면... 그래도 1~4세대 기병이 모두 장단이 있다보니 세대 밸런스는 잘 잡았다 싶긴 했네요. | 20.03.29 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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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기 애니메이션을 따로 볼수 있게끔 되어있던데 의외로 디테일하더군요. | 20.03.29 11: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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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첫짤에서 "우사미짱~" 이 들리는 것 같네요 ㅋㅋ 저도 정말 재밌게 했습니다 붕괴편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갈수록 빠져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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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들 하나하나가 나름대로의 비중을 다 가지고있어서 그런게 참 좋았죠 ㅎㅎ 엔딩크레딧 이후 후일담?에서도 조연들 확실히 챙겨줘서 정말 깔끔하게 끝났다 싶었습니다. 붕괴편도 중반까진 할만했는데 3에어리어쯤 되니까 좀 지루하더군요... 특히 3에어리어 막판 보스는 피통도 많고 잡졸 계속 불러대서 S랭크 따는게 고역이었네요. | 20.03.29 12: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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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정말 재밌게 하긴 했는데 올해 대작이 많이 남아서 올해 최고였다고는 아직 단언할수 없네요. 근데 젤다 야숨2는 올해 안나오지 않으려나요? 이게 벌써 나오려나... | 20.03.29 12: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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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냥 땡기는대로, 혹은 호기심이 동하는대로 골라서 하면 됩니다. 어차피 하다보면 조건때문에 막혀서 다른 애들도 다 돌게 되더라고요. 탐구편은 그냥 지나간 이벤트 다시 보고 세계관 설정들 사전처럼 정리된거 그거 보는겁니다. 안봐도 전혀 지장없는데 게임하다 좀 복잡하다싶으면 한번씩 체크하면 될겁니다. | 20.03.29 12: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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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티넘 난이도는... 의도적으로 매우 쉬운 난이도로 한다면 매우 쉽습니다. 난이도 트로피는 없거든요. 전 노멀 난이로도 했는데 3에어리어 딱 한판 빼고는 다 쉬웠네요. 붕괴편 S랭크 30개(All S랭) 트로피 정도를 제외하면 까다로운건 없었던거 같습니다. 꼼꼼하게 플레이한다면 엔딩찍자마자 플레티넘 트로피가 나올 정도고 플레 획득율도 매우 높아요. 음식 다 먹기? 뭐 이런거 있었던거 같기도 하고. 똑같은것만 안먹으면 이것도 어렵진 않을거고... | 20.03.29 12: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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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플레까지 9일쯤 걸렸는데 저보다 일찍 플레딴분들도 있었어요. 40시간 내외면 플레티넘까지 딸수 있을겁니다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03.29 14:20 | |
삭제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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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튀중독자
스포하려해도 스포할게 너무 방대한 게임이기도 합니다 ㅋㅋ 반전이 너무 많아서... 악역이 악역같지도 않고 주인공 일행에게도 미심쩍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기도 하고. 그래도 제 생각에도 아무것도 모른채로 스토리를 즐기는게 가장 좋은거 같긴 합니다 ㅎㅎ | 20.03.30 0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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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어드벤처 게임들이 매니악한 장르인데... 취향에 맞으셨으면 좋겠네요. | 20.03.30 13: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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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도 너무 많고 인물관계나 설정이 굉장히 복잡하다보니 헷갈릴만해요 ㅋㅋ 저도 긴가민가하면 탐구편 뒤져보면서 내용 체크하고 그랬네요. 플레 화이팅입니다 ㅎㅎ | 20.03.30 15:10 | |